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0화 (220/278)

제 220화

천세정의 매력적인 제안 (2)

대한민국 인천 부평동에 열린 S급 게이트던전.

에로스와 사신, 이 두 길드의 연합으로 던전 속 모든 마수들을 처리한 상태다.

이제 보스만을 앞둔 상황.

열 명의 인원들이 보스룸을 앞둔 채 마지막 정비를 끝낸 상태다.

그런데 팀의 리더 이환은 아까부터 못마땅한 표정이 가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태석 씨의 지시가 납득이 안 가네.”

그가 툴툴거린 이유는 박태석이 하필이면 S급 던전에 딱 열 명의 인원만 출격하란 지시를 내려서다.

이환은 팀원들에게 납득이 가냔 눈빛으로 한명 한명 바라보았다.

“다른 더 강력한 게이트가 출몰할지도 모르니 최소한의 전력을 여기다 배치한 거 아니겠나?”

장준이 그렇게 말했으나 이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저씨. 사신과 에로스 길드원들을 합치면 이백 명이 넘어요. 빠르게 많은 인원들을 투입시켜서 단숨에 게이트를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죠.”

“자네 말도 일리는 있는데…….”

장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음을 흘리자 뒤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있던 에로스 헌터 이영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박태석님의 뜻이 다 있겠죠. 거 왜케 불만이 많아요?”

“지금 이 인원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우리 명문 에로스의 A급 헌터 네 명에 S급 전력인 신아영 씨하고 당신까지 있는데. 뭐, 겁이라도 나나 봐요? 사신 길드의 마스터는 그렇게 간이 작은가?”

에로스의 탱커 박규태가 도발했다.

“어이, 에로스 형씨들? 이 던전을 클리어 해본 적은 있고 떠드는 거요?”

이환은 팀 리더로서 감정소모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이들이 무지성으로 박태석을 옹호하는 데다가 사신 길드에 반감을 이딴 식으로 드러낸 것이 화가 났다.

“클리어 해본 적은 없지만 그냥, 깨부수면 그만이잖아요!”

에로스의 힐러 윤지가 이환에게 빈정대자 이환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신 길드원 박 씨와 유 씨가 사신 길드원들을 째려봤다.

“내가 볼 때는 우리 마스터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보는데?”

“지금 팀원의 리더는 우리 마스터님입니다. 우리 길드에 적대감 있는 건 알겠는데 그딴 식으로 유치하게 굴지 마요. 존나 찌질해보이니까.”

“뭐요?”

박규태가 벌떡 일어나며 사신 길드원들을 쏘아보았다.

그는 유명한 다혈질로 잘 알려져 있었으나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진 않았다.

지금 앞에 있는 번뇌의 검 이환과 빙결의 여제 신아영을 상대하기는 벅차다는 걸 아니까.

“다들 그만 하고요!”

기잉-

신아영이 검을 땅에 긁으며 저지했다.

“이렇게 길드간의 반감으로 감정소모를 할 시간에 빨리 보스를 처리하고 나가는 게 빠를 거 같은데요? 불만 있으면 앞으로 나와요. 빠르게 상대 해줄테니까.”

아영의 말에 에로스 헌터들이 틱틱 거리며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저 썅년은 얼굴만 반반해가지고 싸가지는 더럽게 없단 말이야.’

‘S급만 아니었어도.’

‘확 그냥 따먹어버릴라. 얼굴은 맛있게 생긴게 언제 봐도 성격이 지랄 맞다니까.’

이환이 한숨을 쉬고 앞을 바라봤다.

음산한 공기와 현계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가 난다.

전방으로 허공에서 떠다니며 움직이는 부유물이 보인다.

이 광경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이 던전은 크로아의 성지다.’

이환이 과거 최정예 길드원들과 함께 이 던전을 클리어 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코 쉽지 않은 던전이다.

특히나 보스 크로아는 정신계 공격을 가해서 헌터들의 뇌파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특히나 위험하다.

“언쟁들은 이쯤으로 하고! 이 부유물들을 건너야 합니다. 저 앞에 보이는 성지가 보스 크로아의 성지예요.”

전원이 이환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움직이는 부유물을 밟고 가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죠?”

영우가 물었다.

이환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아득히 깊은 지상을 가리켰다.

“저곳에 추락해서 뼈가 아스라지겠죠.”

이환의 말에 에로스 길드원들은 긴장을 했으나 A급 헌터들답게 집중력을 끌어올려 부유물들이 움직이는 패턴을 캐치했다.

“조심만 하면 어려울 건 없을 것 같네.”

영우는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그렇게 말했다.

“박규태 씨? 먼저 건널래요?”

이환이 묻자 박규태가 성난 눈썹을 위로 들어올렸다.

“왜 나보고 건너라고 하는거요? 당신이 이 던전 클리어 해봤다면서? 그럼 먼저 시범을 보여야죠.”

“나보고 간이 작다면서? 그럼 당신이 겁 없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봐요.”

“크흠…. 아까 일은 꺼내지 맙시다.”

이환은 규태의 그 모습을 보며 가소롭게 웃어주고서는 전방을 바라보고 도약 자세를 취했다.

“내가 먼저 건널테니 다들 잘 따라와요.”

타탁!

이환이 앞발을 짚고 그대로 박차고 전방으로 포물선을 그리듯 점프했다.

“어, 어? 부유물 쪽으로 가야지!”

“뭐야?”

에로스 길드원들은 부유물 쪽으로 향하지 않은 이환을 걱정했다.

사실 걱정보다도 S급 전력인 그를 잃으면 상황은 난처해지니 그런 조바심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날았어?”

“……비행 스킬인가?”

에로스 길드원들은 움직이는 부유물들을 건너지 않고 단숨에 일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날아가는 이환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역시.. S급은 S급이네.”

* *

“뭐야? 보스가 없잖아?”

영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상해했다.

분명 보스룸에 도착했지만 보스는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이곳에 크로아가 있어야 하는데.”

이환이 무언가 이상한 것을 직감하고 주위를 예리하게 살폈다.

“여길 클리어 해봤다면서요? 여기가 보스룸 확실해요?”

“확실해요.”

“은신 스킬이라도 사용한 거 아닌가?”

“내가 상대했을 때 크로아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어요.”

파파파팍!

그때 신아영이 성검을 뽑아들어 주위를 향해 휘둘렀다.

그들을 에워싼 보스룸의 벽들이 그녀가 호를 그리며 쏟아낸 검격에 큰 균열이 생기며 아스라졌다.

“은신을 사용했다면 지금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어. 오빠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모두가 황당한 표정으로 무너진 벽을 바라봤다.

그들은 뭔가 불길함을 직감했다.

분명 보스룸에 있어야 할 크로아는 보이지도 않는다.

“감지력으로도 괴수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아요!”

감지계열 헌터 유영우가 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끄아악!”

사신 헌터 박 씨가 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뒤이어 헌터들도 밀려오는 두통에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건 크로아의 초정신계 공격이야! 다들 귀를 막고 의식이 무너지지 않게 집중해요!”

이환은 뒤틀리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크로아의 기척을 느끼려고 오감에 집중했다.

괴로워하는 헌터들의 귀에 피가 솟기 시작했다.

“끄악!”

“대, 대체 어디서 공격해오는 거야?”

그때 신아영은 자신의 손바닥에 툭 떨어진 피를 보고 고개를 들어 위로 화염구를 쏘아올렸다.

“저 위인 것 같아요!”

신아영이 말에 모두가 천장을 바라봤다.

아주 드높아서 높이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위로 화염구가 주위를 밝히며 위로 비상하고 있다.

솟아오르던 화염구가 뭔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러던 그때 모두의 얼굴이 싸하게 굳어졌다.

“뭐, 뭐야? 저거 보스의 사체 아닌가?”

“보스가 죽었는데 왜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거지?”

그들의 눈으로 온 몸이 처절하게 난도질 당한 채 천장에 붙어있는 보스 크로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사각!

섬뜩한 절단음.

영우의 머리가 잘려 날아가는 소리였다.

“끄아아악!”

박규태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이어 그의 허리가 잘려나가 허무하게 전신이 두 동강 나며 바닥에 늘어졌다. 주위로 그의 뼛가루가 난무하며 튀었다.

“어, 어디야?”

주위는 암전된 듯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다. 누군가가 시야를 막은 것처럼.

이환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섬뜩함에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다들 움직여요!”

이환이 소리쳤고 모두가 성지에서 빠져나와 부유물을 건너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그때 정신계 공격에 움직임에 집중하지 못한 정 씨가 지상으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그가 손을 뻗어 살고 싶다는 애절한 표정을 짓는 것을 차마 더 바라보지 못해 외면했다.

이환은 비행 스킬로 장준과 윤지를 들고 날아갔다.

그 뒤로 신아영이 부유물을 밟고 빠르게 뛰어오며 속삭였다.

“…이거 설마 그 초인 아닐까? 던전을 돌아다닌다는.”

신아영의 말에 날아가던 이환의 표정이 섬뜩해졌다.

상급 던전들을 차원을 통해 옮겨다니며 마수들을 포식하며 진화한다고 알려진 초인.

지금 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그렇게 설명이 가능했다.

“크어억!”

착지한 순간.

이환은 피를 토해내며 배를 감싸쥔 윤지를 보고 눈이 커졌다.

‘넌 대체 어딨는 거냐? 내가 기적조차 느낄 수 없다니..’

이런 짓을 하고 이런 힘을 가졌다면 분명 그 초인이 맞을 것이다. 인간인지 마수인지조차 모른다.

그 녀석이 맞다면 지금 이 전력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

“사, 살려줘요. 살고 싶어...”

윤지는 컥컥, 거리며 배에서 흘러나오는 내장을 손으로 감싸쥐며 떨다가 그녀의 뇌수가 수박이 터지듯 터져버림에 말을 잇지 못하고 늘어졌다.

-사각!

또 한 번 들려오는 섬뜩한 절단의 소리.

또 한 명의 헌터의 머리가 떨어졌다.

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이환과 헌터들은 던전 입구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크아아악!”

후방에서 들려오는 헌터의 처절한 비명.

“으억!”

또 한 명의 비명.

도미노가 하나하나 무너지듯이 헌터들의 머리가 차례차례 솟아오른다.

뛰어가던 장준은 울상을 지었다.

‘우리가 어찌할 없는 녀석이다... 지금 그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는 머릿속으로 이시운을 떠올렸다.

그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터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립게 느껴진다.

어느새 열 명이었던 헌터는 셋으로 줄어있었다.

그들은 뇌리를 뒤흔드는 정신계 고통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입구를 향해 뛰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감에 의해서.

그때 장준이 아영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아, 아영아!”

성대가 긁히듯한 장준의 육성이 뒤편에서 들려왔고. 따스한 체온이 아영에게 느껴졌다.

아영이 뒤로 돌아봤을 때.

“아저씨!!!”

장준은 아영을 지키기 위해서 십자 형태로 몸을 벌린 채로 아영을 바라봤다. 그의 이마에서 검붉은 피가 슬프게 쭈욱 흘러 떨어지고 있다.

“아... 아저씨. 왜 그러셨어요…….”

“...너는 죽기엔 너무 어린 아이니까. 부디... 살아서 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다오.”

장준의 얼굴이 찢어지면서 동시에 그의 육신이 좌우로 찢어졌다.

“아저씨……….”

잔인한 형태로 늘어진 장준의 사체를 보며 눈물을 쏟는 아영의 눈빛이 변했다.

“이건 검상이야...”

“아영아! 빨리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아영은 장준의 사체를 바라봤다.

그는 마치 검술의 장인이 마음을 먹고 검으로 벤 듯. 정확하게 반으로 두동강 난 채였다.

저것은 분명 검상의 흔적이다.

“이건 초인의 짓이 아니야.”

차캉!

아영이 눈을 질끈 뜨고 성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와! 널 죽여버리겠어.”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그 존재에게 말했다.

차캉!

이환은 차마 자신과 가까운 아영을 혼자 둘 수 없어서 그 또한 검명을 내며 검신을 내밀었다.

“초인의 짓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짓이란 말이지?”

그때.

신아영의 눈이 커졌다.

아영은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의 감각에 뒤를 돌아봤다.

그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S급인 자신으로도 대응할 수 없었다.

그녀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을 때.

이환의 배를 꿰뚫고 삐져나온 검신이 보였다.

“...누군지 알겠다, 너.”

이환은 피를 벌컥벌컥 쏟으며 자신의 뒤에 있는 존재에게 말했다.

분명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다가온 이 스산한 감각.

광화문 게이트 던전 앞에서 느꼈던 그 감각이 분명하다.

"...비열한 자식이였구나."

이환의 배를 뚫고 삐져나온 검신이 마구 돌아갔다. 내장이 뒤틀리는 감각에 이환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비명을 내지르며 아영에게 도망치라 외쳤다.

투욱.

이환이 앞으로 허망하게 고꾸라지자 의문의 존재가 천천히 신형을 드러냈다.

“S급이면서 죄다 쓸모가 없는 장비만 갖고 있군.”

그는 이환의 품을 뒤적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신아영의 눈이 커졌다.

그의 품 뒤로 아주 거대하고 압도적인 두 안광의 형태가 보였다.

“이건... 멸룡의 눈... 그리고 당신은…….”

그가 신아영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아영은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내공에 그대로 경직된 채로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박태석...”

“예정대로라면 네가 제주도에 갔을텐데 일이 꼬여버렸군. 간극의 거울을 내놔라.”

* *

이시운은 KS그룹 빌딩의 홀에 내려왔다.

그 사이를 지나고 다니는 직원들이 시운을 알아보고 눈이 커졌다.

“이시운 헌터다!”

“여긴 웬일이래?”

“그거 들었어? 이시운이 본부장님이랑 절친이래.”

“……진짜?”

이시운은 상념에 잠긴 채로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직원에게 반사적으로 목례를 했다.

“헌터님 팬이예요!”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여직원들이 화색을 띠며 쫄래쫄래 그에게 걸어왔다.

이시운은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반사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가, 감사합니다!”

그때 경호원들이 다가와 직원들을 제지했다.

직원들을 저지하던 경호원들도 힐끔 뒤를 돌아보며 이시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어때? 내 제안이?

제안을 했던 천세정의 육성이 떠올랐다.

그 제안을 들은 이시운은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길게 생각할 것도 없는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이시운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몸을 돌리고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댔다.

-벌써 결정이 끝난거야?

핸드폰으로 눈치도 빠른 천세정의 육성이 낭랑하게 들려왔다.

“그 제안 받아들일게. 계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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