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3화
박태석의 비밀
박태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떤 칭호도 그에겐 부족한 사나이다.
그저 최고의 헌터. 라는 표현이 단순하지만 아마 가장 맞는 표현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세계에는 그와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헌터는 알려진 대로 딱 두 명이다.
유라이라 라는 미국인과 류토라는 일본인.
그 둘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전력을 갖춘 헌터다.
하지만 전력분석 전문가들의 평가로는 그 둘도 박태석보다 한수는 아래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멸룡의 귀재 박태석.
그는 시운에게는 롤모델 같은 존재였다.
그의 매력에 반해 헌터란 세상이 궁금해지고 그의 던전 공략을 보고 이득도 봤었다.
-안녕하세요. 박태석입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흘러나오는 유튜브 영상에 시운은 시선을 박고 있다.
훤칠한 외모 속에 선하고 힘찬 태석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박태석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니.
묘하게도 그런 생각이 뇌리에서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는 듯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환술에 의해 상태이상 ‘망각’ 상태에 돌입합니다.]
“뭐?”
시운의 두 망막으로 태석의 움직이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는 그때 들려온 음성이었다.
“망각 상태라고?”
시운은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꺼버렸다.
[환술이 해제되었습니다.]
“환술이라고?”
시운은 맹인불괴를 시전하여 망각 상태이상을 해제했다.
꿀꺽-
뇌리에 들던 생각이 빠져나가고 온전하게 정신이 서자 시운은 소름으로 등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박태석의 영상을 보고 환술과 망각 따위란 음성이 떴었어.’
박태석은 몇 년 째 유튜브를 하는 헌터다.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고, 돈도 많은 사람들도 종종 유튜브를 하곤 한다.
박태석도 그런 부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구독자 수 1000만명.
박태석 채널의 구독자 수다.
설마.
‘회귀자인 박태석이 헌터능력을 사용할 수 있고 같은 회귀자인 김한수도 죽일 정도의 악인이라면.’
이 채널을 통해 특별한 회귀자의 힘을 발휘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를 망각시킨단 말인가.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박태석의 채널 영상을 재생했다.
[망각 상태에 돌입합니다.]
헌터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는 아무리 박태석의 영상을 봐도 이런 음성은 들을 수 없었다.
이시운은 곧바로 윤성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와 약속을 잡고 강남의 한 카페로 차를 몰고 나갔다.
카페 안에서 윤성혜가 시운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요. 이젠 내가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시운 씨는….”
성혜는 특유의 빨간 뿔테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말씀하신 서류는 가져오셨습니까.”
시운의 물음에 윤성혜의 낯빛이 순간 변했다.
“제가 헌터협회 관리팀장직을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헌터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열람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시운은 윤성혜 옆에 있는 저 가방에 반드시 그 서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성혜는 결국 도움을 주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시운 씨 부탁이니까 열람은 해봤어요.”
그러면 그렇지.
시운은 고마운 마음에 서류를 챙기려 손을 미리 내밀며 감사하단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근데.. 박태석의 모든 정보는 락에 걸려있었어요.”
“락이요? 정보 열람자체를 아예 막아놨다는 겁니까.”
“그래서 서류는 챙겨오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미안하긴요. 맨날 부탁만 하는 제가 더 미안하죠.”
시운은 한숨을 쉬며 카페 밖 뷰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예상처럼 쉽지는 않겠군.’
“근데 박태석 씨에 대한 정보는 왜 알려고 하는거죠?”
윤성혜의 물음에 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군요.”
성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눈치다.
“죄송해요. 팀장님.”
“…하지만 박태석의 이계 출입 흔적은 열람해봤어요. 그건 제 권한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이계 출입 흔적?
“혹시 의아한 점이 있었나요?”
“박태석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던전을 공략해요. 근데 3월에서 7월까지 이계에 출입했다는 기록이 없어요.”
헌터들은 이계로 출입할 때 시스템상에 의해 자동으로 기록에 남게 된다.
근데 박태석이 4개월 동안이나 이계에 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에게 들은 것은 있어요.”
“그게 뭐죠?”
일개 팀장 정도의 직급인 그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윤동석이다.
그녀의 인맥은 일반인과 다르다.
그런 그녀가 들은 정보라면 쓸만한 정보일 터다.
“박태석씨가 류시아씨와 김수혁을 여러차례 만났다고 들었어요.”
“협회측에서 일하는 그 류시아요?”
성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류시아는 A급 헌터 출신으로 협회측에서 고용한 여성이다.
마력 측정과 투시력으로 특별팀에서 근무하는 걸로 알고 있다.
“김수혁이라면 호성그룹 김수혁을 말하는 건가요?”
“네.”
김수혁.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의 부회장이자 계승자. 놀랍게도 그는 20대.
여러모로 베일에 쌓여있는 인물이다.
그때 협회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수혁. 그는 돈 뿐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자다. 근데 그 자가 자네를 주시하고 있어.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치 여기저기 마구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끼워 맞출 생각에.
* *
서초동에 위치한 호성타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본사 빌딩답게 그 위용을 자랑하듯 빌딩은 하늘 드높이 솟아 있었다.
호성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기업으로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의 가도를 달렸으며 대한민국에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기업.
이번년도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속에서 무려 12위라는 기염을 토한 기업이다.
그 호성타운에 도착한 류시아는 태석과 함께 VVIP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안내받은 대로 67층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안내원이 근엄하게 말하고 버튼을 눌렀다.
그 말에 류시아가 태석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오빠. 이게 어떻게 된거야?”
류시아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호성그룹의 67층은 절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다.
“긴장할 거 없어.”
태석은 류시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씩 웃었다.
류시아의 눈으로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서초동 한복판의 경치가 들어왔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위로 승강할수록 그 경치들이 멀어졌다.
띵.
“다 왔습니다. 내리시지요.”
류시아는 긴장했지만 어깨에 닿아있는 태석의 손길에 그 긴장이 녹는 기분이었다.
류이사에게 박태석은 정신적 지주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까.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앞을 가로석 두 경호원.
류시아는 그들의 정장을 훑었다.
‘권총도 소지하고 있네.’
경호원들이 금속탐지기로 태석과 류시아의 몸을 훑었다.
“핸드폰은 맡기고 가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태석이 품안에서 핸드폰을 경호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태석이 류시아에게 눈길을 주자 류시아도 가방 속을 더듬어 핸드폰을 꺼내 반납했다.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경호원을 따라 긴 복도를 걸었다.
말로만 듣던 호성그룹의 67층 복도의 벽은 에매랄드로 가득 수놓여 있었다.
중간에 거대한 문이 복도를 막고 있었다.
그 문은 평범한 문처럼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은 기다리라 말하고 돌아갔다. 이상하게 류시아에게는 묘한 눈빛을 보내고 말이다. 얼마 후 그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거대한 창문들이 뒤덮인 넓은 공간이 보였다.
고급스럽다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장식품들이 가득했고, 마치 드넓은 공간은 세계 최고급 호텔의 룸처럼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있었다.
“왔냐?”
커다란 욕조에서 몸을 담군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류시아는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닌 김수혁을 볼 때마다 어려웠다.
“대낮부터 반신욕 하는 기분이 어떤데요?”
반면 박태석은 태연히 걸어가며 그를 동네형처럼 대했다. 박태석이 나이는 위였지만.
* *
투명하고 광활한 창문으로 서울의 모든 경치가 보였다.
그 앞으로 의자에 앉은 김수혁이 태블릿을 꺼내 내밀었다.
태블릿에서는 중국의 거신이 울부짖고 있었다.
“이거 지금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는 거거든? 근데 이게 마치 위성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냐?”
류시아는 태블릿 속 거신을 보았다. 정말 그런 것처럼 보였다.
“…너 사진이 아니고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영상 같은 것으로 마력을 측정할 수 있지?”
수혁이 류시아에게 턱짓을 하자 류시아가 태블릿에 가까이 다가갔다.
“마력은 최소 SS급 이상입니다.”
류시아는 이미 거신의 전력을 측정한 상태이므로 바로 말했다.
“SS급이라면 얼마 전에 그 던전의 주인보다도 강하단 말인가?”
그 말에 류시아가 태석을 바라봤다. 김수혁이 타임리스 던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워서.
“그 던전은 딱 S급 정도였으니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놈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그렇군. 이거 정체를 안다며?”
김수혁의 가늘어진 눈매가 류시아를 향했다.
류시아는 속으로 놀랐다. 김수혁은 상급 헌터만이 알 수 있는 정보들을 다 알고 있는 듯 하다.
“…네. 이 거신은 이계역사학에서도 나와있는 고대 괴물입니다.”
“더 이야기 해봐.”
“이미 수만 년 전에 멸종했다고 알려진 괴물입니다. 일천지옥의 마왕이 지옥에서 포식한 만명의 악마의 사체로 빚어낸 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어요.”
“마왕? 그놈은 뭐하러 저런 것을 만들었을까.”
“역사학에는 자세히는 서술되지 않지만 제가 알기로는 또다른 무언가를 부활시키는 그릇의 형태를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수혁의 눈이 태석에게로 돌아갔다.
“네가 없애면 되겠네.”
그 말에 태석은 묘하게 웃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태석 오빠는 이계에서는 가능하지만 현계에서는…….”
“쟤 여기서도 헌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네?”
류시아는 낯빛이 새파래졌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의미를 담은 눈빛만이 일렁일 뿐.
“사실이야.”
태석이 덧붙여 말하자 시아의 입이 벌어졌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너….”
그때 김수혁이 류시아를 가리켰다.
그리고.
“회귀자라며?”
류시아는 방금보다 더 놀라 눈이 커졌다. 그 커진 눈이 박태석에게로 향했다.
“오빠. 오빠가 말한거야?”
류시아는 그 사실을 박태석에게만 털어놓았다. 친아빠 그 이상의 존재인 태석이였기에 그에게만 말했던 비밀이었으니까.
“지금 모인 우리는 모두 회귀자야.”
“…뭐라고?”
분노감으로 흔들리던 류시아의 눈빛이 더 흔들렸다.
그녀의 고개가 김수혁으로 향했다.
“나 13번째야.”
“…13번째라니요?”
“13번 회귀했다고.”
“……….”
류시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태석을 바라보던 김수혁의 눈빛이 진해졌다.
“박태석. 너의 뜻을 증명해봐. 지금 그 증명이 보고 싶다.”
류시아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때 태석의 손길이 류시아의 어깨에 놓였다.
그의 따스한 온기에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다.
“오빠. 나 지금 혼란스러워.”
“시아야.”
“날 여기에 데리고 온 이유는 뭐고 회장님이 회귀자라는 말도.”
“우리 시아는 항상 수고가 많았지. 난 널 많이 아껴.”
“어?”
류시아의 눈으로 태석의 미소가 보였다. 미소.
아니 평소에 익숙했던 그의 그 미소가 아닌 낯선 미소였다.
“오, 오빠!”
순간!
시아의 뒷목에 닿아있는 태석의 손으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대를 위해 소가 되어 마지막 수고의 희생을 해주렴. 내가 아끼는 동생아.”
태석의 손길에서 터져나온 불길은 순식간에 류시아의 안면을 뒤덮었다.
“끄어어어억.”
류시아는 불길이 휩쌓인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춤을 추듯 비틀거리다가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쿵!
“오....오....”
쓰러진 그녀의 얼굴가죽은 순식간에 익어 흘러내린 상태였고,
태석에게로 뻗었던 그녀의 간절한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오.”
수혁은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훼손된 시체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 내 뜻은 증명이 된 건가?”
“카인이란 놈은 세상의 멸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나는 이제 그만 제발 회귀가 없이 죽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이따위 세상을 지키기 위해 살고 있을테고 넌….”
“난 이 세상을 변화 시키려고 살아가고 있다.”
박태석이 수혁의 말을 대신해서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