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9화
거신의 비밀
“하하하.”
곽대익이 웃었다.
“제정신인가?”
그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싸늘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결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 근데 헬기를 준비해서 저 중국까지 자네가 날아가서 그 거신을 격파시킨다? 지금 그 말이잖나.”
협회장의 권력으로 헬기 한 대를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허나 중국의 모든 입출국이 막혀있는 이 상황에 헬기를 그곳까지 투입시키는 것은 국가간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리의 주적인 북한을 거쳐야 중국을 갈 수 있는 거 모르나?”
헬기를 타고 북한의 상공을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비행기도 아니고 헬기를 북한의 영토를 넘어 중국에 가게 한다?
북한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방향을 우회해서 갈 수 있겠지 허나 그건 어려운 일이야.”
대익은 안 된다는 듯 덧붙였다.
“우리나라로 올 겁니다.”
“괴신이 우리나라로 온다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확신하는가.”
대익의 물음에 시운은 레이디스의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운은 레이디스 자서전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야 말았다.
그 구절이 뇌리로 스쳐갔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현계 한나라의 최고였던 맹장과 고려라는 작은 나라의 최고의 무장 그 둘의 전력을 비교할 것이고 우위인 쪽의 혼을 불러들일 것이다.
그게 마지막 숨겨있던 구절이었다. 그것을 대익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낡은 책에 나온 말에 의하면 죽은지 몇백 년도 넘은 두 인물을 비교하고 둘 중 더 강한 놈을 살려낸다?”
“그렇습니다.”
“그딴 낡은 책에 나온 개소리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건 단순히 낡은 책이 아닙니다.”
“그래 맞다 치자. 근데 그게 중국에서 설치고 있는 거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시가에서 뿜어지는 연기를 얼굴로 덮은 대익을 똑바로 바라본 시운이 답했다.
“그 거신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만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감염된 확진자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지요?”
“…설마 그 거신이?”
“그 거신이 바로 그것을 찾는 그릇인 듯 합니다.”
대익은 시운의 이야기를 마치 판타지 영화 줄거리를 들은 느낌인 양 퉁명스런 반응이었다.
“한나라 최고의 맹장이라면….”
“항우겠지요.”
“하하하하.”
곽대익이 웃었다.
그러나 시운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럼 고려의 최고의 무장은?”
“척준경 일겁니다.”
척준경?
그 호를 듣자 대익의 눈에 핏줄이 섰다.
척준경.
고려시대 제일의 검.
그의 일화는 단신으로 성을 함락시키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검 한자루로 수백이 넘는 적들을 쓸어버리는 둥 신화 같은 일화를 담고 있는 고려의 무장이다.
“그 이야기들이 맞다 치자. 관우와 여포, 장비 뭐 그런 자식들이 많은데 왜 하필 작은 대한민국의 척준경이란 자의 전력도 살핀단 말인가.”
터무니 없는 소설이라는 듯 물었다.
“중국의 역사에는 과장이 많습니다. 허나 우리나라 고려의 역사에 표기된 척준경이란 인물의 일화들을 살펴보면 최고의 무력을 지닌 자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고요.”
곽대익 또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삼국지에 실린 인물들보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항우가 무력은 더 강할 것이란 것은.
허나 그들은 죽은 지 너무도 오래된 인물들이고 카인이란 자가 굳이 이계의 괴물도 아닌 죽은지 오래 된 인간을 살릴 필요가 있을까.
그 의문을 깨주 듯한 시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계의 인간들은 고유 차크라를 가지고 있고, 이계로 넘어가면 그 차크라는 수십 배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정하면 말이 아예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운은 추론이지만 자신의 가설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럼 자네의 말은 저 거신이 우리나라에 넘어오게 되면 그 즉시 헬기를 타고 날아가 그 괴신의 목을 따버린다 이 말이 되는군?”
“그렇습니다.”
“무슨 수로?”
군대도 어찌하지 못하는 괴신이다. 이시운이 S급 헌터라고 해도 그건 이계에서의 이야기일 뿐.
현계에서는 일반인에 비해 아주 강한 인간정도에 불과하다.
그 순간.
“뭐야?”
대익이 놀라 시가를 떨어뜨렸다.
여섯 개의 눈이 대익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이, 이것들은 뭐야?”
대익의 시선이 시운의 뒤로 향했다. 무장을 한 인간 셋이 대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불러낸 자들입니다.”
“뭐라고?”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많이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어쩔 수 없이 능력을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 *
“이시운은 평범한 듯 하지만 항상 남들과는 달랐어요.”
윤성혜가 곽대익에게 말했다.
대익은 이시운을 담당했던 팀장 윤성혜에게 몇 가지 더 물었고 그녀는 자기가 아는 한에서 모두 대답했다.
“딱히 수상한 점은 없었고?”
“수상한 점이요?”
성혜가 갸웃했다.
“아닐세. 그만 나가보게.”
대익은 시가를 입에 물었다.
윤성혜도 이시운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그럼..”
“맞아. 이시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려고 부른거야.”
“나쁜 친구는 결코 아니예요.”
성혜는 시운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근데 믿을 수 없는 것을 봐버려서 말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성혜도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 게 있네. 그만 나가보게.”
대익은 굳이 그 사실을 윤성혜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서 그녀를 보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뒤에 서서 조용히 듣고 있던 맹인 곽원이었다.
웃긴 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던 곽원을 윤성혜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간 것이다.
“내가 봤다니까.”
“맹인 클래스 중에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아니, 전체 클래스를 통 틀어서 있을 수 없는 능력입니다.”
곽원은 확신하듯 말했다.
“눈속임 같은 거라도 했다 이 말인가?”
“트릭일 겁니다.”
대익은 고개를 저었다.
이 바닥에서 몇십 년을 굴러먹었는데 그 정도 트릭 하나 캐치하지 못할까.
이시운은 마술사가 아니다. 그리고 마술사라고 해도 속을 자신도 아니고.
“몇 달 전만 해도 이시운은 자네보다 열 수는 아래였어.”
분명 그랬다. 그림자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집어넣을 때만 해도 이시운은 곽원과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근데 고작 몇 달이 지났는데 걔는 자네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 되었다고.”
그 말에 눈을 감고 있던 곽원의 낯빛이 묘해졌다.
아마 그 이상이 되었다는 말이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리라.
“자네 같으면 날 상대로 트릭을 쓰겠나?”
곽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의미를 잘 아는 듯 했다.
대익은 아까 이시운의 뒤편에서 자신을 훑던 그 남자들을 떠올렸다.
분명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사냥을 잘하는 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범새끼였군.’
“제가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대익은 곽원의 말을 잘랐다.
곽원을 이용해서 그 능력을 판별하게 만든다면 이시운이 자신을 테스트한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에게 입이 싼 협회장이란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는 없다.
이미 확인했다.
‘녀석의 능력은 진짜야.’
그러던 중 기막힌 생각이 났다는 듯 대익이 눈을 번쩍 떴다.
“아주 놀라운 묘안이 떠올랐다네.”
그리고 대익은 말을 이었다.
“군사최대강대국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군력에서 앞선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게 세상에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 *
청와대 대통령실.
협회장 직통의 전화를 받은 대통령이 곽대익을 직접 불러들였다.
대통령을 지키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의 낯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S급 헌터 조대호다.’
‘헌터들 기가 장난이 아니네.’
‘설마 허튼 짓은 하지 않겠지.’
그들은 최정예 경호원들이었지만 곽대익의 옆에 있는 조대호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 옆으로도 A급 헌터들 다섯 명이 곽대익을 지키고 있다.
최상급 헌터들의 힘은 현계에서도 세계격투기 챔피언급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협회장 곽대익은 대통령과 직접 면담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기에 대통령을 보아도 크게 주눅이 들지 않는 듯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님.”
“음….”
대통령은 난감하다는 듯한 낯빛이었다.
“일단 지켜봐야겠지요. 그것이 우리나라로 당도하게 된다면 그때…”
“그때는 늦습니다. 미리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말을 잘라버린 곽대익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철민과 경호실장 윤정수가 곽대익을 노려봤다.
그때 조대호가 철민과 정수를 묵묵히 바라봤다. 대호의 시선이 철민과 정수의 시선과 만나 팽팽하게 맞섰다.
‘감히 대통령님의 말을 잘라?’
‘S급 헌터라고 눈에 힘 주는 거 봐라.’
그러나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철민과 정수는 시선을 거뒀다.
그에 헌터 조대호도 시선을 치웠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겁니다.”
대통령이 힘없이 말했다. 저 거신이 우리나라에 당도할 것이니 비상령을 미리 내려둔다면 전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 잠여했다.
“미리 불안에 떠는 게 국민 대부분을 잃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온다는 확신도 없잖아요?”
비서실장 김철민이 껴들었다.
곽대익은 철민의 말을 무시하고 대통령만 바라봤다.
“대통령님. 이건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기회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강한 군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 말입니다.”
그 말에 청와대 측 사람들의 낯빛이 경악에 물들었다.
꾸준히 군강대국 1위란 타이틀을 가진 미국보다 대한민국이 더 강한 군력을 갖추게 된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을!”
철민이 힘 주어 말했다.
한국과 우호관계인 미국에게 반감을 사면 벌어질 일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비서실장님. 대통령님과 제가 말씀 중이잖습니까. 가만히 계시지요.”
대익의 말에 철민의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순간 경호원들이 얼굴이 경직됐고, 헌터들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대치 상황에서의 묘한 정적이 흘렀다.
한편 대통령은 납득이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랬다가 그 거신이 우리나라에 오지 않으면요?”
긴급 비상령을 내린다면 국민들이 불안에 떨 것이고, 경제는 순간 혼란스워질 것이다.
그렇게 했다가 거신이 대한민국에 오지 않게 되면 욕을 얻어먹는 것은 대통령 자신과 정부였다.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을 지겠단 말이죠?”
대통령의 물음에 곽대익이 눈으로 살기를 흘리며 답했다.
“그 말을 최초로 뱉은 헌터의 목숨으로 책임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