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85화 (185/278)

제 185화

99층까지

서큐버스란 인간의 성적인 상상의 끝이 만들어낸 환상의 악마라고도 알려져있다.

이시운은 서큐버스의 손길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 또한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서서히 손을 시운의 성기를 향해 올려갔다.

탁!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싫다. 네 쾌락을 느끼게 해 줄 의무는 내겐 없다.”

편하게 통과하기 위해 악마와 섹스까지 해주고 싶진 않았다.

“박력 있는데?”

아이린이 흡족해한다.

“98층에서 네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했나.”

“당연하지. 내 도움 없이는 넌 백층은커녕 99층에 도달하지 못해.”

“내 방법대로 찾고 가면 그만이다.”

“얼씨구. 그게 될까?”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운은 그녀가 비키지 않는다면 죽일 생각으로 아클레우스 소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던 그때.

[스태미너가 부족합니다.]

“젠장.”

이곳에 오기까지 너무 많은 체력과 마력을 사용한 탓이다.

지원군을 소환할 마력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문제가 생겼나봐?”

아이린은 시운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 말했다.

시운의 눈빛이 흐려졌다.

곧이어 시운은 털썩 주저앉았다.

무늬 없는 천장이 뒤틀리 듯 보여왔다.

“지쳤나 본데? 움직이지 말고 쉬고 있어.”

“방금처럼 내 몸에 손을 대면 가만 안 있을 줄 알아.”

으득.

시운이 턱근육을 움찔거리자 아이린은 픽, 웃었다.

“박력도 있고 귀여운 면까지 있네? 음…….”

시운은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순간 머리에 그녀의 손길이 닿는 감촉이 들었다.

아이린은 이시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날개를 펄럭였다.

* *

아이린은 피곤에 절어 기절한 이시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인간치고 참 잘생겼다.

입맛이 다셔졌고 아랫배에서 성욕이 끌어 올랐으나 억눌렀다.

탐하고 싶으면 절제하지 않고 탐하는 것이 그녀의 취향이었지만.

‘바로 탐하고 싶지는 않아. 뭔가 매력이 있어.’

그 매력은 감히 자신의 유혹을 뿌리친 부분부터 느껴졌다.

그녀는 묘령의 미모로 신까지도 유혹했었다.

그런데 죄다 하나같이 남자들이란 유혹에 넘어가 생식기를 꺼낸 놈들이 모두였다.

신도 마찬가지.

“그런 내 유혹을 잘도 뿌리치시고? 인간 주제에?”

풉. 웃으면서도 탐스런 눈빛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우우웅!

그녀가 뻗은 손에서 푸르른 구체가 생성됐다.

그 기운에 시운은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너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이시운은 이제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의 말에.

“네 몸에 손대면 죽는다고? 걱정마.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아이린이 뒷말을 덧붙이며 마력을 쏟는 데에 집중했다.

그제서야 체념한 듯 이시운은 가만히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

잠시 후.

활력이 돌아온 듯 시운이 몸을 일으켰다.

그를 바라보던 아이린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근데 대체 왜 차크라가 세 개인거지?’

인간이라면 분명 차크라는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차크라가 무려 세 개다.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서큐버스답게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이시운의 눈이 좁은 통로의 마지막을 가로막고 있는 문으로 향했다.

“내가 가는 데 방해하지 않을 생각이냐?”

“물론……. 오히려 도와줄 생각인데?”

아이린이 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난 즉흥적이라 언제 생각이 바뀔지 몰라. 그러니까 얼른 이동하지?”

“도움을 준다니 거절할 생각은 없다.”

끝내 고맙다는 말까지 하지 않는 저 시크함.

그에게서 더더욱 매력이 피어나 느껴지는 기분에 아이린은 티나지 않게 웃었다.

‘널 좀 더 지켜봐야겠어.’

* *

96층은 기온이 무려 영상 백도였다. 한마디로 몸이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곳이었으나, 아이린의 도움으로 체온을 조절하였고 97층에 도달했다.

97층.

눈 앞으로 아득히 뻗어있는 통로만이 보일 뿐이다.

“미궁?”

“맞아. 미궁이야. 근데 여기 미궁의 길이는 무려 10000km야.”

뭐?

96층과 97층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구사하는 곳인 듯 하다.

이 미궁을 걸어가다간 늙어 죽는다.

“아, 물론! 난 텔레포트를 통해 바로 99층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너를 데리고 이동시켜줄 수는 없어. 결계에 의해 막혀있기 때문이야.”

“한 번에 99층으로? 그럼 98층은 없단 소린가?”

시운의 말에 서큐버스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오. 똑똑하기까지 하네?”

“네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잖아.”

“그래. 그래서 지금 도움을.”

쿠우웅!

아이린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면서 공중으로 드솟은 시운은 삼십 미터나 되는 상공 위 미궁의 천장을 박살내고 위로 이동한 후였다.

“저런 방법이 있었네…….”

아이린은 박살나 뚫려있는 구멍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곧 사라졌다.

그리고 99층.

중세시대의 유럽풍 성이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견고한 성이다. 공기가 느껴졌고, 바람의 기척도 느껴진다.

“이곳을 뚫어야 하나?”

“그렇지?”

아이린은 이시운이 어떻게 할지 지켜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때.

성벽 위로 반인반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위를 그대로 가득매운 그들의 수만 한 칠천은 되는 듯 하다.

“인간아! 절대로 여기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반인반수들이 시운을 향해 화살을 겨냥했다.

“조심하는게 좋을걸? 화살밥이 되기 싫다면 말이야.”

아이린의 말에도 무시하고 시운은 그대로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터벅. 터벅.

잠시 정적이 흐른 그 순간에 시운의 발걸음 소리만 고요히 울릴 뿐이었다.

파사사사!

수많은 화살들이 일제히 시운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허공을 빽빽하게 수놓은 화살들에 의해 하늘조차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순간.

아이린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도와줄까?’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곧 사라졌다.

날아오던 수천 발의 화살들은 몰아치는 바람에 의해 궤도를 틀고 허공으로 솟았기 때문이다.

반인반수들의 눈에 당황함이 번진다.

시운은 정신을 집중했다.

‘윈드니스.’

바람을 컨트롤 하는 것에 집중하고 눈을 감자.

허공으로 솟은 화살들이 궤도를 틀어 그대로 반인반수들에게 향했다.

살점이 뚫리는 소리와 반인반수들이 화살에 꽂혀 울부짖는 소리등이 뒤섞여 들려왔다.

반인반수들의 몸뚱이가 하나둘씩 도미노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것을 본 아이린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오...존나 센데?’

매력적인 남자가 인간 주제에 상상 이상으로 세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반인반수떼들을 처리하고 성문을 향해 걸어가는 시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린의 눈이 순간 하트로 변했다.

.

.

.

아르게스와 카일의 눈빛이 흐려졌다. 끝내 그들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온다.

시운은 아르게스의 심장에 박혀있던 검을 빼들었다.

시운의 얼굴에 반인반수의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역한 피의 냄새가 코를 통해 뇌까지 찌르는 기분이다.

한편.

얼굴을 피로 덧칠한 채 걸어오고 있는 시운을 보던 제리올이 떨었다.

‘섬뜩하다..’

그 모습은 귀신보다 더욱 섬뜩했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도 강할 수 있을까?

제리올은 낮게 한숨을 쉬며 아이린을 바라봤다.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배신한 거요!”

“배신? 무슨 배신?”

아이린이 양팔을 좌우로 펼치며 제스처를 취했다.

“저 자를 죽여주겠다고 했잖소!”

제리올은 떨면서도 분노의 고함을 아이린에게 내질렀다.

“내가 언제?”

“이, 이…!”

제리올이 이를 바득 갈았다.

‘서큐버스란 마귀같은 종족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아이린이 말했다.

“만나보겠다고 했지. 죽이겠다고는 하지 않았잖아?”

제리올은 아이린에게 괘씸함을 느끼면서 시운을 바라봤다.

‘수많은 다른 존재들의 힘도 느껴진다...’

단신인 이시운에게서 여러 존재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중에 아주 특별한 존재의 힘까지 느껴진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곳이 어디지?”

이시운의 물음에 제리올은 검을 들고 돌격하는 것으로 답했다.

퍼억!

“우, 욱…!”

시운의 발길질에 배를 얻어맞은 제리올은 격통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시운의 발이 한 번 더 허공을 가르자 제리올의 손에서 검이 튕겨져 나갔다.

시운은 제리올의 검을 발로 걷어차서 저 멀리로 보냈다.

입에서 거품을 내뿜으며 배를 부여잡은 제리올을 보았다.

“널 굳이 죽이고 싶진 않아.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곳을 어서 말해.”

“…내가 말해줄 것 같으냐?”

“의자 밑이야! 의자 밑.”

아이린의 말에 제리올이 죽일 듯이 아이린을 노려보았다.

“이 개 같은 씨발년! 신뢰란 것 따위는 없고, 이렇게 우릴 배신해?”

제리올은 많은 감정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저 년이 그것을 말하다니!’

아이린은 다가가 제리올의 머리통을 발로 밟았다.

“야이 못생긴 새끼야. 난 너희처럼 좆같이 생긴 놈들하고 관계를 형성한 적도 없는데?”

아이린이 발에 힘을 주자 제리올의 머리통이 터졌고 뇌수가 사방에 비산했다.

주르르-

핏물이 바닥을 뒤덮었다.

잔인한 광경에 시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의자 밑이라고?”

시운은 왕좌로 보이는 의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서 제리올 저 놈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백날천날 저 의자에 앉아있는 거야.”

다음 층이 마지막 층이다.

“다음 층은 뭐가 있지?”

“그건 나도 몰라. 가보질 못해서. 뭐, 막판 보스 같은 놈이 있겠지. 신력을 지키는 자라나, 뭐라나….”

시운은 왕좌를 힘으로 내뽑았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고대의 문양이 드러난 바닥이 보였다.

그 바닥을 발로 힘껏 누르니 성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천장에서 무언가가 먼지들이 떨어졌다.

시운이 고개를 들었다.

대리석의 천장이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윗층으로 향하는 공간이 드러났다.

“참고로 난 갈 수 없어.”

“왜지?”

“마력의 결계를 사용하는 놈이 하필이면 자기가 있는 층에만 마족의 기운을 막아놨거든.”

대충 이해가 갔다.

마족들은 힘이 너무나 강하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그랬겠지.

“이제 작별이네. 뭐, 반가웠다.”

“당신…….”

아이린이 다가와 시운을 안았다.

“꼭또 보게 될거야, 우린.”

그녀의 눈빛이 일렁였다.

순간 가슴팍에 맞물려 느껴지던 아이린의 가슴 감촉이 사라졌다.

그녀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시운은 인벤토리에서 교주에게서 빼앗은 환을 꺼냈다.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것이라고 했지?’

저 층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전에 최대한 강한 몸상태를 만들어 놓고 갈 생각이다.

검은 환을 입안에 넣고 씹자 입안으로 역한 냄새가 퍼지며 약초의 쓴맛이 미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전신의 혈액순환이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에 눈이 번쩍 뜨였다.

“크윽.”

고통으로 짧은 숨이 신음으로 흘러나왔다.

[흑교단의 사환을 복용하였습니다.]

[마력을 증폭시킵니다.]

[증폭된 마력은 당신이 가장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신체로 응축됩니다.]

[당신의 눈으로 마력이 응축됩니다.]

[당신의 눈이 개안됩니다.]

[그 눈의 힘이 또다른 힘을 만들어냅니다.]

[스킬 ‘안교’를 획득하였습니다.]

맑은 알람이 동시에 들려왔고.

스킬의 상세창이 떠올랐다.

[안교][특수 스킬]

자신과 적의 시야를 3분이란 시간동안 교환한다.

재사용 시간: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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