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7화
마스터 키
대우는 대익을 뚫어지게 살폈다.
방금 그건 대체 무슨 미친 소리셨나? 라는 의미를 내포한 눈빛으로 말이다.
“협회장님. 우리나라가 중국을 삼킨다는 그 조약이 가당키나 해요?”
대우는 날카롭게 물었다. 대우는 잘 알고 있었다.
미국도 함부로 못하는 나라가 중국이고. 그 중국은 대한민국을 나라로 생각조차 안하고 멸시한다는 것을.
“아이고. 식민지를 만들자는 말은 좀 오버했네요. 근데 장관님.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죠.”
대우는 협회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시한 농담을 즐겨하는 타입도 아니고, 이유없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타입도 아님을 알고 있다.
“중국이 지금 완전히 종말할 기세죠. 저렇게 냅두면 쟤네들 알아서 망해요.”
“중국이란 큰 나라가 괴멸하면 세계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칠텐데.”
대익은 그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세계의 검은돈과 막대한 자금이 모여있는 중국이란 대륙이 주저앉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요동치게 만들어야죠.”
대익의 말에 대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경제대공황 상태를 만들자고요? 저기요, 협회장님. 그건 좀.”
“아니. 중국이란 나라의 예산의 일부를 우리에게 빼돌려서 세상을 요동치게 해야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요?”
“마스터키를 이용해야죠.”
“...마스터키?”
“이시운이라는 마스터키 말입니다.”
대우는 그 말에 뇌리로 젊은 헌터의 얼굴이 스쳐갔다.
‘...이시운. 최단 기간에 S급 헌터가 되었다는 그 청년.’
그는 군단을 소유하고 다루는 헌터라고 들었다.
심지어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아주 호의적이었다.
세기 최고의 헌터일 수도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정말 그 자가 현계에서도 헌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봤어요.”
“그렇다면...”
대우는 그제서야 대익의 말에 이해가 갔다.
중국의 군전력과 핵미사일을 동원해도 괴멸시키지 못한 그 거신을 이시운이라는 헌터가 괴멸시킨다면?
‘중국은 우리나라로 인해 긴 역사의 종지부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녀석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대익의 물음에 대우가 잠시 멍을 때리다가 눈이 번쩍 빛났다.
“그렇게 된다면...”
대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우는 이제야 대익의 모든 뜻이 이해가 갔다. 전신의 땀구멍이 열려 식은땀이 차갑게 흐르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협회장은 영특한 사람이다. 이시운이라는 헌터가 중국의 전력으로도 막지 못한 거신을 해치우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세계 군사강대국의 1위가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소국인 대한민국은 그 어떤 나라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위상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대통령님께서 시진핑에게 제안을 했을 겁니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말이죠.”
말을 끝맺은 대익의 표정은 비릿한 미소로 꽃피웠다.
* *
시진핑은 저택의 마당에서 한숨을 푸푸 쉬며 초첨없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허허. 이건 미친 일 아닌가.”
마치 하늘에 대고 이딴 일이 왜 생겨난건지 묻기라도 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있던 중국의 총리 리커가 격렬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입니다! 절대로 허락해서는 안 될 겁니다!”
한국의 대통령에게 직통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제안했다.
그 제안의 조건은 네 가지였다.
7년 동안 중국의 예산의 일부를 대한민국에게 제공할 것.
중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절반을 제공할 것.
그 밖에 대한민국의 여러 기업들이 성장하도록 각종 지원 혜택들을 모조리 제공할 것.
그리고 북한과의 교류를 일절 끊을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거신은 대한민국 측에서 처리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현재 중국은 쑥대밭이 되어있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중국 일부를 복구 할 수는 있다. 한국은 복구할 수 있는 기간 정도는 주겠다는 배려를 보여왔다.
“우리나라도 어쩌지 못한 그 거신을 약소국 한국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한국의 헌터 한 명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잖나.”
말을 하면서도 시진핑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해갔다.
이미 그의 판단력은 흐릿한 상태였다.
자신의 나라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는 그 나라의 수장.
대책도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심정이란 말할 수 조차 없을 터.
“그걸 믿으십니까?”
“이미 영상으로 확인했다네.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하.”
리커도 답답하단 듯 한숨을 푸 쉬었다.
“한국은 이미 헌터 강대국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그 헌터가 핵미사일로도 뚫지 못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리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감히 주석 시진핑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모르지. 근데... 그 헌터는 대한민국의 최고 중 하나라네. 악마들을 군대로 소환하고 싸운다는군.”
“예?”
악마를 군대급으로 소환하고 다룬다는 말에 리커의 입이 다물어졌다.
“하, 하지만...”
방법은 그뿐이라 할 지라도 한국의 제안을 들어줄 수는 없다.
그 네 가지 제안을 들어주기에는 너무 벅차며 중국의 위상은 추락할 것이며 북한과의 관계도 완전히 틀어질 것이고.
“이건 절대로...”
무엇보다 한국 따위의 나라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총리.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져. 더 늦기 전에 해결해야 해. 지도에서 우리나라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리커는 반박하고 싶지만 말이 생각나지 않아 얼굴만 시뻘개졌다.
리커의 시선이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에게로 쏟아졌다.
“뭘 쳐 듣고 있어! 다들 꺼져!”
괜시리 경호원들에게 하는 화풀이에 경호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그때 리커의 울그락불그락 한 얼굴이 확 펴졌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한국이 그 거신을 퇴치한다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 말에 시진핑의 툭 튀어나온 뱃살이 심호흡으로 인해 더 부어올랐다.
“그랬다가 우리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말아.”
“예?”
“거신을 퇴치할 정도의 힘을 가진 헌터가 그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겠나.”
* *
“폰 번호를 바꾸던지 해야겠네.”
시운은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며 짜증을 냈다.
온갖 곳에서 전화가 쏟아진다.
그만큼 유명해진 댓가일까.
오만 길드에서 스카웃이 들어오고 있었고, 팬이라고 자칭하는 이들의 전화만 하루에 수십 통은 걸려왔다.
띠리링!
“또, 뭐야!”
전화를 받았다.
-시운이냐? 오랜만이네. 나야. 전용하.
“뭐? 전용하?”
그 이름에 시운의 낯빛이 묘하게 구겨졌다.
전용하.
시운과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녀석으로 키만 컸지, 능력도 없고 교활한 녀석이었다.
여자조차 제대로 만나보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한 인생을 매일 부모탓으로 돌리던 녀석이다.
심지어 2회차 인생에서 벤츠 C클래스를 뽑았다고 시운 앞에서 온갖 자랑질을 하던 녀석이다.
추후에 알게 된 건 그 차를 풀 할부로 끊어서 샀고, 그 할부를 매꾸려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다가 사기죄로 고소를 먹고 실형을 살게 된다는 것.
“니가 무슨 일로 내게 전화했냐.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승찬이에게 물어서 알게 됐지. 그래도 우리 추억이 있잖냐. 네가 그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 축하해.
축하는 개뿔.
“용건이 뭐냐?”
-말 섭섭하게 하네.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한테 왜 이렇게 딱딱해?
“그러니까 용건이 뭐냐고, 새끼야.”
이딴 녀석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았다.
용하는 시운의 호탕에 살짝 말을 더듬었다.
-아니, 한 번 술이나 같이 먹자고. 승찬이랑 셋이.
“승찬이랑 셋이?”
-그래. 너랑 나랑 그래도 초등학교 때 참 추억이 많잖아. 술도 먹고 추억팔이도 하면서 얼굴도 보고 그러자 이거지.
‘시발놈이 지랄하네.’
웃겨서 헛웃음이 튀어나오려 한다.
2회차 인생의 시운은 공부를 위해 고시원에 살았었다.
말라비틀어진 정액 묻은 휴지가 뒹굴던 그 좁은 방안에서도 성공을 위해 고시원의 연장비용으로 용하에게 돈을 빌리려 했다. 그러나 “나이먹고 능력없는 고시생을 친구로 둔 적 없다. 꺼져라.” 라는 말을 하던 게 이 씹쌔끼다. 정작 시운은 학창시절 용하가 돈이 없다고 빌려달라고 하면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빌려주곤 했다.
전용하. 이 놈은 한마디로 잘 나가는 사람 옆에서 기생하려는 수작이다.
“용하야.”
-그래.
“너 요즘도 폰팔이 하고 있냐?”
-어어. 어떻게 알았어? 하고 있지.
이 녀석. 2회차 인생 때와 같다.
이때 쯤에 폰팔이 짓을 했었는데. 3회차 인생도 마찬가지군.
“용하야.”
-듣고 있으니까 말해. 자꾸 부르지 말고.
“난 능력도 없고 미래도 없고 남 등이나 쳐먹으며 돈이나 버는 폰팔이 같은 병신 새끼는 친구로 둔 적이 없다.”
-뭐, 뭐?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아니고 사람 새끼다. 꺼져라.”
뚝.
전화를 호쾌하게 끊어버렸다.
전생에서 당한 복수를 3회차에서 하게 되었다.
그 응어리가 말끔히 내려가는 기분이다. 굳이 이렇게 해 줄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튼.
시운은 헌터트레이션에 도착했다.
이제 VVIP가 된 시운을 헌터트레이션 관계자들이 극진히 모셨다.
“헌터님 오셨습니까! 주차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따로 짐이 있으시면 저희가 들겠습니다.”
“짐 없어요. 괜찮아요.”
시운은 헌터트레이션에 들어가 이수관 실장을 만났다.
시운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오는 그에게 시운은 곧바로 말했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여기서 가장 좋은 활을 가져오세요.”
* *
“이 세 개입니다.”
수관이 시운의 앞에 세 개의 활을 올려두었다.
각 활은 마력의 결계막에 쌓인 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 활들은 각각 10억 2천. 10억 5천. 11억입니다.”
“이 활들의 능력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이수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시운을 바라봤다.
순간 싸해지는 시운의 살기에 수관의 어깨가 낮게 떨렸다.
‘이 자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르는 걸 어떡해.’
“활의 능력도 모르면서 10억이나 되는 가격으로 판다는 말씀인지?”
“그, 그게 전문가들이 책정한 금액 그대로 내놓는 겁니다.”
수관은 시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바닥에 시선을 내리깐 채였다.
시운은 예리하게 활 세 개를 훑었다.
저마다 다른 색으로 범상찮은 위용을 뿜어내는 활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헌터 능력으로 이 아이템들의 정보를 훑으면 끝이다.’
거신과 싸우기 위해서는 좋은 활이 필요하다. 현재 갖고 있는 아시룡의 활보다도 말이다.
시운이 활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결계가 기운을 알아차립니다! 마력에 의해 정보 열람을 할 수 없습니다.]
안내음이 들리자 시운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내 기운을 알아차리고 능력을 막았다?’
이 활들은 아시룡의 활들보다는 분명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활을 구매해야 한다. 10억은 거금이다.
“저.. 어떤 것을 구입하시련지.”
“잠시만요.”
“네, 네. 천천히 고르시죠.”
수관은 앞전에 시운의 그 모습을 보았던 지라 가만히 닥치고 말았다.
‘저 헌터는... 들려오는 소문이 어마어마하다.’
악마의 군대를 소환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게다가 현계에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다고 들었다.
괜히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이 헌터트레이션이 그 악마들에 의해 박살이 날 수도 있다.
“........”
본래 같았으면 헌터트레이션에서 콧방구 좀 끼는 이수관은 고랭크 헌터라도 이렇게 머뭇거리며 자신의 시간을 뺏으면 당차게 한마디 구박이라도 한다.
그러나 이시운에게는 그럴 엄두조차 서질 않는다.
한편 이시운의 낯빛이 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때 이수관의 눈이 커졌다.
‘오, 옷이?’
패딩을 걸치고 있던 이시운의 옷이 순식간에 바뀐 채였다. 게다가 검은 투구가 그의 눈매까지 쭉 내려앉은 채였다.
‘대, 대체 어느 순간에?’
옷을 갈아입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수관은 가만히 쳐다보며 속으로 경악할 뿐이었다.
한편.
[블랙고스트 세트를 착용하였습니다.]
“실장님. 제가 알아서 이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활을 선택해서 사 갈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시면 돼요. 아시겠죠?”
“아, 네, 네.”
마치 보채지 말고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그의 뉘앙스에 수관은 대답을 하면서도 절로 고개까지 숙였다.
‘제, 젠장. 아무리 S급이어도 내가 대표님에게나 숙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네.’
이런 현타까지 느끼고 있다.
시운은 블랙고스트 세트로 인해 획득한 스킬을 속으로 되뇌였다.
[스틸 "고스트 어페어"를 사용합니다.]
[시전자의 마력과 기운을 감춥니다.]
시운의 입꼬리가 방긋 올라갔다.
‘기운을 숨겼으니 이제 확인해볼까.’
그리고 시운의 손이 세 개의 활을 모두 훑어갔다.
그러자 결계를 농락하듯이 시운의 눈 앞으로 친절하게 활들의 정보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