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7화
센스 없는 네크로맨서
설마 바람의 군왕이 최종 클래스가 아닌건가?
‘군왕은 군대의 왕을 줄인 말이지. 그럼 왕보다 클래스가 높은 것은…….’
신.
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내가 신이 될 수 있다면…….’
둠스데이를 막을 수 있고 종말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공해야겠다는 목표에서 이젠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란 목표로 바뀌어 있다.
그 사명감이란 무게가 어깨에 내려앉은 듯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일단은.’
이시운은 카이칸의 사체로 다가갔다.
머리를 잃은 카이칸의 육체는 거대한 고깃덩이 같았다.
하지만 카이칸은 악신 루시퍼의 환수다. 신의 환수라면 그 강함도 엄청날 터다.
시운의 손이움직여 목이 깔끔히 절삭된 카이칸의 근육단면으로 향했다.
“흡수.”
그 순간 묵직한 기운이 손아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카이칸의 사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신의 환수를 재림시킨다면 얼마나 강할까.
입맛이 다셔진다.
아주 막강한 지원군이 되줄 터다.
그 순간.
[카이칸의 영혼을 흡수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뭐?”
검게 타오르던 카이칸의 사체의 피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흡수가 실패하다니.
‘통솔력 스탯이 부족한 건가?’
사체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운은 저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아니다. 여긴 타락한 신전이고 이곳은 루시퍼의 힘이 뻗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일단 녀석은 잠시 놔두기로 하고.
인벤에서 수호신의 격창을 꺼내들었다.
수호신의 격창 능력을 통해서 하데스의 목소리를 불러냈다.
[놈은 둥지 안으로 숨어들었다.]
격창을 손에 쥐니 하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 하다.
‘격창을 장착하면 굴복시킨 신의 기운도 느낄 수 있는건가..’
하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 *
[저 곳으로 숨어 들었다.]
하데스의 검고 두툼한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사람만한 입구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동굴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악마의 둥지.]
동굴의 구멍은 하데스가 들어가기엔 너무 작았다. 인간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이… 내 검으로 저 동굴을 두드려 봤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의 군왕이여. 할 말이 있다.]
하데스의 진지한 음성에 시운이 하데스를 바라보자.
[난 이제 내가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명분 없이 너를 도울 생각은 없다. 설령 네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알았다. 수고 많았어.”
대형로봇같은 하데스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호신의 격창을 통해 굴복시킨 신을 소환할 수 있지만 그 소환이 발동하는 것도 조건이 필요한 듯 하다.
우오오오오-!
후방에서 망자들이 시운에게 싸우고 싶다는 듯 함성을 질러왔다.
망자들이 걸치고 있던 로브는 갑주가 되어 있었고, 그들의 검과 활은 모형이 좀 더 세련되어진 상태다.
통솔력을 올리자 외형도 바뀐 것이다.
‘일단...’
악마의 둥지는 입구가 좁다.
망자들을 투입시킬 수 없다. 저곳은 악신의 아지트일 터.
‘양동 작전일 수도 있다.’
루시퍼는 교활한 놈이니까.
이럴 때는 돌다리를 건너기 보다 두드려보는 것이 옳은 법이다.
까악!
레크라스가 시운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저 동굴 안을 모조리 살펴라.”
까악!
레크라스는 곧바로 악마의 둥지를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레크라스가 처치당했습니다.]
[레크라스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레크라스가 죽기 직전까지의 시야가 시운의 뇌리로 펼쳐졌다.
‘저 곳은 길이는 약 사백 미터. 둥지 안으로 천수 약 백 마리가 있고 출구는없다.’
마지막 레크라스의 기억에는 악귀같은 루시퍼의 얼굴이 보여왔고, 그 끝으로 기억은 끊겼다.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시운은 둥지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정면으로 아득한 둥지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운은 그곳을 향해 검을 겨눴다.
‘흑화광참.’
검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길은 순식간에 증대해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냈다. 불길은 열렬히 타올랐다.
‘윈드니스 5.’
윈드니스의 최대 수치는 10이다.
수치 5 정도를 사용해서 바람을 소환하여 손아귀를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불어온 광풍이 타오르고 있던 검은화염을 둥지 안으로 밀어넣었다.
시운은 기운을 집중해 바람을 컨트롤 했다.
검은화염을 떠안은 광풍은 둥지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천수를 처치하였습니다.
-천수를 처치하였습니다.
-천수를 처치하였습니다.
-천수를 처치하였습니다.
둥지 안에서 천수들이 죽었다는 알람이 들려왔다. 아마 검은화염에 타죽은 것이겠지.
시운은 비릿하게 웃었다.
‘네가 거기서 나오지 않고 베기나 한 번 보자.’
저 둥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놈을 직접 나오게 하는 것.
맹인의 감각을 사용했다.
코끝으로 둥지 안에서 살코기가 타는 냄새가 느껴진다.
“데스나이트! 이 입구를 막아라.”
시운의 지시에 데스나이트가 둥지의 입구를 몸을 밀착시켜 막았다.
한 덩치 하는 데스나이트의 육신이 둥지의 입구를 꼼꼼히 막았다.
‘이제 그 안에서 질식해서 죽거나, 네가 나오거나 둘 중 하나다.’
* *
루시퍼는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둥지 입구로 튀어나와 데스나이트를 튕겨내고 하늘로 솟은 채 시운을 바라봤다.
“인간 새끼가 요행을 부리는구나.”
검을 입에 문 루시퍼가 팔이 없이 날개만 흔들며 말해왔다. 놈의 가슴팍에는 하데스에게 입은듯한 커다란 자상이 보였다.
아까 그렇게 칼에 찔렸을 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더니 지금은 꽤나 화난 모습이다.
“저 유다같은 개새끼는 정말 뒤지지도 않는군.”
튕겨나간 것이 화가 났는지 데스나이트가 이죽거리며 루시퍼에게 마혈도를 휘두른다.
카카캉!
루시퍼는 힘을 많이 잃은 상태였지만 기동성을 이용해 데스나이트와 맞섰다.
데스나이트의 마혈도와 루시퍼의 검이 서로에게 쏟아졌다.
그것을 바라보던 시운은 흡족했다.
‘오. 데스나이트가 진급을 하니까 그래도 루시퍼랑 비빌 정도는 되는군.’
시운의 손을 들어 루시퍼를 가리키자 망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루시퍼에게 돌진했다.
“나도 간다.”
후방에서 들려온 메두사의 육성이 다 들렸을 때에는 메두사는 루시퍼의 코앞까지 쇄도한 상태였다.
루시퍼의 인영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망자들의 머리가 피분수를 뿜으며 하나둘씩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메두사와 데스나이트의 공격에 루시퍼는 점점 밀리기 시작하더니 상공 위로 도망치듯 날아갔다.
검은매가 시운 앞으로 달려왔다.
시운은 검은매의 등에 탑승하고 위로 날아올랐다.
‘놓치지 않는다.’
* *
파카캉!
시운의 검과 루시퍼의 검이 상공에서 만나 굉음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시운은 검은매의 몸에서 튕겨졌고 루시퍼도 뒤로 밀려났다.
퀴기기긱!
검은매는 재빠르게 궤도를 반환하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시운을 붙잡았다.
“고맙다.”
시운은 손을 뻗어 검은매의 등으로 올라탔다.
아래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망자들이 개미처럼 보일정도로 이곳은 고도의 상공이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든 댓가가 뭔 줄 아느냐?”
“안 궁금하다. 새끼야.”
시운을 태운 검은매는 날개를 강하게 휘저어 단숨에 루시퍼를 향해 파고들었다.
카카카카캉!
검과 검이 상공에서 수백 번이나 솟구쳐 서로의 몸을 긋고 베었다.
카앙!
루시퍼의 검이 시운에게로 떨어졌다. 그 검을 아클레우스 소드로 막아낸 시운은 느꼈다.
‘이 놈 힘이 점점 약해지는군.’
루시퍼는 용케 입으로 검을 악 문 채 시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을 검으로 튕겨내고.
‘뇌절 찌르기.’
아클레우스 소드에 전격이 튀어나오며 루시퍼의 복부를 수십 번이나 빠르게 찔러댔다.
콱콱콱콱콱!!
“커헉.”
뒤로 밀려낸 루시퍼는 열린 배를 날개로 덮어 튀어나오는 내장을 고정시켰다.
그때 시운은 남은 스탯을 근력과 민첩성에 투자했다.
그 결과 근육 뿐만 아니라, 이제는 뼈의 밀도가 강해지는 느낌과 뼈의 가동성이 더욱 유연해지는 감각이 전해졌다.
검은매의 등을 발로 밟고 도약한 시운의 검이 번쩍였다.
“…….”
루시퍼의 한쪽 날개가 검에 잘려나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루시퍼는 남은 날개를 배에서 떼어내어 펼쳤으나 피가 섞인 내장이 흘러나왔다.
“우우욱…!”
루시퍼가 흘린 신음에서 고통이 전해졌다.
루시퍼는 결국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시운은 검은매의 등에 엉덩이를 걸친 채 추락하는 루시퍼를 향해 아시룡의 활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퉤엣!
화살이 추락하는 루시퍼의 인영을 쫓아 미사일같이 날아갔다.
시운은 그 순간 눈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화살의 형태가 눈으로 섬세히 보였다.
추격하는 화살은 루시퍼의 등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순간 루시퍼가 한쪽 날개로 궤도를 틀어 화살을 흘려낸다.
‘어림도 없지. 윈드니스.’
쏟아낸 바람은 화살의 궤도를 강제로 틀어서 루시퍼의 등에 꽂히게 만들었다.
등뼈에 화살이 박힌 루시퍼는 분하다는 듯 악성을 지르며 추락한다.
‘블레이션.’
그러자 루시퍼의 등뼈가 박힌 화살의 촉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루시퍼는 몸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에 토사물을 토해내며 떨어져갔다.
루시퍼의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루시퍼는 지상 밑바닥으로 온전히 추락한다.
“기억해라. 언젠가는 이 수모를 천 배로 되갚아줄 날이 네게 올 것이다!!!!!!!!!”
쿠우우우웅!
루시퍼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히면서 거대한 연기가 일었다.
* *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시운은 신전 모든 곳을 뒤져 루시퍼의 사체를 찾았지만 그의 사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놈은 악신이다. 반드시 복수하려고 또 나타날 것이다.’
그럼 그때 제대로 죽여주면 그만이다.
기분이 싸고 뒤를 안 닦은 기분이다.
띠리링!
[악신의 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악신의 상자?”
방금 획득했다는 그 알람음은 지금껏 들려왔던 알람음 중에 가장 크고 선명했다.
그만큼 보상은 값질테지.
그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신아영이 장준을 부축한 채로 다가오고 있다.
“생각보다 강한데요? 당신.”
“왜 도와주지 않았죠?”
시운이 물었다. 사실 아영이 도와주려고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기여도에 따른 보상은 챙겨야 했고 이 던전의 보상은 중요했으니까.
“당신의 전투방식이 궁금해서 지켜봤어요. 질 것 같지는 않아서 끼어들진 않았고.”
시운의 시선이 신아영의 검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검은 라운드 때 보던 검과는 달랐다.
“덕분에 살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너무 고맙네요.”
장준이 미안하다는 듯 말해왔다.
“그보다 아저씨 얼굴이 점점 돌아오는 것 같은데요?”
시운의 말에 장준은 씨익 웃었다.
루시퍼의 힘이 사라진 이유일 터.
“시운 씨.”
“네.”
“고맙습니다.”
장준은 입술을 부루르 떨며 시운에게 절을 했다. 시운은 손사레를 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왜 이러세요? 던전에서 동료를 구하는 건 당연한 거죠.”
시운의 그 말을 듣자 장준은 눈물을 흘렸다. 신아영은 무표정으로 장준의 등을 몇 번 쓸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신아영도 완전히 무감정한 인간은 아님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해요.”
신아영은 장준을 부축하며 출구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걸어갔다.
그때 멀어져가던 신아영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아, 그리고 이 던전 후 인터뷰 때 기자들이 당신에 대해서 물을 거예요. 네크로맨서라고 할게요. 자세히 말하기는 귀찮으니까.”
“네크로맨서요?”
“당신 전투방식을 네크로맨서라고 기자들에게 말한다구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 던전을 공략했으니 기자들의 인터뷰가 아영에게 쏟아질 것이고, 시운에 대해 물을 것이다.
말을 섞는 것을 귀찮아하는 신아영은 그럼 네크로맨서라고 말할 것이고.
‘이제부터 난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겠지.’
그게 바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시운의 칭호일 터다.
장준과 신아영은 사라졌다. 역시 신아영 쟤는 사람들과 말을 별로 안 섞는 타입인 듯 하다.
시운은 다시 카이칸의 사체 앞에 도착했다.
‘역시.’
시운이 빙긋 웃었다.
재림한 카이칸은 시운의 앞으로 다가와 앞발을 굽혀 몸을 숙였다. 거대하고 단단한 모습이 대인전에서 딱 탱커로 쓰기 적합했다.
“그래… 너의 이름은.”
새롭게 재림한 카이칸의 이름을 짓는 순간이다.
카이칸의 눈빛은 기대감에 찼는지 순간 빛났다.
“그래. 너의 앞으로의 이름은…….”
쿠우!
카이칸이 콧김을 쏟으며 그 이름을 기다린다는 듯 반응했다.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네 이름은.”
카이칸은 뒤이어 들려올 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근데 시운의 말이 들려오지 않자 카이칸이 고개를 들었다.
시운은 카이칸의 눈빛을 보자 부담이 들었다.
쿠우!
얼른 이름을 말해달라는 듯 카이칸이 반응했다.
“네 이름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뭐라고 정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이런 순간에 주인공이 신명나게 이름을 탁 지어주던데.
“정했다. 네 이름은 이제…….”
쿠우우우!
기다리기 지친다는지 이젠 카이칸이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그냥 카이칸. 카이칸이라고 부를게.”
“……….”
새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냥 있는 이름 그대로를 불렀다.
카이칸은 시운을 그저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 시운이 멋쩍게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작명센스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