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93화 (193/278)

제 193화

새로운 재림

망자들의 수는 얼음성의 전체 계단의 반을 비집고 차지하고 있었다.

시운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처처처척!

그러자 모든 망자들의 고개가 동시에 시운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갔다.

“최고 상층부까지 보이는 건 죄다 쓸어버려.”

시운의 명령에 망자들이 눈을 빛내며 전방을 막아선 괴수들을 도륙내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시운의 외침에 망자들이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인간은 제외하고.”

혹시나 신아영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명령을 따릅니다. 주군!”

“명령을 따릅니다. 주군!”

“명령을 따릅니다. 주군!”

망자들이 외치는 똑같은 말들은 소음공해를 일으킬 정도로 컸다.

수많은 망자들 틈에 끼인 박민성과 장준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저것들은 대체 뭐야..?’

‘군대?’

그들의 몸뚱이를 치고 가는 망자들의 진군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 둘은 벽에 바싹 등을 붙인 채 그들을 귀신 보듯 바라봤다.

“저것들이 대체 뭡니까..”

박민성이 시운에게 물었다.

“군대라고 생각하면 돼요.”

“군대요? 이 라운드 홀로그램창으로 저런 게 있을리 없는데.. 설마 당신이 정말 저 군대들을 다루는 겁니까?”

민성의 물음에 시운의 대답은 들려오질 않았다.

“아...”

민성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헌터 수준이 아니다. 마치 게임 속에나 존재하는 네크로맨서란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저런 헌터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대체 저런 것들을 인간이 어떻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이런 헌터가 있었다니.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망자들이 진격은 멈추질 않았다.

어느새 얼음성은 그들의 함성 소리로 성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 *

“정말 대단한 청년이네.. 대단하다고 하기에도 놀라워..”

장준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형도 봤지? 그 귀신같은 것들을 소환하고 다루는 거? 대한민국에 인재 납셨어 아주."

민성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다.

“하루만에 F급에서 S급으로 승격한 헌터에 대한 기사는 오보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그 실감이 난다..”

장준은 뉴스 속보를 접한 그때를 떠올렸다.

그 속보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오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헌터와 같이 던전을 공략하게 됐고 이젠 자신의 의심이 오심이었단 생각이 굳는 순간이다.

“신아영보다도 강할까?”

“아마 그럴 것 같은데.”

민성이 물었고 장준이 답했다.

신아영도 대한민국 최고의 전력인 S급이다.

민성은 그녀와 같은 길원으로서 그녀를 많이 봐오면서도 그녀와 같이 던전을 공략할 때마다 그녀의 압도적인 페이스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내로라 하는 A급인 자신마저도.

“설마 박태석 급정도라도 되는건가?”

“어쩌면….”

장준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그보다 강할 수도 있겠다는 억측은 내놓지 않았다.

멸룡의 귀재 박태석의 전력은 인간의 단계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위층 저 너머로 괴성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마 망자들과 괴수들이 섥히는 소리겠지.

그 여파는 주변의 얼음들이 깨질 정도로 강력했다.

“크억!”

강한 진동으로 천장에서 떨어진 얼음덩어리가 장준의 허벅지에 떨어졌다.

“어이구. 형. 괜찮아?”

민성이 다가가 그를 살폈다.

“다, 다리에 박힌 것 같아...”

하필이면 낙하한 얼음이 뾰족해서 장준의 허벅다리를 관통한 듯 했다.

그의 피가 얼음계단을 매운 것을 보고 민성은 그가 중상을 입은 것임을 파악했다.

“하필이면 다리에!”

“아휴.. 신경이 망가진 거 아니야? 걸을 수는 있겠나.”

민성이 쓰러진 장준을 끌어 올렸지만 장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찌이익!

장준은 허벅다리에 박힌 얼음을 빼내고 옷을 찢어 지혈을 했다.

다리를 지혈하던 그는 순간 민성의 그림자가 다리를 삼킨 것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민성은 입가를 비틀어올리며 단도를 겨눈 채였다.

“미, 민성아.. 잠깐만.”

“뭘 잠깐만이야?”

“네가 이러면 안 되지! 난 가족들이 있어. 제발. 이 던전은 사람이 죽어야 나갈 수 있는 던전이 아닐수도 있어. 우리한테는.”

장준은 말을 멈추고 빠르게 몸을 틀었다.

“크어어어어억!”

하마터면 목덜미에 떨어질 것을 상체만 틀어 피했지만 칼은 어깨쭉지에 쑤셔박혔다.

“어딜 가려고? 그리고 가족은 형만 있어?”

장준은 포복 자세로 계단을 기어올라갔다.

민성은 발악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그를 천천히 쫓아왔다.

“이러지 마라! 민성아! 넌 내 동생이야. 게다가 전 라운드에서도 널 도와줬잖아. 제발 부탁한다.”

푸욱!

단도가 쏟아져 빈 얼음계단에 꽂혔다. 간신히 얼굴을 틀어 칼을 피해낸 장준은 애원했다.

“민성아... 제발... 제발! 부탁이다. 내 딸과 와이프를 위해서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한 번만 봐다오. 날 업고 가달라는 부탁까진 안할게.”

“에이. 이 게임은 딱 보니까 플레이어를 죽이면 그 포인트까지 다 얻는 것 같던데? 게다가 플레이어 하나가 죽으면 아마 이번 라운드는 끝날걸? 난 살아야 돼.”

“미, 민성아!”

“왜냐고? 난 당신보다 존나 젊잖아.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두 손으로 쥔 단검이 역수로 장준에게 떨어졌다.

이제는 모든게 끝이구나.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다니.

장준은 속으로 와이프와 딸의 이름을 외치며 눈을 감았다.

“어억!”

그때 울린 신음은 장준의 울대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칼에 쑤셔 비릿하게 느껴져야 할 통증도 느껴지질 않는다.

장준이 눈을 떴을 때 이시운의 주먹이 민성의 배를 후린 뒤였다.

“다 보고 있었다. 이 인간 말종아.”

민성은 거품을 물며 배를 움켜잡았다.

고개가 들린 민성의 눈으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까마귀가 묘하게 바라보고 있다.

“자, 잠깐만요. 시운 씨..”

민성의 말은 이어지질 않았다. 시운은 오른 주먹으로 민성의 얼굴을 연달아 후려치고 쓰러진 민성의 얼굴을 발로 걷어찬다.

코피를 쏟은 민성은 코를 움켜잡고 왈칵 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저 형은 다리가 병신이 돼서 여길 못 나간다고요!”

소리치는 민성의 말에 시운은 민성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렸다.

빠아악!

얼마나 세게 가격했는지 민성의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듯 했다.

“자, 잠깐만.”

장준이 시운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난 이해해. 이건 생존을 위한 게임이잖아요. 민성이는 내 동생이에요.”

장준의 말을 듣자 시운은 더욱 화가 난다는 듯 민성을 노려봤다.

“아저씨도 참 옛날의 저처럼 물러 터지셨군요. 호구처럼 살 바에는 그냥 썅놈처럼 사는게 낫습니다.”

시운은 지금까지 라운드를 진행하면서 민성이 한 행동들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1라운드 때 민성이 했던 비열한 행동을 메두사의 살모사를 통해 본 것부터 지금까지 그의 추악한 악행들을.

“저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에요. 저 반지를 보시죠.”

시운이 민성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장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박민성... 이 개자식이.”

장준이 이를 갈았다.

민성은 손사레를 쳤다.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의 반지도 귀중하게 보관하려고 내가 낀 겁니... 크아아아아악!!”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 이 씹새끼야. 니가 인간이냐!”

빠바박! 시운은 민성의 팔을 그대로 꺽어 분지르자 그의 팔에서 뼈와 신경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마갑을 두른 악마가 검을 등 뒤로 맨 채 시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조, 조심해요!”

장준이 소리쳤지만 시운은 되려 악마를 반갑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때서야 장준은 깨달았다.

‘저것도 저 남자의 소환수인가..’

시운이 악마에게 말했다.

“데스나이트. 너 사람 죽여본지 오래 돼서 몸이 근질근질 하지? 처리해라.”

시운의 말에 악마는 웃는 듯 하관을 움직이며 거검을 뽑아들었다.

민성이 살려달라고 마지막 외침을 하려는 순간!

떨어진 거검은 민성의 얼굴을 완전히 박살낸 후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민성의 얼굴을 보던 악마는 튀어나온 민성의 눈알을 집고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었다.

그 모습을 본 장준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흡수.”

시운의 나지막한 말에 민성의 시체가 얼음계단에 녹아내렸다.

‘A급 헌터를 재림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

시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박민성은 A급 중에서도 타고난 헌터다.

B급 던전보스였던 헤라클레스와 메두사, 그리고 데스나이트와는 다를 것이다.

‘인간을 재물로 써보긴 처음이군.’

무엇보다도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다.

재림시키면 어떤 형태로 변하게 될까. 독을 쓰는 헌터였으니 재림된 것도 독을 사용할까?

“재림.”

시운의 말이 떨어진 것과 동시에 박민성의 피들이 검게 변하면서 그의 비명이 들려왔다.

장준은 그 광경을 심장을 떨며 바라봤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이윽고.

검은 피들이 거대하게 솟아올랐고 그것이 형상이 되었다.

마치 신이 피조물을 만들어 내듯이.

“오….”

시운은 그것을 올려다 보고 감탄을 내뿜었다.

빌라 2층 높이는 될 정도로 거대한 괴수의 몸. 검은 날개는 진득한 거미줄로 덮여있었다. 괴수의 몸을 두른 날개가 펼쳐졌고 그 안으로 여덞 개의 팔이 드러났다.

그때 감고 있던 괴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에는 시운이 소환한 그 어떤 것들보다 강한 살기를 담고 있는 듯 깊고 강인했다.

그 괴수가 시운을 보더니 주인을 섬기겠다는 증표를 보이는 것마냥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음….”

시운은 고민하듯 턱을 만지작 거렸다. 괴수는 주인의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고개를 들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고민을 끝낸 시운이 말했다.

“심플하게 가자. 앞으로 네 이름은 검은매다.”

생김새를 본따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다.

뭐니뭐니 해도 심플한게 최고다.

말이 떨어지자 괴수가 고개를 들고 눈을 빛냈다.

그때 데스나이트가 시운에게 다가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빤히 바라보고 있다.

마치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너 할 말 있냐?”

시운의 물음이 끝나는 순간.

그의 귓가로 놀라운 메시지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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