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88화 (188/278)

제 188화

신의 게임

독단적으로 움직이겠다, 는 내 한마디에 모든 헌터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이시운 씨.. 여긴 S급 던전이에요.”

박씨가 내게 말했다.

그의 말에 뒤이어.

“S급 던전이니만큼 보상도 어마어마하겠지. 그래서 혼자 다 쓸어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근데 그러다 죽어요.”

김씨의 말까지.

모든 헌터들이 날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본다.

거기다가.

“뭐, 냅둬요. 죽는 순간 ‘아! 씨발. 그냥 욕심 부리지 말고 아영 씨 따라갈걸.’ 이라며 후회하는 것도 선택한 저 사람 몫일테니깐.”

박민성이 날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니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난 니들보다 자신이 있거든.

그때 신아영이 말했다.

“타락한 자들의 눈을 보지 말아요.”

타락한 자들?

신아영은 이제껏 날 무시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건지 내가 걱정된건지 모르겠지만 내게 팁을 줬다.

“S급 된 건 알겠는데 원래 사람은 주위에서 사탕같은 말만 해줄 때가 이성적인 판단력이 가장 흐려질 때에요. 잘 생각해 봐요.”

마흔이 좀 넘은 장준이란 헌터는 내게 진지하게 조언해주듯 말했다.

“걱정들은 고맙습니다만 전 제가 뱉은 말 대로 하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의 표정이 여러 가지로 변했다.

“뭐, 알아서 해요.”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으실까 싶은데.”

“아영 씨 우린 그대로 가죠.”

그러던 그때!

우우우웅-.

신전 어딘가에서 초고주파가 들려왔다.

마치 그 음은 노래와 같았다.

“무슨 소리야?”

“노래 소리?”

“아영 씨! 설명에 이건 없었잖아요?”

그들의 말에 아영의 입술이 움직이려는 순간!

서걱!

살과 뼈가 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체와 분리된 김씨의 머리통이 위로 솟았다가 떨어져 바닥에서 데구르르 굴렀다.

“뭐, 뭐야!”

“김씨!!”

“어머!”

너무 놀란 나머지 모두가 경직된 채로 김씨의 머리를 쳐다봤다.

눈이 커다랗게 뜬 채 표정의 움직임이 없는 김씨의 머리는 마치 신음을 내지르기 직전 그대로에서 멈춰있는 듯 했다.

모두의 얼굴이 놀라 새파랗게 식어버렸다.

우우우웅!

그때 또 괴기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움직이지 마요!”

내가 소리쳤다.

내 고함에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1회차에서는 이런 건 없었는데.”

신아영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자그맣게 말했다.

“다들 움직이지 마요!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도중에 가장 많이 움직인 사람이 김씨였습니다.”

이건 추론이다. 하지만.

내 예리한 눈으로 분명 보았다.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그 도중에 김씨는 들고 있던 단검을 요리조리 휘둘렀다. 이 중 가장 많은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난 이제 알고 있다.

찰나의 시련이 들이닥치면 그 시련에 당황할 시간에 분석부터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헌터님 확실해요?”

박씨가 내게 물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다들 움직이지 마요. 웬만하면 말도 아끼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내 말에 모두가 입도 닫고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신전은 공허히 노래소리만 섬뜩하게 퍼졌다. 헌터 몇몇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묘하게 들려왔다.

A급 헌터들답게도 방금 사람의 목이 날아갔는데도 금방 적응하고 행동한다.

“끝난건가?”

정씨는 노래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자 말하며 슬쩍 다리를 움직였다.

그 순간!

희미해졌던 노래소리가 커지며 정씨의 전신 피부가 부풀어올랐다.

“으, 으아아아악!”

“정민수 씨!”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털썩.

정씨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였다.

차가운 신전 바닥에 쓰러진 정씨의 얼굴은 이미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섬뜩했다.

모두의 얼굴이 긴장을 뒤덮은 듯 떨렸다.

“내 판단 미쓰에요. 이곳이 1회차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 내 착오에요. 실수를 인정합니다. 미안해요. 일단 다들 소리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움직이지 마요.”

신아영의 말과 함께 들려오던 소리는 멈추었고.

그 소리는 들려오질 않았다.

소리가 끝났음에도 다들 움직이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본다.

그때 신아영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다. 아무 일도 없다.

그제서야 모두가 움직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죽은 시체를 보지 마요! 사기만 떨어질 뿐이니까..”

신아영이 그들에게 말했다.

[신안을 개안합니다.]

[일정 시간동안 신의 눈을 사용합니다.]

신안을 개안하자 전방 저 깊숙한 곳에서 괴랄하게 웃으며 날개를 펄럭이는 천사의 얼굴이 보였다.

[아시룡의 활을 장착합니다.]

난 곧바로 당긴 활시위를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화살은 앞으로 번개같이 나아가 아영의 머리칼을 스치며 그대로 날아갔다.

‘윈드니스.’

날아가는 화살에 바람의 힘까지 불어넣자 화살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활도 배우셨나봐?”

누군가 물어왔지만 씹었다.

집중할 때다.

-카아악!

저 멀리서 괴성이 흐릿하게 들려온다. 정확히 맞은 것 같다.

“방금 그 소리 들었죠?”

“저 앞에서 났어요.”

난 아시룡의 활을 거두고 그들에게 말했다.

“전방 5킬로미터 앞에 있던 놈 하나를 화살로 맞춘 겁니다.”

“5킬로미터요?”

그들이 앞을 보았다. 그들 눈에는 저 어둠 속 멀리에서 방금 화살을 맞고 뒈졌을 그놈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말이 돼요? 헌터님이 활도 다룰 줄 아는 건 알겠는데..”

“저 시력 13.0입니다.”

내가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내 능력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는 건 좋지 않지만 이해시키기 귀찮고 어차피 이 능력은 소문날 만큼 알려진 상태다.

“한 번에 S급이 된 이유가 있었군요... 헌터님.”

“신궁급이네.. 검과 활을 동시에 쓰시는 거예요?”

아까 내게 한심하단 눈빛을 보일 때는 언제고 헌터 둘이 내게 놀란 눈으로 물어왔다.

“전 제가 말한대로 혼자 움직일 생각입니다.”

“…예?”

“아니, 같이 이동합시다. 사람이 벌써 둘이나 죽었어요. 인원수가 많은 게 좋죠.”

“헌터님 그러지 마시고…….”

헌터들의 반응은 아까와는 달리 나와 동행하고 싶다는 듯 했다.

“저기요. 정말 혼자 행동할 생각이에요?”

아영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대각선 방향으로 걸었다.

내 등뒤로 헌터들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난 묵살했다.

“여긴 층층마다 마법진이 있어요. 그 마법진으로 이동해야 해요.”

신아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역시 쟤도 완전 정이 없는 타입은 아니라니까.

어쨌든 난 혼자 움직인다. 그 편이 수월하다. 내겐 나만의 군대가 있으니까.

* *

타락한 천사 이십 마리가 헌터들을 에워싼 채로 무표정한 얼굴로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눈을 보지 맙시다!”

장준이 외쳤다.

뒤이어.

“눈을 감지 마요! 시선만 안 마주치면 돼요. 바닥에 시선을 두고 상대해요! 그래야 눈을 감는 것보다 주위 시야가 조금이라도 더 잡힐 거에요.”

동시에 천사들이 헌터들에게 쏟아졌다. 헌터들은 신전 땅지면에 눈을 둔 채 갖가지 스킬로 천사들을 상대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상대해야 했기에 헌터들은 천사들의 검에 생채기를 입었지만 A급 헌터들 답게 그들을 상대했다.

사방으로 천사의 검은 깃털이 휘날렸다.

푸드드드!

이윽고 날개가 찢기는 소리와.

날개를 잃은 천사들이 바닥에 몸을 처박혀 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파차창!

아영에게 검신을 뻗으려던 천사 셋의 몸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파지직! 그녀의 검이 허공에서 호를 길게 그리자 천사 셋의 몸뚱이가 단 번에 토막난 채 바닥에 흩어졌다.

“더 없는 것 같은데.”

이수민이 말을 더 잇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수민!!!”

장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민은 무릎을 꿇은 채 어딘가에서 날아온 창에 얼굴이 완전히 꿰뚫린 채로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가 늘어졌다.

창살에 뜯겨진 그녀의 머리에서 핏물이 섞인 뇌수가 흘렀다.

신아영은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어디서 날아온 거지?’

창인 날아왔다. 1회차 공략 때는 이층에서 창을 사용하는 천사는 없었는데.

헌터들이 경계하며 주위를 모조리 살폈으나 아무 움직임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질 않았다.

“수, 수민아…….”

장준은 처참히 죽은 이수민을 보며 흐느끼려 했다.

신아영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장준 씨. 애도하는 건 던전에서 살아서 나간 뒤 해요.”

“그, 그치만 이수민은…….”

장준의 턱끝이 떨렸다.

다른 누구보다 이수민을 딸처럼 생각하는 그였다.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의 수민은 뛰어난 헌터였지만, 헌터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을 기부했고, 화 한 번 내지 않는 심성을 가진 여자였다.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여기서 다 죽을 수는 없잖아요?”

신아영은 입술을 질끈 씹으며 말했다. 장준은 미동이 없는 수민의 시체로 다가가 눈물을 쏟았다.

“창이 날아온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잖아요. 그럴 때가 아니라고요.”

헌터 하나가 장준에게 말했지만 장준은 구겨진 얼굴로 오열하기만 했다.

“준이 형. 어쩔 수 없어요.. 헌터생활 한두 번 아니잖아요..”

민성은 그의 떨리는 어깨를 토닥여주며 자신의 반지를 바라봤다.

방금 죽은 이수민의 손에서 몰래 빼낸 고급 반지다.

이 반지의 가격 또한 잘 알고 있다.

이수민과 성관계를 맺고 그녀와 나란히 누워있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있기에.

민성은 속내를 숨기고 장준을 다독이고 일으켰다.

그들은 전방으로 계속 걸어갔다.

‘지형은 달라지지 않았어.’

그때.

벽기둥 뒤에 매달려 기척을 감추고 있던 천사가 장준에게로 날아왔다.

사삭!

아영의 검신은 그보다 더 빠르게 천사의 날개를 베어버린다. 그러자 균형을 잃은 천사는 바닥에 발을 밟고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 살려줘.”

아영이 천사의 목에 검을 그대로 겨눴다.

“말도 할 줄 아나. 창을 던진 놈이 너였군.”

“살려줘.. 인간아. 우린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천사가 불쌍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영 씨 빨리 죽여버리죠?”

“굳이 살려둘 필요 없잖아요.”

헌터들의 말에 천사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눈물을 쏟으며 더욱 불쌍한 눈으로 아영을 올려다봤다.

“제발……. 제발……. 날 죽이지 마. 정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아영의 칼날이 천사의 목에 더욱 가까이 닿자 천사는 턱을 바짝 들며 떨었다.

“시키다니. 누가?”

“루시퍼... 루시퍼님께서.”

루시퍼라는 말을 들은 아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루시퍼? 그놈의 이름이 그거였나?’

머릿속으로 전 회차 때의 장면들이 흘러갔다.

아영은 질문 몇 가지를 던졌고 천사는 모두 답했다.

모두 답을 들은 아영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천사를 죽였다.

캐낼 건 캐내고 동정심 없이 죽여버리는 아영의 모습에도 헌터들은 별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여섯명 밖에 안 남았네.”

장준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에 민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형! 그걸 누가 몰라? 사기 떨어지는 말은 하지마.”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 헌터와 다 같이 움직일 걸…. 그랬다면 수민이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어.”

S급 헌터 하나의 전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시끄럽고! 다들 움직입시다. 후회할 겨를이 없어요.”

신아영의 말에 그들은 입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아까 그 이시운이란 헌터 진짜 세보이던데..’

‘누구 때문에 머리수 하나 잃고 스타트 했는데?’

‘신아영보다 이시운이 더 에리하고 강해보이는데.’

‘시발. 존나 차갑게 구네.’

‘여기서 죽으면 어쩌지..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은..’

이곳은 신전의 하층부인 듯 했다.

신전의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걸을 때마다 있었고. 길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주위가 넓었다.

길을 아는 아영을 따라 계속 나아가자 천사의 형상을 한 석상이 하나 보였다.

“여기에 글이 적혀있어요!”

신아영은 석상을 바라봤다.

순간 석상 천사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놀라 슬쩍 뒷걸음질 쳤다.

석상에 게시된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당신들은 신의 게임 속 체스말입니다.

신의 게임 속 뭐라고?

의미심장한 글이었다.

그런데 1회차 때 분명 이 석상은 없었다.

신아영은 그 석상을 자세히 관찰했다.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석상의 몸체는 먼지도, 때도 없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군.’

석상의 메시지를 뇌리에 떠올리며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나아가자 마법진이 보였다.

“마법진이 이미 나타나 있는데?”

장준이 마법진을 보며 놀랐다.

“이시운 씨가 벌써 다음층으로 이동했단 뜻이잖아?”

“빠르네….”

아영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은 여럿이서 쉬지 않고 천사들을 도륙하며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 왔는데 이시운은 단신으로 벌써 우리보다 먼저 다음층으로 이동한 상태라고?

“아영 씨! 그냥 같이 움직일 걸 그랬어…….”

“좀 닥치지 그래요? 그만들 좀 징징대고.”

그러던 신아영의 말이 끊겼다.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그들의 귀에 일제히 울리는 음성이었다.

[이제부터 신의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플레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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