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9화
천세정의 매력적인 제안
“무엇을 창조하는 힘을 가졌단 말이지?”
시운이 아콘에게 물으면서 알람을 기다렸다.
[아직 불가능한 힘은 해방할 수없습니다.]
‘…아직은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추후에 해방할 수 있다는 힘이 된다는 뜻이군.’
그렇다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단 말일까?
바람의 군왕과 검신 레딘.
이 두 가지는 분명 어떠한 연관이 있을 터.
그게 뭘까?
상념이 뇌리를 휘감고 있는 그때 아콘의 육성이 그 상념을 깨트렸다.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전해 듣기로는 바람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서….”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사실 너무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라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오래전?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던 거지? 그리고 넌 바람의 군왕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시운의 질문에 아콘은 허공을 바라보며 기억을 끌어올리듯한 표정을 비췄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천신전쟁에 참여하셨었고 바람의 군왕을 모시며 전장에서 신들을 상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돌아오신 후. 제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까마득히 오랜 시간 전 들었던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할 것이다.
‘천신전쟁이라..’
천신전쟁.
최초로 인간이 신과 대립하여 그들의 침공을 막아낸 역사적인 대 전쟁이다.
질겅질겅!
그때 옆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옴에 그곳을 쳐다봤다.
“크흠!”
입가가 피로 훌쩍 젖은 언데드왕이 뭔가를 씹고 있다가 이시운의 눈치를 보면서 움직임을 멈췄다.
“뭘 먹고 있는거냐? 그거... 설마..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지?”
시운의 예리한 눈으로 언데드왕이 방금 초토화시킨 마수의 살점을 껌처럼 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거 맛있냐?”
“생각보다 먹을만한데요? 양고기 맛이랄까.”
언데드왕의 앞니에 끼여있는 마수의 살점을 보자.
시운의 표정이 벌레 씹은 듯이 바뀌었고 언데드왕은 순간 씹는 것을 멈추고 살점을 목구멍 속으로 꿀꺽 넘겼다.
시운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중국인들은 진짜 아무거나 먹는구나.’
언데드왕은 대화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운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주군.”
“그래, 그래. 또 뭐 기억난 것이 있나?”
아콘의 낯빛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졌다.
“바람의 군왕은 신들에게서 인간들을 지켜낸 뒤 또 한 번 신들이 침공할 것을 우려해 그 자리에서 자신의 힘을 세 개로 분리시켜 세상에 퍼뜨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흩어진 세 개의 힘은 인간이 되어 자손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 자손을 바람의 후예라고 알고 있습니다.”
“흥미롭군.”
영화보다 더욱 영화같은 이야기였다.
그때였다.
[이터널 라이프의 ‘해방’ 퀘스트가 공명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시운은 마지막 남은 이터널 라이프 퀘스트가 방금 들은 이야기와 관련이 있단 것을 직감했다.
* *
시운은 뉴욕에 출몰한 대형게이트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보스턴으로 이동하여 미국 최고의 헌터 길드 ‘아메리칸탑팀’과 협력하여 보스턴에 열린 게이트 속 던전을 붕괴 시키는 데 일조했다.
“뭐? 한국의 이시운 헌터님이 보스턴의 던전까지 마무리 했다고?”
그 소식을 전화로 들은 미국의 헌터협회장 데이나는 급히 전화를 끊고 이시운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이시운입니다.
“헌터님! 저는 미국의 헌터협회장 데이나입니다. 우리나라의 위기를 해결해주신 것에 큰 감사의 표현을 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바쁘지 않으시다면 지금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데이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이시운의 대답을 기다렸다.
세계적인 헌터이자 세상의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그와 이렇게 통화를 하는 순간이 감격적이다.
특히나 중국의 거신과 혈전을 치룰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이시운의 팬이 되어버렸다.
꼭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제안할 것도 있고 말이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바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만나시죠.
“아아……. 헌터님이 그러하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또 용건이 있으신지?
“아, 나중에 만나뵙게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시운 헌터님!”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도록 하죠.
수화기를 내려놓은 데이나는 이시운 헌터와 일대일로 통화를 했다는 기쁜 사실을 잠시 그대로 느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협회장실로 찾아온 것은 유리아였다.
데이나는 유리아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 고생 많았어. 그래. 이시운 헌터는 실제로 보니 어떻던가?”
“저.. 협회장님.”
웬만해선 떨지 않는 유리아가 귀신을 본 것처럼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자 데이나는 의아했다.
“……왜 그래? 자네 표정이 안 좋은데?”
“이시운 헌터는…….”
“그래. 어서 얘기해봐.”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인간일 수가 없습니다, 그건.”
유리아는 보스턴의 게이트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를 떨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좀 설명해봐!”
성격이 급한 데이나가 다그쳤다.
“자네보다는 확실히 강하다고 생각이 드나?”
미국 최고의 헌터 유리아에게 그런 질문은 실례란 걸 알았지만 그보다 큰 호기심은 그런 생각을 떨치고 그 질문을 묻게 했다.
“…단순히 나보다 강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탑팀의 헌터 전원을 합친 것보다 강합니다. 아니……. 전세계 모든 S급 헌터들을 모조리 합쳐놓은 것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지저스!”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대답에 데이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반드시 그 헌터님을 만나봐야겠어.”
그와 동시에 이시운 헌터를 만드시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치밀었다.
* *
시운은 미국 대통령 댄 워커가 손수 저택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전용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날아갔다.
공항에 도착하자 수 많은 기자들과 의도치 않게 생겨난 이시운의 수많은 팬들이 떼지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시운 헌터님이다!”
“와!”
“헌터님! 팬입니다!”
그들은 시운의 팬임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시운에게로 달려가려다가 공항의 경호원들에게 제지 당했다.
차차차차차-!
뒤이어 시운에게로 플래쉬가 터지며 기자들이 질문을 하려고 다가왔으나 시운은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뭐, 뭐야? 없어졌어.”
“…저번에 공항에서도 이렇게 놓쳤잖아.”
“젠장! 잘 찾아봐요!”
기자들이 먹이를 찾는 사냥꾼처럼 주위를 미친 듯이 두리번 거릴 때 이시운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비켜 공항을 빠져나갔다.
집에 도착한 이시운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톡이 수백개가 와있다.
-야야야야... 시운아. 아니 헌터님... 괜찮냐? ㅅㅂ 진짜 걱정 엄청 하고 있다.
친구 현찬의 톡과.
-나중에 내 인방 한 번 출연해주라. 시운아... 이제 니가 너무 다른 사람 같이 보여.. 밥 한 번 먹자고도 톡 못 보내겠다.
승훈의 톡과 그 밖의 여러 카톡들이 즐비해 있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답장을 해준 뒤에 곧바로 포털사이트로 접속했다.
메인에는 세계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이시운. 미국에서 방금 날아오다!]
그중 방금 공항에서 찍히 자신의 모습이 대문짝하게 실려있다.
세계는 난리가 난 상황이다.
미국은 일단 안전해졌고.
대한민국에 열린 게이트도 처리한 상태.
그 밖에 지도에서 지워진 나라들도 많았다.
일본은 도쿄의 허공에 출몰한 게이트를 해결 중이다.
벌컥! 벌컥!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며 피로감을 날려버렸다.
‘현재 문제가 되는 나라는 세 곳이다.’
영토에서 완전히 지워져버린 나라는 제외하고 영국과 터키. 그리고 프랑스가 열린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괴수들에 의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는다면 곧 그 나라 또한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고.
그 자국민들은 모조리 죽고 말 것이다.
현재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은 이시운을 부르던 그 마기를 뿜어내던 그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단 것이다.
그 의문은 일단 머리에서 털어내고, 지금은 일단 해야할 일이 있다.
‘한 번 해볼까.’
묘안을 떠올린 이시운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거리낌없이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할 수 있는 위치는 되었다.
긴 연결음이 지나고 박문수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님! 몸은 괜찮아요?
“대통령님. 부탁 드릴 것이 좀 있습니다만.”
-뭐든 얘기하세요.
“지금 당장 전용기 세 대가 더 필요합니다.”
전용기 세 대라는 말에 놀란 듯 박문수가 기침을 했으나.
-바로 준비해드리죠. 근데 어떤 의도로 사용하실 건지 좀 궁금합니다만?”
대통령이 시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일국의 총수가 어린 청년에게 긴장하고 있었다.
“……제 아이들을 영국과 터키 그리고 프랑스에 보낼 생각입니다. 그 해당 나라의 대표들에게는 이 뜻을 잘 전달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박문수는 아이들이라는 표현에 잠시 침묵을 하다가 이내 답했다.
“일어나라.”
전화를 끊은 시운 앞으로 언데드왕과 아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근데 여긴 어디죠?”
그들은 시운의 집 주위를 신기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 집이니까 뭐든 때려 부술 생각은 하지 말고 너희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시운은 아콘과 언데드왕에게 프랑스와 영국에 가서 마수들을 물리치고 게이트를 처리하라고 설명했다.
아콘과 언데드왕은 각각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군사들이 있으니 전력에서 밀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언데드왕이 나직이 대답했다.
언데드왕은 사실 본래 평범한 인간이었는지라 별 걱정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시운은 아콘을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아콘. 넌 전용기 타고 날아갈 건데 거기서 깽판을 치거나 사람들에게 무력을 함부로 행사하면 안 된다.”
“보이는 것은 모조리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주군!”
“응. 아니야. 네가 상대해야 할 것은 마수다.”
“흐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인마! 노력은 해보겠다니. 절대로 민간인은 건들면 안 돼!”
“…나를 화나게 하는 인간만 없다면 별일은 일어나질 않을 겁니다.”
“하.”
시운은 멍하니 아콘의 등쪽에 메여있는 타이탄의 금빛방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얘는 혼자 보낼 수는 없겠네...’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바람의 신호를 사용해볼까?’
이시운은 바람의 신호를 통해 헤라클레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헤라클레스! 지금 우리 집으로 와라. 10초 준다.
세 시간 후 현관문을 열고 반팔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다.
“형님! 부르셨나요?”
“10초 준다고 했는데 세 시간이나 걸렸네? 그리고 지금 겨울인데.. 반팔을 입고 있네. 안 춥냐?”
“……추운게 뭐죠?”
“아니다.”
“그보다 세정 누님이 형님을 지금 급히 찾으시는 것 같던데요?”
“그것보다도. 헤라클레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그때 아콘이 헤라클레스를 심상찮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얼굴에 웃음기를 지워버리고 살기를 띄웠다.
“너 말이야. 몸이 굉장히 좋군.”
아콘이 헤라클레스를 보고 말하자 헤라클레스도 아콘의 괴력적인 근육질 몸매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진데?”
“난 육탄전에서 져본 적이 없다. 네 몸을 보니까 일반 인간의 형태가 아니다. 나랑 무력으로 한판 붙어보지 않겠나?”
“좋지. 좋지. 형님! 허락해주실래요?”
“이 근돼 새끼들이….”
시운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콘과 헤라클레스가 주군 이시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니들 싸우라고 부른 게 아니야. 헤라클레스! 넌 이 아콘이라는 녀석과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 헤라클레스! 네가 해줄 역할은 이 녀석이 말썽을 부리는지 감시하고 저지하는 역할이야.”
* *
KS그룹 빌딩 앞.
시운은 후드모자를 쓴 채 빌딩을 올려다봤다.
세계가 떠들썩한 데도 상관하지 않은다는 듯 대기업의 높이 솟은 빌딩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도움될 이야기가 있다고?’
천세정이랑 전화를 걸었고 그녀가 시운에게 꼭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한다고 오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가 보고 싶어져서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전화로 말하라고 했고 세정은 꼭 만나서 해야겠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그러나 세정의 호출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녀가 내게 꼭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했고.’
‘둘째 전생의 검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천세정이었으니 그녀와 만난다면 이터널라이프 퀘스트의 충족 조건이 혹시 채워지진 않을까 해서.’
횡단보도의 불이 바뀌자 시운은 사람들이 걷는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게 빌딩 안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본부장실.
문을 열자 세정이 뿌리는 특유의 은은하고 상큼한 향수가 느껴졌다.
“왔어?”
사무복장을 한 천세정이 시운의 얼굴을 보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었다.
세정의 자리에 있는 고급스러운 명패가 눈에 먼저 띈다.
-본부장 천세정.
고개를 드니 항상 긴 생머리던 그녀의 머리가 단발로 바뀌어 있었다.
단발로 머리칼을 자르니 그녀의 작은 얼굴이 더욱 조막해보였고.
눈부실 정도로 예쁘던 얼굴에 이젠 귀엽고 단아함까지 묻어나는 듯 했다.
여기서 세정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낯선 기분이다.
그녀의 앞에 털썩 앉자 직원이 시운에게 커피를 내왔고, 세정은 걱정하듯 시운의 얼굴을 오목조목 살폈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근데 난 지금 해야할 일이 있거든.”
“상당히 바쁜 모양이구나?”
세정은 한편으로는 좀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시운은 묵묵히 세정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뭐야?”
“성격이 더 급해진 것 같네. 너한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그래.”
제안?
제안이라면 거래를 말하는 건가?
“넌 내 여자친구지만 그 이유만으로 내가 널 돕진 않을거야.”
시운은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기에 딱 잘라 말했고, 지금은 부탁을 들어줄 시간도 없었기에 그렇게 던졌다.
세정은 그런 시운을 보며 대견하단듯 씩 웃었다.
“시운아. 너한테 아주 큰 도움이 될만한 매력적인 제안을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