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2화
신아영과의 동거
이시운은 신아영을 만나 마주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전신의 신경세포가 치솟는 소름돋는 전율을 느꼈다.
‘박태석의 영향력이 그 정도였나?’
던전 속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감사과는 물론이고 경찰조차 협조를 하지 않는다?
시운은 태석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들려왔던 시스템 음성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박태석은 아마 공인된 유명인으로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을 세뇌시켜 자신의 확고한 이미지를 고착화 시켜놓은 것 같다.
순간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카페의 2층에 있던 시운에게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신아영이 물었다.
그녀는 평소 표정조차 잘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것으로 빙결의 여제라는 칭호를 가진 여자다.
그런 여자도 지금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헌터협회는 물론 수사기관조차 협조 해주지 않고 있어요.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시간 안에 저는 죽을 거라구요.”
말을 마친 신아영의 얼굴이 참담해졌다.
“아영 씨가 간극의 거울을 가지고 있단 것도 박태석이 알고 있었다고 했죠?”
“네.”
“그 사실을 다른 누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어요?”
“없어요. 그 사실은 저와 돌아가신 그 분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에요.”
“제주도에 가는 것 또한 알고 있었고?”
“내 생각을 읽어낸 건 아닐까요?”
“아니요. 그건 아닐 거예요.”
이로서 확실해졌다.
박태석이 회귀자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역시 회귀를 통해 얻은 정보로 이익을 취하는 것.
또한 전생에서 제주도에서 신아영을 간살한 용의자는 박태석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시운에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박태석이란 자신을 헌터의 야망을 품게 해준 롤모델이었으니까.
‘박태석.. 회귀를 통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네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 속에 나란 정보는 없지.’
이시운은 이번 생에 처음으로 헌터가 됐으니까.
이 정보의 차이가 시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협회에서 걸려온 전화예요!”
신아영은 자신의 핸드폰이 드르륵, 진동을 내뿜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일단 받아보세요.”
신아영은 5분 정도 통화를 하고 끊었다.
“뭐라던가요?”
“감사과에서 심문조사를 한다네요.”
“박태석과요?”
“대질 심문이 아닌 저만 조사한다고 했어요.”
“시간은?”
“내가 최대한 미뤘어요. 3일 뒤로.”
이젠 어떻게 해야되지? 라는 눈으로 아영은 시운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지켜줄게요.”
“...네?”
“당분간 나와 같이 있죠. 아영 씨 혼자 있으면 위험할 겁니다.”
“...신세 좀 져도 될까요?”
“물론이죠. 당신은 착한 사람이란 걸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내게 줬던 간극의 거울 덕분에 중국의 그 거신을 퇴치할 수 있었고.”
시운의 말에 어둡기만 했던 아영의 낯빛이 환해졌다.
시운은 예리한 눈으로 미행이 붙었는지 확인한 뒤 카페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계단에 잠시 멈춰선 이시운이 물었다.
“박태석이 현계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던전 외에서는 못 봤어요.”
“아니, 아영 씨의 직감으로 대답해봐요.”
S급 헌터의 감각에 의한 직감이란 일반인의 직감과는 다르다.
신아영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일반 능력으로는 던전 공간으로 게이트 외에는 출입할 수가 없어요. 아마 뭔가 있는 것 같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시운과 아영은 나란히 카페에서 나갔다.
그리고 시운의 주차된 차 앞에 멈춰섰다.
“이젠 어디로 가죠?”
“아영 씨 집은 위험해요. 당분간 우리 집에 있어요.”
“...정말 그래도 돼요?”
“박태석에 대한 파악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은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참 고맙네요... 난 해준 것도 없는데.. 헌터님은 참 좋은 사람 같아요. 타임리스 던전에서도 장준 아저씨를 그렇게 지켜준 것도 그렇고..”
“나도 아영 씨에게 받은 게 있잖아요.”
말을 마치던 시운의 곁으로 메두사가 형태를 갖추고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본 아영의 눈이 커졌다.
“왜 불렀지?”
“저번에 날 위해 해줬던 거 알지?”
“..또 기계를 망가뜨려 달란 말이냐?”
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두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소형뱀들을 소환했다.
소형뱀들은 지렁이처럼 땅에서 꿈틀거리더니 카페 안으로 조용히 향했다.
“얘가 카페 안의 시시티비를 훼손시켜 기록을 삭제할 거예요.”
저건 뭐냐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아영에게 시운은 덧붙여 말해줬다.
“얘는 저번에 그 인간이구나?”
메두사가 혀를 낼름낼름 거리며 아영을 빤히 바라봤다.
“다, 다시 보게 되네요.”
메두사가 아영과 시운을 번갈아보더니 스산한 눈빛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너 이 자식 바람둥이였구나? 내가 네 안에서 지켜봤는데 넌 또 다른 여자가.”
시운은 표정을 구기며 메두사를 소환해제 시켰다.
“얘가 가끔 헛소리를 해요.”
“..방금 그건 소환수였죠?”
“뭐, 그런 개념이죠. 날 도와주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 정말 어디서나 그런 소환수들을 소환할 수 있군요. 그걸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이제 갑시다.”
시운과 아영은 차에 탔다.
아영은 조수석의 벨트를 매더니 물었다.
“근데 밥은 먹었어요?”
“아뇨. 아직.”
“시운 씨 집에 가면 제가 요리 해드릴게요.”
아영은 시운에게 고마웠는지 보답을 꼭 하고 싶다는 눈치다.
그 말에 시운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차를 몰고 시운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
아영은 시운의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더니 말문을 닫았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배달음식의 용기와 테이블에 묻은 라면국물. 그리고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시운의 팬티를 보고.
“아, 아. 너무 바빠서 집을 잘 치우질 못해요.”
그렇게 변명하고 일단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CK 검은 팬티부터 숨겼다.
“청소 해줄테니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래요?”
“내가 치워도 되는데...”
“깔끔하게 치워 줄 테니까 방 안에서 좀 쉬고 있어요.”
“아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치워준다는 말을 사양하지 않고 시운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우웅-.
거실에서 청소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다. 쟤 결벽증 있었지, 참.”
2회차 인생에서 헌터도 아니면서 S급 헌터들의 인터뷰를 봤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신아영은 더러운 곳에는 잠시도 잊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답한 기억이 이제야 난다.
일단 본의 아니게 신아영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됐다.
원래 이계의 도서관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계획이 바뀌게 됐다.
허나 회귀자 박태석이 S급들을 간살했다.
대한민국 헌터 전력의 꽃인 S급들이 그에 의해 하나하나 죽어간다면 결국 나라는 위기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그를 냅두면 후에 이시운에게 어떤 장애물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침착하게 고민했다.
박태석과 이시운 둘을 놓고 보면 시운이 가진 정보가 더 많다.
박태석의 전력은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고 그가 현계에서도 능력을 사용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박태석을 함부로 처리하려고 했다가 내가 당할 수도 있다.’
시운은 핸드폰으로 윤성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뭐.. 내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 또 부탁이 있어서겠지만. 여튼 반갑네요.
내심 서운하단 내색을 비추는 성혜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제로 깔고 박태석의 헌터 신상 파일을 열어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감사과에서 이번 던전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이 좀 많네요? 그것도 난처한 부탁들만 하는군요.
“죄송해요. 대신 한가해지면 꼭 소고기 쏠게요! 제가.”
-네, 네. 빈말이겠지만 꼭 그래야 돼요. 일단 알아보고 전화 줄게요.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기자 뭔가 윤성혜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협회에서 팀장직을 맡고 있는 그녀는 시운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항상 부탁을 하면 묵묵히 들어준 그녀에게 나중에 꼭 밥 한 번은 살 생각이다.
잠시 후 윤성혜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박태석 씨의 신상정보에 락이 걸려있었어요. 그래서 열람은 못했네요.
예상했던 바다.
-감사과의 친한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이번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 하는 분위기래요.
“덮는다고요?”
-최근 협회장의 그 사건도 있고... 협회가 시끄럽잖아요. 국민들은은 협회를 불신하고 있는 상태고. 여기서 또 큰 사고가 터지면 협회측도 난감할 테니까...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걸 덮으려고 한다니 그게 말이 돼요?”
화가 나는 마음에 끝음이 날카롭게 솟았다.
윤성혜가 잘못이 있는 건 아닌 것은 안다.
-나에게는 힘이 없어요. 시운 씨도 알잖아요?
“순간 욱해서 그만. 박태석이 협회에 다녀가거나 또 다른 소식이 있으면 연락 좀 부탁드려요.”
-알겠어요. 대신 나중에 한우로 꼭 얻어먹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전화를 끊은 시운은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심이 느껴졌다.
무고한 헌터들이 간살 당했는데 이것을 쉬쉬하려 한다니.
그때 노크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낀 신아영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괜시리 엄한 것을 시킨 건 아닌지 하는 마음에 좀 미안하기도 했다.
“깜빡하고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뭔데요?”
아영은 들고 있던 탈취제 페브리스를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빼고 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를 내리니 그녀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긴 생머리에 귀족같은 이목구비와 엘프같이 하얀 피부.
이렇게 보니 천세정에 버금가는 미녀긴 하다. 여배우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미모다.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장준 아저씨가 저를 위해 희생한 순간에 제게 준 것이 있어요. 그리고 제게 귓속말로 이시운 씨에게 이것을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그와 함께 아영이 건넨 것은 S급 스킬룬석이었다.
“……시운 씨가 타임리스 던전에서 아저씨를 살려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었나봐요.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듣자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아영의 손에 들린 룬석은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순간 빛을 내고 있다.
시운은 그 룬석을 건네받아 한동안 바라보고서 소중하게 인벤토리에 넣었다.
가슴이 착잡하다.
이제야 장준 아저씨도 그 던전에서 박태석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실감이 난다.
‘절대 쉬쉬하게 두지 않을거다. 반드시 공론화 시키고 헌터들과 아저씨의 설움을 녹여드려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참 좋은 분이셨는데.”
“아저씨는 조카같은 날 항상 예뻐해주셨어요. 내가 틱틱 거리고 신경질을 내도 항상 웃어주셨고…….”
아영은 감정이 복받쳤는지 말을 잇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눈꺼풀 밑으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달래주고 난 뒤 그녀는 나갔다.
‘아저씨 감사히 쓰겠습니다.’
세상이 혼란에 빠진 지금 S급 스킬룬석은 굉장히 회귀하고 시가도 오른 상태다. 헌터트레이션에도 사신과 에로스 길드들이 예산을 투자해 모조리 구매해버려서 이건 지금 어디에도 구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된 룬석이다.
이제 계획이 생겼다.
시운에게 거대한 적 하나가 또 생겼다.
박태석.
이젠 시운에게는 롤모델이 아닌 실체를 까발려서 감옥에 보내야 할 존재가 됐다.
‘이계로 가서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박태석을 부수고 그가 국민에게 세뇌시킨 그 환술도 풀 것이다.
잠시 후.
거실에서 아영이 부르는 소리에 거실로 향했다.
식탁에 앉아있던 아영이 이리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식탁에는 맛있게 조리된 빨간 김치찌개와 장조림, 멸치, 잡채, 메추리알볶음 등등이 있다.
냉장고에 넣어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서 만든 반찬같다.
일단 행동하려면 밥도 먹어야 한다.
한국인의 원동력은 밥심이라지 않나.
메추리알을 입에 우겨넣고, 김치찌개의 국물도 떠먹어봤다.
“와.”
너무 맛있어서 시운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입에 맞아요?”
“요리 잘한다더니.. 진짜였네요?”
“다행이네. 맛있게 먹어요. 아! 그리고.. 혹시.”
신아영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내려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집에서 입고 있기에는 좀 불편해보이는 셔츠와 연청바지가 보인다.
“아, 편하게 입고 있을 옷 필요하겠네. 잠깐만요.”
그녀에게 시운이 평소에 입던 후드티와 츄리닝을 건넸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썩 자기 스타일은 아니란 듯한 낯빛을 읽을 수 있었다.
아영이 방 안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머리를 묶은 얼굴. 그리고 그녀에게는 큰 시운의 후드티. 그리고 발끝보다 더 내려와 길게 끌리는 츄리닝까지.
그 차림으로 다시 그녀가 식탁에 앉았다.
“좀 옷이 큰데?”
그러면서 발목까지 츄리닝을 걷었다.
“아, 배부르다. 아 오랜만에 진짜 엄마가 해준 집밥 먹는 기분이였네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내보이며 슬쩍 목을 움츠렸다.
일단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다.
“지금 나와 이계로 갑시다.”
“이계로 향하는 게이트는 모두 닫혔잖아요.”
“난 그 게이트를 열 수 있어요.”
그리고 시운은 보란 듯이 천륜화의 동기화를 사용해 포탈을 만들어냈다.
쇼파에 앉아 거실 한 가운데에 사람 크기만큼 열려있는 포탈을 보며 신아영이 입을 스르르 벌렸다.
“이계로 가서 해야할 게 좀 있어요. 그리고 아영 씨는 혼자 있으면 안 돼요. 혹시나 위험할 수 있으니까.”
“뭐든 도울게요.”
시운의 배려를 느꼈는지 아영은 그렇게 말하고 둘은 같이 포탈에 몸을 실었다. S급 그녀의 도움은 든든할 것이다.
시공간이 휘어지고 느껴지는 온도가 바뀌는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뭐지? 괴수들이 마을을 습격했나..”
시운이 곧바로 전투복으로 환복하며 창 밖의 미월마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창 밖으로 미월 마을의 주민들이 괴수들에게 내쫓기다가 하나 둘씩 몸이 찢기며 죽어가고 있었다.
“이 마을뿐만이 아닐 거예요.”
아영은 시운과 함께 집 밖을 나와 괴수들을 성검으로 쓸어버리면서 말했다.
S급인 그녀답게도 여유롭게 괴수들을 사냥하면서 동시에 말을 한다.
-케에에엑!
강철오크의 관자놀이를 악신의 정권으로 힘껏 내리치자 강철오크의 머리가 터지고 뇌수가 강렬하게 쏟아졌다.
시운은 튀는 뇌수를 막으려고 가린 팔을 내리며 아영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눈을 번뜩 떴다.
“....젠장. 현계와 이계를 잇는 게이트가 닫혔고, 이젠 이계에 괴물들을 처리해주는 헌터들이 없으니 여기, 이계는 지금 대위기입니다.”
이계의 광활한 대륙은 지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에 의해 종말을 향해 가는 중인 것이었다.
현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