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4화
너도 게임해봐, 목숨 걸고.
데스나이트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키는 시운보다 한참은 크다.
“당신의 나의 주군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승인? 무슨 승인?”
“승인을 해야 진급할 수 있다.”
진급? 설마….
“허락한다.”
그때였다.
[데스나이트의 진급을 승인하였습니다.]
순간!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푸르게 빛나며 주위로 검은 해골들이 모여들었다. 그 해골들은 데스나이트를 잡아 먹을 듯이 괴성을 내뿜었다.
그러나.
데스나이트가 입을 크게 벌리자 오히려 해골들이 데스나이트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놈의 귀와 눈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데스나이트의 등급이 정예로 진급 하였습니다.]
이어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데스나이트][정예 등급] L.v.1
태초 등급: B
시운은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데스나이트가 들고 있던 마혈도와 갑주가 아까와는 다른 형태로 변해있었다.
마치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하데스와 난전을 벌일 때 분명 진화했었는데..’
이제는 레벨까지 표시가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진화하면 그때부터 레벨업을 하면서 더욱 강해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시운뿐만 아니라 그가 다루는 소환수들도 강해지고 있었다.
놀라워 하던 그 순간!
[얼음성의 보스가 공략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얼음성이 무너집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십시오.]
연달아 들려오는 알람음이었다.
벌써 망자들이 최상층까지 올라가 보스를 잡아버린 듯 했다.
순간 얼음성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지면과 벽이 균열되어간다.
“사, 살려줘요….”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장준이 시운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책임지고 살려드리겠습니다.”
시운이 검은매를 바라봤다.
그러자 검은매가 자세를 낮추고 숙인 채 등을 내밀었다.
마치 시운에게 타라는 듯이 말이다.
시운은 장준을 들추고 검은매의 등 위로 올라탔다.
“검은매. 이곳을 빠져나간다.”
퀴릭!
검은매가 야성을 내지르며 계단을 미친 듯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너무 빨라.”
“꽉 잡아요!”
장준이 놀라 소리쳤고 시운은 그를 꽉 잡은 채 계단을 내려가는 검은매에게 몸을 맡겼다.
검은매는 놀랍게도 여섯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를 모두 사용하여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거미처럼 말이다.
타타타타타탁!
검은매를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을 소환 해제 시킨 후.
얼음성을 빠져 나오자마자 등 뒤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얼음성은 붕괴되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덕분에 연명했네. 고맙습니다..”
장준의 말에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헌터들이 다 저를 무시할 때 아저씨만큼은 제게 정을 베풀어주셨잖아요?”
“그건 그냥 조카 같아서….”
“저도 아저씨가 저희 삼촌 같아서 말이죠.”
시운은 싱긋 웃었다. 장준은 검은매의 외형을 아직도 신기하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는 안내음이 울리며 눈앞이 현란해졌다.
* *
4라운드.
라운드가 시작하자마자.
[당신은 블랙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검은 체스말을 사용한 신의 게임을 진행합니다.]
나보고 블랙이라고 했다.
저것의 의미는 검은 날개의 천수를 하얀 날개보다 많이 도륙해서 정해진 것일테다.
타임리스의 던전이라는 명칭답게 4라운드는 시간과 관계된 라운드였다.
이시운 앞으로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또다른 이시운이었다.
“씨팔. 이거 실화야?”
분명 내 얼굴이다.
근데 내가 지금 나이에서 한 삼십 년은 늙은 얼굴말이다.
“넌 나와 싸워야 한다.”
미래의 이시운이 시운에게 말했다.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내 모습에서 삼십 년 후의 얼굴은 중후하지만 여전히 잘생기긴 했다.
근데 미래의 나와 싸워야 하다니.
개떡같은 던전이다.
‘미래의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시운은 망자들을 모조리 소환하였다.
시운의 뒤로 펼쳐진 수많은 망자들이 미래의 이시운을 적의를 담아 바라본다.
순간!
“내 과거답군.”
미래의 이시운도 군대를 소환했다.
크아아아!
크르르르!
퀴이이익!
미래의 이시운이 소환한 군대들은 망자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족들을 모아놓은 듯 했다.
미래의 이시운 군대가 내지르는 함성에 망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젠장.. 내가 불리하다.’
삼십 년 후의 나라지만 육안으로만 봐도 전력의 차이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이시운은 전방의 군대 속에 있는 메두사와 데스나이트 그리고 헤라클레스, 검은매를 바라봤다.
그들의 용모는 내가 아는 것과 달리 웅장했다.
‘최종 진급한 모습이 저런 모습이란 말인가..’
그때 미래의 이시운이 검을 뽑아드는 검명이 울리자 미래편 군대진영에서 더욱 힘찬 함성이 쏟아졌다,
“젊은 나여. 괜찮겠나?”
“너 같으면 괜찮겠냐? 씨팔. 넌 나보다 강하다고. 너는 너와 똑같은 자신인 나를 꼭 죽여야만 하겠냐?”
시운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사실 미래의 시운도 이시운이다.
시운은 자신이 정이 많은 타입이란 걸 알기에 일단은 이빨을 좀 털어서 반응을 좀 보려고 했다.
“널 위해 딱 두 가지만 알려주지.”
친절하게도 무언가를 알려준단다.
들어보자.
“말해봐라.”
“첫 번째. 넌 인간의 존재를 넘어설 것이다.”
“인간의 존재를 넘어선다? 설마 내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시운의 물음에 미래의 이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 그 소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인간도,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니군.
‘정말 내가 신이라도 된 다는 말인가.’
머리가 아파왔다.
“두 번째. 넌 그녀를 잃을 수도 있다.”
“그녀라면 천세정을 말하는 거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미래의 이시운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천세정이 죽을수도 있다고?
그때였다.
“과거의 시운아. 널 위해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알려주었다. 이제 이 시련도 맞서라.”
미래의 이시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며 그가 시운에게로 파고들었고 그 뒤로 그의 군대들도 돌풍처럼 진군해왔다.
쿵쿵쿵쿵쿵!
시운은 인벤토리에서 신력의 열매를 꺼내 들었다.
신력의 열매
설명: 일시적으로 신의 힘을 모두 무효화 시킨다.
시운은 신력의 열매를 입안에 베어물었다.
순간 입안으로 열매의 즙이 터져 흐르면서 목안으로 넘어갔다. 맛은 살짝 시큼했다. 순간 내장 깊숙한 곳에서 전신까지 혈액순환이 빠르게 도는 느낌이다.
“시련을 견디긴 뭘 견뎌.. 너랑 싸울 생각은 없다.”
[신력의 열매를 복용하였습니다.]
[신의 힘을 일시적으로 강제 무효화 시킵니다.]
그 안내메세지와 함께.
미래의 이시운과 그의 군대의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무슨 짓을 한 거냐? 게임을 네 멋대로 중단시켜버리다니.]
항상 극존칭을 사용하던 관리자가 이젠 반말을 해온다.
시운은 신력의 열매를 사용해 신의 힘을 제한시키고 게임을 끝냈을 뿐이다.
대답을 해줄 필요는 없어서 해주지 않았다.
미래의 나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 *
“저기 누군가가 있어.”
장준이 속삭이듯 말했다.
시운은 주위를 둘러봤다.
구름이 손에 와닿을 듯 보였고 바람은 칼날을 스치듯 예리하게 불어왔다.
발을 딛고 있는 신전의 바닥이 보인다.
이곳은 이계의 상공 5천 킬로미터 위의 타락한 신전이었다.
그 앞으로 검은 가죽자켓을 입은 한 남자가 체스판에 눈을 두고 있다.
그의 눈에 서린 감정은 짜증과 분노란 것이였다.
이시운은 수호신의 격창을 꺼내었다. 그리고 수호신의 격창의 한 능력을 통해 하데스와 소통했다.
“저 신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악신 루시퍼다. 원래는 천사였지만 번뇌했고, 타락하고 악신이 된 놈이다.]
오랜만에 듣는 하데스의 목소리였지만 인사는 거르고 물을 것만 물었다.
루시퍼란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하는 루시퍼가 내 앞에 실재하고 있다니.
“놈의 약점은?”
[신성. 빛 속성에 약하다. 그런데 저 놈이 지금 날개가 없는 것을 보니…… 힘이 제한된 모양인데?]
그렇군.
신력의 열매의 지속시간이 아직 남아있단 말이군.
그렇다면.
시운은 장준에게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했고 망자 넷을 소환하여 장준을 끝까지 보호하라고 명했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당신처럼 강하진 않지만….”
“가만히 계시죠. 나를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시운은 장준을 지켜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다리만 이 지경이 아니였어도... 이 은혜는 언젠간 꼭 갚을게요.”
장준은 쓰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시운이 앞으로 걸어가자.
“에이…씨팔! 이제 체크메이트를 외치고 내가 판을 이겨먹을 뻔 했는데.”
루시퍼는 체스판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순간 루시퍼가 시운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체스말이 날아왔다.
탁!
시운은 날아온 체스말을 손으로 쳐내고 루시퍼에게 걸어갔다.
“야. 그렇게 체스게임이 중요하냐?”
신이고 나발이고 저 새끼는 악신이다. 게다가 저 체스게임인지 뭔지로 인해 사람만 몇 명이 죽었다.
신 대우를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리를 꼬은 채 앉아있던 루시퍼가 이번에는 창을 던졌다.
이시운은 창을 피하지 않았고 그 창이 이시운의 머리를 통과하더니 사라졌다.
“오호…… 역시 내가 보던대로 네 눈 또한 사람의 눈이 아니군.”
창의 허상을 구별해낸 게 신기했는지 루시퍼가 말하며 일어섰다.
“신아영은 어딨지?”
“아 그 이쁘장한 여자애? 가브리엘과 한판 하는 중이겠지.”
가브리엘?
그때 루시퍼가 품에서 채찍을 뽑아들었다.
차캉!
채찍을 바닥에 내리치자 신전바닥이 그대로 파였고, 신전이 뒤흔들렸다.
‘엄청난 괴력이군.’
시운은 망자들을 더 소환하려 했다.
[마력이 부족합니다.]
“젠장!”
힘을 너무 사용한 모양이다.
이런 S급 게이트 던전에서는 포션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육탄전을 벌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시운이 그대로 쇄도하여 루시퍼에게 검을 휘두른다. 부웅!
빈 허공만 요란하게 가른 아클레우스 소드.
루시퍼는 허리를 틀어 뒤로 뺀 채로 팔을 내리며 채찍을 내리친다.
차카캉!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성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듯이 후려쳤다.
연속으로 채찍을 피해냈는데 이번에는 채찍이 네 개가 되어 떨어진다.
카아앙!
아클레우스 소드로 겨우 막아냈으나, 채찍 네 개가 내리친 힘에 검이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흔들렸고 채찍이 스쳐간 볼가에는 뜨거운 느낌이 서늘하게 들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신안을 사용합니다.]
[신의 눈을 개안합니다.]
뒤이어 루시퍼의 몸 주위로 파란색의 선이 휘어져 보였다.
신안으로 인해 신의 움직임을 예지한 것이다.
그 선대로 루시퍼는 움직였고, 시운은 모조리 공격들을 회피했다. 움직임이 보이는 이상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차캉!
신전 바닥이 채찍으로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시운은 활을 발사함과 동시에 기둥으로 뛰어들어 기둥의 발을 밀어 차고, 더욱 도약력을 실어 회전하며 원심력까지 실었다. 그 힘을 온전히 모두 검에 담아 루시퍼의 머리를 향해 내리친다.
콰캉!
빈 바닥 깊숙이 검신이 박혔다.
‘속도가 상상 이상이군.’
역시 악신답다.
그때 머리칼 위로 서늘한 감촉이 번졌다. 검을 뽑기도 전에 쇄도한 채찍에 머리를 급히 숙여 겨우 피해낸 시운은 그렇게 이십 분 간 루시퍼와 육탄전을 펼쳤다.
“크으으….”
루시퍼는 살짝 휘청이며 한쪽 팔로 다른 쪽 어깨를 감쌌다.
그 앞으로는 루시퍼의 잘린 오른팔이 비참하게 떨어져 있다.
“인간따위에게 팔을 잘리는 수모를 겪어야하다니. 아…. 넌 완전한 인간은 아니지만.”
시운도 호흡을 가빠르게 몰아쉬며 루시퍼를 노려봤다.
‘내 체력도 거의 바닥이다. 신력의 열매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일격을 준비하려던 그때, 루시퍼의 주위로 검은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시운은 아시룡의 활을 겨누고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푸른 잔상을 쏟으며 날아간 화살은 검은 연기에 닿자 표적을 잃은 듯 그대로 녹아버렸다.
‘윈드니스.’
윈드니스를 소환해 바람으로 검은 연기를 모조리 날려보내자 루시퍼가 잘린 팔을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회복하도록 냅둘 것 같냐.”
시운은 검신은 그대로 루시퍼의 반대쪽 팔도 베어버렸다.
검에서 정확히 뼈를 절삭해버린 감각이 전해졌다.
양팔을 잃었음에도 루시퍼는 독한 악신답게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고 이시운을 노려봤다.
퍼억!
이시운은 루시퍼의 턱을 발로 후려찼다. 두 팔을 잃은 루시퍼는 방어하지도 못하고 맞고 뒤로 드러누웠다.
이시운이 십자 모양으로 드러누운 루시퍼의 코앞으로 칼을 겨눴다.
루시퍼는 허망한 눈으로 이시운을 바라본다.
그때 시운이 말했다.
“너도 게임을 한 번 해봐. 선택하기 게임이다. 너 나한테 굴복할래? 아님 이 자리에서 그냥 뒤질래? 선택해. 너도 목숨 걸고 게임 한 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