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7화
S급 헌터 신아영
한국헌터협회.
윤성혜는 아메리카노 하나를 들고 복도를 지나 사무실에 도착했다.
-헌터 제2관리과
오늘도 일이 많겠지.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팀장님!”
김대리가 성혜를 불렀다.
상사를 보면 인사부터 해야 하는데 호명 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또 무슨 일이 터졌나 싶어 불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김 대리를 바라봤다.
“또 무슨 일 터졌어?”
“타임리스 게이트에 헌터들이 진입한다고 합니다.”
“언제?”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후요.”
성혜는 그 말에 낮게 한숨을 흘렸다.
타임리스 게이트.
그 게이트에 공략에 실패한 생존자들은 백 년이 지난 얼굴로 겨우 빠져나왔지만.
이내 후유증으로 그들은 숨을 거뒀다.
시간과 관련된 게이트라 이렇게 불리곤 했다.
‘또 죽어나겠구나.’
그곳의 이야기만 들어도 오금이 섬뜩해지는 느낌이다.
성혜는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지도 않고 컴퓨터부터 켰다.
“신아영이 또 들어간데요.”
박 주임이 말했다.
그 말에 부팅되어가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성혜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 걔야?’
신아영.
S급헌터이자 빙결의 여검사로 불리는 최상급 헌터다.
청순한 얼굴과는 다르게 냉혈적인 성격에 칼 같은 판단력으로 던전을 공략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였다.
“에휴. 그냥 대충 포기하지. 왜 또 던전에 들어간다는 거야?”
성혜는 푸념하듯 혼잣말을 했다.
“팀장님도 들어서 알잖아요. 신아영이 얼마나 아집이 센지.”
박 주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그녀는 한 번 물면 끝장을 보는 타입이란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S급 게이트라면서?”
성혜의 물음에 김 대리의 낯빛이 서늘해졌다.
“마력수치 측정결과 S급으로 떴죠.”
S급 게이트의 공포를 직접 체감하진 않은 김 대리였지만 많이 들어봐서 안다는 듯한 표정이다.
부팅이 끝나고 타임리스 게이트 던전의 명단을 넘겨받은 성혜의 눈이 확 커졌다.
“이시운?”
진입할 명단에 그의 이름이 적혀있음에 깜짝 놀라 소리를 내었다.
“맞아요. 그 사람도 들어간다더라고요.”
“이번에 S급이 된 그 잘생긴 헌터요. 팀장님도 아시죠?”
“아….”
성혜가 무거운 신음성을 흘렸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성혜의 일그러진 얼굴에 김 대리와 박 대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성혜 눈치를 살폈다.
윤성혜는 뒷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안색이 시퍼래졌다.
‘그 게이트에 들어가면 안 된단 말이야..’
성혜는 머리가 아팠고,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아…….”
수화기로 들려오는 소리에 성혜는 무력감을 느끼며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 던전은 다른 던전과는 격이 다른 던전이다.
그러나 이제 말릴 방법은 없다. 다른 헌터들은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만은 절대 그래선 안 된다.
‘또 난 네가 살아 돌아오기를 걱정하며 기다려야 하는 거니..’
순간.
과한 업무를 보느라 다소 소란스러운 직원들의 소리가 차단된 듯 들려오질 않는 느낌이다.
* *
비현실적으로 하얘서 핏줄조차 보일 정도의 피부를 가진 여성의 팔이 빠르고 공중에서 간결하게 움직인다.
차차차창!
그 여파로 뿔이 달린 악마의 형상을 한 괴수의 피부가 빙결로 뒤덮였다.
그녀는 도약한 채로 다시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튼튼하던 괴수의 팔과 다리가 순식간에 토막나 떨어진다. 그녀의 검이 선을 그린 그 모양대로 정확히 등분된 괴수의 팔과 다리는 얼음장이 된 근육의단면을 보인 채 땅에 떨어진다.
푸우욱!
사지가 잘린 채 땅에 떨어진 괴수의 등살에 그녀의 검이 꽂힌다.
말랑한 두부를 포크로 찌르듯이 부드럽게 들어간 검신과 함께 괴수의 움직임이 멎었다.
검술이 아주 간결하고 빠르다.
강하다.
내 눈으로 봐도 좇기 힘들 검술이다.
“고생하셨습니다! 공대장님.”
헌터 하나가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신아영.
그녀가 말했다.
지금 나는 나까지 포함 총 열명의 인원으로 타임리스 던전에 진입한 상태다.
현재 A급 헌터 여덞명과 신아영. 그리고 나까지.
“여기서 두 시간 후면 마법진이 생성될 거에요. 그 마법진을 타고 층간이동을 해야 돼.”
그녀가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쟤네 A급 헌터들은 모조리 신아영이 소속된 사신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꼽사리가 끼게 된 느낌인데. 사실 이 던전은 내가 혼자 공략하려고 했다.
근데 2회차 때와는 다르게 신아영이 또 이렇 듯 던전 공략을 시도하면서 나와 겹쳐버리고 말았다.
“그럼 여기서 두 시간 동안은 있어야 하는 거네요.”
내가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진짜 좆같이 섬뜩한 던전답게도 빛 한줄기 없는 어둠이 깔린 동굴의 벽면만 보인다.
“좀 쉬면서 기다려야죠.”
헌터 박씨가 답했다.
난 신아영에게 물은 것인데 신아영은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박씨가 답했다.
들은대로 존나 차갑네. 나도 명색이 S급인데... S급이 된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무시하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신아영을 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다.
1회차 2회차 인생에서 그녀의 행보를 간접적으로 접했었다.
사실.
아직도 S급헌터 신아영이 내 눈앞에서 나와 던전에 진입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난다.
“헌터님. 아까는 대화를 제대로 못 나눴는데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김씨가 내게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안다.
한 번에 S급까지 승격한 그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뭐 대충 이렇게 말했다.
굳이 거만할 필요도 없고 이럴 때는 그냥 겸손을 떨어주면 된다.
“아까 내가 설명한 것들 다 기억하고 있겠지?”
신아영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헌터들에게서 시선을 뺏는 느낌으로 말한다.
“알고 있죠.”
“우린 아영 씨만 믿어!”
뭐. 일단 던전 공략이 우선이긴 하니까.
신아영은 이 타임리스 던전의 경험자다. 그래서 던전의 형태에 대해 알고 있고 그녀에게서 설명을 모두 들은 상황일 것이다. 물론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게 같은 길드임에도 불구하고 헌터들이 신아영을 어려워하는 듯한 눈치다.
말을 붙이기 힘들어하는 느낌?
신아영은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휴식용 쇼파를 꺼내 앉아서 쉬고 있다.
“그 괴물은 얼마나 강해요?”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시운 씨라고 했나?”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네.”
“그쪽이 S급인 건 알겠는데 내가 쉬는 동안에는 말 붙이지 말아요.”
권위적인 면이 있다.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러나 난 쟤를 알고 있다. 쟤는 정이 아예 없는 인간은 아니다.
“공대장님의 휴식도 중요하지만 그 괴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잖아요?”
내가 맞받아치자 헌터 박씨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워, 워. 아영 씨 쉴 때는 예민해요.”
같은 길드원이다 보니, 한통속인 느낌이다.
“예민하고 자시고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정보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여기 장난으로 온 거 아닙니다. 나는….”
내가 쏘아붙이자 신아영은 반쯤 고개를 돌렸다.
“원래 우리가 팀으로 이 던전을 공략하려고 계획했는데 그쪽이 껴드는 바람에 팀웍이 분산된 건 알아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반쯤 돌린 고개로 보이는 신아영의 콧날은 예술적이었다.
뭐,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말해도 얼굴은 참 비현실적으로 예쁘긴 하다.
근데 할 말은 해줘야겠다.
“자꾸 그쪽, 그쪽이라 부르는데 그러면 나도 공대장님을 당신이라 불러도 될까요?”
“마음대로요.”
나와 신아영의 기싸움이 벌어지자 헌터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난 굳이 기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이고 우리는 공략대에 투입된 상황이다.
지금 기싸움에 밀려버리면 나만 이 던전에 대해 정보를 모르고 시작하는 셈이다. 게다가 나중에 던전을 클리어할 시에 획득한 귀품들을 정산하는 부분에서도 말하는 데에 힘이 빠지고.
“저기 냅두라니까요?”
헌터 하나가 내게 말했다.
“본인들이 같은 길드에 소속돼서 친한 건 알겠는데. 여긴 친목하는 곳도 아니고 서로 공유할 것은 공유해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아니, 뭐 그건 그런데…….”
A급 헌터 하나가 내가 쏘아붙인 말에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도 헌터등급은 내가 위다.
그래서 내겐 함부로는 못한다.
생수를 한 모금 마신 후 뚜껑을 닫은 아영이 날 힐끗 바라봤다.
“아주 강하니까 내가 1차 때 공략에 실패한 거겠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을 물어보는군요.”
“그 괴물의 공격에 생존자들의 얼굴이 그렇게 늙어버린 거죠?”
“자, 잠깐 이시운 씨.”
“그 언급은 하지 않는 게….”
내 물음에 헌터들이 순간 경직됐다.
뭐지?
그들이 신아영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난 신아영을 바라봤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생존자 이야기는 하지마. 한 번 더 하면 죽여버리겠어.”
아. 그렇게 된 건가?
저렇게 과민하게 구는 이유는 아마 고인이 된 그때 생존자 중 하나와 친한 모양이다.
“그분들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악의는 없었어요. 근데 내가 필요한 정보는 알아야겠습니다.”
난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하시라니까…….”
헌터 하나가 난감한 얼굴로 날 말렸다.
굳이 분쟁을 일으킬 이유는 없지만 이건 팀워크도 아니고 공략대도 아니다.
나만 뭔가 제외시키는 느낌이다.
난 신력의 열매를 가지고 있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열쇠가 되는 것을 갖고 있는 것은 나고.
내가 이 던전을 클리어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다면 ‘헌터법’ 그대로 획득한 귀품들을 독점할 수도 있다.
신아영은 내 말을 씹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전방에서 빛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니.
던전의 바닥의 지면들이 갈라지고 쾌쾌한 먼지가 피어오르며, 마법진의 표식이 생겨났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영 씨! 마법진이에요!”
헌터 하나가 가리키자 신아영이 눈을 뜨고 일어섰다.
“갑시다.”
그녀가 마법진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로 헌터들도 그녀를 따랐다.
나도 그 마법진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마법진에서 발하는 빛이 우리들의 몸을 감싼다.
순간적으로 감각들이 흐릿해진다.
이것이 층간이동인가?
.
.
.
2층.
아니. 2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곳은 신이 존재하는 거대한 신전인 듯 하다.
살면서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로 느껴진다.
주위는 고대 신들이 좋아하던 특유의 무늬로 덮인 큰 기둥들은 신전의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전방으로 쭉 이어진 통로가 보였다. 좌측과 우측에는 바닥이 없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떠있는 신전인 듯 하다.
다르다.
아까 층과는 다른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난 내가 여태껏 겪어왔던 그 어떤 던전보다도 위험한 던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했다시피 이곳은 천계에요.”
천게라고? 여기가?
아영의 말에 헌터들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미 사전에 들은 모양이다.
반면 난 그 사실을 지금이야 알게 됐고.
“타락한 그들을 상대할 때는 절대로 눈을 쳐다봐서는 안 돼. 다들 알겠지?”
타락한 그들? 그렇다면 여긴 설마..
신아영이 앞을 바라보며 한 말에 헌터들의 낯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툭.
그때 난 걸음을 멈췄다.
멈춘 내 앞으로 헌터들의 등이 보인다. 그들 몇몇이 나를 향해 뒤돌아봤다.
난 입을 열었다.
“난 독단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대신 이 던전을 내가 먼저 클리어 한다면 클리어 후, 귀품 정산 시 8할은 룰대로 내가 가져갑니다.”
내 말에 앞만 보고 걸어가던 아영이 뒤돌아 날 똑바로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