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3화 (223/278)

제 223화

전멸

헌터들이 현존하지 않는 이계의 이카루스 대륙은 괴수들에 의해 뒤덮여 있었다.

열린 게이트 속에서 쏟아진 괴수들은 이계 국가의 용병들로는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가 너무 많아요!”

신아영이 급박하단 듯이 말했다.

전방에서는 먹이를 발견하고 몰려든 개미떼들처럼 무수히 많은 괴수들이 안광을 번들거리고 있다.

아마 놈들은 대가리수로 밀어붙이다 보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다면.

“재림하라..”

시운의 말에 망자들이 괴수들을 베어내면서 땅에서 솟아나왔다.

압도적인 망자들의 수를 보자 괴수들은 으르렁, 거리면서도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다 쓸어버려.”

시운의 말 한마디에 망자들이 총알이 튕겨나가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망자들의 검날이 질긴 괴수의 근육들을 썰어내는 소리가 비산한다.

망자들의 활약으로 단 몇 분만에 미월 마을의 모든 괴수들을 쓸어버렸다.

“이제 좀 깨끗해졌네.”

시운의 말에도 아영은 답하지 않고 전투복을 끌어당겨 코를 막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괴수들의 사체에서 나는 악취가 결벽증인 그녀를 괴롭게 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시운의 손아귀가 움켜쥐자 괴수들의 사체가 들썩였고, 사체들이 지면 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윈드니스를 사용해 주위를 환기시켰다.

“이제 편하게 코로 숨 쉬어도 돼요.”

“아…….”

아영은 그제야 편하게 호흡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시운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당신은 대체 얼마나 강한거죠?”

“아직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시운의 입술이 움직이자 지면에서 또 다른 생명체들이 솟아나와 형태를 만들어냈다.

“주인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앞으로 섬길 주인님에게 충성을!”

죽였던 강철오크들이 시운에게 경의를 해온다.

보통 다른 괴수들이라면 ‘주군’ 이라고 불렀을 텐데 주인님이라니.

말투 또한 괴수의 개체에 따라 다른가 보다.

“…방금 죽인 오크들을 이렇게 아군으로 만드는 건가요?”

“이제 내 아이들이죠.”

신아영은 이시운에게 자신은 넘을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거대한 벽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머리가 세 개가 달린 거대한 드래곤이 튀어나와 지면을 박차고 날아가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였다.

“보이쉬! 이리와. 등 좀 빌리자.”

-크오오!

드래곤은 그 말에 반응하듯 거대한 날개를 휘둘러 땅에 다시 안착하고서 다리를 숙여 시운에게 등을 내밀었다.

신아영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믿을 수가 없네.. 진짜.”

“타요.”

“…네?”

“지금 급히 갈 때가 있거든요.”

-크르!

드래곤 보이쉬가 콧김을 내뿜었다.

신아영은 건물 한 채만한 드래곤의 표정을 살피며 불안한 낯빛을 비췄다.

“..생긴 건 포악해 보여도 말썽은 안 부릴 테니 걱정말고 타요.”

“...진심이죠?”

* *

신아영과 이시운은 드래곤 ‘보이쉬’를 타고 루이비스 대도서관으로 날아갔다.

루이비스 대도서관.

이계의 역사에 대한 문헌들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다는 곳으로 발카스의 일급 관리대상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무려 200킬로미터를 날아왔다.

그리고 도착한 루이비스 대도서관을 수호하는 발카스 왕국경비들은 이시운을 보고서 마치 왕이라도 만난 듯 경의를 표했다.

“이렇게나 유명하신 헌터님을 이곳에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아마도 헌터시스템 능력 중 명성도가 기여한 덕분이었다.

[명성도: 113000].

“루이비스에 꼭 가볼 일이 있는데 출입을 허가해줄 수 있을까요?”

“…헌터님이라면 믿고 허가 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들려주셔서 저희가 감사합니다!”

높은 명성도는 이계인들에게 이토록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헌터란 직종은 이계인들의 수호자 역할이기 때문에 유명한 헌터라면 이계인들은 무한한 리스펙을 보내온다.

무려 2500평에 달하는 광활한 도서관 안으로 들어온 시운과 아영은 빽빽이 꽂혀있는 책들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찾는 책이라도 있어요?”

“이 책들을 죄다 뒤져봐야 될 것 같아요.”

“네?”

무슨 소리인지 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시운은 망자들을 소환해서 꽂혀있는 모든 문헌들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오라고 말했다.

투투투툭-!

많은 망자들의 노동으로 시운 앞에 수북히 쌓이다 못해 도서관의 공간을 다 막아설 정도로 책이 쌓였다.

펄럭! 펄럭! 펄럭!

시운은 그 책들을 빠르게 속독하기 시작한다.

‘바람의 군왕과 검신 레딘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알아내야 한다.’

신아영은 뒤로 물러서서 그 장면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뭐 하는 거지 대체?’

이시운은 백과사전만한 두께의 책을 펼치고 2초 만에 다 넘기고 다시 다른 책을 집고 또 그렇게 2초만에 넘기고 던졌다.

뭘 하고 있는건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몰두하고 있는 시운을 보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저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저 수많은 책장 사이에 뭐라도 숨겨져 있나?

‘저 남자라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지켜봤다.

“얘들아! 내가 던진 책들은 저 쪽으로 옮겨놔!”

“알겠습니다, 주군!”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고 책을 던지기를 수 천번 반복했다.

팔이 뻐근할 정도로 아팠다.

‘이래선 이거 오늘 내로 다 못 읽는다.’

아무리 초월적인 속독의 재능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책들을 읽기에는 무리였다.

[신안을 발동합니다.]

[특정 시간동안 신의 눈을 가동시킵니다.]

‘혹시 가능할까?’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산더미처럼 쌓인 책더미들을 바라봤다.

시야가 흔들리고 이마와 관자놀이를 헤집는 통증을 견디면서도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 이시운의 눈이 놀랍게 뜨였다.

책을 펼치지 않았는데도 책 속에 있던 모든 활자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시운의 망막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그 빽빽한 활자들을 빠르게 속독하자 그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입력되어갔다.

[…천신전쟁에서 신에 대적한 바람의 군왕은 바람의 힘과 영혼을 활용하는 힘. 그리고 최고의 용족들을 다루는 능력과 공간 속의 모든 사물들을 변형 시키고 움직이는 능력을 갖췄다고 전해진다.]

신안을 통해 문헌 속에 지워져 있던 활자들까지도 머릿속에 들어온 상태.

[…바람의 군왕은 세계에 침범한 파괴의 신이 죽질 않았다는 것을 알고 훗날 그 신이 또다시 침공해 올 것을 염려해 자신의 힘을 세 개로 나누었고 그 힘은 인간이 되어 후손을 꾸렸다. 그들을 바람의 후예라고 부른다.]

그때였다.

‘...이건?’

시운 앞으로 떠오른 이터널라이프 퀘스트가 홀로그램창으로 띄워졌다.

바람의 군왕(1/1)

멸룡의 귀재(0/1)

만물의 능자(0/1)

이터널 라이프의 마지막 퀘스트에 표기되어 있지 않았던 활자들이 드러난 것이었다.

‘...이제 이터널 라이프의 마지막 퀘스트의 실체를 알았다.’

* *

루이비스 대도서관에 간 이유는 바람의 군왕과 레딘, 그리고 현재 최대의 적 카인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대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은 망자들에게 시켜 본래의 자리로 꽂아 넣으라고 명했다.

피가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오직 시운만의 명령에 따를 뿐이던 망자들이 그런 노동을 시키니 시운을 힐끔힐끔 거리며 원망의 눈빛을 보내왔다.

시운은 그럴 때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 시선을 회피했다.

루이비스 대도서관에서 나온 이시운은 근방에 존재하는 모든 괴수들을 처리했다.

보이쉬의 브레스를 이용해 괴수들을 한방에 제거하려 했지만, 아직 그 브레스의 힘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지라 주변 지형을 모조리 파괴할까 우려되어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망자들과 재림시킨 강철오크들로 괴수들을 제거했다.

이계에 괴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허나 이계보다 우선인 것은 현계였다.

천륜화의 포탈을 사용해 현계 시운의 집에 돌아왔다.

“……안 피곤해요?”

신아영이 초췌해진 낯빛으로 물었다.

“아직 힘이 넘치는데요?”

“...역시 보통이 아니네요. 난 눈 좀 붙여야겠어요.”

신아영이 그렇게 말하고는 무거워진 눈을 비비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시운도 방안에 누웠다.

그럼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넘친다.

‘헌터능력 때문에 피곤하지도 않네. 박카스 200병은 마신 기분이야.’

그래도 휴식은 중요하다.

눈은 붙여야 했다. 인간이 뇌의 독소를 청소하는 유일한 시간은 잠을 잘 때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바로 그 시각.

영국의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는 영국의 왕 조지 피터가 참담한 낯빛에 순식간에 생기가 돈 순간이었다.

“뭐라고요? 한국의 헌터님이 보낸 군대가 드디어 도착했다구요?”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그 헌터가 한국의 헌터 이시운님의 군대가 정말 맞지요?”

“맞습니다! 이제 저희에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당장 런던에 있는 군대들을 모조리 철수하라해요.”

“군대들을 말입니까?”

대신들이 의아하단 눈을 지었다.

조지 피터는 굳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대통령에게 들었어요. 헌터의 군대가 도착하면 군대들을 모조리 철수시키라고.”

“………저희 국군이 헌터님이 보낸 군대에게 힘이 되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시끄럽고 모조리 치워요! 방해만 되니까.”

조지 피터는 두 손을 모으며 신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를 떠올렸다.

중국의 거신을 물리친 대한민국의 헌터 이시운의 모습을.

‘...헌터님. 당신만 믿겠습니다.’

이시운이 영국으로 전용기를 태워 보낸 언데드왕과 데스나이트는 런던에 쏟아진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거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던 데스나이트는 주위를 둘러봤다.

한바탕 요란하게 전투를 한 것임을 입증하듯 주위 건물들이 모조리 부서졌고, 건물 속 철근과 아스팔트의 잔해. 그리고 그 밑으로 수 없이 깔려 죽어있는 마수들은 이곳을 지옥이라 느껴지게 했다.

데스나이트는 훼손된 마수들의 사체를 보며 오랜만에 즐긴 대략 학살의 쾌감의 여운을 만끽했다.

“……이봐. 뭘 먹는거냐?”

데스나이트가 언데드들 속에서 무엇을 꾸역꾸역 씹어먹는 언데드왕에게 물었다.

“고기 먹는데요.”

데스나이트는 땅속에 처박힌 마수들을 끌어올려 그 내장과 살점을 파먹는 언데드왕을 벌레보듯 쳐다봤다.

그게 참 역겹다고 생각했던 데스나이트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자신은 이 마수들을 살육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그 감흥을 맛보고 있던 시간에 저 언데드놈은 죽인 마수들의 시체까지 남기지 않고 파먹고 있다.

‘나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잔인무도한 놈이다.’

죽인 것으로 모자라 영혼이 날아간 사체까지 씹어 파먹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정말 악독한 집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강철 심장 데스나이트도 섬뜩했다.

그때 언데드왕은 데스나이트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꼈는지 데스나이트를 슥 쳐다봤다.

“크, 크흠!”

데스나이트는 언데드왕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언데드왕이 손과 이빨로 살점을 뜯어서 이등분 시키더니 데스나이트에게 내밀었다.

“당신도 맛 좀 볼래요?”

“아, 아니다. 돼, 됐다.”

* *

영국에 출몰한 게이트를 처리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바람의 신호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고생 많았다! 데스나이트와 언데드왕! 이제 귀환해라.]

이제 그들에게 귀환하라고 명했다.

세계에 열린 게이트 중 하나는 이렇게 끝을 맺나 싶었던 그 순간.

[……주군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차갑게 식은 아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랑스에 전용기를 태워 보낸 아콘도 미션을 클리어 했다는 보고겠지.

그러나 이어진 아콘의 육성은 그 예상을 완전히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를 포함한 저희 타이탄 군대가 압도적으로 모조리 전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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