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17화 (217/278)

제 217화

미래가 바뀌다

“이시운 헌터를 말입니까?”

박 씨가 답하며 눈을 꿈뻑였다.

그 뒤로 임원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낯빛을 지었다.

그때 조대호가 정적을 깼다.

“협회장 자리를 하기에는 그 친구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흐음.”

“음. 이제 이십대 중반이라고 들었는데.”

대호는 임원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헌터협회를 지휘하는 협회장의 자리는 헌터에 대한 지식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생경험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 친구는 이제 막 군대에 갔다 온 사회 초년생의 나이입니다.”

대호는 줄줄이 말을 하고서는 이사장을 숨 죽이며 노려봤다.

‘당신이 날 이렇게 통수를 칠 줄이야?’

이사장은 대호의 눈빛을 무시하고 입을 뗐다.

“나이가 어리긴 하죠. 허나 그 헌터는 확실한 엘리트입니다. 헌터자격시험 만점 출신에 생존 서바이벌 우승 출신. 그리고 역대 최대 단 기간의 S급 헌터. 그리고 이번 중국에 대한 일까지. 말을 해도 입만 아프죠.”

“머리도 좋고, 헌터에 대한 능력도 엄청나게 우수하지만 확실히 어리긴 어리지.”

“……그래도 잠시 앉혀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으음…….”

조대호는 지금 자신이 최대한 나서서 말을 끼워 넣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SS급 국가 최고의 전력인 박태석은 일년 전에 협회의 권력에는 관심도 없고 뜻도 없다고 밝혔었다.

그러므로 그는 후보에서 자연스레 제외된 상태.

“최소한 30대는 돼야 그래도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감이 그래도 좀 잡혀 있죠. 너무 어립니다.”

30대도 뭐.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이제 30대 중반인 대호는 그렇게 합리화 시키려 말했다.

그때 이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국민들은 협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합니다. 그 불신을 확 누르려면 이시운이라는 헌터가 협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답이지요.”

“그건 그렇죠.”

“그 말이 일리가 있긴 해요.”

조대호의 눈빛이 칼날같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속으로 이사장을 죽이고 싶었다.

그는 조용히 이사장의 목덜미를 노려보며 손을 떨었다.

‘그렇게 내 뒷통수를 쳐? 여기가 이계였으면 조용히 당신의 목덜미에 화살을 처박아 줬을거다.’

이사장은 대호가 아닌 신아영을 바라봤다.

“헌터님의 생각은 어때요?”

국가의 전력이라 불리는 S급 헌터들은 충분히 이 임원 회의에 참석할 명분이 되었다.

그래서 그 중 한 명인 신아영도 참석해 말들을 듣고 있던 것이었다.

신아영은 대답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제 생각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같이 던전을 공략한 경험으로 봐도 이시운 씨는 눈치도 빠르고 사람의 무엇보다 생명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짐이 되던 헌터 한명을 끝까지 지켜냈었어요.”

“인성도 좋나보군요.”

신아영의 답에 임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걸 듣던 조대호의 낯빛만이 우그러졌다.

‘이 시발년이?’

* *

협회는 자금에 의해 경영되는 회사와 시스템이 유사하다.

그 경영 시스템에 어느정도 공권력이 더해진 것이 헌터협회였다.

이사장 이수관은 협회의 대주주들에게도 그 의견들을 물어보았다.

“난 찬성입니다. 그 헌터라면 우리나라 위상은 물론이고 뭐든 다 막아낼 것 같아요.”

“뭣보다 우리 스폰서나 투자자들 중 대부분이 중국 큰손들이라 나도 그 부분에 동의합니다.”

“올릴 사람 없으면 이시운 헌터를 올려버리죠.”

그들은 협회장 자리에 이시운이 추천되는 것에 우호적이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투자하는 중국 큰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중국은 대한민국의 헌터 이시운을 국민영웅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사장 이수관은 시간을 내서 전 협회장 유영준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뵙네요. 자문을 좀 구하고 싶어서 이렇게 들렸습니다.”

이수관은 유영준에게 이번 협회장 추천 건에 대해 설명하고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 친구는 일단 관상도 좋고 엘리트 출신에다가 이번 중국 사태를 해결한 것에 아주 큰 공신이기도 하고…….”

“그럼 협회장님의 생각도 저와 같다는 말씀인거죠?”

“하하. 이제 협회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은퇴한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요.”

영준은 수관의 답변에 대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도 협회에서 굴러먹은 세월이 벌써 몇 십 년입니다. 그래서 사람 보는 안목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그 친구…….”

수관은 전 협회장 유영준에 대해 빠삭히 알고 있었다.

비리도 없고, 특히나 협회 경영에 있어서 탁월한 것도 있지만 그가 협회에서 가장 신뢰받을 수 있었던 부분은 바로.

‘사람을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안목이였지.’

사람을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못해 신이 들린 무당급이란 별명까지 있을 정도였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그 친구는 뭘 하던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친굽니다. 게다가 눈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는데 그 친구 눈빛이 참 예사롭지 않아요.”

영준은 핸드폰으로 이시운의 영상을 관찰했다.

“………눈빛만 봐도 알아. 이 친구 눈빛은 그 어린 나이의 눈빛이 아니야. 깊이와 내공이 있어.”

* *

대한민국은 ‘곽대익 게이트’ 에 의해서 완전히 뒤집어진 상태다.

“더럽고 짐승같은 협회는 당장 모든 계좌를 오픈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

“앞이 창창한 헌터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심지어 전 대통령까지 죽인 협회장과 관련된 끔찍한 협회는 당장 국민들에게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하늘을 뚫을 듯이 솟은 한국헌터협회 사옥 건물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의 도메인의 주 내용은 ‘협회’ 였다.

‘충분히 분노할 만도 하지.’

검은 모자를 눌러 쓴 이시운은 시위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공감하면서 협회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이사장실로 향했다.

시운을 맞이한 이사장 수관은 눈을 빛내며 그를 반갑게 반겼다.

“헌터님! 이번 중국에서의 일을 실시간으로 잘 보았습니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시운은 본론부터 말했다.

이사장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와 안면도 없고 그가 호출을 할 이유가 궁금했다.

“제안 드릴 게 하나 있어서 헌터님을 부른 겁니다.”

“그 제안이 뭐죠?”

물음에 수관의 얼굴에서 웃음끼가 싹 가셨다.

“헌터님을 협회장으로 추진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안이 벙벙했다. 협회장은 협회 최고의 권력이며 유명한 정치인보다 영향력이 있는 위치다.

“헌터님께서는… … ….”

수관은 이시운을 협회장에 추진하려는 이유에 대해 오목조목 설명했다.

듣고 있던 시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를 화살 방패로 쓰겠단 건가요?”

그 말에 수관의 뒷목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보통내기가 아니네.’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이시운의 눈빛에서 뭔가 모를 공포심이 느껴졌다.

“지금 협회 여론이 상당히 안 좋은 건 맞지만 헌터님을 협회의 여론을 돌리기 위해 우리가 추천하는 게 아닙니다. 헌터님의 자질을 보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건 이사장님 혼자만의 의견인가요?”

이시운이 물었다. 이사장 혼자만의 생각인지 협회측의 생각인지 궁금했다.

“……주주들과 임원들의 뜻도 저와 일치합니다.”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제안은 갑작스러운 제안인 건 저도 알지만 헌터님에게 아주 좋은 제안이기도 합니다.”

협회장의 자리에 오르면 많은 돈도 만질 수 있고, 인맥도 넓힐 수 있고 일반인들이 꿈도 못 꿀 여러 가지 혜택이 제공된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고민을 끝내는 데 며칠이면 될까요?”

“…결정했습니다. 지금 말씀드리죠.”

“오.”

수관의 낯빛이 환하게 번졌다. 고민을 좀 해본다더니 지금 당장 말하겠다는 것을 보면.

아주 좋은 제안이라는 말 뜻을 이시운이 제대로 이해한 듯 하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헌터로서의 신분에 만족합니다.”

“저, 저기. 헌터님. 잠깐만요.”

의외의 답변에 수관은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

“다시 생각해 볼 마음은 없습니다. 여론을 뒤집는 데 쓰여지기도 싫고 그 자리에 흥미도 없습니다. 안 좋은 여론은 당연한 국민들의 분노에 의한 것이니 담담히 받아들이시고 국민들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협회를 경영하세요. 제 말은 여기까집니다.”

“이런…….”

수관은 목례를 하고 나가는 시운을 더 잡지 못했다.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너무도 완고한 내공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진짜 보통이 아니네.’

그는 유영준에게 들었던 말이 이제야 몸소 실감이 났다.

* *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길드 사신과 에로스 길드의 길드원들이 서울의 광화문 앞에 모여있었다.

수로만 따지면 족히 250명의 헌터들.

그들의 얼굴은 긴장한 듯 굳어있었다.

수많은 헌터들 뒤로 의경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신의 마스터 이환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유동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시운이 했던 말이 본인의 전력이 우리 사신 길드 전원보다도 강하다고 했었어요.”

“그건 단순한 객기가 아닐거야.”

이환의 대답에 유동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중국 사태 라이브를 지켜보고 영상을 분석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현의 눈이 저 멀리서 무표정으로 서 있는 박태석에게로 움직였다.

“박태석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 꽂히던데요?”

“어쩌면.”

이환도 박태석을 바라봤다.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최고의 헌터라 불리는 저 멸룡의 귀재보다 이시운이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그때 에로스 길드 마스터 박영훈이 불쾌한 낯빛을 내비췄다.

“말 좀 조심합시다.”

박영훈이 툭 내뱉자 에로스 헌터들이 일제히 이환을 노려봤다.

“뭐요? 내 생각을 말한 것 뿐인데.”

“그대 생각은 그대 머리로만 하고 말로 내뱉지 말아요. 태석 님에 대해 뭘 안다고.”

“뭐 해보자는 건가?”

이환과 박영훈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그때 이환이 다가가자 에로스 길드원들이 살기를 내뿜었다.

“어이, 에로스님들! 우리 마스터 몸에 손 하나라도 된다면 여기서 바로 전쟁이요.”

사신 길드원들 또한 에로스 길드원들의 눈빛에 지지하고 노려봤다.

사신과 에로스 이 둘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1,2 위를 다투는 대형길드지만 특히나 사이가 좋지 않은 라이벌 구도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들이 허공에 만나면서 주위 공기까지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들의 눈빛이 순간 풀어졌다.

“그만들 하시죠? 다 같이 힘을 합해야 하는데 서로 싸우면 곤란하잖아요?”

다가온 박태석의 기척에 그들은 표정을 풀었다.

“사신 길마님께서 박태석님께 말을 함부로 하시는 바람에…….”

박영훈이 말하자 이환이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 이시운님이 박태석님보다 강한 것 같다고 가볍게 입을 털길래 제가 한마디 해준 것 뿐입니다.”

“…그래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난 괜찮습니다.”

그걸 들은 태석은 웃는 표정 그대로 이환을 바라봤다.

“본의 아니게 실례했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태석은 호탕하게 이환의 사과를 받아줬다.

헌터들 사이에서 이런 비교는 사실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지만 태석은 여유롭게 넘어갔다.

“역시.. 대인배십니다.”

박영훈이 태석을 마치 존경한다는 듯이 말하자 태석은 손사레를 친다.

이환은 그런 박영훈을 속물같은 병신새끼라 생각하면서도 방금 태석이 다가온 장면을 떠올렸다.

‘...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리 현계라지만 S급 번뇌의 검 이환은 소리도 없이 다가온 박태석의 기척조차 못 느낀 것에 놀라워 했다.

“다들 피곤하겠지만 조금 더 대기합시다!”

태석은 그들에게 마치 상사처럼 말하고서 그들 틈에서 잠시 멀어진 뒤 주머니춤에서 울리던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댔다.

-말 한 그대로 돈 좀 발랐네. 특히 에로스 쪽에 돈을 좀 발라놨는데.

김수혁이었다.

그 말에 방금 에로스 마스터 박영훈의 태도가 이해가 갔다.

“돈이 좋긴 좋군.”

-아직 소식은 없나?

“좀 기다려 봐야 알 것 같다. 아직 게이트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아.”

-하루 빨리 제거하는 게 낫지 않나?

제거라는 단어에 항상 웃던 얼굴인 태석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 당신은 그저 기다리고만 있어. 내 뒤는 알아서 지원하고.”

-나한테 날 세울 필요 있나? 아무튼 알겠네.

태석은 전화를 끊고 주머니춤에 넣으려는 핸드폰을 다시 귀에다 가져다댔다.

“네! 박태석입니다.”

그건 협회측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헌터님! 인천에 있는 게이트에서 이상한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

“이상한 현상요? 자세히 말해봐요.”

인천에는 이계와 현계를 있는 대형게이트가 존재한다.

그 게이트는 몇십 년간 별 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그 순간.

-허, 헌터님 방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대형게이트에서도 이상한 현상이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차분하게 말해봐요.”

-게이트의 색이 바뀌면서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들려오고 있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태석은 급히 전화를 끊자마자 잠시 눈을 감았다. 흑색의 시야가 조금씩 뚜렷해진다.

그리고. 그 미래의 광경들을 본 박태석의 눈이 번뜩 뜨였다.

‘어째서지? 미래가 바뀌었다.’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차분함을 가진 멸룡의 귀재 박태석.그의 눈은 화등잔만큼 커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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