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4화
신아영과의 만남
김수혁은 자신의 셔츠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태석은 류시아의 사체를 말 없이 몇초간 바라봐주고 주위에 있던 담요를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씌여진 담요가 피로 물들어간다.
“박태석. 봐라. 이게 하나가 줄어들었어.”
그의 가슴팍에 총 여섯 개의 보석이 보였다.
게중 네 개는 빛을 뿜고 있었고, 두 개는 빛 없은 무색이다.
그런데 다섯 개의 보석이 하나의 큰 보석을 가리키듯 그 주위로 둥글게 포진되어 있다.
“방금 이것 중 하나가 꺼졌어.”
“저건 보석인가?”
“정확히는 현 시대 살아있는 회귀자의 코어라고 표현하는게 맞겠지.”
태석은 류시아를 내려다봤다. 담요 옆으로 타다 만 머리카락과 뇌수가 바닥에 고인 채였다.
“그렇다면 내가 류시아를 죽이고 코어 하나가 빛을 잃은 거군. 가장 정중앙에 있는 큰 코어는 설마.”
김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바로 내 코어다. 아까보다 지금 내 코어의 빛은 어두워졌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류시아를 죽임으로서 당신의 코어의 힘도 약해졌단 뜻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코어의 빛도 점멸해야 당신의 코어도 완전히 힘을 잃는다는 거군. 한마디로 그때 당신이 죽는다는 뜻이야.”
김수혁이 방긋 웃었다.
“역시 귀재라 불리는 박태석답군.”
“네 개가 남았다. 그 뜻은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회귀자가 남았다는 뜻인데….”
“하나하나 찾아내서 죽이면 그만이지. 방금처럼 말이야.”
창문으로 훤히 들어오는 채광에 비춰진 김수혁의 낯빛은 아까보다 훨씬 밝아있었다.
“결국엔 나도 죽어야 당신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되어야 이 지긋지긋한 인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자네 13번의 회귀를 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나?”
“별로 궁금하진 않은데.”
“사람의 눈만 봐도 생각이 읽혀. 그 어디를 가도 감흥이 없어. 그 어떤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수 없어. 그저 쉬고 싶단 생각뿐이라네.”
“그것까진 관심없고 요점이 빗나갔다. 난 당신을 위해 봉사를 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 봉사란 태석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수혁은 오히려 태석이 요점을 잘못 짚었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자네가 죽을 때 나도 같이 죽으면 되는 거지.”
수혁은 개인금고를 열고 봉투 하나를 꺼내어 태석에게 내밀었다.
“자네의 목적은 알고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의 모든 지원을 해주지.”
김수혁의 말에 박태석은 군침이 돈다는 표정이다.
세계적 기업의 총수가 될 인물이 막대한 재력을 앞세워 지원을 해준다면 뒷배가 아주 튼튼해진다.
“나쁘지 않군. 대신 당신이 원하는 죽음을 위해서 나보고 회귀자들을 하나하나 죽여달라 이 말이지?”
“역시 척하면 척이군. 말이 통해. 자네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자네도 회귀자를 죽이면 얻는 것이 있지 않나.”
태석은 그 말에 납득이 갔다.
“딜하지.”
“아주 좋아. 난 말이 길어지는 걸 굉장히 싫어해. 자네는 여러모로 정말 맘에 드는 인간이야.”
“알고 있나?”
태석은 봉투를 품안에 넣으며 물었다.
“회귀자 말인가? 일단 한명은 알고 있네.”
“신상정보를 말해봐.”
“놀랍게도 그 한명이 헌터 중에 한명이야.”
그 말에 태석이 흠칫했다.
본인이 알고 있기로 이제 헌터들 중에서 회귀자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누구지?”
“이시운. 얼마 전에 S랭크가 된 헌터.”
태석의 동공이 묘하게 커졌다.
순간 그의 뇌리로 헌터트레이션에서 계획이 틀어진 일이 생각났다.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군.”
“능력이 네크로맨서라더군.”
“네크로맨서?”
“뭐.. 군대급 규모를 소환하고 다룰 수 있다던데?”
‘군대’ 라는 단어에 태석의 낯빛이 묘해졌다.
* *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는 내 인생에 없었지만….”
신아영은 납골당에 모셔진 유민정의 영정을 보며 서글프게 되뇌였다.
“…그런 존재만큼이나 내게 조건없이 소중한 사랑을 줬던 당신..의 복수를 마쳤어.”
아영의 예쁜 입술이 차갑게 떨렸다.
그녀의 뺨밑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엄마. 이젠 편히 가.”
고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란 신아영은 관심도 사랑도 없는 곳에서 같은 고아들의 괴롭힘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히 싸우며 자신을 지켰다.
그래서 어렸을 시절 사람만 보면 으르렁거린 소녀였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존재는 헌터 유민정이었다.
아영은 타임리스 던전에서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출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그녀의 영정 속 사진에서 웃고 있는 유민정은 아직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눈물범벅으로 화장이 내려앉은 채 납골당을 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에게 순간 유민정이 자주 말하던 그 말이 떠올랐다.
-아영아.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꼭 그 고마움을 알고 보답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렴. 넌 차가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속은 따뜻한 아이란 걸 난 안단다.
구름으로 수놓인 맑은 하늘이 눈물로 뿌옇게 번져 보였다.
그 말과 함께 아영의 머릿속으로 이시운이 떠올랐다.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던전에서 죽던 말던 신경조차 써주지 않았는데 되려 타임리스 던전을 공략하는데 최고로 일조한 건 어쨌든 그였으니까.
“평소 엄마가 해주던 말을 이번 한 번은 지키겠어.”
그녀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
타임리스 던전을 공략한 후 신아영에게 인터뷰를 하던 기자에게 신아영은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요?”
“군대를 불러내는 능력을 가진 듯 하다구요.”
그 말에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대를 불러내는 능력이라니요? 자세히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아영씨.”
“하아. 이제 그만 좀 꺼지시죠? 피곤하니깐.”
아영의 말에 시야가 흔들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카메라맨이 당황한 듯 어깨를 떨었고 기자도 차갑게 쏘아보는 신아영의 기운에 입이 떼지지 않았다.
“아아…. 그, 그렇답니다. 방금 신아영 씨의 인터뷰를 토대로 현재 화제의 인물 이시운씨는 소환계열의 능력을 지닌 헌터로 판단이 됩니다.”
영상은 당황한 기자가 급마무리하는 모습에서 멀어져가는 신아영의 뒷모습을 담으며 끝난다.
“내 능력이 세상에 까발려졌네.”
시운은 영상을 끄며 중얼거렸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다. 언제까지고 능력을 숨길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시운은 댓글창을 굳이 읽지 않았다.
선플이든 악플이든 봐서 굳이 좋을 건 없었다.
드르륵!
진동의 기척에 시운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이시운 씨. 안녕하세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뚝.
딱 봐도 길드 관계자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이제 S급이 된 시운에게 대한민국 최고 대형길드들 마저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귀신같이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해댄다.
‘길드 따윈 필요 없다.’
길드에 가입할 시간도 없고, 이유도 없다.
드르륵.
“...존나 귀찮게 됐네.”
창문을 연 시운의 눈으로 아파트 현관 앞으로 꽤 많은 인파들이 몰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언론사 기자들이나 길드 관계자들일 것이다.
저 들을 헤집고 나가야 한다.
신아영이 만나자고 전화를 했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야한다.
꼭 해줄 말이 있다.
그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정확히 한 달 뒤에 죽을테니까.
그리고 반드시 물어볼 것도 있고.
차키를 챙긴 이시운은 집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1층 현관의 문이 열리자.
“이시운 헌터다!”
“헌터님! 저는 BBS 기자 이정후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네크로맨서라는 신아영 씨의 발언이 화두에 오르고 있는데 잠시 인터뷰 좀….”
“바쁩니다.”
시운은 자신에게 몰린 기자들을 뿌리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고급아파트라서 치안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경비들이 기자들을 막아서며 곤란하다는 말을 했지만.
기자들은 끈질기게 주차장으로 향하는 시운을 쫓았다.
그때였다.
‘…!’
‘갑자기 웬 바람이?’
‘날아갈 것 같아.’
갑자기 휘몰아친 광풍에 쫓아오던 기자들이 휘청거렸다.
그 사이로 카메라맨이 격한 바람에 카메라까지 떨어뜨렸다.
“태풍이라도 온다고 했나?”
“그런 속보는 없었는데..”
“너무 바람이 거세! 다들 조심해요!”
마치 사람도 넘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바람 속에서 기자들은 흔들림없이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시운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조차 없을정도로 강한 태풍이 불어도 흔들림조차 없다.’
‘와.. 균형 감각 봐라.’
‘큰 기사거리 놓쳤네!’
기자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다리가 앞으로 떨어지질 않았다.
그 사이로 한 남자가 바람을 뚫고 이시운이 향한 곳으로 걸어간다.
‘뭐, 뭐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걸어가는 거야?’
‘아아..씨팔! 갑자기 마른 하늘에 웬 태풍이냐고.’
* *
자신의 차 페라리 앞에 도착한 시운은 기척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봤다.
‘뭐지?’
분명 윈드니스를 사용해 인파들이 쫓지 못하게 막았는데.
검은 챙 모자를 쓴 남자가 시운에게 다가오더니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이시운 씨.”
딱 봐도 운동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이다.
“누구신지?”
“저는 사신길드의 인사팀장 유동현이라고 합니다.”
사신길드라.
대한민국의 최고로 꼽히는 대형길드 중 한 곳.
신인 헌터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헌터를 뽑는 기준이 아주 깐깐하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사신 길드에 스카웃을 받았으면 인생이 핀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헌터들이 목말라 하는 최고의 길드.
그 길드의 스카우터 유동현은 명함을 내밀며 단단한 눈빛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저를 스카웃하러 오셨습니까?”
“역시 바로 눈치를 채셨군요. 그렇습니다.”
“관심 없습니다만.”
유동현은 순간 예상치 못한 단호함에 차에 탑승한 시운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야? 뭐 이렇게 시크해?’
명색의 최고의 길드인 사신에서 스카웃을 한다는데 저런 반응을 보인 이가 또 있었나.
부르릉!
차 엔진이 힘있게 소리를 냈다. 동현은 넥타이를 고쳐매고 시운에게 다가갔다.
“…참 단호하시군요. 잠시 대화 좀 하고 싶습니다.”
“길드에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계약 조건도 채 듣지 못하셨는데요?”
핸들을 잡은 시운의 눈으로 여유로운 미소가 입에 걸린 유동현이 보였다.
“얼마를 부르실 생각인지도 관심 없는데요?”
“250억. 250억 제안 드리겠습니다.”
250억?
생각보다 높게.
아니, 저런 높은 액수를 부를 줄이야.
“이제야 좀 관심이 생기십니까?”
“전혀요.”
“…예? 대체 이유가 뭐죠?”
유동현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시운을 바라봤다.
“이유요? 저 혼자가 사신 길드 전원을 합친 것보다 강한데 뭐하러 거길 제가 들어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