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0화
위대한 헌터 (1)
무장한 중국 군인들의 시선이 시운에게로 모여있었다.
‘저 한국인이 진짜 헌터의 힘을 이계에서도 발휘할 수 있는 거 맞나.’
‘눈빛이 저렇게 살벌한 사람은 처음 보네...’
‘뭘 하려는 거지?’
그들은 시운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모두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터벅-터벅-터벅-
판빙빙은 한 군인에게로 다가가는 시운을 보다가 옆에 있는 통역사의 어깨를 두드리려던 그때였다.
“이 자에게서 모두 떨어져요!”
시운이 한 군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군인들이 고개를 모두 갸웃했다.
통역사는 그 말을 듣고 즉시 통역했다.
“저, 그. 그 군인에게서 떨어지랍니다.”
그 말에 판빙빙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시운의 뒤로 생겨난 검은 물체에 모든 군인의 총기가 그것에게로 향했다.
“쏘지 마요! 아군이니까!”
이시운이 다시 한 번 외쳤고 통역사는 그대로 번역했다.
군인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총기를 겨눈 채 검은 물체를 바라봤다.
인간의 형상이면서도 그것은 인간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저건 대체 뭐지?”
판빙빙이 얼어붙은 채 군인들에게 수신호로 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시운의 앞에서 솟아난 검은 물체는 망자들 사이에서 그 어떤 망자들보다 크고 눈빛이 기묘하고 깊은 그놈이었다.
“감염자군.”
이시운이 그 군인을 바라보며 말하던 그 순간!
군인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시운에게로 소총을 겨누었다.
샤악!
“뭐, 뭐야?”
망자의 칼이 살과 뼈를 서늘하게 분리시키는 소리와 함께 뒤이은 괴성이 튀어올랐다.
키에에에에에-!
잘린 팔에서 검은 피를 철철 쏟아내는 군인이 입을 크게 벌리며 이시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그 틈에서 무, 물러나!”
처처처척-!
판빙빙이 명령하자 군인들이 총구를 겨냥한 채로 뒤로 물러났다.
푸욱!
망자의 칼이 허공을 찢으며 휘날리자 공중으로 군인의 잘려나간 머리가 튀어올랐다.
‘저 군인 감염자인거야?’
‘혈액의 색이 왜 저래?’
‘목이 잘렸다…….’
툭.
시운의 발끝으로 잘려진 군인의 머리가 떨어져 멈췄다.
“감염자였습니다.”
이시운의 말에 통역사가 직역했고, 판빙빙의 눈이 커졌다.
“감염자라고? 감염자가 어떻게 군인들 틈에…….”
판빙빙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감염자가 어떻게 군인들 틈에 섞여 있었지?
그리고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시운이 한 번에 그 감염자를 캐치한 것이었다.
‘……엄청난 헌터다.’
어쩐지 이시운을 처음 볼 때부터 그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 순간!
“감염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발포할까요?”
이미 격리시설에서 탈출한 감염자는 발견 즉시 사살이라는 계엄령이 중국 전체에 떨어진 상태였다.
군인의 물음에 판빙빙이 대답하려는 순간 이시운이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쏘지 말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뭐, 뭐야?”
판빙빙은 눈을 의심했다. 목이 잘린 채 죽어버린 감염자가 지면에 녹아들다가 다시 몸이 붙은 채 살아난 것을 보고 말이다.
감염자는 이시운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헌터님 어떻게 된 겁니까?”
“이제 안전합니다. 이 감염자는 이제 제가 다룰 수 있습니다.”
“뭐라구요?”
판빙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반문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한국의 그 헌터는 네크로맨서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보고를 들었네. 한마디로 뭔가를 소환하고 이끈다는군.
판빙빙은 대령에게로부터 들었던 그 보고를 떠올렸다.
‘.....그 말이 사실이었어. 근데 그 말이.죽은 자를 살려내서 다룰 수 있다는 말이였다니..’
판빙빙은 이시운이 비현실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그것을 예리하게 지켜보던 조대호는 생각했다.
‘믿을 수가 없다... 대체 쟤는 얼마나 강한걸까?’
놀랍기도 했지만 그런 호기심이 들었다.
* *
바리게이트를 지나 거신의 위치 지점까지 20KM 근처에 도달했다.
주변은 온통 무너져버린 건물 잔해 가루와 형체를 알 수 없는 잿가루들이 휘날리고 있다.
“목표 지점까지 20KM 앞이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시운의 물음에 대호가 갸웃했다.
“뭐가요?”
“핵을 쐈는데도 방사능 수치가 잡히질 않는다는 게.”
“음…….”
그랬다.
상식적으로는 터져버린 핵폭탄으로 인해 방사능은 이미 이 근방을 삼켰어야 했다.
그러나 방사능 수치는 이미 0이라고 미리 보고를 받은 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네요.”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방독면을 쓴 채로 두 사람은 전방을 바라봤다.
그때 시운은 방금 죽였던 감염자를 불러냈다.
대호는 본능적으로 감염자에게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대호 씨를 공격할 일은 없어요.”
“화, 확실하지요?”
조대호는 감염자를 바라보면서도 이 소름끼치는 광경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때 감염자가 시운에게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했다.
‘뭐지? 살려낸 사람이 말도 할 수 있는 건가?’
“곧 감염자들이 들이닥칠 거랍니다.”
“……감염자들이 들이닥쳐요?”
“얘가 그렇게 말해주네요.”
대호는 감염자를 바라봤다.
‘방금 그 알 수 없는 언어를 알아 들었단 말인가..’
놀라웠다.
이시운은 그런 능력까지 있는 듯 하다.
조대호는 식은땀이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여기서 절대 죽을 수는 없지.’
대한민국 헌터의 힘을 세상에 알리는 일.
조대호는 목숨을 걸고 이 일을 맡기로 했다.
물론 이것은 협회장의 딜이었다.
-지금 윤동석은 아무 힘도 없는 거 자네도 알지? 이번 일만 해준다면야 자네에게 큰 선물을 주지.
곽대익의 육성이 떠올랐다.
그 선물은 바로 차기 부협회장 자리를 보장 받는 것.
권력과 명예욕이 큰 조대호는 침을 바싹 삼켰다.
‘근데,.. 문제는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데...’
현계에서 헌터 능력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는 S급 최상위 랭크의 헌터다.
신체는 탈일반인 수준이다.
“시운 씨. 내가 여기서 헌터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 알죠?”
“압니다만.”
“난 그 상황에서 당신을 촬영해서 송출해야 합니다. 당신이 소환하는 군대의 일부를 제 경호에 써줘요.”
“……굳이 그래야 하나.”
“자, 잠깐만요.”
얼굴이 구겨진 대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난 살아야 해요. 내가 맡은 일은 우리나라에게도 중요한 일이라고요.”
“글쎄요…….”
시운의 반응에 대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씨발... 이거 내가 굽혀야하는 장면이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그였지만,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후배인 시운에게 굽히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아깐 공격적으로 대해서 죄송했습니다. 시운 씨. 그 일은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좋게 말씀하신다면야.”
대호는 속으로 끓는 숨을 내쉬었다.
“……이제 송출을 시작하겠습니다.”
조대호는 특수고글을 점검한 뒤 착용하며 말했다. 그의 특수능력은 전파의 힘을 강력하게 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이시운이 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인터뷰나 뭐 그딴 거 저한테 시키지 말고 찍기만 하세요. 방해는 일절 하지 마시고.”
“아, 알겠어요.”
조대호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특수고글에 녹화를 시작했다는 불이 번쩍였다.
‘이제 집중하자.’
특수고글로 시운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금부터 시야로 보이는 모든 장면들은 협회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협회측이 협회 채널로 그 영상을 송출시키면 전세계 방송국이 그 영상을 각 나라에 송출시킬 것이다.
“준비 됐죠? 시작합니다!”
대호의 말과 동시에.
“옵니다. 감염자들이.”
조대호는 순간 전방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괴성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잠시 후.
키야아아아-!
괴성 소리와 굉음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굉음은 밟고 있는 지면에서 그대로 몸에 진동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오, 온다!”
대호가 떨었다.
전방에서 감염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거 수가 너무 많아요.”
입이 벌어진 대호는 전방을 보며 경악했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키야아아아아아-!!
전방에서 내달려오는 감염자들의 수는 눈으로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떼거지였다.
자그마치 몇 만명이랄까.
“시, 시운 씨만 믿겠습니다.”
조대호는 뒤로 열 발자국 물러났다.
“좀 더 뒤로 빠지는 게 좋을 거예요.”
시운의 말에 대호는 더욱 뒤로 물러났다.
감염자들이 몸을 흔들며 전력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가까워진다.
그 순간!
우오오오오-!
와아아아-!
대호의 주변으로 수천의 망자들이 솟아나와 함성을 내질렀다. 그 틈에 낑겨버린 대호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
‘....대체 이게 몇 명이야...’
자그마치 수천은 되는 인원이었다.
“이러면 좀 해볼만 하겠죠?”
시운이 옅게 웃으며 대호에게 말하고는 곧바로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주군을 따릅니다!”
“주군을 보필하라!”
“전방으로 나아간다!”
그와 함께 먼지가 휘날리도록 망자들도 감염자들에게 달려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조대호의 두 동공이 크게 요동쳤다.
‘이건 헌터....아니, 인간의 수준이 아니잖아...’
* **
전 세계 사람들은 지금 경악해 빠진 상태였다.
그들이 눈을 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은 한국의 헌터 하나가 군대를 소환하여 감염된 중국인들을 도륙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와... 손님. 저거 봐요. 영화 같지 않아요?”
운전하던 택시기사는 DMB로 송출되는 화면을 보며 입을 벌렸다.
DMB로 한국의 헌터 이시운이 수 만명의 감염자들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네... 어이구! 손님 잠시만 눈을 감으세요.”
화면 속에서 중국인이 바닥에 깔려 군대에게 밟혀 내장이 터지는 장면까지 나왔다.
“어머! 저, 저…… 잔인해서 못 보겠어요. 꺼주세요.”
“아니,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응원해야죠.”
택시기사는 핸들에 쥔 손에 힘을 꾹 쥐었다.
바로 그 시각.
“와아...”
“저, 저게 완전 영화 같네.”
“어떻게 인간이 저런 능력을 사용한단 말인지..”
중국의 주석 서진핑은 국회의원들과 함께 스크린에 눈을 두고 있었다.
서진핑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대한민국이 저렇게나 강한 헌터를 보유하고 있었다니.’
이미 이야기는 다 들은 그였지만, 막상 그 헌터가 전투를 하는 모습은 마치 서진핑 그가 즐겨보던 무협 영화에서 전장을 혼자 휩쓰는 천마를 연상케 했다.
“……저 헌터라면 정말 그 거신도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국회의원 하나가 서진핑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항상 굳어있던 서진핑의 안색에 생기가 돌았다.
“아직은 모르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군요.”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 헌터 이시운의 얼굴을 똑똑히 봐두며 감탄을 했다.
서진핑은 애절한 눈빛으로 이시운을 힘주어 바라봤다.
‘...대한민국의 헌터여. 제발. 죽지 말고 그 괴물을 처리해주시오.’
그 댓가로 대한민국에게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이 이대로 멸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제발.. 제발.’
저 젊은 대한민국의 헌터가 죽으면 중국도 끝을 맺게 된다.
살기를.
제발 살아서 그 거신을 없애주기를.
....그렇게 바라는 마음이 무교인 서진핑을 기도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때 상무위원이 소리쳤다.
“이제 더는 없나 봅니다!”
서진핑의 시야로 한국의 헌터와 그 군대가 움직임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그 주위로 감염자들의 사체는 한가득 널부러져 있다.
“....정말이군요. 어쩌면 우리나라가 저 젊은 헌터로 인해 구원 받을 수도 있겠어요!”
서진핑이 감격에 떨며 말했다.
그때 한 위원이 서진핑에게 뛰어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방금 위성으로 긴급보고가 된 상황입니다. 광저우의 거신의 형태가 변했다고 관측 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