제 183화
사이비 교주의 반지 (2)
관리실장 이수관은 시운의 말을 듣는 순간 발끝부터 머리위까지 위압감이 타고 드는 감각에 순간 입을 멈췄다.
‘젊은 친구가 눈빛이 왜 이렇게 서늘해..’
시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순간 공포감이 숨을 막히게 할 정도였다.
수많은 헌터를 봐왔지만 눈빛만으로 숨까지 막히게 하는 이런 헌터는 처음이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고 찾아온 것이니 순서와 절차를 지켜주시죠.”
시운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도 맞았다.
허나.
박태석은 명실상부 최고의 헌터다.
그가 헌터트레이션에 제공하는 최상급 물건들은 주식을 폭등하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엄청나서 다른 헌터보다 대우해줘서 처세를 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입장이긴 했다.
“흐음….”
이수관이 침음을 흘렸다. 수관은 눈짓으로 직원을 내보내고 말했다.
“정말 이 반지를 4억이나 주고 사시려고요? 저희 헌터트레이션에는 이 가격에 더욱 좋은 매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회유하기 위해서 한 말이였다.
“제가 미리 연락을 드리고 이 반지를 사려고 찾아왔습니다. 다른 것을 거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호박이다.
넘어가질 않는다.
허나.
거래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고 구두계약을 한 상태도 아니다.
도리라는 것이 있지만 무시하고 사실 팔지 않고 태석에게 넘겨도 된다. 요즘 헌터트레이션은 자금줄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조건 박태석의 비위를 맞춰줘서 하나라도 더 그에게서 최상급 물건들을 뜯어야 한다.
“이 물건은…….”
수관의 말이 이어지기가 힘들었다. 저 젊은 헌터의 눈이 마치 맹수 같았기에.
그 순간이였다.
‘뭐, 뭐야?’
수관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주위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창문을 열어놓지도 않았는데?’
서늘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고, 시운은 머리칼이 휘날리며 똑바로 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헌터의 능력인가..’
S급 헌터들은 현계에서도 갖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일명 각성한 자들.
근데 이 기운과 이런 바람들은 범상치 않다.
수관이 봤던 S급 헌터들의 그 어떤 능력보다 큰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전투계열의 헌터인가..’
그때.
‘……!’
목끝으로 서늘한 감촉이 들었다.
수관의 앞에 있던 시운은 온데간데 없었다.
목끝으로 칼이 닿는 감촉에 수관의 몸이 떨려왔다.
“무, 무슨…….”
“저한테 분명하게 파셔야겠습니다.”
수관의 뒤에서 이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느틈에 뒤로 이동했단 말인가.
근데 놀라운 것은 수관의 눈 밑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날카로운 감촉이 목에 닿는 느낌은 정확하다.
‘몸을 숨긴 것인가!’
수관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파, 팔겠습니다.”
겁에 질린 수관의 말과 함께 목을 겨누는 칼날 같은 감촉이 사라졌고.
다시 시운의 형상이 눈에 보여왔다.
“당장 계약서 작성하고 거래하시죠.”
이수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계약서를 가져와 시운과 계약했다.
“감정사를 불러주십시오.”
“…감정사요?”
“감정할 물건이 있습니다.”
시운의 육성은 차갑지만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게 들려왔다.
불러 오라면 불러와야지.
긴장한 수관은 당장 감정사를 호출했다.
감정사가 시운에게 눈인사를 건네온다.
“감정하실 장비가 있으신가요?”
시운은 들춰메고 온 골프가방에 손을 넣어 꺼내는 척 하면서 인벤토리에서 수호신의 격창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본 감정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저건 설마?’
감정사는 당장 돋보기와 장비들을 통해 격창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수관의 시선이 격창으로 옮겨갔다.
‘저건 뭐야? 창인가? 저걸 팔 생각인가.’
그때.
감정사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이, 이건!”
감정사의 반응에 수관이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수관이 알기로 저 감정사는 이계의 장비들을 알만큼 아는 자로,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다.
근데 그가 저렇게 놀랐다는 것은 엄청난 물건이란 뜻이다.
“이것은 신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신?”
수관의 시선이 시운에게로 향했다. 시운은 태연하게 감정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신이 사용하던 창을 가지고 왔단 말인가?’
S급 헌터는 대단하다.
허나 저 이시운은 이제 막 S급 헌터가 된 신입이다. 근데 그런 헌터가 소지한 것이 신이 사용하던 장비라니!
시운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압도적인 물건을 보여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케 하고, 앞으로 이곳을 이용할 때 나를 대우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시운이 물었다.
“이곳에 팔면 얼마 정도에 팔리겠습니까.”
“이, 이건 가격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모독이지만…….”
감정사가 뜸을 들였다.
수관은 저 감정사가 어떤 자인지 알고 있다. 냉철한 이 바닥의 프로.
웬만해선 놀라지 않고 가격을 측정하고 그대로 이야기 해주는 감정사 중의 최고 장인이거늘.
“최소 천억입니다.”
“처, 천억?!”
수관이 놀라 되물었다.
박태석이 이곳에 들고 온 그것과 필적할 만한 금액이다.
천억이라니!
그때.
시운이 그 격창을 거두어 가방에 집어넣고 둘을 번갈아봤다.
“단지 가격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대신 제가 방금 보여줬던 이것에 대한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운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암요! 헌터법에 의거해서 반드시 타인 헌터에 대한 정보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되죠. 그러다간 제가 옷 벗습니다.”
감정사가 답했다.
그는 아직도 놀란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멍한 눈이었다.
감정사를 내보낸 수관은 시운을 감히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저런 것까지 가지고 있다니 보통내기가 아니야. 귀신같은 자다. 저 자의 말을 지켜야겠어. 그렇지 않다면…….’
수관은 고랭크 헌터 하나의 약속을 어겼다가 시체로 발견돼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을 떠올렸다.
.
.
.
계약을 마친 시운은 수관과 인사를 나누고 헌터트레이션을 빠져나왔다.
‘천억이나 한다고?’
수호신의 격창이 그 정도 가격이나 한다니.
확실히 레전더리 장비답다.
이계의 헌터거래소에서는 울트라 이상의 장비들은 거래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헌터트레이션에는 갖가지 보물같은 장비들을 구매할 수 있고 매각할 수 있으며 감정까지 받을 수 있다.
‘박태석.’
하마터면 그에게 이것을 빼앗길 뻔 했다.
시운의 1회차와 2회차 인생에서 그는 헌터도 아니면서 헌터에 대한 기사와 커뮤니티를 매번 볼 정도로 헌터에 대해 갈망했었다.
그때.
1회차와 2회차 두 인생에 동일하게 박태석이 그 빙렬의 여겸사가 공략하지 못한 던전을 공략했었다.
그리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체 그 던전을 어떻게 공략했냐는 질문에 그는 사마천의 반지와 그것을 원하는 교주 덕분이라고 말했었다.
하마터면 한발 늦을 뻔 했다.
이제 가야할 곳은 그곳이다.
* *
이계의 흑색교단.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있고. 그 중앙에 교주가 서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감정없는 로봇같았다.
시운은 그들을 헤집고 교주에게로 걸어갔다.
“아주 유명하신 헌터님이시군요.”
교주는 그렇게 말했다.
S급 헌터가 된 시운은 헌터시스템의 명성 수치가 무려 1800이다.
그로 인한 작용으로 이계인들은 시운의 아우라를 알아본 것이다.
“드릴 물건이 있는데….”
시운의 말에 교주의 눈에 호기심이 여렸다.
“그게 뭔가요?”
물으면서도 궁금했다.
‘저렇게 유명한 헌터가 줄 물건이라고?’
보통 이곳에 헌터들이 종종 드나들면서 물건을 내민다.
그 물건이 흥미로운 것이라면 교주는 그에 상응하는 사례를 한다.
“사마천의 반지.”
“뭐, 뭐라고요?”
교주가 놀란다.
순간 교도들의 얼굴에도 표정이 생겨나는 듯 하더니, 웅성거리며 시운을 바라봤다.
“사마천님의 반지라고 했습니까?”
1대 교주이자 흑교단의 창설자 사마천님의 유품을 언급했다.
흑교단에서 눈에 불을 켜고 한참을 찾던 것이다.
“초대 교주 사마천님의 유품을?”
“교주님!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거짓말이면 아무리 유명한 헌터님이라도 댓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교도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시운은 사마천의 반지를 낀 왼손을 내밀어보였다.
그 반지를 훑어본 교주의 어깨가 떨렸다.
‘분명해. 저 문양! 그리고 저 반지만이 뿜어내는 저 기운. 분명히 사마천님의 반지다!’
그때 시운이 입을 열었다.
“그냥 줄 수는 없는 거 알죠?”
“당연하지요. 그것을 찾아오시다니 정말 헌터님은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무엇을 주실텐가?”
순간 교주의 머리가 돌아갔다.
“흑교단의 사환을 드리지요.”
“흑교단의 사환이요?”
“네. 흑교단의 사환은 흑교단의 환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 환입니다. 헌터님의 숨겨진 차크라를 단전까지 끌어올려줄 수 있는 고귀한 환이지요.”
“음….”
시운은 반지를 빼더니 손아귀에 반지를 쥐었다.
파직!
“뭐, 뭐하는 게요!”
“사, 사마천님의 반지가!”
“저 자를 가만히 둬선 안 돼요!”
시운이 주먹 틈새로 부서진 반지가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흘러서 떨어졌다.
교주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우리 흑교단을 농락하려고 온 건가! 감히 내 앞에서 초대 교주님의 고귀한 물픔을!”
교주와 교도들이 품안에서 단도를 꺼내들고 시운을 노려봤다.
“지랄들 하지 말고.”
시운은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니들이 통째로 나한테 덤벼도 모조리 다 뒤져. 어디 던전에도 못 가본 사이비 놈들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지고 싶은 건가!”
교주가 이를 아득 갈며 단도의 칼날을 시운에게 겨누었다.
“잔대가리 굴리지마.”
시운의 말에 교주가 순간 멈칫했다.
“네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물건 있지? 그걸 내놔.”
시운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저 놈이 줄 물건이 저것보다 좋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파도가 치듯 시운에게 달려드려던 교도들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시운이 꺼낸 또다른 반지를 보고서 말이다.
“방금 그건 모조품이야. 어이, 교주. 잔대가리를 한 번 더 굴리면 네 초대 교주의 반지는 방금처럼 아작나는 거야. 알겠지?”
“…….”
대체 어느 틈에 바꿔치기를 한거지?
교주는 들킨 속내에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보통 인간이 아니다...’
교주는 교도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교도들이 일제히 칼을 내리고 한걸음 물러났다.
“알겠소. 대신에 그 반지를 절대 망가뜨리지 말고 내게 건네시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드리리다.”
“그게 뭔데? 이번에도 잔대가리 굴리면... 알지?”
다음 말은 신중히 행동하라는 시운의 눈빛에.
“신력을 얻을 수 있는 던전게이트 소환서를 드리지요.”
“그게 정말 네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냐?”
“그렇소.”
“음….”
시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교주는 교도에게 시켜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상자는 고급스러운 융단에 뒤집여있었다.
융단을 벗기자 상자가 열렸고 그 안에 둘둘 말린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3대 교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흑교도의 귀품입니다.”
무엇보다 사마천을 동경하는 그들은 그것을 바쳐서라도 사마천의 유품을 얻어야 했다.
“그러면 방금 그거 뭐지?”
“방금 그거?”
“그 있잖아 무슨 환인가 뭔가….”
“흑교단의 사환 말이요? 이것 대신 그것과 바꾸시겠소?”
“아니, 그것까지 내놔.”
“뭐, 뭐요?”
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운은 교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봐주며 말했다.
“두 개 다 내놓으라고 새꺄.”
가스라이팅으로 사람들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강제 성상납을 하란 행위를 하며, 영혼의 털끝까지 더럽히는 사이비 교주란 놈에게 지킬 예의 따위는 개나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