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4화
대한민국의 헌터
중국 광저우 한복판은 피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메두사는 팔짱을 낀채 데스나이트를 흘겨봤다.
“몸이 근질근질해 죽겠는데 왜 이런 인간을 지키고만 있으라고 하는거야! 야. 너 혼자 지키고 있으면 안 되냐?”
메두사는 조대호의 얄미운 뒷통수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주군의 말을 어길 셈이라면…….”
데스나이트가 등뒤로 손을 뻗어 거검에 손을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뭐! 뭐?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이 시커먼 자식아. 너랑 저번에 몸이 뒤섞여서 한 몸이 됐을 때 기분이 얼마나 찝찝했는지 알아?”
메두사의 소매 밑으로 독사가 머리를 내밀며 데스나이트를 노려봤다.
“딱히 너도 내 스타일은 아니야.”
“어디 못생기고 덩치만 큰 깜둥이 자식이!”
“조용히 좀 하지? 좀 근엄하게 있을 수는 없냐.”
메두사와 데스나이트가 티격태격 기싸움을 벌이는 그 사이로 조대호는 그들의 대화는 귀에 들려오질 않았다.
‘이건 대박이야.. 무조건 담아야 해.’
이시운의 모습을 특수고글에 담아야 한다. 권력욕이 충만한 대호는 협회의 부회장 자리를 확신받으려면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야, 야! 어디 가?”
메두사가 겁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대호를 보고 소리쳤다.
“나를 엄호해줘요. 난 이시운을 촬영해야 해요.”
“주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서겅!
데스나이트가 거검을 뽑아 들고 대호의 머리에 겨누자.
“이, 이시운 씨의 모습을 꼭 담아야 합니다. 협조해주세요.”
대호가 ~씨 라는 호칭을 붙이자 데스나이트는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우리 주군도 허락한 바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동시에 데스나이트가 전방으로 튀어나가 마수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어이, 뱀머리! 너도 이 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동참해라!”
“지랄하네. 길을 열라 이 말이야? 네가 뭔데 명령질이야!”
“주군의 뜻이라고 하지 않나!”
그제야 메두사는 툴툴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며 마수들을 상대했다.
데스나이트와 메두사가 대호의 양측에 서서 마수들을 도륙내며 길을 만들었다.
“좋아요.”
성큼성큼.
대호는 겁 보다도 지금 목숨을 걸고 확실한 성과를 내서 협회장이 뱉은 말을 주어담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 이봐! 조심해!”
그때 메두사가 대호에게 소리쳤다. 엄호하는 둘보다 한참 앞으로 걸어간 대호에게 날아든 마수 한 마리는 대호의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캬아아아-!
그때 대호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마수의 목덜미를 낚아채서 힘으로 밀며 저지했다.
‘뭐, 뭐야?’
조대호가 힘으로 마수를 억누르자 마수가 씩씩거리며 거대한 앞발을 들자 대호가 오른발로 마수의 복부를 걷어차고 거리를 벌려냈다.
푸슉!
-키에에에에…….
놀랍게도 대호의 손에 들린 활에서 튀어나간 세 개의 화살이 마수의 뒷통수에 그대로 꽂혀서 흔들리고 있었다.
‘뭐, 뭐지?’
뒷통수에 깊게 박힌 화살로 인해 마수의 두 눈이 개구리 눈알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대호는 놀라면서도 본능에 몸을 맡겼다.
퉤에에엣-!
마지막으로 쏘아버린 화살은 마수의 뱃살이 파동칠 정도로 강하게 박혔다.
마수가 눈에 힘을 잃으며 늘어졌고 메두사와 데스나이트는 그 모습에 놀랐다.
조대호는 오른손에 들린 자신의 활을 보며 입을 벌렸다.
‘여기서 헌터 능력을 사용할 수가 있다고?’
그런 생각과 동시에 조대호의 활은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고 대호는 눈이 커졌다.
‘방금 뭐였지? 이 현상은…….’
분명 헌터능력을 발휘했다.
대호는 한 번 더 능력을 사용하려고 속으로 시동어를 외치며 캐스팅을 해보았지만 방금과 다르게 인벤토리조차 열리지 않았다.
‘방금 전 이 현상은 이시운과 관계가 있다.’
S급 헌터인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메두사와 데스나이트의 도움으로 이시운이 있는 곳에 겨우 도착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해요.”
“시끄러! 더 다가갔다간 우리도 휘말린다고.”
메두사가 대호의 팔을 붙잡고 뒤로 끌었다.
대호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시운의 모습을 고글에 담았다.
‘맘 같아선.. 말이라도 걸어서 멘트 하나라도 뽑고 싶네.’
특수고글의 줌업 버튼을 누르며 대호는 치솟는 욕심을 가만히 눌렀다.
* *
이시운은 간극의 융합으로 탄생한 전사와 마신 아베크로스의 검투를 가만히 지켜봤다.
카카카캉-!
전사와 마신은 서로에게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초당 검과 검이 수십 번을 마주치며 공수를 이어갔다.
두 개의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서로의 몸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둘은 비명 하나 내지르지 않고 검투를 이어갔다.
‘아베크로스의 검이 더 날카롭다.’
아베크로스의 검이 전사보다 빠르고 예리했다.
전사의 검신은 마신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마신의 검은 틈틈이 전사의 갑주와 팔을 그어냈다.
투투투투-!
마신의 공격에 속도가 더 붙으며
폭풍같은 검격이 전사에게 쏟아졌다.
전사는 마신의 검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저 갑옷과 투구가 내구력이 상당한 모양이군.’
보이쉬의 가죽으로 된 전사의 갑주는 확실하게 단단해 보였다.
점점 마신이 휘두르는 검의 속도가 빨라졌다.
전사의 갑주가 그 검에 무자비하게 긁히기 시작했다.
반면 전사는 투철한 내구력을 앞세워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그때였다.
파장창-!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신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부서져 반이 잘려나간 마신의 검이 땅에 박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끝난건가.’
이시운이 그런 생각을 한 그 순간.
전사의 검이 마신의 명치를 꿰뚫었다.
마신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왼손으로 전사의 투구를 당기고 오른 주먹으로 전사의 갑주와 투구를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전사의 동공이 흔들렸다.
“푸욱-!”
그때 이시운의 흉부 깊숙한 곳에서 역류하는 느낌이 들면서 시운의 입에서 허공으로 피가 토해졌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휘청이던 그 순간.
“괜찮아?”
“주군!”
메두사와 데스나이트가 다가와서 시운을 일으켰다.
“난 괜찮아.”
그때 시운의 등뒤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현무가 시운의 등에 손을 대고 힐을 넣고 있다.
“고맙다.”
현무는 묵묵하게 시운에게 힐을 넣었고 시운의 몸에 요동치던 격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차차차착!
마신이 뒤로 신속히 물려나며 전사와 거리를 벌렸다.
마신은 고개를 떨궈 자신의 구멍난 배를 바라봤다.
“……바람의 군왕이여.”
투쿵!
전사도 마신을 향해 걸어가다 한쪽 무릎을 꿇고 휘청였다.
“고생했다. 이제 내가 나설테니 넌 더 움직이지 마라.”
“……반드시 제 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전사는 의지를 다지며 일어서려 했지만 내상을 가득 입었는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야.”
이시운이 손을 허공으로 내뻗자 후방에서 강력한 함성과 함께 달려온 것은 시운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마족이었다.
마족들은 새로운 형태로 마신을 향해 눈을 이글거렸다. 그것을 본 마신의 눈매가 깊게 가늘어졌다.
“……흥미롭구나. 일단 이 전쟁은 여기까지다.”
마신은 등뒤로 생겨난 게이트에 몸을 움직였고 순식간에 마신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마족들은 자신들의 신의 사기가 꺾인 것을 느끼며 좌절감을 느끼고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광저우의 대혈투는 그렇게 끝났고 하늘은 이시운의 손을 들어주며 막을 내리는 듯 했다.
* *
광저우의 대혈투로 인해 세계는 모두 이시운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한국에 저런 헌터가 있었다니..
-그 괴물들을 죽이고 다시 살려내서 군대로 태연히 써먹는 그 모습은 진짜 머리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럼 헌터 중 최고는 저 사람이겠네?
-중국은 대한민국에게 절이라도 해야겠네.
마신이 항복을 선언하고 사라졌을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빌라, 아파트 단지, 자동차 안, 카페.
가릴 것 없이 그 순간만큼은 고성방가를 내질렀다.
“……씨발 내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럼 이제 중국은 기사회생 한 거네.”
“와아아! 우리나라 사람이 반지의 대왕급 블록버스터를 보여줬네. 국뽕 차오른다.”
“저 헌터 이름이 이시운이라고 했지?”
세계는 경악했고, 대한민국은 그렇게 난리가 났다.
바로 그 시각.
미국의 대통령 댄 워커는 자택에서 쏟아지는 물에 샤워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우리에겐 큰 위기다.’
샤워 호스를 잠구고 거울을 바라본 댄 워커의 낯빛에는 수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며 욕실에서 나와 침대에 앉고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폰 액정에는 대한민국의 젊고 앳된 헌터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세계에 대재앙이라 불리우던 그 거신이 사라졌음에도 댄 워커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몇십 년 전 1위의 기술력 자리를 놓고 러시아와 미국은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고.
미국은 달에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려 달 탐사에 성공했다.
그 탐사 영상은 전세계에 송출됐고, 그 여파로 미국은 라이벌인 러시아를 꺽고 지금까지 기술력 및 군사 강대국 1위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허나.
이번 광저우의 사태는 그 강대국의 자리를 대한민국에 넘겨준 꼴이 되고야 말았다.
현대식 군무기로는 대한민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핵 미사일로도 막지 못한 거신을 대한민국의 헌터 하나가 처리하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이로서.
미국에 조아리던 여러 나라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눈을 돌릴 것이고 미국의 그 위상은 이제 떨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바로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헌터 한 명 때문이다.
-대통령님. 면목이 없습니다.
미국 협회장이 그 사실을 못 박기라도 하듯 전화해서 그렇게 말했었다.
“후우...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와장창!
댄 워커는 주먹으로 거울을 내리쳐 부셔버린 채 반대쪽 손을 핸드폰에 가져다댔다.
-대통령 각하…….
수화기로 미국 최강의 헌터 유리스의 육성이 들려왔다.
“…말해 봐. 자네가 대한민국의 그 헌터보다 떨어지는가?”
다짜고짜 그것부터 물었다.
끓어오르는 댄 워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려면 그 대답이라도 듣고 싶어서 묻는 것이었다.
-……그건 모르겠고 일본의 카와시보다는 대한민국의 헌터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니미 씨발.”
그 말 뜻을 알아들은 댄 워커는 좌절했다.
카와시는 유리스와 동급 전력을 가졌다는 반열에 오른 최강의 일본 헌터.
그 카와시보다 강하다는 것은 결국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돌려말하며 인정한 셈이었다.
* *
중국에서 이시운에게 특별 전용기를 내주었고, 시운은 전용기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저, 저기다!”
“이시운 헌터님이야!”
“헌터님! 여기 한 번 봐주세요!”
공항에서 걸어나오는 시운은 연신 터져나오는 플래쉬에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았다.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이시운에게 몰려들었다.
“이시운 헌터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고 계신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리 비켜요! 나도 질문 좀 하자.”
“헌터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시운은 이런 과도한 관심이 아직 낯설었다.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들이 이시운이 걷는 속도에 맞춰 그를 찍어댔다.
“저기, 기자님들! 이시운 헌터님은 아직 회복이 다 되지 않으셨습니다. 추후에 인터뷰를 전할 계획이니 다들 물러나 주세요!”
인상을 쓴 조대호가 기자들에게 말하며 경호원 역할을 했다.
조대호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 이거 참.”
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헌터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 말씀이라도 좋습니다.”
기자가 시운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대호가 그 마이크를 쳐내려 하자 시운이 대호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국 측에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기자 한명의 질문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기대하던 질문이였으니까.
이시운이 입을 조용히 열었다.
“일단 중국의 빠른 회생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 그리고.”
말을 멈춘 이시운에 따라 기자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행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줘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