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6화
격전
신아영은 이시운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통솔하고 있는 군대를 보고서 말이다.
우아아아아-!
그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 틈에 서서 전장을 지휘하는 유난히 큰 인간에게로 시선이 멈췄다.
‘분명 저건…….’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고 신이다.
그것도 저승을 지배하는 신 하데스.
크오오오오!!
하데스가 내뿜는 함성은 방금의 함성과는 내공이 달랐다.
하데스는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루시퍼가 소환한 군대들을 무자비하게 도륙내고 있었다.
이 광경이 꿈만 같아서 몸이 멍해지는 기분이다.
“…아영 씨는 괜찮아?”
얼굴이 일그러진 장준이 물어왔다.
“아저씨는 쉬고 계세요.”
“참 신기하지?”
장준의 말에 신아영의 눈이 이시운에게로 향했다.
시운은 최전방에서 군대들을 지휘하며 천수들을 요절내고 있었다.
맑은 하늘 속 비치는 햇빛이 시운의 검에 비춰 번쩍거렸다.
‘움직이면 움직임. 검술이면 검술. 동체시력까지…….’
이시운은 모든 게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힐러와 탱커도 없는 상황에서 저 많은 적들을 혼자 감당해내고 있다니.
무엇보다 저 군대들을 소환한 기술 또한 어떠한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완벽하다.
“나도 진짜 놀랐다니깐.”
장준도 아영이 바라보고 있는 시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신아영의 뇌리로 최상위급 헌터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번뇌의 검 이환.
투시의 성녀 김유리.
마제의 신궁 조대호.
‘그들보다도 강할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신아영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시운의 강함은 빙결의 여검사란 칭호를 갖고 있는 자신과 대등하거나.
아니, 그 대등하기 보다 그 이상에 가깝다는 것을.
신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눈은 이시운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 외의 최상급 S급헌터 둘과 전력을 비교하자면…….’
모르겠다.
그 둘의 기운은 이미 사람이 아니니까.
“다들 쫄지 말고! 한눈 팔지 말고 다리를 가볍게 움직여. 침착하게!”
이시운이 주위로 외치고 있었다.
그의 한마디에 군대들의 진열이 더더욱 정비가 되며 그들의 눈빛은 살아나는 듯 했다.
“아영 씨도 궁금하지 않아? 저기 신과 저렇게 싸우고 있는 이시운이라는 친구. 박태석보다 강할지.”
“당치도 않아요.”
신아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멸룡의 귀재라 불리는 박태석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최고란 타이틀을 지닌 헌터다.
용족 중에 가장 흉폭한 멸룡을 다스리는 그의 능력은 이미 신조차 불가능한 영역이였으니까.
‘좀 더 지켜보기로 할까.’
이시운이 루시퍼에게 질 것 같지 않다. 던전에서 몇 년 이상을 굴러먹으면서 생긴 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신아영은 순간 기척이 느껴진 장준의 뒤편으로 눈이 향했다.
‘뭐야?’
그녀의 눈이 뜨였다. 초록색 헝클어진 머리에 기괴한 사제복을 입은 여성이 기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이시운의 소환수인가요?”
그녀의 두 눈에서 내뿜어지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기에 신아영의 입에서 존댓말이 나왔다.
등뒤에 기대고 팔짱을 낀 여성의 소매에서 생물체의 혀가 낼름거리는 것이 보였다.
“소환수? 그딴 게 뭐야? 날 애완동물 취급하는 거야?”
그녀가 신아영에게 공격적으로 말하자 장준이 손사레를 친다.
“아니, 아니. 저기 이 친구는 아군이예요.”
장준의 말에 여성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아군이면 우리 주군의 동료란 말이야?”
신아영은 그 여성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인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처음 보았다. 허나 낯이 익다.
대체 어디서 봤을까?
“너….”
여성이 신아영에게 거만하게 삿대질을 했다.
아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삿대질 하지 말고, 반말하지 마요.”
“삿대질은 알겠는데 반말이 뭐야? 말을 반토막 낸 고기야?”
“…….”
“그 고기 있음 이리 내놔봐. 나도 피맛 좀 보고 싶은데 저 주군놈이 이 남자를 지키고 있으라고 시키는 바람에 이러고 있는 거라고.”
여성은 탐탁찮은 표정으로 팔짱을 낀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
신아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소환수 중에 특이한 것들도 있나 보군.
“근데 너….”
여성이 신아영에게 또 삿대질을 했다. 아영은 신경을 끄고 이시운을 관찰했다. 말을 걸면 무시할 생각이다.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내가 너보다 예뻐서 샘이라도 나?”
그 말에 신아영의 고개가 여성에게로 돌아갔다.
* *
‘블레이션.’
시운이 속으로 되뇌이자 아킬레우스 소드의 칼날에 불꽃이 흘렀다.
타탁! 앞으로 쇄도하여 순식간에 천수 세 마리를 베어냈다.
천수들의 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망자들은 사람이 아닌 존재답게 지치지도 않는지 숨 한 번 헐떡이지 않고 천수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있었다.
‘역시 하데스야….’
이시운은 하데스를 보며 흡족해했다. 하데스는 거검으로 루시퍼와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신과 신의 난투.
신력의 열매의 힘이 다한 지금.
본래의 힘이 개방된 루시퍼는 아까와는 차원이 달랐다.
차카아앙!
하데스의 거검과 루시퍼의 검이 맞닿자 파공성이 귀를 찢듯이 울렸다.
그 여파는 주위의 망자들을 휘청이게 했다.
시운의 눈이 데스나이트로 향했다.
데스나이트는 상공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천수들을 마혈도로 미친 듯이 찍고, 베고, 도륙내고 있었다.
마치 탱커와 딜러를 합쳐놓은 듯 했다. 망자들 틈에서 단연 돋보였다.
‘아까 진급을 하고 나서 더욱 강해진 느낌이군.’
흡족함에 또 한 번 미소가 흘러나왔다.
차카캉!
루시퍼의 검이 하데스가 두른 방패를 수십 번 두드렸으나 방패는 긁히기만 할 뿐이었다.
밀리지 않고 닥치고 돌격해오는 하데스의 멧집에 루시퍼는 질린다는 눈으로 하데스를 바라보고는 궤적을 틀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놓치면 안 된다!”
키이이익!
이시운이 소환한 검은매가 시운 앞에 모습을 드러내 날개를 번쩍 들어올려보였다.
“한 번 더 등을 좀 내줘야겠다.”
시운이 검은매에게 말하려는 순간!
콰콰쾅!
하늘에서 거대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육중함이 신전을 뒤틀리게 할 정도였다.
그것은 코뿔이 난 용의 머리에 공룡의 몸을 한 괴수였다.
크오오오오오-!
놈은 자신이 등장을 알리기라도 하듯 고성을 내지르며 위엄을 내뿜었다.
그 기운에 망자들이 주춤거렸다.
[천수들의 수호신 카이칸.]
괴수의 머리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수호신 카이칸?’
수호신이라는 칭호가 붙었다면 확실히 일반 천수들과는 다를 터.
“하데스! 넌 루시퍼를 쫓아줘!”
“알겠다.”
쿠웅! 쿵! 쿠웅! 쿵!
하데스가 발을 지면에 찍으며 루시퍼를 쫓아갔다.
그때 길을 막은 카이칸이 망자들에게로 돌진해왔다.
망자들이 검과 창을 내밀고 진군하여 카이칸과 부딪혔다.
카이칸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코의 뿔로 망자들을 휙휙, 처내고 있었다. 마치 파리채로 파리를 쳐내듯이.
그 뿔질 한 번에 망자들이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크케케케케-!
상공에서 까마귀데처럼 비행을 하고 있던 천수들은 카이칸이 활약하자 사기가 솟는다는 듯 소리를 내지르며 망자들에게 쇄도했다.
“끄어억!”
“아아아악!”
“크악!”
망자들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미사일처럼 지상으로 하강한 천수의 발톱에 찍히거나, 천수들이 그 발톱으로 망자들의 어깨를 잡고 공중으로 끌어올려서 망자들을 던져서 망자들이 추락해 으깨졌다.
크케케케케!
그때 검은매가 천수들을 바라보며 괴음을 냈다.
검은매의 볼이 부풀어지더니, 녀석의 입에서 거미줄이 포물선을 그리며 천수들에게 날아갔다.
케켁!
키케켁!
천수들은 몸에 그 거미줄이 들러붙자 속도가 느려졌고 당황하는 듯 했다.
‘오.. 거미줄로 상대를 묶는 기술인가?’
그게 다가 아니였다.
천수들의 몸에 들러붙은 거미줄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오더니 천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땅에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진 천수들의 사체에서 연기가 폴폴 피어 올라왔다.
“대단한데. 이속만 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녹여버리는 산성물질까지 뱉는 거였나?”
이시운이 검은매를 칭찬하자 검은매는 으쓱하 듯, 큼큼 콧김을 내뱉었다.
크와아아악-!
전방에서 카이칸이 더욱 비장한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자신의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에 분개한 듯 더욱 미친 듯이 망자들을 죽이고 시운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확실히 저 놈이 천수들 중 가장 강한 놈인 듯 하군.’
시운은 자신의 앞을 가득 메운 망자들에게로 외쳤다.
“내 전방에 있는 망자들이여! 방패를 위로 들어라!”
처처처처척!
그 말에 망자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방패를 위로 치켜세웠다.
타탓!
시운은 지면을 딛고 도약하여 그 방패들을 밟으며 카이칸에게로 달려나갔다.
‘질주.’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질주를 사용하여 더욱 빠르게 방패들을 밟아가며 카이칸에게 달려왔다.
크오오오오오!
카이칸도 이시운의 속도에 지지 않으려는 듯 더욱 속력을 높여왔다.
카이칸의 거대한 뿔이 시운에게로 날아왔다.
‘군왕의 방패.’
파카카캉!
시운의 전방으로 군왕의 방패가 생겨나 카이칸의 뿔을 막아냈다. 놈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군왕의 방패에 균열이 생겨났고 시운의 팔꿈치가 저릿할 정도였다.
허나 놈은 뿔이 방패에 꽂히자 움직이지 못했다. 뿔을 뽑아내려고 머리를 마구 흔들며 뒤로 몸을 빼려고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약한 시운은 중력의 힘을 실어, 불길이 타오르는 아클레우스 소드로 카이칸의 머리를 그대로 베어냈다.
파사사삭!
마치 육질이 질긴 고기가 칼질에 억지로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카이칸의 머리와 몸이 분리됐다.
뿔은 방패에 그대로 꽂힌 채 머리는 방패에 달려있었고, 놈의 몸뚱이는 피를 쏫더니, 마취총에 맞은 코끼리처럼 옆으로 쿵, 쓰러졌다.
[카이칸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업을 하였습니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기분좋은 알람음.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보니.
[레벨: 300]
시운의 레벨은 300에 다다른 상태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루시퍼를 죽여야 이 던전의 막을 내릴 수 있고 그 장비를 얻을 수 있다.
전생에서 박태석이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후기를 말한 인터뷰에서는 이 던전에서 굉장한 장비를 얻었다고 했었다.
잔여스탯을 확인했다.
[잔여스탯: 54]
시운은 소환수의 힘과 인원수를 증가시켜 주고, 군왕의 스킬을 가중시켜주는 통솔력에 30을 배분했다.
[통솔력 스탯에 30을 분배하였습니다.]
그러자.
우오오오오오-!
주위에 있던 망자들의 눈빛이 더욱 진해지며 아까보다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아까보다도 강해졌다는 것의 표출일까?
통솔력에 조금 더 분배를 하려고 하자.
[현재 상태로는 더 이상 통솔력 스탯을 상승시킬 수 없습니다.]
‘더 상승시킬 수 없다고?’
그런 메시지가 들려왔다.
현재 상태로는 이라는 전제가 의문으로 들려온다.
현재 상태가 아니라 나중에는 가능하다는 건가?
그때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현재 상태란 설마 인간을 뜻하는 걸까? 그렇다면 설마……. 통솔력을 더 가중시킬 수 있을 때가 내가 추후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을 때를 말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