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4화
서큐버스의 유혹
흑교단이라는 사이비는 추악한 곳이었다.
여성 교도들을 섬기는 신에게 재물을 올린다는 이유로 교주의 성노리개로 사용했고.
신에게 인간고기를 바쳐야 한다는 이유로 교도들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서 바치는 미친 행위까지 벌이는 곳이었다.
현계에도 있다.
그런 미친 행동을 하는 신탄지인지 뭔지라는 사이비들 말이다.
그런 곳에서 굳이 예의를 갖출 필요도, 인간적으로 대우해줄 필요도 없어서 두 가지 귀품을 뜯어냈다.
그중의 하나는 어디론가 소환되는 소환서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사용했다.
시야가 뒤틀리며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뭐야? 여긴.
도착한 곳은 하수도였다.
진짜 냄새부터 좆같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곳이다.
시운은 빠르게 이곳을 훑었다.
더러운 미생물, 박쥐, 생쥐 등등이 빨간눈으로 시운을 노려보고 있다.
저딴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위협이 될만한 존재가 아니니까.
끼이익!
생쥐 한 마리를 칼로 내리찍어 죽였다.
몸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늘어져 내장을 뱉은 채 쓰러진 생쥐. 생쥐를 재림시켰다.
죽은 생쥐의 모습이 점점 근육질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눈을 번뜩 뜨고 시운에게 걸어왔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눈빛으로.
“여기 전체를 돌아보고 출구를 찾아라.”
끼익!
생쥐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듯 소리를 낸 뒤에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지하 같다.
‘그렇다면.. 이곳의 위는 지상이란 건가.’
그때 시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림한 생쥐의 기운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은 것이다.
무언가에 의해 생명이 다해버린 것 같다.
‘무언가가 있단 소리다.’
앞쪽에 통로가 보였다.
그 통로를 향해 쭉 나아가자 갈래길이 보였다.
시운의 눈으로 하수도 바닥에서 오래된 사람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두 갈래길.
한 갈래길에는 앞으로 나아간 발자국만 있을 뿐이고.
나머지 갈래길에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형태의 발자국이 보였다.
‘그럼 이곳은 아니네. 출구가 막혀있어서 다시 돌아온 거야.’
오른쪽 갈래길로 나아가는 그 순간.
[신력의 탑 최상층으로 오르십시오.]
귓가로 알람음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여긴 탑이란 말이군.
이곳은 최하층부고.
더 걸어가자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안광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다가오자 형상이 드러났다. 인간의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반인반수였다.
그것은 적의를 띤 눈으로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여긴 탑이고 최상층부까지 도달해야 한단 말이지? 귀찮네.”
시운은 곧바로 망자들을 소환시켰다.
둥둥둥둥!
바닥에서 진동이 울리며 솟아오른 수백의 망자들이 시운의 뒤에 진열한 상태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주군.”
그 모습을 본 반인반수의 눈빛이 놀라기라도 한 듯 흔들렸다.
“망자들아. 다 탑 꼭대기층까지 진군한다. 죄다 쓸어버려!”
시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망자들이 파도가 밀려오듯 앞으로 돌진해갔다.
반인반수는 신음성을 내지를 틈도 없이 망자들에게 찢겨버렸다.
* *
신력의 탑 99층.
“제리올 님!”
제리올은 아르게스의 부름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무슨 일인가.”
“탑에 누군가가 진입했습니다.”
“…인간인가?”
왕좌에 앉아있던 제리올은 머릿속으로 그들을 떠올렸다.
신력을 탐하기 위해 이곳에 들이닥쳤다가 죽은 수많은 생물체들의 얼굴을 말이다. 수백 년에 걸쳐 그들을 막아냈다.
이번에도 신력을 지켜낼 차례.
“군대입니다.”
“뭐? 군대?”
군대라니.
제리올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아르게스를 내려다봤다.
“분명 하나가 아닙니다. 수가 엄청납니다.”
“당치도 않다. 이곳은 신력의 결계가 있는 곳이다! 다시 알아보라.”
신력의 탑의 최상층부 100층에서 신력의 열매를 지키고 계신 그분의 결계가 씌여진 곳이 이 탑이다.
그 결계는 단 한명만 출입을 가능케 하는 힘을 가졌다.
“분명 수십… 아니, 수천의 병력입니다.”
“말도 안 된다. 설마 마계군대란 말인가!”
마계의 군대들.
그들이라면 신력의 결계를 깰 힘을 가지고 있을 터.
“마계군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군대를 끌고 온단 말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 인간이라고?
제리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인간 중에 마왕과 필적할 힘을 가진 자가 존재한단 말인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아르게스가 뜸을 들이자 이어질 말에 불안한 눈으로 제리올이 마른침을 삼켰다.
“현재 68층까지 모두 진압된 상태입니다.”
“뭐, 뭐? 68층?!”
탑의 68층까지 진압되었다니.
이곳은 인간 하나가 50층까지 도달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린다.
물론 그 인간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아주 오래 전에 이 신력의 탑에 진입했단 말이 된다.
제리올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어 아르게스에게 겨누었다.
“왜 진작에 탑에 누군가가 출입했다는 소식을 말하지 않은게냐!”
“…오늘 진입한 자입니다.”
“뭐, 뭐? 오늘?”
제리올은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오늘입니다. 크로켄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제리올의 두 눈이 요동쳤다.
크로켄은 이 탑의 상황을 알리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이곳을 필사코 지켜야 한다!
“제리올님! 탑이 80층까지 함락되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카일의 말에 제리올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느꼈다.
하루만이다.
게다가 방금 68층까지 부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대화 몇 마디 하는 순간에 80층까지 깨져버렸다고?
제리올은 수백 년에 걸쳐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지켜야 한다! 로우와 하이리스를 보내거라!”
로우는 이 탑 최강의 검술을 갖춘 반인반수고 하이리스는 8서클의 마력을 가진 반인반수다.
결국 그들의 힘을 빌릴 날이 왔단 말인가!
그러던 그때였다.
“……이미 그 둘은 전사하였습니다.”
“뭐, 뭐라고?”
제리올은 순간 들은 말에 숨이 막혀 몸을 휘청였다.
죽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대체, 대체… 얼마나 강한 인간이 들어왔기에 그랬단 말인가? 설마….”
제리올은 그를 떠올렸다.
분명 그 자라면….
허나.
그 자일 리가 없다. 이미 그는 자취를 감춘 지 몇백 년 이상이 지났으니까.
“우리들의 피땀으로 수백년에 걸쳐 이곳을 지켰다. 절대로 그 인간에게 이곳을 내줄 수는 없다!”
제리올은 힘있게 말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카일과 아르게스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그 누군가를 막을 자신이 없었단 소리다.
그러던 그때 좌측의 벽기둥으로 모두의 시선이 옮겨갔다.
“내가 도와줄게.”
“당신이 나서준단 말인가!”
제리올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갑자기 나타나 벽기둥에 매달려 있는 여성은 서큐버스 아이린이었다.
“서큐버스인 당신이 우리를 돕겠다고?”
“그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도 궁금하고 그래서. 한 번 만나볼게, 내가.”
제리올은 절벽 끝가지 밀렸다가 살아난 기분을 느꼈다.
반인반수인 우리들의 생김새가 역겹다고 증오하는 서큐버스족 중의 하나가 아이린이지만 서큐버스는 알려진 대로 호기심만 왕성한 종족이 아니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반인반수와는 비교가 안 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
“부, 부탁드리오. 제발 그분께 그 인간이 당도하지 않게 막아주시오!”
“알겠다고.”
아이린은 태연스레 답하고 사라져 모습을 감췄다.
* *
95층 보스방.
말의 머리에 조각같은 근육질의 몸을 한 반인반수가 든 거검이 솟아오른다.
파차창!
거검을 아클레우스 소드로 막아낸 시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확실히 고층의 문지기답게 괴력이 엄청나다.
“그 누구도, 절대로 그분이 계신 곳으로 출입시킬 수 없다!”
반인반수가 괴성을 쏟아내자 거검을 맞댄 아클레우스의 칼날이 시운의 얼굴을 향해 점차 내려온다.
‘이 말대가리 녀석. 힘이 무지막지 하네.’
시운은 빠르게 오른쪽으로 피해냈다. 반인반수의 거검이 빈땅을 박살냈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굉음이 울리며 탑 전체가 흔들리는 듯 했다.
파악!
반인반수의 허벅지를 발로 차자 반인반수는 땅에 박힌 대검을 뽑으려던 찰나에 휘청였다.
‘뇌절 찌르기.’
시운의 아클레우스 소드에 전격이 솟으며 반인반수의 육체를 수십 번 쑤신다!
[적에게 감전 증상을 유발합니다.]
전격에 떨던 반인반수의 옆구리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크아아아!”
반인반수는 신음성을 괴성같이 내지르며 거검을 시운에게 내리친다.
삭!
“못생긴 홀스야! 비켜봐.”
순간 시운은 눈이 커진 채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에 의해 반인반수의 분리된 머리는 땅에 떨어졌다.
머리가 분리된 반인반수의 육체는 괴롭다는 듯 꿈틀거리다가 바닥에 늘어졌다.
‘뭐지?’
시운은 바닥에 널부러져 시운을 바라보는 반인반수의 머리와 저 존재를 번갈아 바라봤다.
악마형상의 날개를 한 여성이 보인다.
“너였구나?”
여성이 시운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반인반수를 일격에 날려버린 행동과는 반대되는 여성의 초롱초롱한 눈빛.
시운은 그녀를 훑어봤다.
흑발 머리에 외모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풍만한 가슴살이 훤히 비치는 저 특유의 옷과 날개를 보니 분명 저건 서큐버스다.
“…서큐버스? 이 탑에 서큐버스도 있었나.”
시운의 말에 서큐버스가 히죽 웃었다.
“난 아이린이라고 해.”
뜬금없이 소개를 한 아이린을 시운은 경계했다.
“아, 아! 일단은 그렇게 경계할 건 없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저 말대가리와 싸우던 빈틈을 노렸을 거다.’
아이린의 바디시그널에는 전혀 적의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린이 터벅터벅 시운의 앞으로 다가와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뭐하는 거냐?”
“인간을 정말 오랜만에 봐서….”
아이린은 눈을 크게 뜨고 시운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다.
근데 서큐버스가 이렇게도 이뻤나?
서큐버스란 종족에 대해 알고 있다.
호기심이 가득하고 마족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악마의 DNA를 가진 종족.
그녀의 예술적으로 휘어진 허리에 탱탱히 옆으로 솟은 골반. 그리고 육감적인 몸매.
근데 그것과 대조적으로 귀엽고 예쁜 얼굴.
우리나라 탑배우 연예인들보다도 이쁘다.
넋이 나가는 느낌이다.
서큐버스가 시운의 팔을 더듬었다.
“야, 만지지 마.”
“팔뚝에 힘줄이 아주 섹시하네?”
아이린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 정말 잘생겼구나?”
시운은 서큐버스에게 굳이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 놈과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내게 적의도 없고 잘 구슬리면 이곳에서 써먹을 수도 있겠지.’
서큐버스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서큐버스의 심기를 건드려 싸우면 나만 손해다.
“아이린이라고 했나?”
“응.”
시운이 이름을 불러준 것에 부끄럽다는 듯 그녀의 얼굴이 벌게졌다.
생각보다 순수한 건가?
“난 이곳의 최상층부까지 가야 한다. 이 탑은 총 몇 층인지 알고 있어?”
“백 층.”
“그럼 얼마 안 남았군.”
“근데 98층에서 99층으로 가려면 내 도움이 필요할걸?”
서큐버스가 히죽 웃었다.
“그럼 날 도와줘.”
납득되지 않는 이 상황과 저 서큐버스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으면 나야 이득이다.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도록 하지!”
아이린이 시운의 귀에 대고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 숨결에 몸이 녹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부탁이 뭔데?”
“날 기분 좋게 해줘!”
아이린이 시운의 엉덩이를 더듬으며 혀를 내밀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미친년인가?
이것도 호기심이 강한 서큐버스 특유의 종족 성향인가.
난 지금 선택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