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6화
비밀 조약
이시운은 B급 게이트는 물론이고 이제 A급게이트 던전 또한 휩쓸고 다녔다.
A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조건은 최소 B급 이상의 헌터 10명 이상이지만 시운은 남다른 힘으로 협회장의 허가를 받고 독점적으로 A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모니터로 던전들의 공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 풍운 길드의 백윤호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게 말이 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백윤호의 육성에 혜령이 자신의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뭐가요?”
“이시운 말이야! 지금 A급 던전들을 혼자서 독식하고 있어.”
그의 이름이 나오자 혜령의 눈에서 순간 빛이 났다.
“그것도 십분마다 A급 던전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있다고!”
십분마다 A급 던전을 클리어한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A급 헌터가 최소 열명이 투입된다고 해도 A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시간은 최소 열 시간은 소요된다.
그런데 공격대를 구성한 것도 아닌 이시운 개인이 5분마다 클리어 한다.
“걔는 이해할 수 없는 애예요.”
혜령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 진짜... 협회장만 아니었어도 내가 어떻게든 데리고 오는건데.”
백윤호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듯 말했다.
“팀장님. 이번 중국 기사 보셨어요? 그 거신에게 감염된 중국인 확진자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대요.”
“몰라. 씨팔. 짱깨 새끼들 어떻게 되든 내가 알게 뭐야!”
윤호의 말에도 현기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감염돼서 격리된 중국인들이 병원과 집에서 뛰쳐나가서 사람들을 죽이고 사라지고 한 대요.”
“뭐라고? 병원에서 뛰쳐나간다니? 분명 폐쇄병동일 거 아니야?”
감염된 확진자를 확실히 격리시킨 병동은 폐쇄병동일 터다.
폐쇄병동은 창문조차 없고 화장실 또한 병실 안에 있으며, 보호사들이 그들이 나가지 못하게 관리할 것이고 인간 하나가 탈출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문을 다 부숴버리고 나간대요. 아니.. 그것보다 놀라운게 뭔 줄 아세요?”
“뭔데.”
“6층, 8층이나 되는 병실에서 벽을 깨부수고 뛰어내린대요.”
“뭐, 뭐? 야. 아침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진짜예요. 기사 좀 보세요.”
현기의 말에 백윤호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시운은 잠시 사라졌다.
“뭐야? 진짜네.”
기사를 확인한 백윤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슈퍼맨이라도 되나? 거기다가… 병실에서 뛰쳐나간 확진자들이 죽진 않고 죄다 사라졌다고?”
기사의 내용을 따라 읽던 윤호는 뇌를 망치로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팀장님. 설마 그 거신에 의해 확진자들이 이상 반응을 보이는 거 아닐까요?”
“심각한 일이긴 한데……. 짱깨들이 주저앉는 거 보니까 왜 이렇게 사이다 한 사발 들이킨 느낌이냐.”
그들이 이야기하는 틈에 강혜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오늘 좀 일찍 가볼게요.”
“아니, 왜? 좀 이따 던전 하나 공략할 건데 혜령 씨도 가야지.”
“서울에 지금 가봐야 해서요.”
“혜령 씨 근데….”
백윤호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강혜령은 나와버렸다.
이시운과 아는 사이인 혜령에게 항상 하는 그 소리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
A급 던전 ‘고대 제국’.
시운의 눈앞으로 만명의 고대 전사들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험해볼까.”
그 찰나에 시운의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망자들이 검을 치켜세우고 전방으로 돌진했다.
거나한 모래바람이 일며 돌진한 망자들이 고대 전사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A급 던전의 전사들답게 고대 전사들도 망자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광경을 보던 시운이 카이칸에게 턱짓했다.
쿠우우우-!
그러자 카이칸이 뿔을 내세우며 돌진해 망자들틈으로 나아갔다.
[카이칸이 스킬 “도발의 포효”를 사용합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카이칸이 공중으로 고개를 들어 일갈의 포효를 하자 고대 전사들의 고개가 카이칸으로 일제히 향했다.
시운은 흡족했다.
‘도발 스킬로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군.’
고대 전사들 모두가 카이칸에게 시선을 돌리며 카이칸을 향해 검을 내뻗을 때 망자들이 그 빈틈을 공략해 전사들을 타파했다.
“저 녀석은..”
시운의 눈이 망자들 속 한 망자에게로 멈췄다.
다른 망자들보다 키가 한 30센티는 큰 망자.
보통 망자들의 체형은 170~180cm 정도다.
근데 그들사이에서 그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망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망자들을 소환할 때부터 눈에 띄던 녀석이다.
다른 망자들과는 다른 기이한 검술을 사용해 고대 전사들의 목을 따버리던 녀석이 멈칫하더니 시운을 향해 뒤를 돌아봤다.
시선이 맞부딪혔다.
녀석은 기이한 눈빛을 내비추고 있었다.
‘저 녀석은 뭐지? 망자들 사이에서도 확실히 강하다.’
쿠오오오오오오-!
카이칸이 벽력같은 함성을 한 번 더 내뿜었다.
어느새 고대 전사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있었다.
시운은 고개를 돌려 전방의 끝을 바라봤다.
고대 전사들을 통솔하는 고대 제왕이 무표정으로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볼까.’
시운은 그대로 돌진했다.
카이칸의 도발 덕분에 길이 열린 시운은 제왕의 코앞까지 당돌한 상태였다.
차캉-!
제왕이 검을 뽑아들었다.
이곳의 보스답게 고대 전사들과는 격이 다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쿠웅-!
제왕의 검이 허공을 찢으며 시운에게로 떨어졌다. 공격을 흘려내자 검은 빈땅을 쑤셔 박혔다. 시운은 그 틈에 제왕의 허벅지를 차고 거리를 벌린다.
‘가속.’
[민첩성이 40% 증가합니다.]
샤샤샤샤샥!
가속을 사용해서 휘두른 검은 A급 보스 제왕의 눈으로도 쫓기가 힘들었다.
“…으그극.”
순식간에 왼다리가 잘리고 양 팔이 절단된 제왕이 신음을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푸슉!
시운의 검에 제왕은 목이 꿰뚫리자 뒤틀린 신음을 내뱉으며 차갑게 울부짖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후.
고대 전사들의 사체 모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고대 제국의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시운은 손에 든 나이트메어를 거뒀다.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A급 던전이 이제는 너무도 수월하다.
처처처척!
시운이 나이트메어를 거둔 것을 보고서 망자들도 자신의 검을 검집에 밀어넣었다.
시운은 그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압도적인 숫자의 군대의 폭력은 A급 던전도 시시할 정도로 만들 뿐이었다.
“현무!”
시운의 부름에 현무가 시운에게로 다가왔다.
걷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다가온 현무를 보았다.
현무는 두 발이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 방패와 완드를 양손에 쥔 채였다.
“카이칸을 치료해라.”
우웅!
현무의 안광이 보랗게 번쩍였다.
카이칸은 그 말에 멀리서 현무에게로 달려왔다.
현무가 카이칸을 향해 완드를 휘젓자 전사들에게 입은 검상들이 사라졌고, 카이칸의 기색이 살아났다.
‘한 번 살펴볼까?’
시운은 현무에게 고스트서치를 사용했다.
[현무][Lv.1][초월 등급][칭호:동방의 마법사]
태초 등급:A+
‘초월등급? 진급한 데스나이트의 정예등급보다도 높다.’
그보다도 한 단계 높은 등급이 초월 등급이란 걸까?
현무의 왼손에 들린 현무의 방패로 시선이 옮겨갔다.
‘힐뿐만 아니라 저 방패로 전투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구우우우-.
그 속내를 읽기라도 했는지 현무가 대답하듯 낮게 포효했다.
시운은 이제 자신이 예전과는 격이 다르단 느낌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입고리를 올려 방긋 웃으며 포탈을 사용해 현계의 집으로 이동했다.
낯익은 거실의 광경이 눈앞으로 그려진다.
시운은 쇼파에 놓아둔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2통.
부재중전화는 유석과 협회장 대익에게 온 것이었다.
우선순위는 협회장이기에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남았다. 대통령에게는 잘 말해놨다. 일이 주 사이로 허가가 떨어질 거야. 준비해라.
허가라는 것은 중국으로 향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거신이 이곳으로 오기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계획은 바뀌어 있었다.
시운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거신을 괴멸시키는 것.
“알겠습니다.”
-단단히 준비해야 할거야. 근데….
대익이 말끝을 흐리는 것이 불안하게 들려왔다.
“말씀하세요.”
-박태석이 그러더군. 그놈의 측정 마력수치가 SS급에서 SSS급으로 변화했다고.
SSS급으로 변화했다고?
거신은 점점 강해진단 말인가.
시운의 눈썹이 떨려왔다.
SSS급이라면 이계 전체를 멸망시킬 정도의 수치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태연하게 답했다.
시운 또한 전과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정말 할 수 있겠나?
“해야죠. 제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
시운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대익은 흡족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시운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유석이었다.
-시운아. 나 혜령 씨하고 연희 씨하고 같이 있는데 너도 올래?
강혜령과 정연희. 장유석이 같이 있다고?
지금 노닥거릴 여유는 없다.
“바빠서 못 가.”
-아…….
유석은 난처하단 듯 얼버무렸다.
-……혜령 씨가 너 보고 싶다고 꼭 지금 좀 오라는데?
유석의 말에 스피커 너머로 “내가 언제?!” 라고 언성을 높이는 혜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 보자. 내가 지금 꼭 할 일이 있어서.”
-아, 알겠어.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시운의 머리 위로 대익의 육성이 테이프가 반복된 것 마냥 계속해서 들려왔다.
-SSS급으로 변화했다고.
* *
대익은 시가를 빨며 골프채를 그대로 휘둘렀다.
골프공이 잔디의 언덕을 가르며 공중으로 비상한다.
“나이스 샷입니다.”
대익의 비서가 박수를 쳤다.
후-
대익은 시가를 깊게 빨아 내뱉고서는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옆에서 국방부 장관 김대우가 골프채를 요리조리 훑고 있다.
“장관님. 거신이 뿜어내고 있다는 그 감염물질에 대한 연구는 진행이 되고 있답니까.”
대우는 골프채들 중 하나를 골라 뽑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미 중국은 끝났습니다.”
“허허허. 끝났지만 아직 끝난게 아닌데요?”
대익은 다 피운 시가를 비서에게 건넸다. 그러자 비서가 시가를 받아서 재떨이에 비벼끄고 캐디와 함께 눈치껏 자리에서 빠졌다.
“중국이 이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지요? 아. 협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헌터의 출격?”
대우의 물음에 대익이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사실 중국이란 하등한 민족은 망해도 상관이 없어요. 다만 그렇게 냅두기 보다는 이용해야죠.”
“이용이라. 어떻게 말이죠?”
“대통령님께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대익의 말에 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익은 전방의 저 너머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뗐다.
“중국과 조약을 맺자구요.”
“무슨 조약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대익은 신랄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말을 이었다.
“중국을 대한민국의 식민지로 만들자는 조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