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4화 (224/278)

제 224화

회귀자들의 만남

타이탄의 군주 아콘과 헤라클레스가 압도적으로 전멸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프랑스에 침략한 마수들은 얼마나 강하단 말이지?

[………해라.]

타이탄의 신음성과 함께 괴이한 육성이 들린 것은 그때였다.

섬뜩한 이 목소리는 분명 그 놈이다.

‘바람의 신호가 내가 대신 말도 할 수 있나? 시야를 공유할 수는 없는건가.’

가능할 것 같은 마음에 시운은 눈을 감고 이마 밑 천응혈에 기운을 모으고 집중했다.

그러자 시야가 뒤틀리고 색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보인다.

시야를 가린 피가 보인다.

타이탄의 동공에 피가 맺힌 것 같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그 놈의 두 안광이 보인다.

* *

프랑스의 투르.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도시 투르의 광경은 처참했다.

뒤편에는 쉬농성에 타이탄들이 몸을 벌벌 떨며 피를 쏟은 채 널부러져 있다.

마수의 양팔이 허공에 들려 있다.

그 양 손아귀가 헤라클레스와 타이타의 목을 감싸쥐고 있다.

더욱 힘이 들어가자.

목에 핏대가 선 둘은 켁켁 거리며 입에서 혈액이 섞인 내장토사물을 뱉는다.

[………군왕은 자기 나라에 있나?]

“씨, 씨이입...새..끼야.”

타이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에 마수가 집중했다.

“씨이발 새끼야. 목 조르는 걸 풀어줘야…… 대답을 해줄 거 아니야?”

투욱!

마수는 왼손에 들린 헤라클레스를 옆으로 던져버리고 타이탄의 목을 더욱 졸랐다.

[말하라.]

“……말도 못하게 목을 조르고 있으면서 질문은 하냐?”

마수가 손에 힘을 좀 풀어주자 허공에 들린 채 까치발을 지면쪽으로 세우며 바들바들 떠는 타이탄이 마수를 노려봤다.

[분명 네 놈들은 그때 봤던 군왕의 수복들. 어딨느냐?]

“나다, 이 씹새끼야.”

마수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마수의 눈에 비친 감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노기도, 호기심도, 반감도 뭣도 아니었다.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는 감정이 담긴 눈.

[다른 곳에서 전달하고 있나보군.]

마수는 용케 그게 이시운인지 단 번에 알아차린 듯 말했다.

“그때 중국에서 그렇게 줄행랑을 쳐 놓고 또 나타나서 뭐하는 짓거리냐. 꼬랑지 말고 도망쳤으면 쪽팔린 줄 알고 모습을 보이지 말았어야지.”

그 말에 마수의 낯빛이 서늘해진다.

[도발하는 건가? 군왕이여. 네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

퉤!

타이탄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마수의 눈썹에 닿아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게 네 본모습이냐?”

타이탄의 눈으로 마수의 형상이들어왔다.

살인병기에 최적화된 인간 형태.

광저우에서 봤던 그 모습과는 달랐다.

이게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마수의 진짜 모습인가?

[너에 대한 창조주님의 목표가 바뀌었다. 한 달 뒤 나타날 것이다. 그때는…….]

그리고 시운의 시야로 공포스런 마수들의 군대가 떠올랐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마수들.

십만, 오십만도 백만도 아니다.

시운의 눈으로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마수군.

[보았는가? 막아낼 수 없을거다. 그때 너에게 창조주님의 물음을 전할 것이고 선택을 받을 것이니라.]

“그냥 지금 네 주인 새끼 기어 나오라고 해. 그 카인인지 하는 그 겁쟁이 새끼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질 않는군. 어지간히 겁이 많나봐? 응? 줄행랑 친 네 놈 새끼처럼.”

작정하고 던진 도발에 마수의 두 눈이 미세히 흔들렸다.

도발이 먹힐까 싶어서 해봤는데 마수는 동요하지 않는 듯 했다.

[죽어라.]

“어차피 내 아이들은 내 숨이 붙어 있는 이상 죽지 않는다. 얘네들의 코어는 내 영혼이거든. 엿이나 쳐 먹어.”

빠직!

마수의 손아귀에 핏줄이 튀어오르면서 타이탄의 목뼈가 박살났다.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진 타이탄을 던져버렸다.

곧이어 타이탄을 포함해 시운의 군대들이 검은 연기를 위로 뿜으며 서서히 사라졌다.

[맛보기로 조금만 보여주지. 이 나라만.]

마수가 마수군들에게 수신호를 보내자 마수군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프랑스의 투르란 도시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도시가 마수들의 손에 의해 붕괴 되었고, 프랑스란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도래했다.

단 6시간 만에 말이다.

* *

-기……긴급 속보입니다. 프랑스가 괴수들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고 합니다. 괴수들은 프랑스인들을 모두 살해하고 사라졌다는 소식입니다…….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 하나의 역사와 존재가 허망하게 삭제됐다는 소식이다.

유명한 아나운서조차 침착함을 잃은 채 떨며 말하고 있다.

티비 화면 속에 시선을 박은 이시운은 순간 소름이 돋아 숨이 멎을 뻔 했다.

‘얼마나 지났다고 프랑스가 모두 초토화가 돼?’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건가.

그렇다면 광저우에서는 역시 전력의 힘을 보이지 않았던 건가.

‘한 달 뒤라고 했다.’

마수가 그 후에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마수가 보여준 군대는 지금 전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문명을 삭제 시켜버릴 압도적인 병력!

헤라클레스와 타이탄이 쇼파에 앉은 시운 앞으로 솟아올랐다.

둘은 피주검이 된 얼굴로 시운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면목이 없는 듯이.

“고개 들어. 고생했다.”

그리고 마수 아베크로스를 상대했을 때의 느낌을 물었다.

“형님.. 제가 형님의 곁에 있기 전부터 지금 이 때까지 본 생물 중에 가장 강한 놈이였어요. 난 신도 많이 봤다고요.”

“이런 말은 결례란 걸 알지만 주군보다도 강할수도 있는 것 같소.”

시운은 애써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 *

빠지직!

장준이 준 S급 스킬룬석을 부섰다.

그러자.

[S급 스킬룬석을 사용하였습니다.]

[당신의 성향을 분석합니다.]

이번만 3회차 인생이다.

1회차 2회차 인생에서는 위기가 찾아오면 안절부절 했다. 병신새끼처럼.

그러나 3회차 인생 중반까지는 위기가 닥치면 짧게 고민하고 바로 행동했나.

그리고 지금은.

‘위기가 닥치면 행동하면서 고민한다.’

[당신의 차크라를 분석합니다.]

[당신의 현재 감정을 읽어냅니다.]

[그에 따라 당신에게 스킬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전신이 붉게 번쩍였다.

[스킬 천지개벽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명을 듣고 눈썹 하나를 올린 그 순간.

이터널 라이프의 홀로그램창이 떴다.

바람의 군왕(1/1)

멸룡의 귀재(1/1)

만물의 능자(1/1)

퀘스트의 표기가 바뀐 것이다.

‘이것은 연동 퀘스트다. 세 명이 퀘스트를 완료해야 완료가 되는 것이지.’

이제 이터널 라이프의 보상은 주어지는 건가?

그런데.

시운의 앞으로 공간이 옅게 휘어지더니 포탈이 생성됐다.

일렁이는 포탈로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뭐지? 마지막 자격을 증명 뭐 그런건가?’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지 않고 일어서서 포탈을 향해 움직이려는데.

“나도 같이 가요!”

뒤에서 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위험하니 빠져있어요.”

“그쪽도 알 테지만 나 약하지 않아요. 나도 돕고 싶어요. 도움만 받고 있는데 해줄 수 있는 거라도 있어야 내 맘이 편하죠.”

“괜찮아요. 이건 그런 개념이 아니니까 쉬어요, 그냥.”

“난 한 번 먹은 생각은 고쳐먹질 않는 타입이라서.”

이시운이 포탈로 머리를 넣은 신아영의 팔을 붙잡았으나 그녀는 가볍게 뿌리쳐내고 포탈로 먼저 들어갔다.

“...이런.”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됐다.

신아영이 도와야 준다면 힘이 되긴 할 테지만.

이걸 해결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마 신이라도 되는 걸까?

포탈 속으로 손을 뻗자 시운의 머리칼이 위로 휘날린다.

* *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기묘한 냄새가 난다.

이곳은 어둠이 내려앉은 미궁이다. 섬뜩한 기운이 피부로 느껴진다.

“뭐야? 헌터 시스템이 발휘가 안 돼요.”

아영의 말에 시운도 확인해봤다.

아영뿐만이 아니라 시운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그렇네. 헌터의 힘 없이 클리어 하란 말인가. 아 그거 고달픈데…….”

망자들만 소환할 수 있다면 이깟 미궁 그냥 다 깨부수고 앞으로든 천장으로 날아가든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둘은 무기조차 없는 맨손이고 옷은 평상복.

“조심합시다.”

“짐이 되려고 따라온 게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시운의 동공이 빠르게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수 없이 펼쳐진 미궁.

그러나 시운의 넘사벽인 눈을 통해 그의 뇌로 미궁의 도면이 입력됐다.

“날 따라와요. 주위 경계하면서.”

둘은 앞으로 나아갔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터벅. 터벅.

조용히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음산하게 퍼졌다.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 날아온다. 신아영이 빠르게 그것의 팔을 잡고 허리를 틀었다.

쿠웅!

날아온 괴생물체가 아영의 업어치기에 바닥에 고꾸라졌다.

-키렉. 키렉.

처음보는 몬스터다.

시운과 아영은 드러누운 채 발버둥 치는 몬스터의 양 팔목을 발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시운이 주먹으로 몬스터 얼굴을 내리쳤다.

퍼어억!

내리쳤던 주먹을 치우니 얼굴이 함몰된 채 표정을 멈춘 몬스터가 보였다.

뒤이어 소리가 들려왔다.

시운과 아영은 좌우로 빠르게 흩어져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격투술로 능숙히 제압한다.

“아영 씨. 무기는요?”

시운은 몬스터에게서 뺏은 과도를 들며 물었다.

이미 아영의 손에도 철퇴가 들려있다.

검사인 아영은 철퇴가 영 맘에 안 든다는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썰어버리면서 미궁의 출구를 향해 나아가자 뭔가가 보였다.

지금껏 상대했던 몬스터와는 다른 것이.

“선택받지 못한 자도 왔구나. 넌 돌아가거라.”

파라오였다.

이곳은 유물이 묻혀있는 유적.

그 유적을 지키는 수문장의 말에 아영은 철퇴를 내리치는 것으로 답했다.

아영과 합세해 파라오와 한참을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파라오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공격을 방어해내기만 할 뿐이었다.

시운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아영을 저지하고 뒤로 물러났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여긴 어디지?”

“어딘 것 같으냐.”

“피라미드 같은데.”

그 말에 파라오의 얼굴이 굳어진다.

“이곳조차 모른단 말이냐?”

“알려줘야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

“……군왕님의 유물이 묻힌 유적지다.”

“군왕? 예전 왕을 말하는 건가?”

아영이 말하며 시운을 슬쩍 바라봤다.

“여기 우리 제외하고 두 명이 더 들어왔지?”

“멍청한 놈은 아니군.”

유물을 지키는 놈 같은데 친절하게도 다 대답을 해준다.

“한명은 박태석일테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냐?”

그때 파라오가 든 녹슨 낫에서 스파크가 번쩍거렸다.

“이건 대답 안 해주네.”

파카카캉-!

낫이 호를 그리며 날아오는 것을 과도로 막아냈다. 연이어 반달 모양으로 낫이 파공성을 쏟아내며 날아들었다.

시운은 빈틈없이 막아냈으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때 아영이 가세해 파라오에게 철퇴를 휘둘렀지만.

파라오는 더욱 빠르게 낫을 휘둘렀다. 그리고 파라오의 공격은 더욱 빨라졌다.

카카카카카카캉!

낫을 망치로 내리찍듯이 광적으로 휘두르는 파라오의 공격에 과도가 충격을 버티질 못하고 부서졌다.

“벌써 끝.”

그때 아영이 파라오의 옆구리와 복부를 연속으로 걷어차서 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철퇴를 이시운에게 던졌다.

잽싸게 건네 받은 이시운은 철퇴를 휘두르려는데.

어느새 파라오의 뒤를 잡고 있던 아영이 소리쳤다.

“빨리 마무리 해요!”

아영은 이를 악물고 파라오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퍼어억!

파라오의 금강투구가 땅에 떨어졌다.

퍼어억!

또 한 번의 철퇴질에 파라오의 머리에서 피가 솟았다.

시운은 양손으로 모든 근력을 다해 파라오의 뒷통수를 향해 철퇴를 내리찍는다!

퍼어어어억!

파라오의 후두부에 철퇴가 꽂히고 개구리처럼 파라오의 눈알이 땅 밑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파라오는 다시 일어섰다.

“유적지를 지키는 놈이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네.”

파라오의 낫이 직선으로 날아왔다. 시운은 낫의 날을 잡아들고 반대 팔로 철퇴를 빙빙 움직여 철퇴 쇳줄로 낫을 감고 그대로 당겼다.

낫이 그대로 튕겨져나와서 파라오의 손에서 떨어졌다.

아영은 그 틈에 기합을 내지르면서 마치 가라데를 하듯이 주먹과 발로 파라오의 허벅지와 명치를 마구 타격한다.

“오. 가라데 배웠나봐요?”

시운은 파라오의 다리쪽으로 파고 들어서 파라오의 등뒤로 이동해 파라오의 목을 쇳줄로 묶어냈다. 눈을 잃은 놈은 이번에는 쉽게 등을 내주었다.

“널 꼭 죽여야만 지나갈 수 있는거지?”

그 물음에.

“역시 그분의 후손다우시군요.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실례하였습니다.”

파라오는 기쁜 듯이 말하고는 사라져버렸다.

* *

김태훈은 파라오의 목덜미에 박아넣은 화살을 손으로 뽑아냈다.

핏줄기를 직선으로 쏟아내며 비틀거리던 파라오의 눈빛이 변했다.

“그분의 후손임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빠져나가듯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파라오에 눈길도 주지 않고 긴 미궁의 끝으로 나아갔다.

벌써 몇십 시간은 지난 듯 하다.

‘기척이다.’

분명 기척이 느껴졌지만, 태훈의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숨긴 기척.

고수다.

타탓!

태훈은 순식간에 사이드스탭으로 돌아 사각지대에서 날아오는 무기를 겨우 흘려내고 백스탭을 밟고 활을 겨누었다.

“잠깐. 너…….”

태훈의 눈이 그를 보고 크게 뜨인 채 요동쳤다.

“오랜만이네. 나머지 한명이 너였다니…….”

태훈 앞으로 철퇴를 내린 이시운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이 동공이 풀려버린 태훈이 물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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