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6화 (226/278)

제 226화

길드를 창설하다

막 관문이 시작되었다는 시스템 소리는 시운에게 딱히 감흥은 없었다.

앞에 선 박태석만이 보일 뿐이다.

그의 움직이는 표정의 변화가 천천히 보인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그렇게 동경하던 인물.

헌터 세계로 이끌었던 롤모델 박태석의 가면이 벗겨지고 추악한 실체를 알게 되었고.

그와의 첫 만남.

묻고 싶은게 많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손이였다.

아공간에서 소환한 ‘나이트메어’를 단단히 쥐고 앞으로 뻗어나갔다.

‘가속.’

[특정 시간동안 민첩성이 40% 증가합니다.]

나이트메어의 검신 끝에 바람의 오러를 실어 박태석에게 날려보냈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쇄도해 나아갔다.

부우우웅-!

태석은 추진력을 실어 다가오다 검기를 보고 땅을 짚고 빠르게 공중으로 회전하여 검기를 피해낸다. 검기는 뒤편의 공간 너머로 끝을 모르고 뻗어나간다.

콰아앙!

동경하던 태석의 검신과 나이트메어의 검신이 강렬한 금속음을 내며 부딪혔다.

시운은 기계적으로 나이트메어를 휘둘렀다.

빠르게.

더 날카롭고 예리한 구도로.

콰콰콰콰콰콰콰쾅!

초당 몇십. 몇백 번의 나이트메어의 검신이 태석을 공략하려 했으나 태석은 마검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서로의 검신이 서로를 향해 쏟아지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표정의 흔들림조차 없는 태석의 얼굴.

그러나 시운의 공격은 모두 받아낸다. 역시 롤모델이자 멸룡의 귀재 답다.

그때 태석의 등뒤로 펼쳐진 팔이 수십 개로 보였다.

‘환영이다!’

시운은 공격을 멈추고 앞발과 뒷발을 틀어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수십 명의 박태석 신형이 시운을 향해 검신을 겨누고 있다.

콰콰콰콰콱!

태석의 신형들이 쏟아져 시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서늘한 공간을 무섭게 찢어버리며 날아든 검격에 연기가 가득히 뿜어져 나왔다.

걷힌 연기 속에서 군왕의 방패로 모든 검격을 막아낸 시운이 반격을 준비한 채였다.

‘이 싸움에서 절대로 지면 안 된다.’

그러한 본능이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그때 태석의 뒤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

포효만으로 대기를 찢어버릴 듯한 파공성이 청각마저 멎게 만들었다.

포효하며 등장한 존재는 서슬퍼런 두 안광을 번뜩이며 태석의 뒤편으로 날아와 양 날개를 펼쳤다.

그 몸집은 얼마나 큰지 그림자로 주위 모든 것을 가릴 정도였다.

태석은 여유롭게 도약하여 그 존재의 등에 안착한다.

고대에 모든 드래곤을 포식하던 드래곤 중 최강포식자인 고대종 멸룡이었다.

멸룡의 입가에서 대지를 박살내버릴 에너지가 느껴졌다.

불안한 기운에 시운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펄럭-! 펄럭-!

허공 위에서 그런 시운을 태석은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림하라..”

그 순간 시운의 손아귀에서 퍼져나간 검은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 지면에서 수많은 망자들이 손이 뻗어져 공간을 뒤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운의 십만 망자부대가!

우오오오오오!

그들은 벽력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본능적으로 멸룡을 향해 전진했다.

자신들의 주군 이시운을 위해서.

* *

[아아아아……….]

모든 걸 파괴하고 포식하던 멸룡에게 처음 들어보는 나약한 신음이 멀어져간다.

멸룡은 몸이 까뒤집힌 채 귀와 눈, 입에 피를 흘리며 아득한 지상저 너머로 추락하고 있다.

수가 얼마 남지 않은 망자들도 신음성을 흘리며 모래성이 무너지듯 형체가 무너져 검은 연기가 된다.

아득한 정신으로 태석은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가슴팍에 이시운의 검신이 절반 이상 박혀있다.

“당신은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다시 고개를 드니 슬픈 눈으로 이시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심장을 찌르지 않은거지?”

심장이 위치한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검신을 박힌 것을 보고 물었다.

“분명 넌 내 심장을 찌를 수 있었는데. 오만인가?”

“오만 따위가 아니야.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 당신이 지은 죄를 만회할 기회.”

태석은 핏기침을 뿜으며 적색의 치아를 드러내 웃었다.

“감성적인 놈이군.”

“……당신의 힘을 세상을 위해 써 줄 수는 없나?”

시운의 눈빛이 요동치고 있었다. 아마도 저 눈을 보니 진심인 듯한 모양이다.

꽤나 이상적인 놈인 듯 하다.

태석은 그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살아왔던 삶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로 스쳐간다.

세상에 바라던 자신의 이상.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모두가 평등한 조건에서 시작하여 노력을 뛰어넘는 혼신을 다한 자만이 성공하는 세상.

남들이 죄다 하는 노력을 하고 노력이라 칭얼거리는 놈들이 싫었다.

또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놈들이 싫었다.

개 버러지 같은 놈들.

노숙자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을 죽기 직전까지 패면서 대리만족을 느꼈고.

세상을 자신의 이상에 맞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발하기 위해선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회귀를 통해 얻은 정보와 압도적으로 타고난 재능으로 그 존재에 가까워졌는데.

전생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밀리고 말았다.

여기서 이 녀석에게 목숨을 구걸하면 살 수도 있겠지만.

“목숨 따위를 구걸하고 싶진 않다.”

태석은 시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그 힘에 검신이 움직여 태석의 목까지 쭈르륵 올려 그어졌다.

시운의 눈이 커졌다.

“다시 회귀해서 최고가 되겠다. 그리고 회귀하자마자 너부터 찾아가 죽이고 시작하겠다.”

푸욱!

검신을 빼어내자 태석은 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시운을 바라보며 지상으로 추락한다. 시운은 그런 태석을 향해 손을 뻗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 *

시운은 묘한 감정이 몰아치는 것을 억누르고 하늘을 바라봤다.

세 개로 떠 있던 달은 이제 두 개만 남았을 뿐이다.

‘이 마지막 관문이 나머지 한명을 죽이는 건가?’

내용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았다.

신아영과 태훈이 시운에게 다가왔다.

힘이 풀린 시운이 넘어지려는 것을 아영이 빠르게 낚아챈다.

“쉬어요. 고생했어.”

시운은 아영의 품에서 태훈을 바라봤다.

“아마 이 이터널 라이프 마지막 관문이 회귀자 중 한 사람만 남는 것일수도 있다. 지금이 너한테는 기회야.”

시운의 말을 태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반나절간 치열하게 벌어졌던 태석과의 전투로 시운은 기력이 모두 소모된 상태.

지금 시운을 죽이는 것이 기회라면 기회다.

그때 신아영이 아공간에서 소환해낸 성검을 빼내들었다.

“이 남자 털끝이라도 건들이면 당신은 내 손에 죽어.”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시운은 내게 진심을 보여준 친구입니다.”

태훈의 말에 시운이 힘 빠지는 웃음 소리를 냈다.

“김태훈이가 돌아왔구나.”

태훈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신이든 뭐든 듣고 있다면 잘 들어라! 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그 외침이 끝난 그 순간이었다.

[멸룡의 귀재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만물의 능자인 당신의 의사는 포기입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겠다. 시운이는 반드시 여기서 나가게 해줘.”

[만물의 능자가 ‘해방과 임명’을 포기하였습니다.]

콰콰광!

순간 두 개로 떠있던 달 중 하나의 달이 빛을 잃고 바스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시스템이 낭랑한 음성을 만들어냈다.

[바람의 후예 중 한명인 당신의 의사는 ……3대 바람의 군왕으로 임명되는 것을 인정합니까?]

중간에 말이 끊겨서 들렸지만 무슨 뜻인지 태훈은 이해했다는 듯한 눈치였다.

“시운이를 인정한다.”

[……이것으로 모든 관문을 마칩니다. 당신은 최종적으로 ‘3대 바람의 군왕’ 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바람의 군왕’에 대한 모든 권한이 부여됩니다.]

그 음성은 시운에게만 들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시운에게 해방할 것이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해방하라.”

[바람의 군왕의 권한에 의해 ……해방됩니다.]

그렇게 공간이 일그러지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 *

세계 모든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헌터’에 집중됐다.

헌터들이 현계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속보가 세상 곳곳에 빗발쳤다.

그 속보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일본의 헌터 한명이 현계에서 자신의 헌터 능력이 발휘된다는 인증 사진이 포함된 글이 최초로 올라왔고.

그 글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사람들이 비난했지만 뒤이어 다른 헌터들도 능력이 나타난다는 제보가 뒤이어졌다.

[세계 모든 헌터들이 현계에서도 헌터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다?]

[헌터들의 능력 개방은 신의 계시인가?]

[이로서 헌터가 세상을 지키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셈!]

각종 기사들의 제목이 그러했다.

박태석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의 기사도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었으나.

헌터들의 능력 개방이란 놀라운 일이 그 기사를 덮고 화두에 떠오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들은 그 힘의 해방이 이시운에 의한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부우웅!

시운은 이어링을 낀 채 운전을 하고 있었다.

-마스터가 된 걸 축하해! 앞으로의 활약 기대해도 되지?

“지원해준 건 고맙다.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

-필요한 거 있음 말해. 언밀히 말하지만 이건 공적으로 약속한 댓가에 의한 지원이야. 부담갖을 필요는 없어.

시운은 씨익 웃으며 천세정과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도착한 사거리 앞.

솟은 건물 위로 커다란 전광판에서 슈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KS기업을 광고하는 이시운의 광고 영상이었다.

“아, 좀 오글거리네.”

어색해서 시선을 떼고 네비게이션에 찍힌 건물 앞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내려 건물 위를 바라다봤다.

계약상 KS기업의 지원을 받아 임대한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천생 길드.

건물에 걸린 간판이 어색하게 시운의 망막에 비춰진다.

이제부터 길드 마스터의 생활 1일차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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