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6화
새로운 협회장
뚜- 뚜- 뚜-
수화기에서 끊긴 신호음을 멍하니 듣던 곽대익은 모니터에 시선을 박았다.
-지금 협회장님의 이메일을 확인해보시죠.
이시운이 했던 말대로 협회장은 자신의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순간 그의 두 동공이 떨리며 굳었던 낯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메일 속에는 곽대익이란 인간이 행한 범죄들에 관한 자료가 가득 들어있었다.
대익이 전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시가 담긴 녹취록과 아직까지 찾지 못했던 전 대통령의 유골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눈에 거슬리는 헌터들을 간살하라는 녹취록들.
그리고 그가 행한 수많은 정재계 로비들에 대한 자료까지.
자료들을 확인하던 곽대익은 비로소 이시운의 경고가 객기가 아니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길들이던 사냥개가 내 목을 물어 뜯을 범 새끼였다니.’
이시운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대체 어떻게 녀석이 이런 자료들을 다 들고 있단 말인가?
‘죽일까?’
협회장 나름의 권력을 행사해 본다?
곽대익은 고개를 저었다.
전 세계에 이목을 끌고 있는 이시운에게 당장 위해를 가한다면 그 일을 절대 조용히 묻게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시운의 뒷배에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수만 이상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헌터가 생길 줄이야..’
헌터 이시운에 대한 분노란 감정이 점점 공포감으로 뒤바뀌는 듯 했다.
대한민국에 웬만한 정치인을 가뿐히 뛰어넘는 영향력과 권력을 지닌 곽대익의 뇌리로 그가 손쉽게 간살한 헌터들의 얼굴이 생생히 스쳐갔다.
항상 뻣뻣하게 서 있던 곽대익의 목에 힘이 풀리고 그의 고개가 푹 떨구어졌다.
“……이럴 수는 없다.”
자존심을 내세워서는 될 때가 아님을 느껴버린 그는 냉정하고 신속히 움직여야 할 때임을 인지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협회장실을 나갔다.
항상 헌터들 위에 군림하던 그가, 이제 헌터 한 명에게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임을 직감하고서.
* *
“귀찮은 것들은 이제 그만 시켰으면 좋겠는데?”
메두사가 이시운을 보며 툴툴거렸다. 시운은 그에게 씨익 웃어주며 그녀를 소환을 해제시켰다.
시운의 방 안 공간에 있던 메두사의 인영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곽대익을 절벽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회귀에 대한 정보 덕분이야.’
그랬다.
1회차와 2회차 그의 인생에서 시운은 공통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가 회귀한 시점으로부터 딱 두 달 전 박문수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실체는 시운의 나이가 서른이 되던 해에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졌다.
-전 대통령 박문수를 암살한 것이 바로 한국헌터협회장 곽대익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그 뉴스를 보도하던 앵커의 떨리던 육성이 아직도 생생히 들리는 듯 하다.
박문수의 유골로 파악된 장소까지 그 때 밝혀졌다.
이시운은 그 정보를 토대로 그가 차갑게 묻혀있던 그 산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재림의 능력을 행하여 박문수를 소환할 수 있었다.
전 대통령 박문수의 영혼은 이시운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
이시운은 그 정보를 토대로 그가 말했던 인물들의 자택에 메두사의 뱀을 풀어 그들의 핸드폰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수집했고, 그것들은 곽대익의 숨통을 조일 증거가 되었다.
-헌터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제 한을 풀어주시고, 국민들을 농락한 그 놈의 작태를 세상에 꼭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박문수가 그렇게 말했었다.
‘내 재림의 능력은 죽은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재림시켰던 죽은 사람들은 유석의 동생과 전 대통령.
그 둘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끔찍하게 죽었다는 점.
‘...어쩌면 이 능력은 한이 맺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떠도는 원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을 때.
방의 창문 너머로 지상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맹인의 감각을 사용하니 그 소리는 또렷히 귓가에 들려왔다.
“여기가 S급 헌터 이시운님의 집이라고요?”
“자, 자. 자! 비켜주세요. 취재해야 하기 때문에 협조 바랍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기자님들!”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있구나.
귀찮긴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시운은 검은 챙모자와 차키를 챙기고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이시운 헌터님이다!”
“헌터님! MBN에서 나온 이정호 기자입니다!”
기자들이 쏜살같이 몰려들었으나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이시운을 보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뭐, 뭐야?”
“사라졌어요.”
“저번에 인천공항에서처럼 또 놓친 건가!”
몇 시간 이상을 기다려 목표를 눈앞에 두고 놓친 기자들은 낙심한 얼굴을 지었다.
‘좀 지나갑시다! 좀, 좀.’
이시운은 은신을 사용해 그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주차장으로 간 뒤에 차를 몰고 아파트 밖을 빠져나왔다.
아직까지는 이시운의 차량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진 않은 듯 하다.
알려지게 된다면 그때는 대통령에게 부탁해서 신변보호요청을 진행하면 그만이다.
* *
곽대익의 전화를 받고 도착한 곳은 곽대익의 저택.
시운을 맞이한 곽대익은 한껏 굳은 얼굴이었다.
“왔나?”
“오지 않으려다가 전화로 끝내지 못한 말이 더 있어서 해주려고 왔습니다.”
“잘했네. 일단 좀 들어가자고.”
이시운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화로운 저택의 광경이 보인다.
이 저택의 지하실에 권총을 소지한 용병을 숨겨놨을 수도 있으나 시운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털썩.
“뭐하는 겁니까?”
집 안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곽대익은 시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난 자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네. 내가 여기서 어물쩡하게 봐달라고 한다면 자네는 단칼에 거절할 것이잖나?”
무릎을 꿇은 곽대익을 이시운은 조용히 내려다봤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고, 권력의 맛에 취해 대통령까지 죽인 악인이 무릎을 꿇은 채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 결정은 번복할 생각이 없어요.”
“제발... 제발 부탁하네. 그동안 해왔던 내 일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다고?”
이시운의 눈매가 번뜩였다.
그 눈빛을 마주할 수가 없어 시선을 내리깐 곽대익의 육안으로는 사치스러운 대리석 바닥만 비춰질 뿐이다.
“반성하겠네. 평생 반성하고 살겠네. 내 말은 진심이네. 그러니 제발 그 자료들을 기자들에게 뿌리진 말아줘.”
“닥쳐. 난 당신을 잘 알아. 당신을 그대로 내두면 훗날 내 등에 칼을 꼽으려고 하겠지.”
“절대 그렇지 않네.”
곽대익은 말없이 일어서서 거실 시계 뒤에 감춰진 비밀금고를 열고 검은 가방을 꺼내서 시운에게 내밀었다.
“수표로만 250억이네.”
활활활!
이시운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수표 뭉텅이들을 블레이션으로 모두 불태웠다.
“자, 잠깐.”
수표들이 불에 타들어가자 곽대익이 벌떡 일어났다.
“당신 얘기는 더 듣지 않겠다. 됐고. 내 말을 잘 들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비밀계좌에 묶힌 돈 모두를 꺼내서 당신이 죽인 헌터들의 유족에게 전달해.”
“제발.. 난 가족이 있네.”
“지랄하네. 그럼 당신이 죽인 헌터들은 가족이 없었나?”
“제발.. 제발! 제발!!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네. 돈이든 권력이든 뭐든 주겠네. 자네를 부협회장 자리에 올려줄 수도 있어. 혼자 모든 걸 해먹게. 그렇게 해줄 수 있게 내가 모든 것을 지원하겠네.”
곽대익이 머리를 급히 바닥에 박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딴 악어의 눈물 따위는 시운에게는 가소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방금 내가 한 말 들었지? 당신에 의해 고인이 된 분들의 유족들에게 그 검은 돈을 모두 전달해. 그리고 당신은 협회장 자리에서 자진으로 사임하도록 해라. 더 말이 길어지면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뒤에 뉴스에 당신의 이름이 떡하니 떠오를거야.”
“제, 제발! 제발!”
“혼자 그렇게 머리나 처박고 있어라.”
그리고 뒤돌아 나가는 이시운의 뒷모습을 곽대익이 바라봤다.
항상 사람을 찍어누르는 그 맛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이런 수치심과 절박감을 느낀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듯 했다.
대리석 바닥의 차가운 온도가 정수리에 닿아있는 감각을 느끼던 곽대익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반드시 이 수모는 되돌려주겠다.’
* *
4일 뒤.
이시운은 소파에 앉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속보! 한국헌터협회장 곽대익 자진 사임 의사 밝혀.
그리고 영상이 전환되며 기자들 앞에선 곽대익의 수척한 얼굴이 티비에 비춰졌다.
“갑자기 자진 사임을 하시겠다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한국의 헌터에 대한 미래만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는 떨리던 입술을 멈췄다. 곧 그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그럼으로 인해 건강도 많이 나빠졌고, 가족들에게 소홀해지게 되고 번아웃이 찾아오더군요. 이제 제 자리는 누군가에게 넘겨주려 합니다. 그 분께서는 저를 대신해 한국의 헌터들을 빛내주시길………”
“지랄하고 자빠졌네.”
가식으로 뒤덮인 곽대익의 혓바닥이 뱉어내는 저 말들이 웃기지도 않게 들려왔다.
“곽대익. 이제 갈 시간이다.”
이시운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헌터님.
기자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힘차게 받았다.
“제가 드린 자료 이제 풀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뚝.
이제 시운은 추후 속보로 곽대익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인과응보를 지켜보면 될 뿐이었다.
시운은 대익에게 그의 손에 죽은 유족들에게 검은 돈 모두를 전하라고 한 이유는 검찰이 찾아내서 압수하지 못할 그의 더러운 돈이 유족들에게 힘이 되길 원해서였다.
“한 명 더 남았지.”
-추가로 들리는 소식입니다! 한국헌터협회 윤동석 부협회장도 자진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또한 이시운에 의한 것이었다.
윤동석은 세상을 멸망시킬 카인과의 비리가 있다.
그 비리는 절대 눈 감아줄 수 없었다.
‘그대로 놔두면 또 그 카인이란 놈과 계획을 짤 수도 있으니.’
윤동석의 자료 또한 기자들에게 넘긴 상태다.
곧 대한민국은 이 더러운 작자들의 행태에 의해 들썩일 것이다.
시운은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어 본인과 본인 가족의 철저한 신분보호 요청을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이 헌터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야 당연히 해드려야죠.
청와대를 경호하는 특별 경호팀이 당분간 시운과 그의 가족을 보호할 것이다.
시운은 혹시 모르니 헤라클레스에게도 부탁을 해놓은 상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켜져있던 티비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앵커의 육성으로 들려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박문수 전 대통령의 죽음이 협회장 곽대익 씨와 관련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끝이다. 곽대익.”
이시운의 양 입꼬리가 여유롭게 올라갔다.
저 속보가 터졌으니 검찰들은 곽대익과 그에 관련된 인물들을 모조리 털어버릴 것이다.
뒤이어서 윤동석에 대해서도 말이다.
* *
세상은 협회의 비리와 추악한 음모로 인해 왈칵 뒤집힌 상태다.
한국헌터협회 건물에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대통령 암살 게이트’ 에 가담된 인물들이 수갑에 차인 채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한국헌터협회에서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협회장의 자리가 공석인 채로 계속 둘 수는 없습니다. 빨리 차기 협회장의 자리를 채워놔야 합니다!”
임원 박 씨가 말했다.
그들에 의해 임원들은 고심하는 얼굴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야망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함부로 자신이 협회장이 될 의사가 있음을 말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협회가 세상의 표적이 된 순간이다.
그로 인해 털어보면 하나, 둘 이상의 먼지가 나오는 그들은 협회장의 자리에 대한 욕망을 억눌렀다.
“이번에는 협회장을 추진하는 방식을 바꿔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사장 이수관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방식을 바꿔보자니요?”
그들이 의문의 눈을 보냈다.
한편 그들의 회의를 지켜보던 조대호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래. 좋아. 이사장. 그대로 말하고 내 이름을 올려.’
조대호는 이미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공로를 세웠고, S급의 헌터이기도 했고 일류대학까지 나온 그는 충분히 그 자리를 기대해볼만 했다.
조대호는 이사장 이수관과 두터운 친분이 있었고,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기분 좋게 떠올렸다.
-협회장을 선정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제가 조 헌터님을 추천할 수도 있지요.
임원들의 대화가 이어져갔다.
그리고.
“……그러니까 단순 경영에 빠삭한 사람이 아니라 직접 헌터의 몸으로 이계와 게이트에 대한 숱한 경험을 가진 고랭크 헌터를 협회장으로 추진하자는 말씀이지요?”
조대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바라는 대로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지금 협회장 사태 때문에.”
그럴만도 했다.
협회장은 고랭크 헌터 출신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이제 다른 방식으로 협회장을 추진한다면 협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명분이 된다.
“주주들의 의견도 들어봐야죠!”
“차기 협회장 자리에 누굴 붙여본단 말이죠?”
“음….”
“추천해볼만한 헌터가 하나 있긴 하죠.”
이수관의 말에 임원들이 호기심 섞인 눈이 그에게로 모였다.
‘그래. 그 인물은 조대호.’
조대호는 무릎을 툭툭 두드리며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수관의 이어진 말은 조대호의 얼굴을 벌레 씹은 표정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화두에 오른 헌터 이시운 씨를 협회장으로 추진하는 거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