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8화
최강의 소환수
서울의 강서구에 위치한 에로스 길드 건물 안에서는.
에로스 마스터 박영훈의 얼굴이 심각하게 구겨져 있었다.
“이런 씨발, 진짜.”
에로스 길드의 꽃인 박하나가 길드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간 곳은 창설된 지 며칠도 안 된 천생 길드라는 신생 길드.
헌터들 중 힐러계열의 헌터들이 희귀한 만큼 귀했는데 그녀가 이탈해버리니 속이 타는 듯 했다.
“길드장님.”
“왜?”
자신을 부르는 영호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헌터 커뮤니티 보셨어요?”
“안 봤는데. 왜? 뭔 일 또 터졌대?”
“헌터평론가들이 세계 길드 전력 순위를 뽑았는데 그게 글쎄…….”
영호가 말을 얼버무린다.
영훈은 키보드를 두드려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꽤나 유명한 평론가라는 양반들이 길드의 전력을 순위로 나타낸 글이 베스트에 올라있었다.
-1위. 천생 길드.
“니미. 지랄하고 있네.”
영훈은 화가 치밀었다.
대한민국 최고 길드 중 하나인 에로스는 이제 곧 사신 길드를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가 될 순간이었다.
사신 길드의 마스터가 죽어버렸으니까.
근데 느닷없이 이시운이 만들어낸 길드가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전력 1순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화가 치밀었다.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 새끼들을 뭘 1위라고 하고 있어.”
“근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요? 이시운은 혼자서 대형길드 하나는 씹어먹고도 남을텐데.”
“좀 안 닥치냐? 너.”
눈치가 없는 영호를 쏘아보자 영호는 그때서야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닫았다.
“전문가 양반들이 할 줄 아는 건 방구석에서 평가질 밖에 없지. 그게 다 아니냐?”
경쟁심이 강한 박영훈은 화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몇십 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에로스 길드가 저딴 신생아 길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느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이, 아줌마!!”
“네, 네?”
사무실을 청소하는 아줌마가 영훈의 호통에 눈을 화들짝 떴다.
“청소 빨리 빨리 안 해요? 거 되게 깔짝거리네.”
“이제 출근한지 5분 됐는데요….”
“5분 안에 걸레질 하나 제대로 못 끝내요?”
영훈은 애꿏은 아주머니에게 호통을 내질러도 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때였다.
다가온 기척에 고개를 드니 이수영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길드장님. 저 말씀 드릴게 있는데…….”
“그래, 얘기해봐.”
이수영은 뛰어난 A급 헌터다. 곧 S급이 될 가망도 보이고 실적도 좋으니 그에게만큼은 누그러진 태도를 보인 영훈이다.
“길드 계약을 해지하고 싶습니다만…….”
“뭐?”
영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죄송합니다.”
“너 위약금 물어야 되는 거 알아? 갑자기 왜 나가겠다고 난리야?”
“저, 그게…….”
영훈은 순간 뇌리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 생각이 맞다면 속이 뒤집히고 말 것이다.
“너 설마 다른 길드에 들어가려고 하냐?”
수영은 염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다는 건 그렇단 얘기였다.
“하. 어디 길드에서 널 콜한건데? 네 위약금 다 내준대?”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그냥 그곳에 가고 싶어서입니다.”
“그 길드가 어딘데?”
“천생 길드입니다.”
“씨이발!”
콰앙!
영훈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생각해봐라…….”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이를 악물고 말한 영훈의 말에도 반응이 없었다.
“계약 해지 서류 준비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수영은 굳은 다짐을 했는지 그렇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그때 티비 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예민해진 영훈은 그 소리조차 거슬려서 눈이 매섭게 치켜떠졌다.
“씨발. 영호야. 티비 안 끄냐? 분위기 파악 못 해?”
“그게 아니고. 저기 저걸 보십쇼.”
영훈의 비집어 뜬 눈이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인 티비를 향했다.
거기서 들려온 목소리에 홧병이 치밀 듯 목구멍이 답답해졌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전 세계 헌터분들이 꼭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시운의 목소리였다.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마이크를 앞에 두고 시운은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20일 뒤.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헌터 분들은 그때를 대비해야 할 겁니다.
“곰 좆 터는 소리하고 있네. 저 연예인병 걸린 새끼. 뭘 대비를 하냔 말이야? 이계로 가는 게이트도 닫힌 마당에…….”
표독스럽게 일그러진 영훈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한 다음 말이 이어진다.
-제가 지정한 세계 열 곳에 이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 것입니다. 전 세계 헌터 분들은 협력하여 그 게이트를 통해 시일 내에 성장하시고 실전 감각을 다듬으시길 바랍니다.
“개소리하고 있네.”
기자들의 질문이 뒤이어 솟구쳐왔다.
이시운은 그 질문들에 대답을 하고 기자회견장에서 사라지는 모습이 티비 속에 비춰졌다.
“지깟게 뭔데 이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연단 말이야? 그게 가능이나 한 소리야?”
“저, 길마님.”
“자꾸 부르지 마라…….”
“이시운이 저번에도 이계에 갇혀있던 헌터들 다 데려왔잖아요. 그걸 보면 저 말도 일리가 있다는 소린데.”
“나랑 이름 비슷한 영호야.”
“네.”
“지금부터 네 입에서 한마디라도 말이 더 나온다면 네 얼굴에 내 주먹이 꽂히는 일이 발생할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시각.
전 세계 대통령들은 이시운이 했던 기자회견을 속보를 통해 접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놀라운 소식은 이시운이 세계 곳곳에 순식간에 출몰하여 포탈을 만들어냈단 소리였다.
그리고 그 시각 미국의 협회지부.
소식을 들은 데이나의 눈이 솟구쳤다.
“그, 그게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방금 뉴욕에 이시운 헌터가 나타나 이계로 향하는 포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그게 말이 되나? 아니.. 뭘 타고 왔다는데? 전용기?”
-전용기가 아니고....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습니다.
“뭔 소리야? 그게?”
-이시운 헌터가 나타난 곳의 시시티비를 돌려본 결과 뭔가가 생겨나고 이시운이 그곳에서 바로 나타났습니다.
“오..마이 갓..”
데이나는 이시운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어서 곧바로 택시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의 경찰들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열려있는 포탈은 보랏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나 협회장인데. 이시운 헌터 다녀갔지? 못 봤나?”
지키고 있던 경관에게 묻자 경관은 소름이 돋았단 얼굴로 답했다.
“다녀는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어딜로 갔나?”
“바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보는 눈 앞에서요.”
“......뭐?”
데이나의 허무하게 뜨여진 눈이 움직여 포탈로 향했다.
이시운이 열었다는 포탈은 공간 속에서 말 없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 *
시운은 재림시킨 망자들의 수를 얼추 훑어봤다.
대략 이십만.
며칠동안 미친 듯이 이계를 휩쓸며 죽인 괴수들을 다시 재림시켜서 수를 늘린 상태다.
그러나 아직 불안하다.
곧 닥쳐올 그들을 보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족히 억 단위의 군대였다.
“주군! 고심이라도 있는건가?”
데스나이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리더가 걱정을 드러내면 군대의 사기만 떨어진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해 볼 것이 있지.’
시운은 눈 앞에 열려있는 게이트를 바라봤다.
바람의 군왕의 권한을 받고 난 이후로 전 세계 헌터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시운 또한 바람의 군왕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다.
그 힘 중 하나는 감각.
그 날카로운 감각으로 저 앞에 게이트의 마력 수치는 SS급 정도라고 느껴졌다.
곧바로 게이트 안 던전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이 던전은 낯이 익은 던전이었다.
“보스만 남겨두고 죄다 쓸어버려.”
시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자들이 던전을 순식간에 뒤삼켰다.
‘분명 이 기운은...’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의 기운 외에 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다 죽여버렸습니다.”
아콘이 방패에 묻은 피를 탈탈 털며 뿌듯하게 그 소식을 전했다.
시운은 그 기운이 있는 곳으로 드래곤 보이쉬를 타고 날아갔다.
이십만 망자들은 날아가는 시운을 그대로 쫓아갔다.
“오랜만이네. 루시퍼.”
그 기운을 따라 보스룸으로 이동하자 노기가 가득 실린 루시퍼가 다가왔다.
“널 만나게 될 줄 알았다.”
루시퍼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저번에 이시운에게 신체가 훼손되고 신으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심까지 느끼며 도망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는 듯 루시퍼는 창대를 쥔 팔뚝에 핏줄을 팽창시키며 시운에게 날아왔다.
“워, 워. 잠깐. 네 상대는 내가 아니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창을 휘두르는 루시퍼의 창을 나이트메어로 쳐낸다.
“헛소리 집어치워라. 이 날만을 기다렸다.”
시운은 루시퍼가 뭐라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재림하라..”
그 말과 함께 악이 바쳐있던 루시퍼의 두 눈이 순간 흔들렸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을 느꼈던 것일까!
게다가 시운 후방에 진열하고 있던 망자들 또한 눈이 커지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시운 옆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기운을 담은 두 팔이 지면을 잡은 채 상체를 끌어올려 모습을 드러낸다.
‘박태석을 재림시킨 소환수.’
그랬다.
태석이 지상 너머로 떨어지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시운이 그의 영혼을 추출시킨 것이다.
번뜩!
시운은 소름 돋는 기운을 느끼며 재림된 소환수를 바라봤다.
온 몸을 은색 철갑으로 두른 채 검을 등뒤로 차고 있는 기사의 형태가 보였다.
그 기사는 얼굴에 검은 가면을 쓰고 시운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껏 그 어떤 소환수와도 격이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근데 너 인사 안 박냐?”
콰앙!
가면의 기사는 검을 땅에 꽂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다.
“좋아. 그렇다면…….”
박태석을 재림시킨 이 소환수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봐야겠다.
마침 저 루시퍼란 녀석이 있다.
루시퍼와 몸을 섞어봤으므로 저 악신이 꽤나 강한 놈인 것은 잘 알고 있다.
시운의 눈빛을 읽었던 것일까.
가면기사는 검을 뽑아 조준하고 루시퍼에게로 쇄도했다.
그 속도는 음속처럼 빨랐다.
루시퍼가 가면기사에게 날개를 휘둘러 검은 깃털을 쏘아낸다. 가면기사는 그 깃털을 그대로 맞아가면서 터벅터벅 걸어가서 루시퍼가 온 힘을 다해 내리친 창의 창대를 한 손으로 막아낸다.
“...넌 뭐냐? 비켜라.”
루시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면의 기사가 완력 하나로 루시퍼의 창을 당겨 그대로 부숴버렸다.
두 동강이 난 창을 본 루시퍼는 공포감을 느꼈다.
“신의 무기를 한 손으로 박살내다니...”
가면 속에 가려진 가면기사의 두 눈빛이 순간 반짝이자.
뱃속에 형형한 기세의 칼이 꽂힌 루시퍼는 순식간에 몸이 팽창하더니 터져버리고 말았다. 툭 떨어진 것은 몸뚱아리를 잃고 뱉어진 루시퍼의 내장.
내장은 더운 김을 뿜어내며 땅 위에 널브러졌다.
사방에서 검은 깃털이 주인을 잃고 휘날려 가면기사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가면기사는 말 없이 조용히 시운에게 다가와 일을 끝 마쳤다는 듯한 표정을 내보였다.
시운은 저 기사를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박태석은 마검사였다. 방금 그 엄청난 검격에 검신에서 순식간에 연쇄 폭발의 마법까지 분명..’
놀라웠다.
SS급 마력을 가진 악신을 단 3초만에 해체시키다니 말이다.
그때 가면의 기사가 시운에게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 다가와 입술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