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3화
이것이 바로 융합
장정 17시간째 이시운의 전투를 지켜보면서도 협회 관계자들은 그 눈빛에 힘을 잃지 않았다.
수십 명의 관계자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다.
반드시 이겨내서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에 알려라.
“윤 팀장!”
곽대익은 윤성혜를 부르자 그녀가 자리에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온다.
“네, 협회장님.”
“자네는 이시운과 헌터탐사시험부터 함께 했잖아. 저런 조짐을 아예 못 느꼈나.”
이미 그녀에게 물어본 질문이였지만 스크린 속으로 비춰지는 이시운의 힘을 믿을 수 없어서 재차 물은 것이었다.
윤성혜는 시선을 위로 올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남들과는 좀 다르다고는 생각했습니다. 근데 저런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힘을 숨기고 있었단 것인가.”
대익이 입을 히쭉거리자 윤성혜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성장하는 속도도 그 어떤 헌터보다 뛰어났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 이를테면?”
“열에 아홉이 A라는 의견이 옳다고 말하면 이시운은 B, C라는 의견을 내고 그 주장이 맞았음을 성과로 입증한 친구였어요.”
윤성혜는 말을 마치고 생각했다.
방금 뱉은 자신의 말은 아무리 되뇌여봐도 그의 모습 그대로를 잘 말한 듯 하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
그러나 곽대익은 그 말에는 정답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일단 지켜보시죠. 분명 이시운은 살아서 돌아올테니까요.”
윤성혜는 확신에 차듯 말했다.
그녀가 보아온 이시운은 항상 그랬다.
지금도 그럴 것이고 말이다.
그때 곽대익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의 시야로 박태석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스크린에 고개를 고정한 채였다.
‘이시운은 이미 자네를 뛰어넘은 것 같은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최고의 헌터라고 불리는 박태석.
그런 그의 능력마저 넘어섰을 거란 생각에 어느정도 확신이 들었다.
한편.
태석은 스크린에 고정하던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그의 귀를 통해 사람들의 처절함이 섞인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집중했다.
-마, 막아! 게이트를 막아야해! 서울 시민들이………
그리고 감은 시야로 희미하게 그려지는 광경들은 색을 입힌 듯 더욱 선명해졌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
바로 회귀자 김한수에게서 빼앗은 능력이 발동한 것이었다.
‘이 예지 능력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발동시킬 수는 없군.’
태석은 슬그머니 눈을 뜨자 아까부터 느껴진 시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곽대익이 태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태석과 시선을 마주친 곽대익이 눈을 꿈뻑이더니 말했다.
“자네에게 궁금한게 있는데 예민한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하나 해봐도 되나?”
박태석은 그 말을 들으며 일어섰고 대익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따라 올라갔다.
“그 질문은 나중에 하시죠. 곧 서울에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뭐?”
* *
‘너무나도 강해..’
타이탄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상대해본 적이 없는 마수들은 너무도 강했다.
그 속에서 칼을 휘두르며 돌진해오는 거대한 마수의 입에는 사지가 잘려나간 타이탄들의 육체가 씹히고 있었다. 처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공포심이 느껴졌다.
“겁을 먹고 있나?”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콘이었다.
“아, 아닙니다!”
댕겅!
아콘은 가차없이 타이탄에게 검을 휘둘렀다. 타이탄의 목에서 핏줄기가 일더니 과일처럼 목이 잘려버렸다.
아콘은 바닥에 떨어진 타이탄의 머리를 들고 외쳤다.
“우리는 새롭게 모시는 군주께 힘이 되어야 한다! 공포는 인간을 약하게 할 뿐이다.”
공포심이 깃든 눈을 뜬 채 멈춰있는 타이탄의 머리를 본 타이탄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타이탄에게 뒤란 없다. 오로지 앞만 있을 뿐. 사기를 떨어뜨리는 자들은 타이탄이란 위상에 먹칠한 자로 간주할 것이다.”
그의 말에 타이타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명예를 신념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설령 압도적인 적이 있다 한들 죽음보다 중시하는 신념을 더럽힐 수는 없었다.
우오오오오-!
타이탄들이 온 힘을 짜내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더욱 빠르게 돌진했다.
아콘은 쇄도해온 마수의 목덜미에 창을 꽂았다.
목이 꿰뚫린 채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마수의 발톱을 방패로 막아내고, 마수 밑으로 파고들어 뒷춤에 찬 단검을 빠르게 휘저어 마수의 아킬레스건 한쪽을 끊어냈다.
마수가 휘청이자 아콘이 도약하여 마수의 오른눈에 단검을 찔러 박았다.
캬아아아아아-!
타이탄 몇십 명을 도륙하던 거대 마수가 피를 뿜으며 괴성을 내지른다.
아콘은 양손으로 마수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서 던졌다.
쿠우웅! 던져진 마수는 떼로 달려드는 마수들의 발에 짓밟혀 내장을 터뜨리며 늘어진다.
‘역시... 군주님이시다.’
‘우리 군주님이 새로 섬기는 군주님이란 얼마나 강한 것인가.’
아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칠흑이 뒤덮인 하늘에서 자신이 새롭게 섬기는 주군이 드래곤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
아콘은 생각했다.
‘나는 강했었지만 악에 가까웠다.’
새 주군과 함께하며 그 주군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는 선인에 가까운 군주.
가끔 바보같지만, 정이 많고 악바리 같은 근성의 새 군주.
‘군주님을 모시면서 처음으로 내 전생에서의 내 모습에 후회란 것을 느껴봤다.’
방금 동족을 베어버린 것에도 후회감을 느꼈으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군주에게 힘이 되고 싶고 지키고 싶다.
아콘은 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타이탄의 사체를 내려다봤다.
“위대한 타이탄 전사여. 편히 가거라.”
그의 눈을 손으로 감겨주고 그의 손아귀에 쥐어진 창을 쥔 아콘이 전방을 향해 내달리며 외쳤다.
“타이탄들이여! 이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와 명예를 얻을 것이다!”
* *
십만 대군이란 가히 폭력적인 숫자의 마수떼들은 너무나 강력했다.
그들의 수에 시운의 군대는 밀리는 듯 했으나 점점 수가 줄어가는 것은 마수군이였다.
십만이란 수의 마수들은 어느새 절반 이상으로 줄어있었다.
“아버지시여. 저 인간이 사용하는 술법들을 알 것 같습니다.”
마왕 케이논이 마신 아베크로스에게 말했다.
그 말에 아베크로스의 감정없던 눈에 핏기가 섰다.
“이야기 해보라.”
“저 인간이 사용하던 술법들은 분명히 천신전쟁에서의 그가 사용하던 술법입니다.”
천신전쟁이란 말에 아베크로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천신전쟁.
천계의 신들과 인간들이 서로의 신념을 걸었던 역사적인 전쟁이다.
인간은 신에 대적하지 못할 육체를 지녔지만, 그 인간들 중 단 한 명으로 인해 그 전쟁의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고 인간들은 신들을 쫓아내고 인류를 지켜낼 수 있었다.
“……바람의 군왕?”
“그렇습니다.”
차카캉!
금속음이 빗발쳐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케이논은 검집에서 뽑아든 검을 강하게 쥐었다.
“정녕 바람의 군왕이 맞는건지 제가 몸으로 직접 부딪혀보고 오겠습니다.”
타앙!
케이논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아베크로스는 조용히 먼 거리의 이시운을 지켜봤다.
그에게 들었던 무한한 호기심이 이제는 혼란을 일게 한다.
‘카인님에게 저 선물을 드린다면 아주 기뻐하시리라.’
아베크로스가 찾던 두 그릇들보다 더욱 값진 그릇이 여기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 *
케이논의 검신 끝에서 검은 오러가 피어났다. 그 강렬함은 주위의 공간을 일그러지게 했다.
케이논은 이시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른 검신에서 뿜어진 검기가 이시운을 향해 덮쳐갔다.
파차차창-!
‘이럴 수가!’
케이논의 힘을 모두 담은 검기는 이시운이 날린 검기와 맞부딪혀 찢겨졌다.
‘분명... 저 검기는 바람이다.’
일천지옥의 악마들도 일격에 보내버릴 힘을 실어 검기로 날렸건만.
이로서 확신할 수 있었다.
“……너는 정녕 천신전쟁의 그 바람의 군왕이구나.”
그 말이 끝맺음과 함께 케이논은 배에 구멍이 뚫리는 격통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커헉…!”
방금 이시운의 일격에 당한 것일까?
푸우욱!
등 뒤에서 박아넣은 검신을 뽑은 이시운에게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어……엄청난 속도구나.”
방금 이 일격은 마왕 케이논의 육안으로도 캐치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되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지금 느껴지는 것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 뿐이다.
그때 이시운이 슬며시 눈을 떴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였다. 너와 내 시야를 잠시 바꾼 것 뿐이야.”
“……뭐?”
케이논은 차가운 바닥에 가슴팍을 엎드린 채 놀라 반문했다.
“난 바람의 군왕도, 검신 레딘도 아니다. 난 나일 뿐이다.”
그리고 역수로 쏟아지는 시운의 검신에 케이논의 박살난 머리에서 뇌수가 수박이 터지듯 사방으로 쏟아진다.
이시운은 케이논의 사체를 향해 손아귀를 내뻗었다.
“새롭게 태어나라.”
콰앙!
그 말과 함께 새로운 형태를 갖춘 생명체가 검을 땅에 찍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이시운을 향해 충성심이 깃든 안광을 빛냈다.
“새로운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 *
단 한 명의 신을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에게도 패한 적이 없는 마신 아베크로스는 생애 처음으로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앞에선 이시운을 보고 말이다.
아베크로스의 시선이 이시운의 옆에 강렬하게 꽂혔다.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살의를 피우고 있는 생명체.
분명 방금 바람의 군왕이 맞는지를 확인해보겠다던 자신의 아들 케이논이었다.
“너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지는구나.”
마왕 케이논을 단 순간에 압살해버린 것은 물론이고, 이젠 그 케이논을 자신의 수하로 다루고 있으니.
“…미안한데 지금 난 널 상대하지 않을거야. 내가 지금 많이 지친 상태거든.”
그 말과 함께 새로운 형태를 갖춘 케이논이 당장 달려들 태세를 갖췄다.
“내 아들은 강하지만, 내 아들 정도로는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잘못 짚은 것 같은데.”
쿠우웅!
벽력같은 굉음과 함께 아베크로스의 눈이 미묘히 흔들렸다.
카아아아아-!
시운의 뒤로 튀어나온 거대한 드래곤을 보고 말이다.
“놀랍군.”
케이논 뿐만 아니라 아공룡 세 마리의 힘이 모여 진화한 아공룡의 최종 진화개체인 드래곤 ‘보이쉬’의 영혼까지 탐식했다니.
“이게 끝이 아니야.”
그 순간이었다.
케이논과 보이쉬의 육체가 뒤섞이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와라 새로운 생명체여.”
‘뭘 하려는 거지?’
아베크로스의 두 눈이 커졌다.
일생 처음으로 느껴본 미묘한 그 감정이 이제는 뭔지 알 것 같다.
그 순간이었다.
두 마리의 융합으로 새롭게 태어난 생명체의 형태가 진해졌다.
드래곤 ‘보이쉬’의 단단한 비닐로 뒤덮인 갑주를 걸쳤고, 등 뒤로 아공룡의 날개가 여섯 개가 달린 전사였다.
“굉장한데.”
이시운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쿠오오오오오-!
생명체의 전신으로 푸른 오라가 연기처럼 뿜어진다.
번뜩!
그때 생명체가 아베크로스를 주시하는 안광을 번쩍이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 살기는 보이쉬와 케이논이 내뿜는 것과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아베크로스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내 아들과 보이쉬의 기운이 모두 느껴진다.. 설마..'
마신. 그는 생애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시운이 슬며시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난 관전하면서 쉬고 있을테니 이거 하고 한 번 붙어봐. 이제 슬슬 끝낼 때도 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