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92화 (192/278)

제 192화

신의 게임 (5)

시운의 물음에 실리아의 눈이 조용히 밑으로 향했다.

도검의 검신이 그녀의 목 끝에 닿자 톡, 흘러내린다.

“신?”

그녀가 무표정하게 되물었다.

“그 두 신 중에 하나가 너잖아. 안 그래? 넌 신으로서 게임에 참여한 거고. 그 이유는 모르겠다만.”

서로의 시선이 조용히 교차했다.

그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싸움이 튀고 있었다.

“내가 신이라고?”

존댓말을 하던 그녀는 이제 반말을 해온다. 뭐, 그런 건 굳이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말투가 변한 느낌이고 그녀의 동공에 이상한 감정이 서린 듯 했다.

“아닌 척 하지 말고 대답해.”

그 말에 실리아의 표정이 변했다.

표정없던 그녀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더니 기괴하게 입을 벌렸다.

“흐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이상한 광기가 느껴졌으나 검은 거두지 않았다.

섬뜩했다. 마치 이중인격자 같은 느낌이랄까?

“푸하하하하하!”

그녀는 뭐가 그렇게 웃는지 목에 혈이 흘러내리는 데도 미친년처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짓는 표정이 너무 괴랄해서 섬뜩할 정도였다.

“왜 웃지? 웃긴가? 아니면 네 정체를 들키니까 할 말이 없는건가.”

“푸하하하! 아니, 그건 아니고. 인간 주제에 눈썰미는 있어?”

역시.

순간적으로 목을 베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잠시 눌렀다.

‘이미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빈틈을 노려 그렇게 했을거야.’

궁금한 점이 있다.

“인간 주제에? 넌 신인 주제에 왜 인간들 틈에 끼여서 네가 만든 게임판에 네가 직접 참여한 거냐.”

“스릴있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

“스릴같은 소리 하네.”

“날 여기서 죽인다고 해도 이 게임은 바로 끝나지 않아.”

저 말은 객기는 아닌 듯 하다.

목숨을 건 게임에 참여한다고는 했지만 놈은 신이다.

분명 안전장치 정도는 걸어두고 게임판에 들어온 것일테지.

“너 이름이 뭐지? 대단한데? 인간으로 썩기에는 참 아쉽단 말이지?”

실리아는 말을 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검신에게서 멀어졌다.

그냥 내뒀다.

시운은 검을 거뒀다.

“널 살려줬으니 너도 그만큼 내게 대가를 지불해라. 니가 악신이든 아니든 모든 신은 명분을 중요히 여기고 그 명분에 의해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들이니까.”

“…것들?”

실리아는 자존심이 살짝 긁혔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신치고 제대로 된 놈 없더라.”

“간이 크구나. 인간아. 그래, 너는 여기서 죽게 만들기에는 아까워.”

실리아는 시운을 바라보면서도 뒤에서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고블린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퇴로 내리 찍어죽였다.

절명한 고블린 소리.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퇴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시운을 위 아래로 훑었다.

“오호라. 인간인 줄 알았더니 넌 인간은 아니구나.”

“뭐?”

실리아의 말에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슨 소리지?

“아직은 인간이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니야. 난 느낄 수 있다. 넌 다른 존재가 될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시간이 지나보면 알게 된다.”

실리아는 신이다.

신이라면 인간이 통찰할 수 없는 것까지 통찰할 수 있겠지.

내가 다른 존재가 된다고?

“네 정체를 들켰는데도 게임은 계속 할건가?”

시운의 시야로 실리아가 등을 돌린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시운과 멀어지며 답했다.

“B와 W의 약자. 그게 참 중요할 거야. 나중에 보자고. 우리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친구.”

그녀는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자.

[사냥꾼들이 더욱 강해집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길 바랍니다.]

그런 말이 들려왔다.

기척으로 느껴진다.

고블린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한 기운들이.

‘이번 라운드도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건가.’

그런 설명은 없었다.

일단 홀로그램창을 열고 [정령술의 가중]을 세 개를 구매했다.

[불의 정령술을 가중시킵니다.]

[불의 정령술을 가중시킵니다.]

[불의 정령술을 가중시킵니다.]

[핸드 파이어가 블레이션으로 상향되었습니다.]

[블레이션] Lv.5

설명: 시전자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고온의 불을 소환합니다. 그 불을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오호 그래?

실리아에 대한 존재의 의문감에 대한 것은 집어치울 때다.

일단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지금 목적이니까.

‘포인트가 가장 낮은 자가 죽는 룰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냥 숨어 박혀있다가 죽을수도 있는 노릇이다.

‘근데 전 라운드에서 특권을 두 개나 얻어간 것은 신아영이었다.’

그녀는 지금 유리한 상황일 것이다. 그 특권이란 것은 무엇일까?

주위에서 살벌한 기운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고블린과는 다른 맹수와 같은 존재들의 기척처럼.

‘일단 이곳의 지형을 제대로 살펴야겠다.’

타탁!

시운은 앞에 솟은 높은 절벽으로 도약하여 튀어나와 있는 얼음을 손으로 잡아냈다.

손이 시릴 것처럼 차가웠으나 이를 참고 절벽의 얼음들을 손을 뻗어 이동하며 등반했다.

20 미터나 되는 절벽을 모두 등반하고 서서 지상을 내려다봤다.

끝이 없이 아득히 넓은 빙판들이 펼쳐졌다.

진경이라면 진경인데 이곳은 얼마나 넓은건가?

그때 시운의 눈으로 북남쪽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하늘을 뚫을 듯 높게 솟아있는 얼음성이었다.

‘저곳으로 가야 하는건가?’

* *

장준과 박민성은 얼음성의 정문을 통해 얼음성 안으로 진입했다.

얼어붙은 계단들이 눈에 들어왔고, 얼어붙은 샹들리에. 벽에 걸려 이상한 색으로 타오르는 성화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체크포인트 아닐까?”

민성의 말에 장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그때 네 발 달린 괴수종이 이들을 보고 계단에서 성큼성큼 내려왔다.

“씨발. 무지막지하네, 진짜...”

민성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뿔 달린 하이에나의 형상을 한 괴수종은 2층 주택만한 크기였다.

크르르….

괴수종은 그 둘을 침입자라고 여긴 듯 낮게 그르렁거렸다.

“튈까?”

민성은 자신이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저 괴수와 맞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왜 바로 달려들지 않는거지?”

장준이 괴수를 보며 의아해했다.

괴수는 그르렁 거리기는 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그들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르렁 거리는 것이 ‘침입자들이여 여기서 나가라‘고 하는 듯 했다.

“아니야. 저걸 잡으면 포인트도 엄청 딸 것 같아.”

욕심이 생긴 민성이 단도 두 개를 쥐어들고 괴수에게 돌진하며 외쳤다.

“형은 좌측에서 빈틈만 보이면 바로 쑤셔! 내가 고기방패 할 테니까!”

그때.

괴수의 커다란 앞발이 위로 들렸다.

그 앞발의 그림자가 민성을 삼켜버렸다.

거대한 앞발이 점점 코앞으로 가까워오자.

민성은 판단이 틀렸다는 감각이 들었다.

이대로 난 죽는거라고?

그런데.

“뭐지?”

자신을 내리찍으려는 거대한 발이 정수리 바로 위에서 멈춰있다.

맹수의 앞발이 어찌나 큰지 시야를 다 가릴 정도였다. 민첩하게 좌측으로 구르며 튀어나와 괴수를 살피려던 그 순간.

“뭐야?”

“이시운 씨야..”

그가 보였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도검을 든 검을 거뒀다. 그 옆으로는 잘려나간 괴수의 머리가 불에 타들어가 녹고 있었다. 머리를 잃어버린 몸뚱이는 앞발을 든 채로 그대로 멈춰있다.

“이시운 씨!”

민성이 시운을 보고 반갑게 외쳤다. 한편으로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헌터시스템도 사용하지 못하는 이곳에서 저런 괴수의 몸통을 순식간에 분리해내다니.

'역시 S급은 S급이야..'

시운은 장준과 민성을 번갈아보며 눈인사를 하고 물었다.

“신아영 씨는 본 적 있나요?”

그 물음에 민성과 장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 소녀는 오다가 봤어요. 근데….”

장준이 말끝을 흐렸다.

시운은 그의 다음 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아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까 걔가 보이질 않네.”

민성도 의아해했다.

“신아영 씨는 전 라운드에서 어드벤티지를 얻었잖아요. 그 어드벤티지가 설마 이번 라운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건너 뛰는 것 아니였을까요?”

그 물음에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죠.”

장준은 시운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시운 씨. 피부가 굉장히 수척해보여. 이거라도 둘러요.”

장준은 홀로그램창에서 구입한 목도리를 시운에게 내밀었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더 추워 보이시는데 아저씨가 하세요.”

마흔살인 장준은 시운을 보면 조카가 생각났다. 그래서 챙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홀로그램창에서 구매한 빵과 따뜻한 물을 건넸다.

“이거라도 먹어요. 여기선 몸이 따뜻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경쟁자인 상황인데 자신을 챙겨주는 장준의 손길이 썩 고마운 시운이다.

시운은 그가 건넨 음식들을 먹었다.

한편 민성은 장준을 흘겼다.

’약았네. S급한테 처세질이라도 하는건가.. 속 보여.‘

.

.

.

얼음성의 중앙부까지 끝없이 둘러진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도착했다.

이곳이 체크포인트인지는 모른다.

허나.

끝없이 펼쳐진 빙결지대에 이런 성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고요한 정적이 불길하게 흘렀다.

“아직 위로 향하는 계단은 많이 남은 듯 해요.”

민성이 말하며 무릎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하도 계단을 많이 올라와서 다리가 철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상태창을 사용해 봤어요?”

시운이 둘에게 물었다. 혹시나 이들의 상태창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을 수도 있기에 B와 W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 안 그래도 그게 의아했어요. B와 W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W의 숫자가 더 높게 나와있어요.”

장준이 답하자 민성도 입으로 웅얼거리더니.

“난 B가 더 높다고 나오는데?”

이들에게도 B와 W가 뜨는 듯 하다.

시운은 턱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B와 W가 있고 숫자가 있다.

헌터들은 각기 그 수치가 다른 듯 하고.

이것은 무언가의 약자라고 실리아가 힌트를 줬었다.

혹시?

'Black 과 White?'

그러기엔 너무 심플하지 않은가?

허나.

이 생각에 점점 확신이 선다.

방금 도륙낸 괴수의 색깔은 검은 색이였다.

게다가 전 라운드 때에 검은 날개와 흰 날개로 나뉘어진 천수들을 생각해보면.

'그렇다면 이 숫자들의 의미는 설마?'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얼음덩어리들이 떨어지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저건?”

“뒤로 물러납시다!”

“또 뭔가 나타나는 건가.”

계단도 아닌 천장이 균형이 생기고 일그러지더니 검은 블랙홀 같은 것이 생겨났다.

원형 블랙홀 너머로 흉성 소리들이 흘러나왔고.

콰콰콰콰쾅!

블랙홀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들의 적안들이 사방에서 일행들을 향하고 있다.

“대, 대체 몇 마리야 이거..”

민성이 입을 벌렸다. 전의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괴수들의 수는 성의 모든 곳들을 빼곡이 채울 정도였다.

“약 천 마리는 됩니다..”

시운이 힘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아아아!

괴수들이 포효하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씨발.. 이대로 죽는 건가?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민성의 전의를 잃은 생각과.

'집에서 나만 기다리고 있는 내 딸 지현이와 우리 와이프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돼..'

이렇게 생각한 장준이었다.

장준은 뒤로 돌아 무작정 뛰기 시작했고. 시운과 민성도 마찬가지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다.

올라왔던 계단을 타고 미친 듯이 내려갔다.

콰콰콰콰쾅!

등 뒤로 괴수들이 쫓아오는 굉음소리는 마치 죽음의 문턱에 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젠장.. 방법이 없을까.'

시운은 빠르게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콰콰콰쾅!

얼음성의 벽과 계단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쫓는 괴수들의 무게에 계단이 충격을 받고 균열을 일으킨 듯 했다.

이대로 있다간 모두 죽는다.

‘재림.’

시운은 속으로 외쳐봤으나 역시나 작동하질 않는다. 지금 망자들을 소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던 그때였다.

[당신은 아직 군왕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권능을 사용하여 일부 힘을 계승합니다.]

뭐라고?

알 수 없는 메세지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백의 괴수들이 튀어올라 시운에게로 쏟아지던 그 순간!

파파파파팍!

살결이 검격에 찢어지는 소리가 생생히 비산했다.

시운은 주위룰 둘러봤다. 육편이 된 괴수들이 계단에 쌓인 채 역한 피냄새를 풍겨오고 있었고, 그 주위로는 소환된 망자들이 일제히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시만 내려달라는 충성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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