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01화 (201/278)

제 201화

세정과 바에 가서 춘식을 만나다

낮아진 세정의 음성에 시운의 표정이 멈췄다. 이시운의 눈은 그대로 멈춰진 세정이의 입술 그대로에 머물러 멈춰있다.

“보고… 싶었어.”

“나도.”

세정이 말했고 시운이 답했다.

그러자 세정은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내리 깔더니 맥주캔만 손으로 톡톡 두드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예전이라면 시운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하면 그 손을 탁 치우며 뭐하는 거냐? 고 틱틱 거렸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운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입을 앙 다물고 있을 뿐.

이시운은 그녀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

내게로 고개가 돌아간 채, 놀란 그녀의 커진 눈이 너무나도 귀엽다.

쪼옥.

그녀의 입술에 입을 살짝 붙였다가 떼주었다.

촉촉한 그 감촉.

그리고 연한 화장품 냄새가 입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귀엽네?”

세정이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시운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고개를 꺾었다.

“하아….”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시운의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젠 세정이가 먼저 스킨십도 하는구나.’

잠시 눈을 떠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키스에 심취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냥 한폭의 그림 같았다.

“…야.”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말한다.

“이 다물고 있을거야?”

아차차.

그녀의 물음에 난 자연스레 이를 벌려 그녀의 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 혀가 그녀의 허와 얽혔다.

섥히던 혓길의 감촉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녀의 은은한 샴푸향이 느껴졌다.

온 몸이 찌릿거리고 모든 긴장들이 풀리는 기분이다.

* *

난 세정이와 함께 꼭 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바(BAR).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 강춘식이 머리를 식히러 오는 그 바 말이다.

나는 세정과 손을 잡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어?”

저번에 봤던 바텐더 슬기가 날 알아보더니 인사를 건넨다.

그런 그녀의 눈이 스르르 세정에게 향한다.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쁜건지 입이 절로 벌어지는게 내 눈으로 보인다.

“어서오세요.”

바텐더 슬기 옆으로 처음 보는 바텐더가 인사했다.

다소 딱딱하고 성의없는 투로 느껴졌지만 별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나와 세정이는 자리에 앉았다.

세정이가 바 안을 오묘조묘 살펴봤다.

“나 이런 데는 처음 와봐. 와인 바나 펍은 가봤는데…….”

세정은 신기하다는 듯 바텐더 둘을 훑고 주위를 훑었다.

살짝 폐쇄적인 느낌의 조명이 내려앉은 바 안에서 비치는 세정의 얼굴은 그저 여신 그 자체였다.

바텐더들도 한 미모 하지만.

세정이의 얼굴을 보다가 바텐더들의 얼굴을 보면

현실감이 확 드는 느낌이랄까.

“헌터님…… 혹시?”

슬기가 눈을 세정에게 굴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것을 난 고개를 저으며 눈치를 줬다.

내가 맨날 여기다가 세정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을 세정이가 알게 되면 정말 개쪽이다.

“아, 아. 아! 풉….”

슬기가 웃었다.

괜히 부끄럽다. 슬기가 자연스레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올려보인다.

아마.

드디어 그 여자 분과 잘 돼서 축하한다. 뭐 그런 의미겠지.

“으음…. 칵테일이 꽤나 많네?”

세정이 메뉴판을 보고 있다.

난 자연스레 세정의 허리춤을 감으며 고개를 세정에게 가져다 대고 메뉴판을 같이 가져다 봤다.

“두 분 잘 어울리시네요?”

슬기가 오묘하게 말 끝을 올리며 말했다.

“난……”

“마티니 시킬 거잖아?”

“어쭈. 어떻게 알았대?”

“내가 널 모르겠어?”

웃기게도 난 세정이 어떤 칵테일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2회차 인생에서 그녀에게 차이기 바로 전날에 그녀와 칵테일 바를 갔고.

그녀는 마티니를 최애 칵테일로 꼽았었으니까.

그때 생각하면 암울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니니 잊어버리고.

“마티니 두 잔 주세요.”

나도 마티니를 시켰다.

“헌터님. 뉴스에서 헌터님 봤어요. 이제 제가 말을 극존칭으로 높여야 할 것 같은데요?”

뉴스에서 봤다는 것은 S급 헌터가 됐다는 그 이야기일 거다.

“에이, 뭐 그런게 어딨어요? 다 똑같은 사람인데 편하게 해요.”

“그럴까?”

“그건 갑자기 너무 편하게 하는 거고요.”

나와 바텐더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옆으로 돌아보니 날 째려보던 세정이 고개를 휙 돌리고 앞을 바라봤다.

아. 설마 질투한 건가?

“여자친구 분이 정말 상당히 미인이시네요.”

슬기가 말하자 세정은 표정이 누그러져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어찌보면 단순하다.

이쁘다는 칭찬에 안 웃는 여자 못 본 것 같다.

한편 슬기 옆에서 멀뚱히 시운을 바라보던 바텐더는 아까 인사도 퉁명스레 했던 바텐더다.

“저 분은 일한지 얼마 안 된 분인가요?”

“아, 얘요?”

내 물음에 슬기가 옆을 휙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얘라는 걸 보니 슬기보다 어리다는건가?

“네. 일한지 3일 됐어요.”

옆에 있던 바텐더가 말한다. 좀 말투가 딱딱하다랄까. 키는 156센티 정도로 좀 작아 보이고.

차가운 인상에 얼굴은 봐줄만 하다.

근데 표정이 없다.

마침.

마티니 두 잔이 나왔고 나와 세정은 마티니를 음미했다.

“헌터님. 저…….”

“먹고 싶은 칵테일 하나 먹어요.”

“헤헷!”

슬기가 내 말에 웃는다.

사실 토킹바에서는 바텐더에게 한잔 정도 시켜주는 것이 룰이라면 룰이다.

쟤네도 그걸로 인센티브가 떨어지니까.

“전 키스 오브 나이트 먹을래요.”

근데 옆에 있던 신입 바텐더가 퉁명스레 자기도 먹고 싶단다.

난 그것도 먹으라고 했다.

나와 세정, 그리고 슬기는 셋이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금방 친해졌다.

세정은 날 ‘여기에 여자하고 히히덕 거리려고 날 데리러 왔냐?’ 는 표정에서.

어느새 슬기에게 언니라고 부르면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중국이 진짜 난리래요. 난리.”

슬기가 핸드폰 액정을 손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도 지금 중국의 문제는 화두에 떠오른 상태였다.

중국을 괴멸시키고 있는 그 괴신.

그 괴물을 처리해야 할 사람이 바로 나다.

순간 손아귀가 꽉 쥐어졌다.

그때.

뒤에서 반가운 육성이 들려왔다.

“독자님?”

강춘식이었다.

춘식이 오자 슬기의 얼굴이 환해졌고 나도 환해졌다.

난 그에게 인사를 했다.

내 눈빛을 읽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총알보다 빠른 눈치의 덕이였을까.

“오오! 오 마이가앗!”

강춘식은 세정을 보더니 내게 감탄사를 뿜었다.

“독자님. 아주 잘했어. 내가 다 뿌듯한데?”

세정이 내게 아는 사람이냐는 눈빛을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셔.”

“…작가님? 오오.”

세정이 춘식에게 인사를 하자 춘식이 오바스럽게 인사를 한다.

“제 독자님 여자친구분. 지금 이 12시 34분을 잘 기억해요.”

“…네?”

“제가 당신을 보고 올해 가장 예쁜 여자를 봐서 순간 설렜던 시간이자 순간이니까.”

“으윽….”

세정은 아재개그에 얼굴을 묘하게 찡그렸고 슬기는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러면서 은연히 세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여자친구니까 혹시나 눈독은 들이지 마시란 의미로. 물론 그러진 않을 테지만.

“누구보다 참 기뻐. 독자님! 내가 말은 아낄게. 근데 정말 뿌듯한 건 나인 거 알죠?”

“덕분에요.”

춘식은 박수를 짝짝 쳤다!

한 번쯤 강춘식 작가에게 세정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덕분에 난 세정이와 이 정도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니까.

“둘이 사귄 지는 얼마나 됐어요?”

강춘식이 내가 아닌 세정에게 물었다.

세정은 살짝 당황한 얼굴을 내비췄다.

“설마.. 명확히 사귀는지 아닌지도 말하기 애매한 그런 사이란 건 아니겠죠?”

춘식이 귀신같이 콕 찝어 말하자 세정은 고개를 저었다.

“한..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렇구만. 한 달.”

춘식이 나를 슬쩍 보더니 피식 웃는다. 얄밉지만 밉지 않게 넉살 좋게 말이다.

“근데 무슨 소설 쓰세요?”

세정이 춘식에게 물었다.

“아. 오늘은 소설 이야기 안 하고 싶어요. 머리 식히러 온 거니까 다른 이야기 하면서 재밌게 즐기다 가면 되죠! 하하하하.”

그의 유쾌스런 웃음에 세정이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은 이상하게 사람의 웃음을 끌어내는 매력이 있다.

그때 바텐더 슬기가 강춘식을 안 좋은 눈으로 째려본다.

아마 저 바텐더 슬기도 춘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라도 강춘식 작가 같은 매력적인 남자를 매번 마주친다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때였다.

“바텐더님은 이상형이 뭐에요?”

옆 테이블의 남자가 신입 바텐더에게 물었다.

“저는 키가 큰 남자요. 일단 키가 커야 해요.”

뭐. 그녀는 그렇게 답했다.

그때 강춘식이 테이블을 탁! 쳤다.

“저기, 저기, 저기요! 바텐더님 이름이 뭐지?”

“저요? 아라예요.”

“설마 성이 박 씨는 아니겠죠?”

“…네?”

무리수를 던진 강춘식은 민망했는지 혼자 껄껄 웃었다.

난 속으로 존나 웃었고.

세정은 강춘식의 입담이 재밌다는 듯 턱을 괴고 강춘식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했다.

저 인간은 참 말을 잘하고 재밌다.

“방금 이상형이 키 큰 남자라고 했는데. 얼마나 키 큰 남자가 좋은 거예요?”

“그래도 최소한 180?”

바텐더 아라의 말에 춘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와 세정은 서로 손을 잡고 춘식이 말하는 것을 같이 지켜봤다.

“허허. 최소 180이라….”

춘식이 말을 이었다.

“저기.. 그 왜요?”

“왜라뇨. 제 취향이죠.”

이상하게 아라라는 바텐더는 틱틱거리며 답했다.

성격 자체가 그냥 저런가 보다.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예요?”

“제가 작아서 키가 큰 남자가 좋아요.”

아라의 말에 강춘식이 조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셔츠 단추 하나를 푸르고 아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살짝 이기적인 거 아닌가?”

“왜요?”

“자기가 작으니 키 큰 남자가 좋다는 건 자기가 못생겼으니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겠다는 것과 같잖아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너무나 맞는 말이였지만 아라의 싸해진 표정에 나와 세정은 눈치를 봤고 슬기도 슬쩍 춘식에게 눈치를 줬다.

근데 사이다긴 했다.

뭐 키 큰 남자 좋아하는 건 자기 마음이긴 한데.

춘식의 말도 틀리지 않다.

“아니, 뭐……. 그건 제 맘이죠.”

“그렇지, 그렇지. 뭐, 그럴수도 있지.”

춘식은 설렁설렁 답해줬다.

그때 옆 테이블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키 187인데 그럼 내가 그쪽한테 들이대도 되는 거네요?”

일어선 남자는 확실히 키가 컸다.

그의 말에 아라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때 춘식이 힐끗 남자를 바라봤다.

“저기요. 젊은 청년.”

“예?”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게 뭔 줄 알아요?”

“…뭔데요?”

키가 큰 남자는 일어선 채 춘식을 내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못생긴 남자의 키부심. 그거요.”

순간 난 속으로 웃었다. 아니 웃음이 삐져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 강춘식 작가가 소설을 쓰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팩폭을 뭐 저리 심하게 뼈까지 부수면서 때리는 거지.

“여기 이 테이블에 맥주 하나 갖다줘요!”

그러면서도 춘식은 옆의 남자에게 맥주 한병을 선사한다.

츤데레긴 츤데레다.

뻘줌한 얼굴로 기가 죽어있는 키 큰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날뛰어?”

“기분이다! 오늘 우리 독자님에게 축하라도 할 겸 양주는 내가 쏜다!”

“아뇨.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 나의 성의를 무시하지 말죠?”

골든블루 두 병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슬기와 나 세정, 그리고 춘식은 양주를 들이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머리를 식히러 온 이곳에서 우리는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떠들었다.

“푸하하하하!”

세정은 이제 춘식의 얼굴만 봐도 웃고 있었다. 그녀가 웃는 걸 보니 나도 좋다.

“독자님이 잘 돼서 그냥 내가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춘식이 잔을 들자 우리도 모두 잔을 들었다.

“아… 참. 독자님?”

“말씀하시죠.”

“남자의 소중이에 바람을 불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소중이에 바람?

뭔 신박한 개드립이 날아올까.

“음….”

그때 슬기가 껴들었다.

“풍선 꼬추?”

그 말에 춘식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술도 어느정도 취하고 이곳 분위기가 사실 섹드립에 좀 관대한 편이다.

세정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가린 얼굴 속에서 그녀가 웃고 있는 걸 난 포착했다.

그때 강춘식이 답했다.

“조세호.”

뭐지? 이 양반 오늘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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