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화
사냥개
이시운의 말에 움직이던 기자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 말에 의미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중국조차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인가?
기자들은 시운의 눈을 쳐다보고 순간 입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게 치켜뜬 그의 두 눈.
반면 시운은 눈에 힘을 주고 기자들을 쳐다본 것이 아닌 일반적으로 보는 것일 뿐이었다.
‘살기 스탯 때문에 괜히 기자들 겁만 주는 느낌이네.’
“헌터님! 헌터님이 이끄는 그 수많은 괴수들은 위험성이 없나요?”
그 말에 시운이 피식 웃었다.
“충분히 착한 아이들입니다. 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아이들이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말에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시운의 말 중 “아이들” 이라는 표현은 그들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그런 무지막지한 괴수들을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다니.
“마지막으로 제가 할 말만 하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시운의 말에 순간 장내에 침묵이 묘하게 흘렀다.
“…2주 뒤에 기자회견을 열 생각입니다.”
“기자회견이요?”
“…어떤 것에 대한 기자회견을 말씀하시는 거죠?”
“헌터님!”
이시운은 그 말을 끝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사라졌어.”
“……방금까지 분명 여기 있었는데?”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주위를 두리번 거릴 뿐이었다.
* *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후라이팬에서 요란하게 뿜어진다.
시운은 고기를 허겁지겁 집어 먹는다.
“역시 엄마가 구워주는 삼겹살이 최고야.”
“시운아. 너 어디 다친 데 없어?”
시운의 어머니가 시운을 요리조리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 이제 난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어른이야.”
“어른은 무슨! 엄마 눈에는 넌 그냥 항상 애기야, 애기.”
어머니가 시운의 밥에 김치와 버섯을 올려준다.
한편 시연은 시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너... 내 동생 맞냐? 맞는거지?”
시연이 시운을 마치 귀신 보듯이 훑어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바 좀 하지마.”
시연은 이시운이 이젠 자기 동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의 두 눈이 영상이 흘러나오는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이게 정말 너라고? 너 맞아? 동명이인 아니고?”
시연이 영상 속 이시운을 가리키며 절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운아. 네 뒤에 저 괴물들은 뭐냐?”
아버지가 물었다.
그의 눈에는 신기함과 놀라움이 가득 뒤섞여 있었다.
이시운은 씩 웃었다.
“날 도와주는 친구들이야. 아빠.”
“…대체 난 뭐가 뭔지 아직도 믿을 수가 없구나.”
-대한민국의 S급 헌터 무사히 귀국 후 갑작스레 사라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속보에 눈을 두었다.
자신의 아들의 이름이 온갖 언론에 대서특필 되어 보도되고 있다.
부모로서의 마음은 놀랍기도 하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그런 마음이다.
그때 시연이 시운의 어깨를 탁탁 쳤다.
“그럼 네가 헌터들 중에서 가장 강해?”
그 물음에 시운은 그저 방긋 웃었다.
“세상에 강한 사람들은 많아.”
이시연은 스마트폰에 둔 두 눈을 떨며 입을 가린다.
“아아... 다시 봐도 진짜 이게 네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시운의 어머니는 손으로 상추를 펴서 김치와 버섯 그리고 쌈장을 찍은 고기를 올려 쌈을 싼 뒤 시운에게 내밀었다.
“엄마. 내가 싸먹을게.”
“시끄럽고 얼른 입 벌려. 넌 지금 잘 먹어야 돼. 정말 몸 괜찮은 거지?”
어머니가 싸주는 쌈을 입에 씹고 오물거렸다.
자식이 성공하든, 인간을 넘어선 존재로 강해지든 간에 어머니에게는 그저 아이로 보일 뿐인 것이다.
-주군! 저 분께서 우리들에 대해 존재를 물으셨는데 내가 인사라도 드릴까?
그때 데스나이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으음…….
여기서 데스나이트가 튀어나와 버리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실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잽싸게 속으로 데스나이트의 제안을 거부했다.
데스나이트는 뭔가 아쉽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잘 먹었습니다.”
“밥 한 공기 더 먹어.”
“괜찮아. 너무 배가 불러.”
시운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말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거신은 죽지 않았어. 언젠가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거다.’
아늑한 침대에 누웠지만 시운의 맘은 편치가 않았다.
죽였어야 할 거신은 죽지 않고 신형을 감췄다.
‘분명 녀석은 모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몇 가지 추측들이 뇌리로 스쳐갔지만 아직 장담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터널 라이프의 마지막 퀘스트가 발동되지 않았다는 거다.’
거신을 처리하러 갈 때 떠올랐던 이터널 라이프의 알람.
그로 인해 이번 거신과 관련되어 퀘스트가 뜰 줄 알았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마지막 퀘스트인 그 이터널 라이프의 퀘스트를 완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나 뿐만 아니라 그 검신과 관련된 회귀자들이 모두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를 진행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추측이지만.
이 추측이 맞아 떨어진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아직 풀리지 않은 실마리들이 많다.
‘일단.. 내가 해야할 일은 이주일 뒤다.’
그 일은 이렇게 세상의 이슈가 내게 집중되었을 때 해야 한다.
일단 시운은 밀려오는 상념들을 조용히 억누르고 눈을 감았다.
휴식 또한 성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지친 뇌와 몸을 쉬어주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헌터님. 앞으로도 헌터로서 우리 대한민국을 더욱 빛내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을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이시운 씨. 당신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주셨고, 세계 안보의 위기를 막아주셨습니다. 국민의 대표로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시운은 고양감에 잠기는 기분이다.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살면서 대통령과 전화를 하게 될 일이 생길 줄이야.
전생이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대통령은 이시운의 공로를 크게 인정하여 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이시운은 거절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대통령에게 남겼다.
대한민국을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주는데 힘 써주세요.
라고 말이다.
또한 중국의 주석 서진핑이 이시운을 직접 초빙해 극진이 대접하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으나 거절했다.
거절하면서 그에게 단 하나의 말만 남겼다.
대한민국과 한 약속은 꼭 지켜달라고.
그 말에 서진핑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재차 반복하며 내놨었다.
중국을 괴멸시킬 뻔한 거신보다 강력한 존재가 이시운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후우-.”
살결을 스치는 겨울바람에 입김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시운은 넓은 스타디움 경기장을 돌아봤다.
이 스타디움은 관계자에게 말해 오늘 하루동안 빌린 것이다.
“불러내 볼까.”
그 순간 빈 스타디움의 지면에서 수만 개의 손이 튀어나오면서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수만 개의 언데드들의 눈이 시운을 향했다.
그들의 눈빛이 아직도 묘하게 느껴진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당신들 덕분에 난 거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시운의 말에 언데드들이 기묘한 눈빛을 번뜩여온다.
거신과의 전쟁에서 마족들을 상대로 언데드들은 근성있게 싸웠다.
이 들은 따로 무기를 들지 않고 팔 다리가 잘려도 생명줄이 붙어있을 때까지 마족의 목을 물어뜯는 근성을 그 싸움에서 보여주었다.
“당신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한이 많을텐데 마지막으로 이승의 공기라도 쐬라고 부른거야.”
그 말에 언데드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쨌거나 그들은 거신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중국인들.
그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들만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라도 하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언데드왕이 시운을 향해 걸어왔다.
“……저희들을 위해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난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시운의 말에 언데드왕을 비롯해 모든 언데드들이 숨을 죽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국적은 아니지만 같은 사람들이잖아.”
“저희를 보내주겠다는 말은 성불 시켜주겠단 말씀입니까?”
언데드왕의 물음에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 없는 사람들을 내 소환수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야.”
"....."
우우우우우-
곧 언데드들의 육성이 들려왔다.
그 육성은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지만 흐느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다들 편히 가도록 해.”
“잠깐만요.”
언데드왕이 시운을 급히 불렀다. 더 할 말이라도 남은 걸까?
“…저희들을 이렇게 만든 그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놈과 다시 마주치게 되겠지. 그때 내가 당신들의 복수를 대신 해줄게.”
“………당신. 아니, 주군을 돕고 싶습니다.”
오오오오-!
언데드왕의 말에 뒤이어 언데드들도 함성을 질러왔다.
마치 자신들도 같은 뜻이라는 듯이.
“이승에 미련이 남아선가?”
“아니요. 우리들의 생을 앗아간 그 놈들을 끝까지 죽이는 데 힘을 보태고 싶기도 하지만 저는 당신의 따뜻한 면을 보았습니다.”
“그럼 내 소환수로서 남아있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사람냄새 나는 주군을 돕고 싶습니다.”
언데드왕이 뒤돌아 언데드들을 바라봤다.
언데드들은 언데드왕의 눈빛을 받아 검은 로브들 속에서 저마다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이들의 뜻도 그러하다는데요?”
시운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언데드들을 빙 둘러보았다.
이 들이 끝까지 내 편에 남아준다면 정말 든든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시운의 입가가 희게 올라갔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고. 그래. 당신들의 힘을 헛된 데다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대답에 언데드들의 힘 실린 함성소리가 천지로 울려 퍼졌다.
* *
곽대익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VIP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협회장실로 이동했다.
여비서가 협회장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협회장님. 사신 길드와 에로스 길드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걔네가 왜?”
“…서울에 게이트가 열릴 것을 대비해서 길드 전 인원이 대기 중이라고 하는데요?”
게이트가 열려?
“박태석에게 들은 이야기를 믿고 있는가 보군. 일단 그대로 대기하고 있으라고 전해.”
그렇게 말하고 협회장실로 들어왔다.
애연가인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시가부터 입에 물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길드인 사신과 에로스가 박태석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일들을 제쳐두고 서울에서 대기 중이란다.
‘그 녀석의 영향력이 그 정도였었나.’
그때 수화기에 불이 번쩍이는 것을 보며 시가를 든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협회장님. 접니다.
박태석이었다.
“자네가 사신과 에로스 길드원들을 서울에 배치시켰지?”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초대형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자네는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냥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박태석은 이유를 말하기 싫어하는 듯 했다.
그러나 태석은 헛소리를 내뱉는 타입이 아니다. 그가 했던 말들은 지금까지 모두 맞아떨어졌다.
그 정도로 헌터업계에 있어선 믿을만한 인물이니까.
다만.
“그냥 그렇게 알면 된다고? 나 협회장이야.”
-알고 있습니다만?
“내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결론만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 말씀 드릴까요?
태석의 감정없는 육성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겨있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무슨 사실?”
-협회장님은 곧 사임하게 될 겁니다.
“뭐? 뭐라고?”
-그때까지 협회장님이 할 일은 서울의 거주민들에게 공문을 발표하고 통제하는 일입니다.
“잠깐만. 너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드릴 말씀은 다 드렸으니 이만 끝겠습니다.
“야, 야! 박태석이!”
그렇게 그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대익은 물고 있던 시가를 부러뜨리며 다시 수화기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수화기의 불이 또 번쩍거렸다.
곧바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박태석. 야, 이 새끼야! 방금 했던 개소리를 다시 말해봐.”
-이시운입니다.
“…아, 자네인가.”
박태석의 전화인 줄 알았건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가 아님에 급하게 흥분을 가라앉혔다.
“밥은 먹었나?”
-이제 저는 5일 후에 기자회견을 열 예정입니다.
“듣긴 들었네. 근데 왜 기자회견을 연다는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딱 5일 드리겠습니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5일 안에 협회장직에서 자진으로 사임 하시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기자회견은 그대로 취소되지 않고 열릴 겁니다.
곽대익은 둔기로 후두부를 가격당한 것 마냥 눈이 크게 뜨여졌다.
“이시운..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지금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토사구팽을 당하기 전 사냥개가 주인을 물어뜯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