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9화
폐허가 된 중국에 도착하다
전세계에 라이브로 송출이 된다고?
당황스러움에 전신의 근육이 턱 굳는 느낌이다.
“……….”
곽대익이 사전에 내게 말도 없이 이런 일을 진행한건가.
내 전력이 모두에게 노출될텐데..
“아무튼 그렇게 알면 돼요.”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운은 협회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거신 일은 확실하게 처리한다고 말을 뱉어버렸으니.
‘그나저나 왜 하필 조대호란 말이냐.’
시운은 이 새끼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2회차 인생에서 공무원 시험에 열중이면서도 헌터란 꿈을 꿨었던 시운은 헌터 커뮤니티의 정보들을 훑는 게 취미였다.
그것을 통해 이미 조대호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근데 입가에 그 흉터는 없군.’
1회차 2회차 동일하게 조대호는 입가에 칼로 크게 찢어진 흉터가 생긴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스카페이스로 바뀌고.
번뇌의 검 이환과 사신 길드 문제의 던전 독점 문제로 크게 다투다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시점이니까. 뭐.
“어이, 이봐.”
그때 조대호가 거만한 눈으로 헬기조종사를 쳐다봤다.
초면에 하대를 하는 대호에 당황한 조종사가 레버를 당긴 채 꿈뻑인다.
“...예?”
“우리가 지금 나누는 말들 다 비밀로 해. 어디다가 이빨 털었다간 죽어.”
“……….”
“왜 대답이 없어?”
“아, 알았습니다.”
“말투가 좀 시원찮네? 반말해서 기분 나빠?”
“아, 아뇨.”
조대호는 신경질적으로 셔츠의 첫 번째 단추를 풀렀다.
난 속으로 비웃었다.
‘저 새끼는 역시나 똑같군.’
조대호.
마제의 신궁이라 불리는 그는 권위주의자에 꼰대기질이 큰 인간이다. 강약약강에 안하무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뒤에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해서 자기 주식을 강매하라고 하고 냅다 먹튀를 해서 언론에 보도된 인물이며 후배 헌터 하나가 그의 괴롭힘과 갑질때문에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한 마디로 방금 그 행동은 시운을 기선제압하기 위해 한 행동이다.
‘저 놈은 유치한 놈이니까.’
헬기의 창문 밖으로 맑은 하늘을 수놓은 몽글몽글한 구름들이 슥슥 지나간다.
“그 계획이 뭡니까?”
계획이 수정됐다는데 일단 자세히 들어야겠다.
“근데 시운 씨.”
“예.”
“나도 젊은 나이지만 그래도 난 올해 서른여섯 살이거든?”
“그런데요?”
“내가 헌터 업계에서도 선배고 나이도 시운 씨보단 꽤 많으니까 내가 편하게 말 놓고 후배처럼 다룰게. 알겠지?”
조대호가 시운을 눈에 힘을 꽉 준 채 쳐다봤다.
활을 다루는 레인저 계열의 1위인 조대호는 저렇게 눈에 힘을 주는 것이 눈이 나빠서나, 난시가 있어서가 분명 아닐 터다.
사람이 사람에게 제안을 굳히거나 확실한 주장을 하고 싶을 때 저렇게 눈빛에 힘을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꼰대 조대호의 내공에 눌려주고 싶지 않다. 기세에 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아니까.
“공과 사는 구분하시죠. 헌터 업계에 선배와 후배가 어딨어요?”
“하하하.”
대호가 여유롭게 웃었다.
아니. 여유로운 척이겠지만.
조금 당황한 기색이 낯빛에 물들었지만 이내 감춘다.
“아직 S급 헌터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나 본데…….”
“지금 거신을 퇴치하는 데에 있어서 난 파트너가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고, 거신을 퇴치하는 주된 역할은 대호 씨가 아닌 접니다.”
“대호 씨?”
호칭을 저렇게 불러서 언짢나 보다.
“왜 그러시죠?”
“형님이나 선배님 둘 중에 하나로 정하고 부르도록 해.”
어느새 말을 놓았다.
시운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을 놓는다고 해서 불편한 기색을 보일 타입은 아니다.
허나.
조대호에게는 기선에서 꺾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인이 나에게 한 번만 더 반말하면 나도 똑같이 반말합니다.”
“.......하.”
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이시운은 대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고스트 어페어를 해제했다.
[고스트 어페어를 해제합니다.]
[감춰졌던 마력이 다시 분출됩니다.]
그 순간.
시운의 눈빛을 본 대호는 헛기침을 했다.
“하. 예민하셔, 참. 그럼 서로 존칭합시다.”
“진작 그럴 것이지요.”
대호는 고개를 돌리고 미간을 티 안나게 찌푸렸다.
시운은 생각했다.
‘보통 저렇게 대하면 웬만한 새내기들은 죄다 굽혔었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냐?’
대호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풀었다.
대호가 쉽사리 꼬리를 내린 것은 마력을 해방해서 시운의 살기 스탯을 띄운 효과였다.
그렇게 시운은 대호에게 수정된 계획에 대해 들었다.
그때였다.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가 상황을 감지합니다.]
‘뭐?’
[이터널 라이프의 마지막 퀘스트가 추후 도착합니다.]
“………내 말 듣고 있어요?”
대호는 벙찐 시운에게 물었다.
“잠깐만요.”
시운은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의 마지막 내용이 해방에 관한 것임을 기억했다.
‘해방.. 해방이란 것이였어.’
설마 지금 거신 퇴치와 연관된 퀘스트일까?
이터널 라이프의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 하면 어떤 보상이 주어질까.
그리고 루시퍼가 있던 던전에서 여럿 들었던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뭘까?
‘설마...’
* *
세정은 몽롱하지 않고 너무나도 생생한 감각에 식은땀이 이마에서 목을 타고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꿈이야.
꿈이지만 굉장히 섬뜩하게 펼쳐진 광경은 공기 없는 공간에 갇힌 듯 콱 막히게 했다.
주위로 보이는 잿빛 하늘에 선혈이 낭자한다.
눈을 감고 저 장면을 놓치고 싶은데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이 생생한 감각. 자각몽이야.
괴인이 세 남자를 잔인하게 찢어버린다.
그 남자 중 한 명은 시운이다.
꿈인 걸 알지만 사랑하는 그가 토막이 나는 경악할 장면은 뇌리를 아찔하게 했다.
시운아!!!!
“하아!!”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방이다.
꿈에서 깼다.
심호흡을 하며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고 시간을 살폈다.
오전 10시 20분.
오늘은 개인사정으로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자각몽.. 그때와 같아.”
천세정은 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방 안의 화장실로 가서 세안을 하고 정신을 차렸다.
“휴...”
세정은 살면서 딱 두 번 자각몽을 꿔봤다.
자각몽.
흔히 꿈에서 이것이 꿈임을 인지할 수 있는 꿈을 말한다.
“모두 다 꿈대로 됐단 말이야.”
그녀가 꿨던 자각몽들은 모두 현실로 일어났다.
친할머니가 호흡을 헐떡이며 괴로워하는 자각몽을 꾼 뒤 입원해 계시던 할머니는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고, 중학교 때 꿨던 반 친구가 불에 타 죽는 자각몽 또한 현실이 되었었다.
불안해서 손톱을 까딱까딱 씹고 급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자차인 밴틀리 운전석에 앉은 뒤 시동을 걸자마자 핸드폰으로 유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음... 여보세요..
그가 자다 일어난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천세정입니다. 어디예요?”
-네? 집입니다만..
“급하니까 지금 좀 만나요. 우리.”
-지금요? 무슨 일이신데요?
“집 주소 빨리 찍어줘요! 그리로 갈 테니깐.”
-아….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문자로 유민수의 집주소를 받아냈다.
유민수는 시운이 세정에게 보낸 A급 헌터다. 동시에 시운에게는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소환수고.
그녀는 곧장 액셀을 밟고 그의 집 앞으로 갔다.
빠아아앙-!
차를 세우고 빌라 건물을 보며 크락션을 세게 눌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던 말던 한 번 더 크락션을 울렸다.
그러자 창문이 열리고 유민수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더니 빌라에서 내려와 조수석에 탑승했다.
“무슨 일이신데 아침부터 그렇게...”
유민수는 떡이 된 자신의 금발빛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시운이가 위험해요! 어쩌죠? 시운이가 중국에 가지 못하게 해야 해요.”
“형님이 위험하다뇨?”
그 말에 유민수의 눈빛에 힘이 탁 들어갔다.
“하아... 협회측에 아는 사람 몇 있거든요? 전화를 해봤는데 자기들도 어쩔 수가 없대요.”
항상 매사에 신중한 천세정이 유독 불안해 하며 떨고 있었다.
똑똑-
그때 운전석으로 다가온 한 남자가 창문을 두드렸다.
세정이 창문을 내리자.
“아니, 거! 그쪽이 크락션을 울려서 자다가 깼………”
울그락불그락 하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스르르 펴졌다.
세정의 얼굴을 보고 넋이 나간 듯 빤히 세정을 바라본다.
“아, 죄송해요. 사정이 있어서요.”
“아니, 저.. 혹시.”
남자가 우물쭈물 하더니 세정을 위아래로 훑는다.
“옆에 분 남자친구예요?”
“아닌데 왜요? 바쁩니다. 사과 드렸으니 가주세요.”
“제가 웬만하면 이런 거 안 물어보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 그런데 그럼 번호 좀 주실 수 있을...”
“이런 개새끼가 어디 우리 형님의 여자를!”
갑자기 유민수가 차에서 내려 남자에게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남자는 차에서 내린 유민수의 보디빌더 수준의 몸과 머리 하나는 큰 키에 토끼눈이 됐다.
“씨벌놈아. 세정 씨는... 우리 형님의 형수님이다. 꺼져.”
“아, 아, 아. 결혼 하셨었구나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사라져! 지금 창 꺼낼까? 이 새끼야.”
유민수가 거칠게 욕을 뱉고나서 남자가 사라진 것을 본 뒤에 온화한 얼굴로 다시 조수석에 탑승했다.
천세정은 유민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민수는 세정의 노골적인 시선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실... 형님이 시키셔서.”
“네?”
“누가 세정 씨에게 집적거리면 쫓아내라고 하셨거든요. 그것도 최대한 험악하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
“형님에게는 제가 말한 거 비밀입니다.”
세정은 빤히 유민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형님은 괜찮을 거예요.”
말을 자른 유민수는 진중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시운이 형님은 세정 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분입니다.”
* *
아파치 헬기는 광저우의 거신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서 착륙하지 않았다.
그러다간 헬기가 그대로 개박살 날 테니까.
그 괴물에게서 좀 떨어진 거리에 착륙했고. 시운과 대호는 준비해온 방독면을 착용 후 내렸다.
헬기를 본 군인들이 시운을 마중했다.
군인들은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그 중 소령 양빙빙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어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옆에 있는 통역자가 한국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핵을 발사했지만, 이상하게 방사능 수치가 하나도 잡히지 않고 있다는 말.
그리고 공기 중으로 타고 흐르는 물질에 의해 사람들이 감염되고 있다는 말이다.
감염된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죄다 어디론가 사라진단다.
조대호가 특수고글을 착용하고 입을 열었다.
“이시운 씨. 슬슬 준비해요.”
“조금 이따가 하면 안 됩니까?”
“지금 해야해요.”
이시운은 조대호의 고글을 바라봤다. 곧 대호는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이다.
판빙빙이 중국어로 통역자에게 뭐라뭐라 말하자 통역자가 말했다.
“....정말 헌터님께서 하실 수 있겠냐고 물으십니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군인 분들은 지원은 하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괜히 방해만 됩니다.”
‘잠깐. 저건?’
시운은 말을 마치고 이동하려던 찰나 걸음이 멈췄다.
군인들 틈에 섞여있는 묘한 눈빛의 군인을 보고 말이다.
그 군인의 머리 위로 분명 시운만이 볼 수 있는 작은 홀로그램 글자가 떠있었다.
[언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