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00화 (200/278)

제 200화

세정과의 맥주 한잔

이시운은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몸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계가 아니라 현계의 싸움이다.’

중국이란 대륙을 뒤집어 놓고 핵을 맞았는데도 더 진화한 괴물.

그 괴물을 이계도 아닌 현계에서 맞서야 한다.

어쩌면 지금 닥친 고비는 3회차를 통틀어 최대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후우우.

시린 겨울날의 한파 속에서 불어낸 그의 입에서 퍼런 입김이 흘러나왔다.

띠링.

문자 알람음이 들려 주머니속에서 핸드폰을 열어봤다.

-대통령에게 이야기는 잘 해놨다.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거야. 준비하도록.

협회장의 문자였다.

그의 문자 속에 존재한 ‘준비’ 라는 단어를 보자 느껴졌던 그 긴장감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타타타탁!

운동장 한 바퀴를 뛰었다.

그리고 두 바퀴.

세 바퀴.

머리칼이 휘날리고, 눈썹이 춤추어 휘날리도록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일곱 바퀴째.

전혀 지치지 않는다.

본래의 몸이였더라면 운동장 두 바퀴 뛰면 지쳐서 헥헥 거렸을 텐데 분명 헌터능력이 작용하고 있다.

[블랙고스트 세트를 착용합니다.]

착용한 블랙고스트 슈트를 가리기 위해 두터운 파카를 위에 둘렀다.

타타타타타탁!

시운의 움직이는 다리에 더욱 가속이 붙는다.

민첩성과 체력을 극대화 시켜주는 블랙고스트 세트를 착용하자 시운의 몸은 날아갈 듯 했다.

열한 바퀴.

열두 바퀴.

그리고 이십 바퀴째.

시운의 신발에 휘날리는 흙먼지가 운동장을 매웠다.

‘지치지 않아.’

철인 그 이상의 체력이었다.

현계에서의 싸움이 예정되어 있다. 헌터능력이 작용한다고 하더라도 몸을 현계에 맞게 적응 시켜놔야 그 거신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를 비집어 씹고 더욱 빠르게 뛰었다.

이시운의 발이 지면을 밟고 튀어나가는 소리가 마치 총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저 사람 뭐야?”

지켜보던 남성이 그 광경을 보고 놀라워 했다.

그도 운동을 좀 했는지 체격이 다부졌다.

그 남성의 친구 또한 운동장을 미친 듯이 휘가르는 이시운을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 사람... 사람 맞아?”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몇 초마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버린다.

속도로 따지면 좀 과장 좀 보태면 차와 같았다.

“미친 거 아니야? 귀신은 아니지?”

“야, 야.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누구?”

“이번에 S급 헌터가 됐다는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남성은 핸드폰으로 웹서핑을 하고서 이름을 떠올렸는지.

“아, 이시운. 이시운이라는 사람!”

“…헌터였어? 어쩐지.”

근데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인간이 질주하는 속도가 저게 말이 되나.

두 남성은 귀신을 보듯 시운을 신기하게 관찰했다. 한 남성이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다.

“이거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수 대박 나겠다.”

순간.

그 남성 둘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쳐 몸이 경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시운이 그들을 쳐다보는 그 눈빛은 귀신을 본 것보다 더욱 소름끼쳤으니까.

“야, 야. 꺼. 핸드폰 닫으라고, 병신아.”

“뭐 저렇게 무섭게 쳐다보냐.”

아무래도 시운의 살기 스탯이 그대로 적용한 탓이리라.

“저기요.”

다가온 시운에 두 남성의 몸은 얼어붙고 토끼눈이 되었다.

“예, 예?”

“죄송한데 저를 찍으신 것 같은데 지워주시죠.”

“아, 아. 죄송합니다. 헌터님 팬이라서 주제 모르게….”

“승찬아. 그러니까 내가 찍지 말랬잖아.”

남성의 친구가 괜히 남성을 나무란다.

이시운은 그가 핸드폰 영상을 삭제한 것을 확인하고서는 그대로 사라졌다.

가슴을 쓸어내린 두 남성은 식겁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나 저런 사람 처음 봐….”

“나도 마찬가지다.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였어. S급 헌터들은 다 저런가.”

* *

서울의 유명 킥복싱장.

수많은 관원들이 숨죽이며 링에 눈을 두고 있다.

링에 올라선 이시운과 킥복싱 미들급 세계챔피온 출신 마기영이 스파링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타앙! 탕!

마기영은 방심하지 않고 이시운에게 회심의 잽과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그러나 시운의 가드에 막혔다.

마기영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S급 헌터란 건 알겠는데 날 이기지는 못할걸.’

헌터는 강하다.

그러나 마기영은 킥복싱만 수십 년을 갈고 닦았고, F1 미들급 세계우승자 출신이다.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스슥.

시운이 사이드 스탭을 밟고 옆으로 빠졌다. 그것을 본 기영은 그대로 미들킥으로 시운의 복부를 온 힘을 다해 찼다.

퍼억!

기영은 방금 그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쓰러질테지.’

그러나.

“좀 더 세게 차주세요.”

“…?”

기영은 아무렇지 않은 채 말해오는 시운을 휘둥그래진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 그 감각은 제대로였는데.

고수는 타격의 감각을 느끼면 알 수 있다. 상대가 넉다운을 당할건지 아닌지를.

방금 그 회심의 미들킥은 전 입식계의 최강 후지타를 쓰러뜨릴 때 만큼 정확하게 들어갔거늘.

한편 이시운은 여유로웠다.

‘힘 조절을 잘 해야겠다.’

시운이 있는 힘껏 때렸다가는 마기영의 머리에 케찹이 흐르는 상황이 온다.

최대한.

부웅 붕!

마기영의 잽과 스트레이트 그리고 훅의 연타가 들어왔다.

모두 가드로 막고, 공격을 흘려낸 이시운의 발이 마기영의 허벅지에 꽂혔다.

“크아아아악!!!”

이시운보다 머리 하나는 큰 마기영이 괴성을 내지르며 체육관에 쓰러졌다.

“아, 힘 조절을 잘 못했네. 괜찮아요?”

시운이 마기영에게 다가갔다.

순간 조용하던 관원들은 숨소리 조차 내지 않고 그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마기영 선수가 로우킥 한방에 다운이 됐다고?’

‘헌터가 저렇게 강해?’

‘미친... 저 정도면 헌터를 떠나서 주먹만으로 세계최강이잖아.’

마기영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시운이 내미는 손을 거절하고 억지로 일어났다.

‘...걸을 수가 없다.’

기영은 결국 시운에게 포기 의사를 밝혔고 시운은 그에게 스파링을 응해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체육관을 나왔다.

“후우.”

현계에서의 운동능력을 적응 중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탈일반인급인 챔피온 조차 발차기 한방으로 눌렀음에도 성취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주차한 페라리로 가려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는 것이다.

뭔가 연예인이 된 이 기분이 이제는 그렇게 신기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

페라리에 탑승한 그 찰나였다.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의 성공 보상이 도착하였습니다.]

‘뭐? 이게 이 보상이 왜 지금 주어지는데?’

보상을 확인해 보니.

[스킬 가속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속?

시운은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스킬 설명: 5분 동안 속도를 40% 상승시킨다. 재사용 대기시간: 7시간.]

‘이거 엄청난데?’

민첩을 극대화 시켜주는 블랙고스트 세트에 이 스킬까지 사용한다면 가히 초고도 민첩형 헌터의 몸놀림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근데 왜 보상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도착한 거지?’

그게 의아했다.

혹시 빨간머리 그 녀석의 힘이 미약해진 건가?

이제 이터널 라이프의 남은 퀘스트는 단 한 개.

그 퀘스틀 수행하면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를 모두 완료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막대한 보상? 그게 아니라면….’

근데 호흡이 일정하다.

방금 체육관에서 운동한 양은.

샌드백 삼십 분 두드리기.

줄넘기 한 시간.

그리고 챔피온 출신과의 스파링이다.

물론 힘 조절을 못하고 샌드백을 두드려서 샌드백 하나를 완전히 박살낸 바람에 그 값을 물어줘야 했다.

그런데도.

‘숨이 하나도 차질 않는다.’

지금 현계에서도 이계처럼 헌터의 능력이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언제쯤이였지?’

이 능력이 현계에서도 통한 그 정확한 순간이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던 그 시기쯤이였을까.

설마 이 능력이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와 연관이 있는걸까?

머리에 드는 상념을 밀어내고 한강둔치에 도착했다.

많은 생각과 걱정으로 뇌는 피로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선 휴식이 필수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맥주 한캔을 따서 한강을 바라보며 마셨다.

“크으. 죽이네.”

차를 끌고 왔지만, 맥주 정도는 금방 깬다. 아니면 대리기사를 부르면 그만이고.

오랜만에 힐링을 하는 기분으로 야경의 한강 물결이 휘는 소리를 감상하며 맥주를 삼키고 또 삼켰다.

그때.

그의 뇌리로 박태석이 떠올랐다.

시운은 본래 태석이 공략해야 할 던전을 가로챘고, 미래를 바꿨다.

시운의 1회차와 2회차 인생에서 박태석은 타임리스 던전을 공략하고 바로 이틀 뒤 카오스라는 길드를 건설한다.

‘그리고 사신길드의 S급 이환을 길드로 빼돌려 데리고 왔지.’

태석을 따르는 A급 헌터들을 뭉탱이로 데려오고 길드마스터 박태석은 그 길드의 규모를 단숨에 그 어떤 길드보다 크게 키워냈다.

‘그리고는 뭐, 지가 다 해먹고.’

그렇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3회차에서 박태석은 아직 그런 조짐이 없다. 왜일까?

‘내가 관여함으로 인해 점점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닐까.’

수십 가지 생각이 몰아닥친다.

뇌리가 생각에 의해 끊어질 것 같아서 망념을 모두 떨쳐내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드르륵.

그때 폰 진동이 울렸다.

시운은 허허- 입김을 뿜어내며 핸드폰을 귀에 댔다.

-어디야?

천세정이다. 오랜만에도 듣는 목소리다.

“나 여기 한강둔치야. 맥주 한캔 때리고 있다.”

-그건 뭔 감성이냐? 안 좋은 일 있어?

“그런 건 아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세정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뭔가 연애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고 심장이 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갈게.

“됐다. 오지마.”

내 입에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세정이를 보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그냥 혼자 쉬고 싶다.

그러고 한 삼십 분 지났나.

뒤에서 구두굽이 지면에 일정히 박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 걸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왔구나.

뒤를 돌아봤을 때 검은 코트를 잘 여맨 세정이 다가와 시운의 어깨에 손을 걸친다.

“여기서 혼자 무슨 주책이냐?”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과 가까워지자 그녀의 특유 향수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달콤하면서도 살짝 진한 이 냄새는 언제 맡아도 묘하다.

“나도 하나 줘보든가. 이거 설마 테라냐? 으이그.”

“아, 그거 딱 하나 남은 거라고.”

시운은 투정을 부렸지만 세정은 맥주를 냉큼 뺏어서 맥주를 한모금 들이킨다.

“크.”

그녀가 어깨를 살짝 위로 올리며 예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오랜만에 맥주 먹으니까 맛있다, 야.”

달랑달랑.

세정의 반대쪽 손에서 검은봉지가 달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그건.”

“너 또 안주 없이 먹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누나가 안주도 준비해왔지.”

그녀는 봉지에서 편의점 오징어와 맥주를 꺼냈다.

그리고 맥주캔 하나를 따서 시운에게 내밀었다.

“맥주는 카스지. 인정?”

그녀가 싱긋 웃으며 물어왔다.

시운은 그녀가 건넨 맥주를 건네 받으며 씩 웃었다.

정말.

생긴 건 와인만 먹게 생겨가지고.

툭.

둘은 맥주를 건배하고 한강을 눈에 두면서 고개를 젖히며 맥주의 맛을 음미했다.

“걔는 잘하고 있어?”

시운이 물었다. 걔는 바로 헤라클레스를 의미한다. 혹시나 걱정도 됐고, 녀석이 사고는 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사람 은근 착하고 순수하더라. 아무튼 덕분에 우리 회사의 큰걱정거리를 줄였어. 고마워.”

“고맙단 말은 이제 됐다.”

멋쩍어하는 시운을 보던 세정의 눈빛은 이내 묘해졌다.

“근데 시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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