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2화
위대한 헌터 (3)
타이탄이라고?
헌터자격시험 만점 출신의 이시운은 타이탄 종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무투전에 강력하다고 알려진 고대 타이탄 종족은,
고작 천 명의 군력으로 몇십 만에 달하는 제국군을 물리치고 타이탄의 성지 ‘아클레온’을 지켜낸 일화는 아직도 화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무적의 소수정예부대 타이탄. 그리고 그들을 지휘했다던 한 군주.’
그 군주에 대해서는 이계역사학에 약간의 정보가 서술되어 있었다.
맨손으로 장정 몇십 명과 싸워 모든 육체를 뜯을 괴력을 가졌고,
잔인무도하지만 소수정예군을 지휘하는 통솔력은 타의 추청을 불허할 정도라고 전해진다.
“그게 너였냐?”
이시운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콘을 올려다보며 군주의 힘을 해방할 것을 허락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차원을 찢고 허공에 생성된 게이트에서 타이타 종족들이 내공이 실린 함성을 내지르며 시운에게 낙하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쿵! 쿠우웅!
어느새.
시운 주위로 소환된 타이탄 종족들은 금색 방패와 위용있는 창을 쥔 채 아콘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주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군주시여!”
“저희를 부르심에 그 뜻을 받으러 찾아뵈었습니다!”
그들을 훑는 아콘의 눈빛은 뭔지 모르겠지만 깊었다.
“……나는 새로운 주군을 섬기게 되었다.”
아콘이 입을 벌려 말했다. 시운은 처음으로 그가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란 채였다.
아콘의 말에 투구 속 타이탄 종족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분이 바로 이 분이시다!”
아콘이 시운을 바라보며 타이탄 종족들에게 말했다.
처처처처척-!
그러자 타이탄들은 방패와 창을 엑스자로 교차했다.
“새로운 왕을 받듭니다!”
“새로운 왕을 받듭니다!”
괴력적인 팔근육을 움찔거리며 엑스자로 교차한 상태로 시운에게 고개를 숙인 채였다.
‘방패와 창을 교차시키는 것이 저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모양이군.’
심장이 뛰고 가슴 속 무언가가 웅장하게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저런 위대한 종족을 통솔할 수 있게 되다니!
캬아아아아아-!
반대편에서 날서린 괴성이 들려온다.
개미떼처럼 박박 모여있는 마수들이 무기를 뽑아든 채 멈춰 서있다.
그때였다.
“…저에게도 힘을 허락해주시죠.”
감염자 하나가 시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판빙빙 군부대 속에 숨어 있다가 재림한 녀석이었다.
힘을 허락해달란 말이 무슨 뜻인지 본능적으로 이해가 됐다.
“…당신은 이름이 뭐였지?”
“그건 이제 제게 의미가 없습니다. 제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감염자의 눈에 서린 살기가 전방 멀리 있는 그놈에게로 향한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는 젊은 나이에 자신과 가족이 괴물에 의해 인생을 마감했다.
그의 눈빛에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증오심이 느껴졌다.
“좋아. 당신을 언데드왕 이라고 부르겠다. 언데드들을 지휘할 권한을 주겠다.”
“고맙습니다.”
[소리없이 죽은 자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휘권을 선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바라보는 소환된 언데드들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다들 같은 마음이리라.
“좋아. 마수들이 십만이라도 이 정도라면 해볼만 하다.”
이시운은 카이칸을 향해 눈짓을 주자.
크오오오오오-!
카이칸이 코뿔을 위로 치켜들며 아가리를 벌렸다.
[카이칸이 스킬 “도발의 포효”를 시전합니다.]
캬아아아아아-!
아득할 정도의 마수떼들의 시선이 카이칸에게로 꽂혔다.
쿠쿠쿠쿠쿠쿵-!
그리고 마수 떼들은 카이칸에게로 진군해왔다.
“카이칸! 전방으로 돌진해라. 앞에 보이는 건 그게 뭐든 다 쑤시고 박아버려.”
쿠오오!
카이칸은 눈빛을 번뜩이며 콧김을 뿜더니 전방으로 무섭게 달려들었다.
“우리들도 갑시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놈의 목을 따러!”
언데드왕의 낮은 음성에 언데드들도 포효하며 전방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고개를 들어라.”
이시운의 한마디에 고개를 숙인 채 예를 표하고 있던 타이타들의 투구가 젖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위대한 타이탄 종족의 힘을 빌려다오.”
차차차차창-!
그 말에 타이타들은 육감적인 상체를 일으켜 방패와 창을 마수들 쪽으로 치켜세웠다.
“진격하라!”
우오오오오-!
시운의 말이 떨어지자 대지를 뒤흔드는 먼지와 타이탄의 웅장한 함성이 비산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대호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굳은 채 생각했다.
‘...저 힘은 헌터를 넘어섰다. 이건 헌터 대형길드급도 아니고 군대급도 아니다. 이시운의 전력은 강대국인 나라 하나 급이다..’
곽대익의 손이 떨렸다.
‘저 정도였다고?’
스크린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시운.
그의 능력은 네크로맨서라고 알고는 있었다.
허나 죽인 수만의 감염체들을 죽이고 소환하여 본인의 아군으로 소환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금빛방패와 창. 그리고 저들의 몸. 분명 저들은 타이탄들입니다.”
수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타이탄 종족에 대해 알고 있던 곽대익은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런 괴물같은 놈일 줄이야.’
곽대익.
그는 사냥개로 알고 있었던 이시운이 범새끼인 줄 알고 놀랐었다.
그러나 그저 범새끼가 아니었다.
이시운. 그는 괴물이었다.
‘어쨌든.. 대박이다. 위대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군.’
저 영상은 지금 전세계에 생생하게 송출되고 있다.
이로서, 저 영상 하나에 의해 대한민국의 군력이 중국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뛰어넘은 세계 최고인 것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아, 아공룡이다.”
김수호가 떨며 말했다.
“…저게 아공룡이라고?”
“그렇습니다. 드래곤 종족 중 가장 최강의 등급인 종족입니다. 고대 마왕이 타고 다녔던…….”
스크린에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상에는 이시운의 군대와 마수들이 뒤엉켜 혈전을 벌이고 있었고.
그 위로 떠오른 채 지상을 향해 포효하는 세 마리의 드래곤은 아공룡이었다.
“위험하다.”
드래곤의 힘을 잘 알고 있는 곽대익은 순간 눈이 커졌다.
브레스 한방에 소국 하나 정도는 지도에서 지워버릴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 드래곤.
그런 드래곤들 사이에서 최강 등급에 속한 아공룡들이라니.
“설마!”
순간 장내 한 명이 외쳤다.
스크린 속에서는 아공룡 세 마리가 지상을 향해 터질 듯이 얼굴을 부풀린 채였다.
“브, 브레스다!”
“브레스를 쏘려고 하고 있어요!”
박태석. 그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손에 땀을 쥐며 경악했다.
그 속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던 곽대익의 표정까지 창백해졌다.
‘설마.. 이렇게 끝인가?’
이 상황에서 이시운이 밀려버리면 곽대익의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린다. 게다가 흉폭해진 거신은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종말할 수도 있는 것.
“안 돼! 막아!!”
곽대익이 본능적으로 소리쳤을 때는 이미 드래곤 세 마리의 브레스가 지상을 뒤덮은 후였다.
“뭐, 뭐야?”
“화면이 멈췄어..”
“..다 죽은 거야?”
스크린은 암전이라도 되 듯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고 있었다.
조대호와 이시운. 모두가 이렇게 끝나버렸단 말인가?
* *
“시, 시, 시! 시운아!!!!”
티비를 보던 강혜령이 경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연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은 채였다.
“안 돼..”
장유석은 입을 벌리며 좌절했다.
누구보다 남달랐고, 정도 많았던 이시운.
동생 종우까지 재회하게 해주었던 은인인 그의 모습이 그대로 멎어버린 채였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왜, 왜 안 나오냐고! 씨발!”
강혜령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틀어보았다.
그러나 암전된 검은 화면만 나올 뿐.
“아, 안 돼! 안 나오잖아!! 이거 왜 이래?”
혜령은 방방 뛰며 다리를 떨었다.
“아니야... 아닐거야.. 시운이는 저렇게 죽을 리가 없어.”
손바닥을 내린 연희가 슬픈 눈으로 티비를 주시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역시 시운이는 살아있어!”
장유석의 말끝이 힘있게 솟아올랐다.
티비에는 암전된 상태의 화면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 막아냈어! 막아냈다고!”
강혜령이 두 주먹을 쥐며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연희의 얼굴에도 화색이 돋아났다.
화면에서는 이시운이 거대한 방패를 소환하여 세 방의 브레스들을 막아내며 군대들을 지키고 있었다.
“야, 야. 야. 군바리. 너 종교가 뭐야?”
“무교인데요. 왜요?”
강혜령이 주먹으로 유석의 옆구리를 퍽 강타했다.
“무교라도 기도라도 해! 시운이가 살아 돌아올 수 있게!”
그 말에 장유석은 손을 모았다.
정연희도 손을 모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었다.
눈을 잠시 감은 유석은 속으로 되뇌였다.
‘제발.. 저 좋은 친구의 인생이 저곳에서 마감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하느님.’
“야, 군바리!”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 끝에 아멘 붙여. 안 그러면 기도 안 통해.”
* *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
레벨 업을 했다는 알람이 수십 개가 연달아 들려왔다.
확실히 마수들이 강한만큼 그 경험치도 많이 주는 듯 하다.
[잔여 스탯: 120]
전장을 휘저으며 마수들을 베어내면서도 시운은 멀티로 능력치를 배분했다.
체력에 20.
힘에 30.
민첩성에 25.
나머지 45는 모두 지능에 투자했다.
통솔력 스탯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다.
군대들을 소환하는 이 영혼의 재림은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된다.
그렇기에 지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푸우욱!
전방을 가로 막은 마수의 가슴팍에 나이트메어를 그대로 쑤셔넣었다.
키에에엑!
깊숙하게 쑤셔넣은 나이트메어를 회전시키며 마수의 장기를 헤집었다.
방금 힘의 능력치를 올린 덕분에 단단하던 마수의 피부를 찢어내는 감각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열린 뱃가죽에서 내장을 쏟아낸 마수는 눈빛이 식어버리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타타타타탕!
시운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수의 공격을 나이트메어로 모두 쳐낸다.
퍼어억!
빠르게 악신의 정권을 사용해 부피가 큰 마수는 그대로 날려버리고 앞으로 구른 뒤 계속 내달렸다.
앞을 막아드는 마수 한마리는 이내 타이탄의 창에 머리가 꿰뚫려 휘청였다.
타탓! 시운은 뛰어올라 그 마수의 어깨를 밟고 전방으로 도약했다.
“내 목표는 니들이 아니다.”
가속 스킬을 사용한 상태라 민첩함은 가히 엄청났다.
순식간에 마수들을 처리하고 쭉쭉- 전방으로 전광석화같이 달려갔다.
“검은매!”
키이이이이-!
이시운이 달려가며 외치자 검은매가 부름을 받고 날개를 휘저으며 시운에게 날아왔다.
시운은 곧바로 검은매의 등에 타고 허공으로 비상했다.
그러자 피가 난무하는 지상이 조그맣게 보였고 시운의 눈앞으로 세 마리의 드래곤이 가까워졌다.
‘니들 아주 맘에 드는데.’
시운은 입맛을 다셨다.
저 강력한 드래곤 세 마리를 소환수로 사용하게 되면 얼마나 가공할 전력의 보탬이 되겠는가!
콰아아아아아-!
드래곤 세 마리가 이시운을 보자 아가리를 벌리며 날아왔다.
“검은매. 뿌려!”
키에에에에에에!
검은매가 드래곤에게 날아가며 입을 벌려 하얀 줄을 투툭, 뱉어냈다.
슈우웅!
그 거미줄은 드래곤 세 마리의 몸에 그대로 묻었고, 시운을 향해 날아오던 드래곤들의 속력이 순간 줄었다.
“이제 슬슬 아플텐데?”
그때 드래곤 세 마리가 동시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 엉겨붙은 거미줄에서 독성이 흘러나와 드래곤들의 피부를 녹이며 그 안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 독성이 어찌나 강한지 드래곤들의 몸 여기저기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제 빠르게 죽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볼까.”
그러던 그때 시운이 급하게 검은매를 두드려 이동을 멈춰세웠다.
드래곤 세 마리가 서로에게 붙어서 다른 드래곤의 개체가 된 것을 보고 말이다.
캬아아아아아-!
드래곤 세 마리는 어느새.
머리가 세 개가 달린 더욱 거대하고 흉측한 한 마리의 드래곤이 되어 이시운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강렬한 포효는 몸을 그대로 경직되게 할 정도로 섬뜩했다.
그러나 이시운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요리가 더 맛있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