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5화 (225/278)

제 225화

마지막 관문

김태훈은 회귀자였다.

원인 모를 힘에 의해 죽어도 다시 살아나 해당 시점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지닌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여실히 받고 자랐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그 내면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결핍감을 통해 성향으로 비춰지는 것을 보면 이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 태훈이는 뭐든지 잘할 수 있어. 엄마는 널 낳은 것에 참 감사해.

-아빠는 우리 태훈이가 너무나 자랑스럽단다. 난 우리 아들이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그 사랑은 참으로 행복했다.

그는 자신의 자아로서 사는 삶이 아닌 부모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한편으로는 태훈은 부모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불안했다.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까봐.

전국에서 놀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거두고 집에 올 때마다 엄마의 주름살도 펴지게 하는 그 눈부신 미소를 볼 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짜릿했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부모님의 기쁜 얼굴을 보는 것이 목표였다.

태훈은 장남으로서 김태훈의 삶이 아닌 부모님의 아들이란 삶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내 힘듦따위는 상관 없다. 엄마 아빠를 더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그리고 떠올렸다.

그것은 돈이었다.

학업으로 최상급 대학에 간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돈을 잘 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살펴보고 작곡가가 되어 성공했고.

S급 연예인 못지 않게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김태훈이란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잘생긴 작곡가?”

“천재잖아.”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전부인 부모님을 더더욱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태훈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심근경색.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세상을 잃은듯한 슬픔을 느끼며.

‘아버지... 홀로 남은 엄마는 제가 최고로 행복하게 해드릴 거예요. 편히 눈 감으세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의 반쪽이 사라졌다는 슬픔은 더더욱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크게 만들었다.

그런데.

김태훈의 그 마음은 찢기고 찢겨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와 불륜을 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김태훈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분노.

아니.

그 분노를 넘어선 증오.

그것도 아니.

그 증오를 완전히 초월한 감정.

‘내가 누굴 위해 살았는데.’

태훈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더는 어머니에게서 받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라 역겹다는 것을 느꼈다. 뱃속이 뒤집히고 몸에 흐르는 피가 뇌로 솟아 터질 듯 했다.

삶의 유일한 이유가 사라지자 태훈은 죽었다.

그런데 회귀했고.

태훈은 절대 전생의 그 미래를 바꾸겠다고 다짐하며 아버지의 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망 시기만 늦췄을 뿐.

아버지는 똑같은 병명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살을 섞었다.

그것도 태훈이 보는 집에서 뻔뻔히.

그 후로.

모든 것을 잃었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들이 모두 벌레처럼 증오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태훈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생겨났다.

그 사람의 사상에 이끌려 그 사람에게로 갔다.

카인.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자.

그를 통해 가증스러운 인간이란 존재를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카인. 그는 신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자였다.

그가 말했다.

“수많은 세기를 거쳐 나는 약해졌다. 내 본래의 공력을 회복할 때까지 날 도와라.”

그가 시키는 모든 것들을 해왔다.

회귀하고 얻게 된 기이한 능력은 인간의 힘을 뛰어넘게 해줬다.

그 힘을 보태 카인을 도왔다.

“…날 위해 애써준 네게 보상으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카인. 그는 세상이 창조되고 난 후로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불멸의 존재란 것을.

카인이란 이름 또한 자신이 몸을 빌린 육체의 주인의 이름일 뿐이었다.

“당신은 그럼 신입니까?”

그렇게 물었다.

“뭐든지 파괴하는 존재. 그렇게 알면 된다.”

그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이 흡족했다. 그 기분은 마치 부모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부신 미소를 지어주시던 그때 느낀 그 감정과 비슷했다.

“당신은 그였군요.”

그는 천신전쟁에서 인간들의 왕에 의해 패배한 신이였다.

그를 위해 살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세상을 종말시킬 준비들을 도왔다.

그런데.

초전생이란 납득하기 힘든 것을 보게 됐고 감정이 요동쳤다.

그리고 카인이란 자의 사상은 점점 회의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며.

숙제가 주어졌다.

이터널 라이프라는 숙제.

그런 태훈 앞에 오랜 친구였던 이시운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시운은 파라오의 피가 묻은 철퇴를 바닥에 내려놨다.

“너와 내가 가는 길은 달라도 넌 내 친구다.”

시운이 말했다.

신아영은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둘을 가만히 지켜본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결국 너도 회귀자였단거군.”

“난 항상 네게 열등감을 느꼈었다. 넌 내 친구였지만 누구보다 잘난 놈이였고. 난 너의 그늘에 가려진 무능력한 놈이었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거냐?”

태훈의 눈빛이 변했다.

시운은 태훈의 저 눈빛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시운이 알던 태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쳐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정과 유대감.

그 감정이 시운의 열린 입에서 말을 만들어냈다.

“친구로서 보고 싶었다, 태훈아.”

그 말과 함께 태훈의 눈빛에 오묘한 감정이 서리는 듯 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스산한 공기가 뒤덮은 이 곳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나?”

“알지.”

“말해봐라.”

“네가 어떤 녀석이든 내 앞에 있는 넌 내 친구 김태훈이라는 녀석이다.”

방긋 웃으며 말하던 시운의 시선과 태훈의 시선이 허공에 만나 묘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그런 태훈의 시선이 흔들리는 듯 했다.

“내 얘기를 해줄게.”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운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태훈에게 말했다.

태훈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태훈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왜 내게 너에 대한 모든 걸 말해준 거지? 그건 네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친구니까.”

“가증스럽군.”

“친구한테 속내를 털어놓는게 가증스러운 거면 가증스러운 놈 할게. 내가.”

허공을 응시하던 태훈의 들린 고개가 내려졌다.

그의 표정은 결심을 끝냈다는 듯 흔들리지 않고 굳혀있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다음에 만나게 되면 넌 친구가 아닌 내 적이라고. 시운아.”

“내 이름을 그렇게 불러주는 걸 보니 넌 아직 내 친구네.”

푸욱!

“시, 시운 씨!!!”

떨어져 지켜보던 아영이 달려왔다.

시운은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태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것을 바라보던 태훈의 시선이 흔들렸다.

“왜 피하지 않은거지?”

“또 말하기 입 아프다.”

“왜 날 공격하지 않았지? 왜?”

시운은 휘청이며 주저앉았고 아영이 그를 감싸안았다.

“괜찮아요?”

아영은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찢으며 시운의 머리를 감싸고 지압을 시작했다.

철컹.

태훈은 시운의 피가 묻은 손도끼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시뻘건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시운은 태훈을 그대로 쳐다봤다.

“병신아. 왜 자꾸 물어? 넌 내 친구라니까?”

김태훈은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 방금 시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곳이 어딘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허나.

이시운은 방금 그 일격으로 죽을 것이다.

그런데 시운은 그 공격을 피해낼 틈이 있었는데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태훈은 자신을 바라보던 시운의 눈빛이 익숙했다.

익살스럽던 녀석의 저 순한 눈빛은 학창시절 때부터 보아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아와라.”

“조건없이 자식에게 퍼준다는 부모조차도 내게 목숨을 걸진 않는데, 넌...”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 태훈아. 누구에게 사랑받는 것에 목을 매지말고 네 자신을 사랑해라.”

그 말이 들리는 동시에 태훈은 조용히 흐느꼈다.

정곡을 후벼 파는 듯한 말.

어쩌면 저 말을 부모님에게 단 한 번이라도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태훈은 초전생의 장면에서 보았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묻겠다. 레딘. 네 여자까지 뺏어간 나에게 왜 그런 온정을 베푼거냐?

-뭘 그런 걸 묻냐. 너답지 않게.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넌 내 친구니까.

-친구...

-너란 친구와 이렇게 같이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카인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고 죽어가던 두 사내가 드러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했던 대화였다.

김태훈은 눈꺼풀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운의 눈빛이 가슴을 흔드는 것을 그대로 느꼈다.

* *

일격에 뇌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으나 운 좋게 치명 부위는 비켜간 시운의 머리에서 피가 멈춘 상태다.

“당신.”

아영이 태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죽여버리겠어.”

아영의 말에 시운은 괜찮다는 듯 아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훈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노기가 실린 아영의 눈빛이 누그러진다.

“여긴 군왕의 유물이 담겨있는 곳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유물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영이 물었다.

그 말과 동시에 주위의 미궁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공기와 냄새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뭐지?”

“공간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광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떠다디는 부유물이 발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전방으로 쭉 펼쳐진 부유물들이 연결된 길.

그 길 사이로 촘촘히 큰 기둥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마치 우주를 연상케 하는 검은 하늘과 기묘한 공기 속에서 은은한 바람이 불어온다.

허공에 떠 있는 세 개의 달은 빛을 잃은 채 가만히 떠있을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보자.”

시운이 움직였고 둘은 뒤를 따랐다.

부유물을 천천히 밟고 앞으로 나아가자.

멀리서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그 모습에 멈춰섰다.

형태는 점점 가까워졌다.

잘생긴 얼굴에 넓은 어깨.

그리고 정적인 저 걸음걸이까지.

분명 그였다.

“역시 박태석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였다.

퀘스트창에 표기되어 있었던 멸룡의 귀재.

그것으로 태석 또한 이 공간에 침투했단 것을.

여섯 개의 눈이 박태석에게 쏠렸다.

박태석 또한 놀랍단 얼굴이었다.

“이시운이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신아영은 철퇴를 들고 태석을 노려봤다.

“죽이겠어. 지금이라면 가능해.”

이곳은 헌터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태석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

그때 시운이 아영의 팔목을 붙잡았다.

“섣불리 행동하지 마요.”

태석은 그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던 그때였다.

[바람의 군왕의 후손 세 명이 모였습니다.]

[해방의 시험 마지막 관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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