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5화
신까지 부려먹는 네크로맨서
악신 루시퍼의 입이 씰룩거렸다. 그리고 움직이던 그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푸하하하하! 완전 미친새끼군.”
미친새끼라고?
“객기 부리지 말고 너도 게임을 해보라니까?”
시운은 루시퍼의 가슴팍에 칼날을 대고 밀어넣었다. 루시퍼의 가죽자켓이 찢어지며 가슴뼈에 검끝이 박히는 느낌이 전해졌다.
“흐하하하하하!!!!!”
루시퍼는 그 고통을 참는건지 즐기는건지 실성한 미친놈처럼 웃었다.
“더 웃을 수 있나 볼까?”
검을 쥔 아귀에 힘을 넣어 더욱 밀어넣었다.
푸우욱!
루시퍼의 가슴뼈 중앙에 위치한 진중혈에 검신이 4센티 정도가 더 들어갔다.
놈의 가슴께에 벌어진 살점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쿨럭!”
고통은 느끼는건지 마른 기침을 한다.
“우리들의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했으니까 너도 게임을 해보라고. 대답이 없으면 굴복하느니 그냥 죽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알고 네 심장을 도려내줄게.”
“완전 미친새끼구나. 마음대로 해라.”
루시퍼는 아직도 여유롭다는 듯 지껄였다.
두 팔이 잘려나간 채 인간의 고문을 받는 신이라는 저 놈의 모습이 참 초라해보였다.
마음대로 하라면 할 수 밖에.
푸우우욱!
검을 미친 듯이 밀어넣었다. 가슴 정중앙의 진중혈부터 옆으로 그어내려 놈의 심장을 헤집고 반대편으로도 그어버렸다.
“푸흐읍!”
놈의 입에서 내장의 찌꺼기가 섞인 핏물이 튀어나온다.
인간이 아닌 신의 뼈는 밀도가 달랐다. 단단했다.
검잡이에 한손이 아닌 양손을 잡고 놈의 복부를 향해 쭉쭉- 내리그었다. 오장육부가 검에 잘려나가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크흐읍!”
루시퍼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나왔다.
“이름이 뭐지?”
오장육부가 허물이지는 이 순간에서도 놈은 물어왔다.
“이름은 왜 물어?”
“이 몸에게 이딴 짓을 하는 미친 인간새끼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고 싶어서.”
“바람의 군왕이다.”
“군왕? 지랄하고 있군.”
루시퍼는 피를 벅벅, 토해내면서도 웃었다. 핏물로 뒤덮인 놈의 치아에는 역류한 내장 찌꺼기가 끼어있었다.
그때 등에 온기가 느껴져서 뒤를 돌아봤다. 장준이 루시퍼를 힐끗거리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스킬을 시전 중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
“감사함니다.”
전신에 장준의 온기가 불어넣어지는 느낌이 온전히 들었다.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마력을 회복 중입니다.]
시운은 차갑게 식은 루시퍼의 얼굴을 바라봤다. 과다출혈로 인해 낯빛은 식어있엇지만 놈의 눈은 웃고 있었다.
“절망적인 눈빛이 아닌데?”
그 눈빛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 시운을 보던 루시퍼가 웃었다.
“내가 인간인 줄 아냐? 난 신이다.”
몸이 저 지경이 됐는데도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악신답다.
“빨리 처리해요. 방심하면 안 됩니다.”
등뒤에서 장준의 육성이 들려왔다. 시운은 검신을 빼내고 루시퍼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신력의 열매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뭐?”
순간 루시퍼가 찬 발길질에 시운과 장준이 뒤엉켜 뒤로 날아갔다.
시운은 발에 얻어맞은 가슴에서 아까완 다른 격통이 느껴졌다.
루시퍼를 바라봤다.
두 팔을 잃은 몸뚱아리로 공중으로 떠오른 루시퍼의 몸에서 터져나오던 피가 멈췄다.
등뒤로는 악마를 상징하는 강대한 날개가 펼쳐진 채 펄럭였다.
번쩍!
눈꺼풀을 번뜩 들어올린 루시퍼의 시뻘건 안광에서는 살기가 섞여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움츠러들게 하는 느낌.
시운은 검을 다시 고쳐잡았다.
그때 루시퍼의 눈에서 적색 레이저가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날아왔다.
몸을 숙이고 고개를 옆으로 틀어 피해냈으나 뒤로 장준의 비명이 들려왔다.
“괜찮아요? 뒤로 물러나세요. 아저씨!”
장준은 두 손을 감싸쥔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비명은 여태껏 헌터생활을 해오면서 들은 비명 중 가장 처절하고 괴로운 비명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손바닥으로 감싸쥔 틈으로 보이는 장준의 얼굴은 주름살이 가득했다. 레이져가 훑어간 그의 목에도 피부가 괴사한 것처럼 주름이 피어나있었다.
섬뜩했다. 메두사를 소환하여 장준을 뒤로 보내고 지키라고 말하며 루시퍼를 바라봤다.
루시퍼는 날개를 펄럭이며 입에 칼을 문 채였다.
그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설마 저런 식으로 검을 사용할 생각인가?’
* *
바로 그 시각.
가브리엘은 성검을 내리쳤다. 내리친 궤도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신아영의 검을 두드렸으나 부숴지지 않았다.
“역시 강한 인간년이구나.”
가브리엘은 감탄하듯이 말했다. 신아영은 그 감탄을 경멸한다는 눈빛으로 답해왔다.
가브리엘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 저 인간에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성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성검 로피루스에 대적하는 검을 인간이 갖고 있다니.’
고대 천계를 다스렸던 위대하신 대천사의 날개로 빚어낸 성검이거늘.
그때 신아영이 힘차게 공중으로 도약했고, 순간 바닥에서 탑처럼 솟아오른 얼음덩어리를 밟고 한 차례 더 뛰어오른 신아영의 검이 쇄도해왔다.
가브리엘은 빛나는 성검을 힐끗거렸다.
‘그러나 이제 끝났다. 내 힘이 돌아왔거든.’
사악!
순간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브리엘의 감각으로 온전히 목을 베는 감각이 전해졌다.
툭.
신아영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져 천장에 향한 채로 멈췄다.
가브리엘은 신아영의 머리로 다가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대단했어. 나에게 이 정도로 맞섰던 위대한 인간이라고 기억해주고 추모해주마.”
그러던 그때였다.
가브리엘의 시야가 아스라지더니, 신전의 천장이 보였다가 바닥이 보였다가를 반복했다. 마치 빙글빙글 놀이기구를 타듯이.
“대, 대체…”
당황한 가브리엘의 머리는 몸과 분리된 채 신아영 앞에 떨어져 있었다. 몸과 머리가 분리된 것은 아영이 아니라 가브리엘 자신이었다.
잘린 목의 단면으로 피를 뿜어내는 가브리엘의 눈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죽지 않았던 것이냐?”
가브리엘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목을 베었다. 인간의 살과 뼈를 분해하는 그 감각은 아주 익숙한 것이라 허상과 구분할 수 있다. 느꼈던 감각은 분명했었는데.
“네게서 난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신아영은 누군가를 회상하는 듯 했다. 그녀의 눈이 슬퍼졌다.
“복수를 위해서 다시 온 것이냐?”
* *
신아영은 가브리엘의 머리를 보며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유민정이 떠올랐다.
유민정은 이 던전에서 생존해 나갔지만 결국 죽은 헌터였다.
아영의 시야로 그녀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아원에서 입양된 그녀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헌터라고 소개하며 멋쩍게 웃던 그 얼굴이 보이는 듯 하자 가슴이 떨려왔다.
부모님이 없이 자랐던 아영은 그녀의 격려와 도움으로 타고난 재능을 앞세워 결국 헌터가 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사람.
아직도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고만 있는 느낌이다.
근데 그런 소중한 존재의 숨을 앗아간 존재의 머리가 앞에 있다. 피가 역류해서 머리 위까지 치솟는 역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영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추잡스럽군. 신을 이긴 인간이 그런 감정을 내비추다니.”
가브리엘의 말에 신아영이 눈을 떴다. 눈물이 흘러내려 턱끝에 맺혀 조용히 어깨로 뚝뚝 떨어진다.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베여있는 것을 본 가브리엘은 그 감정이 뭔지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물었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것이냐? 분명 나는 너의 목을 베었고, 그건 허상이 아니었다.”
“그게 뭔지는 죽어서 궁금해해라.”
신아영의 역수로 쥔 검이 가브리엘의 머리를 터뜨렸다.
터진 머리에서 뿜어진 피를 그대로 받아낸 아영은 한편으로 자신이 각성한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매일 한 번 5초라는 짧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
“엄마 덕분에 각성한 능력으로 엄마의 복수를 했어. 부디 그곳에서 이제 편히 눈을 감길.”
그녀는 유민정을 엄마라 불렀다. 그 후 가브리엘의 손에서 은은히 빛나는 성검을 빼어내 자신의 품에 넣었다.
그 옆으로 결계가 깨지고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 *
신아영이 포탈을 타고 이동한 곳에서는 난전이 일고 있었다.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뭐야? 이것들은….
그녀의 눈이 망자들에게로 향했다.
검은 옷을 입은 수천의 망자들은 이시운과 함께 루시퍼와 대적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영은 쓰러져 있는 장준을 발견하고는 급히 다가갔다.
“보다시피 이렇게 됐어요.”
아영은 장준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짧게 쉬었다.
“저것들도 루시퍼의 군대인가요?”
신아영이 망자들을 힐끗거리며 장준에게 물었다.
“이시운 씨의 힘입니다.”
“힘이라고요?”
아영이 망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분명 인간은 아니다.
그들의 눈과 코 입은 검했고, 피부도 썩어 문드러진지 한참은 지난 것이 마치 부활한 좀비들 같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아영의 눈으로 루시퍼가 눈에 들어왔다.
루시퍼의 신체는 심하게 훼손된 듯 하다. 그는 입에 칼을 물고 사방을 날아다니며 망자들을 문 칼로 베어냈다.
“여기서 조금만 쉬고 계세요.”
아영은 장준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시운을 도우려고 다가가는 순간 땅에서 솟아난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음에 걸음이 멈춰졌다.
“바람의 군왕이여! 난 명분 없이는 자네의 부름을 받지 않아. 이번 외에는 자네를 도울 일은 없을거야.”
앞을 가로막은 존재가 그렇게 말했다.
그 존재는 너무 거대해서 신전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였다.
그 존재의 망토가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저 목소리와 저 문양의 망토. 그리고 마갑과 투구.
설마?
신아영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면 저 존재는 바로 저승의 신 하데스다.
차캉!
살 떨리는 긴장감에 신아영은 뒤로 물러나며 가브리엘을 퇴치하고 얻은 성검을 뽑아들었다.
하데스까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야, 야, 야! 하데스! 저번에 네 몸에 휘둘렀던 그 무식하게 안 깨지는 방패 좀 내 몸에 두르게 해봐, 좀!”
“알겠다. 그러나 명령조로 말하지는 마라 군왕이여…!”
뭐, 뭐?
이시운이 그 악명높은 저승의 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놀란 신아영의 고개가 장준에게로 향했다.
장준은 그녀의 눈빛의 의미를 안다는 듯 힘겹게 말했다.
“이시운 씨는 네크로맨서처럼 군대를 소환하는 능력을 지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