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2화
천세정과 바텐더의 캣파이트
우리는 바 안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떠들고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이 있으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뭣보다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독자님. 난 너무 뿌듯해.”
“뭐가요?”
“내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 중에 하필이면 헌터란 직종을 가진 독자가 있다니까 말이야! 그것도 명실상부 최강이란 등급인 S급 헌터 말이야.”
춘식이 눈을 빛냈다.
이런 칭찬들이 아직도 낯설지만 나쁘진 않다.
전생에서는 언제 사람 되냐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살다가 이제 그러한 사람들이 날 동경한다.
자그마하게 올라오는 고양심을 티 안 내게 누른다.
“세정이는 좋겠어. 저렇게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가 남자친구니까 말이야.”
슬기의 말에 세정이 시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전 능력보다 사람이 좋아서 얘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도 남자가 능력이 좋으면 좋은거죠. 그래서 그쪽도 만나는 거 아닌가요? 남자는 역시 능력이죠.”
방금 한 말은 옆에서 멀뚱히 듣던 바텐더 아라가 한 말이었다. 순간 찬물이 확 끼얹혀진 분위기였다.
“저기요. 남자가 뭐라고요?”
세정이의 미간에 힘줄이 섰다. 오랜만에 본다. 웬만하면 화를 잘 안 내는 세정이가 화가 올라왔을 때 저 이마에 힘줄이 선다.
“남자는 당연히 능력이 좋아야한다고요.”
아라가 툭툭 받아치듯 답한다.
쟤는 아까 내가 들어올 떄부터 왜 저래?
“저기요.”
한 마디 해주려고 부른 나였으나 세정이가 나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말리지 말라는 건가?
“왜 남자가 당연히 능력이 좋아야 하죠?”
세정의 물음에 아라는 춘식이 산 양주를 쭉 들이켰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남자는 능력이고 여자는 외모죠. 솔직히 그쪽도 저 헌터님 능력 좋으니까 만나는 거잖아요?”
“미친년 지랄하네.”
세정의 입에서 욕이 격하게 흘러나왔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아라는 황망한 눈으로 세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제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얘를 만나는 이유. 그걸 왜 당신이 확신하고 말을 해?”
세정이 팔짱을 끼고 아라를 노려보았다. 아라 또한 그 눈빛을 그대로 받으며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난 천세정의 저 표정을 알고 있다. 정말 화가 올라왔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차가운 낯빛이다.
아마 한 고등학교 때 보고 못 본 것 같다.
말려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아라에게 한마디 하려고 하자 세정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능력이니 뭐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니 그쪽이 안 좋은 욕이나 들어먹는 거예요.”
“어이가 없네. 남자는 돈 버는 능력이 능력인 거고. 여자는 예쁜게 능력인 거죠. 그쪽도 사실 알잖아요?”
“그래서 그쪽의 능력은 대단하시다?”
“어디가서 꿀리진 않죠.”
“제 얼굴에서 방사능 한 번 맞아도 그쪽보다는 이쁠 것 같은데요?”
세정의 차가운 일갈에 아라의 눈이 커졌다.
사실 천세정처럼 생긴 여자 앞에서 기 안 죽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외모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중이다.
아마 쟤는 할 말 없을 거다.
저 바텐더는 얼굴은 뭐, 봐줄만하다.
그러나 천세정에 비하면 그냥 오징어 다리 한쪽 정도에 그치니까.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시지? 본인이 능력이 없으셔서 열폭이라도 하나.”
“저기요!”
저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내가 부르니 세정은 나를 한 번 더 그 눈빛으로 바라봤다.
춘식은 술잔에 시선을 놓고 조용히 오고가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난 당신보다는 능력 있어요. 바텐더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여긴 화류계죠?”
“근데요?”
잘 놀다가 갑자기 저 미친 바텐더 때문에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두 여성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여자의 기 싸움은 남자의 기 싸움보다 더욱 차갑고 소름끼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사니까 남자들에게 술이나 따르고 돈이나 벌며 살죠.”
헉. 수위가 세다.
세정의 말에 아라의 눈이 분노로 확 뜨여졌다.
옆에서 바텐더 슬기가 말렸으나 아라는 슬기의 손을 확 뿌리치고 씩씩거리며 세정을 노려본다.
“나 그래도 여기서 일하면서 월 500은 버는데 당신은 뭐 잘났어?”
“네. 너보다 잘 났어요.”
“웃기네.”
“진짜 버러지 같네요. 당신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여자들 때문에 멀쩡한 여자들이 김치라고 싸잡아 욕 먹히는 거예요.”
천세정의 말에 아라의 눈이 까뒤집혔다.
“잘생기고 능력 좋은 헌터를 남친으로 뒀다고 기세등등하네. 어디 뭐 몸이라도 대줬나…푸헉.”
아라의 얼굴에 세정의 글라스에 가득 담긴 양주가 확 뿌려졌다.
“푸억.”
그녀의 얼굴은 양주 범벅이 되어있었고, 그녀의 귀 옆에 붙어있는 레몬은 힘없이 쭉 떨어졌다.
“당신같은 인간들은 평생 그런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겠지만 잠깐이라도 정신이 들라고 뿌려준 거예요.”
아라는 휴지로 얼굴을 벅벅 닦으며 세정을 노려보았다.
“저기요? 사장님!”
난 사장을 불렀다.
사장이 없나? 난 슬기에게 사장을 불러오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바텐더 사장은 아마 휴게실 형태로 되어있는 방 안에서 쉬고 있었는지 졸다 온 얼굴로 물었다.
난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아….”
아?
사장은 내 말에도 그저 그렇단 눈치다. 미친건가?
그때 춘식이 사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객관적으로 내가 봐도 저 바텐더 문제가 많은데.”
춘식의 말이 붙여지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라에게 눈을 찌푸렸다.
“정아라 씨. 손님한테 뭐 하는 짓이야? 얼른 사과드려.”
춘식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이 바에서 단골 강춘식이 팔아주는 술값은 매출에 아주 많이 기여할 정도니까.
“…제가 왜요? 거기다가 저 여성분이 제 얼굴에 술을 뿌렸다고요!”
“하이구. 참. 찌질하기는. 지가 뱉은 말과 싸가지는 생각도 못하고.”
세정은 그녀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사장이 인상을 확 구겼다.
“아라 씨 손님들한테 싸가지 없다는 컴플레인이 안 그래도 많이 들어왔는데 내가 한 마디도 안 했어. 내일부터 출근 안 할래?아니면 사과할래?”
“…….”
“당장 사과 드리라고!”
“그만두면 될 거 아니야! 내가 일할 곳이 여기 뿐인 줄 알아?”
아라는 눈물을 흘리며 옷을 갈아입는 휴게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너 같이 싸가지 밥말아먹은 애 말고 직원으로 쓸 애가 없는 줄 아냐!”
사장도 큰소리를 쳤다.
잠시 후.
롱패딩으로 옷을 갈아입은 정아라는 분한 얼굴로 우리를 싹 훑은 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장이 우리들에게 굽히며 사과를 했고 서비스를 내왔다.
난 세정의 눈치를 볼 겸 슥 쳐다봤다.
“할 말은 해줘야지.”
세정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완벽한 여자고, 예의범절이 있는 여자지만 아닌 것을 봤을 때는 끝까지 파고들고지지 않는 성격이다.
저번에 파프리카 방송에서 풍선 멸장전을 했을 때와 같이 말이다.
“뭐, 그리 열내지 말고 다들 한잔 합시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사람들 많고. 일반적이지 않은 뇌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춘식이 씩 웃으며 잔을 들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쉬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한 번 마셔보자.
그동안 달려온 소중한 내 자신을 위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 *
“머리 존나 아프네.”
시간이 얼마나 지난걸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아마 숙취로 인한 것이겠지.
그때.
흐려진 시야가 선명해지고 눈 앞으로 피폐한 광경이 보인다.
처절하게 죽어있는 수천 이상의 군사들과 피로 낭자되어 있는 지형.
이거 꿈인가?
꿈에서 꿈임을 자각하는 자각몽 같다.
그 시체 더미 속에서 두 남자가 대자로 쓰러진 채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 빨간머리 하고 옆의 남자는…….
‘박태석이다.’
박태석과 아주 흡사한 얼굴의 남자였다.
빨간머리는 핏물을 푸푸- 뱉어내며 단전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 주문을 외우듯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전생천심기술이군.”
남자가 빨간머리보고 힘겹게 말했다.
“다 했다. 이제 내 후생에 대한 준비는 끝났어.”
“레딘.”
혈색이 없는 낯빛을 한 남자는 그를 부르고 말을 이었다.
“……그 술식은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마 자네도?”
“이미 끝내놓은 상태다.”
“역시 광명의 검제답군.”
“즐거웠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 후생에서 만날 수 있다면 만나도록 하자. 너 덕분에 정의를 알았고, 올바르게 사람처럼 살다 죽을 수 있었다.”
“감사한 건 나도 마찬가지네.”
그 둘의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하늘이 찢어졌고 구멍이 열리기 시작했다.
“허!”
하늘과 땅을 찢는 굉음이 이어지는 그 벽력에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우리집 천장이었다.
“역시 꿈이였나.”
아마도 난 집에 잘 들어온 것 같다.
그러던 그 찰나였다.
[이터널 라이프의 퀘스트 ‘해방’에 대한 부연설명이 끝났습니다.]
“부연설명?”
그 알람음에 숙취로 뭉개지려던 뇌가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와 방금 그 꿈이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럼 회귀자 박태석과도 관련이 있을 거란 말인가.’
쏴아아-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기로 쏟아지는 온수에 몸을 맡기니 몸이 노근해지며 뇌가 편안해진다.
인간은 온수로 샤워를 할 때 세타파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세타파는 집중력과 창조력, 사고력에 대한 것을 키워준다.
“아까 그 꿈에서 술식이란 말이 나왔다.”
모든 것을 생각하려던 그 때.
번뜩 눈이 뜨였다.
‘설마 현계에서 헌터능력을 박태석도 사용할 수 있다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현계에서 헌터능력이 작동하고 있다.
근데 그게 시운뿐만이 아니라면?
‘설마... 그 작용이 회귀자 모두에게 작용되는 건 아닐까.’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쇼파에 앉았다.
그 순간.
-깨톡!
그 소리에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유석에게 톡이 와 있었다.
그 내용의 톡을 본 이시운은 당장 유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사실이야?”
-분명해.
“정확히 언제부터 였어?”
-모르겠어. 근데 이주일 전 쯤 박태석에 대한 사진을 봤을 때 분명 그것이 추가가 돼있었어.
시운은 순간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유석은 회귀자를 판별할 수 있고, 회귀자의 능력 또한 관찰하는 능력을 가진 자다.
근데.
박태석에게 능력이 하나가 더 추가 됐다고 했다.
분명 박태석의 능력 개체수는 두 개였다.
“그러니까 추가된 그 능력이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란 말이지?”
-분명해.
“…박태석의 나머지 능력은 왜 캐치가 불가능한 거지?”
물었다. 분명 추가된 능력은 유석의 눈으로도 꿰뚫을 수 있는데 다른 태석의 능력 두 가지는 유석이 해석이 불가하다고 했다.
-모르겠어. 다만…… 판독한 추가 능력은 미래예지가 맞아.
그 순간.
시운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머지 능력은 판독할 수 없는데 추가된 능력은 판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추가된 능력이 미래예지라면. 그건 김한수 능력이였잖아.”
김한수.
미래예지력을 갖고 있었던 회귀자다. 그러나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수사기관은 자살로 종결했었다.
“…설마 박태석이 그 자를 죽이고 능력을 흡수한 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