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29화 (229/278)

제 229화

신아영의 뜻하지 않은 고백

가면기사가 이시운의 얼굴에 시선을 멈췄다.

가면 속으로 보이는 가면기사의 두 눈은 평범하면서도 섬뜩했다.

“할 말이라도 있나?”

가면기사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쉽게 못 꺼내겠다는 눈치다.

“편하게 얘기해라.”

“주군이시여! 제 가면은 절대 벗겨져서는 안 됩니다.”

“왜?”

왜냐고 물었을 때 가면기사는 그렇게 된 후의 일을 떠올린 듯이 눈빛이 크게 요동쳤다.

녀석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면이 벗겨진 얼굴이 추해서인가? 그게 아니라면.

시운이 가면기사의 얼굴을 관찰하자 가면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하다. 그렇게 보려고 한 건 아니고.”

저 검은 가면은 녀석에게 어떤 의미일까.

가면기사는 박태석의 영혼으로 재림시킨 소환수다.

설마 저 가면이 벗겨지면 박태석이 다시 살아나는 거 아닌가?

아니겠지.

가면기사의 등급을 어페어로 확인해보았다.

녀석은 [그랜드 마스터] 등급이었다. 그랜드 마스터라.

초월 등급인 데스나이트보다 몇 단계는 높단건가.

‘잠깐만.. 그건 될까.’

시운의 눈알이 굴러가 루시퍼의 내장으로 향했다.

혹시 가능할까?

진정 바람의 군왕의 힘을 부여받은 이후로 놀라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바람의 군왕은 창조한다고 했었지?’

그것을 떠올리며 루시퍼의 기운을 추출했다.

그리고!

까딱거리며 들고 있던 단도 ‘나이트메어’를 들어올렸다.

설마 가능할까?

악신 루시퍼의 영혼을 이 단도 속에 불어 넣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창조.’

그 순간 흩날려 떨어졌던 루시퍼의 깃털들이 떠올라 나이트메어를 향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시퍼의 영혼이 발악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이트메어의 검신이 까맣게 물들어갔고 형태가 변화기 시작했다.

마치 들고 있는 나이트메어가 악의 기운들을 흡입하는 듯이.

그리고.

쥐고 있던 나이트메어의 형태는 변했다.

검신이 좀 더 길어지고 그 위에 악의 기운을 덮어놓은 듯 검게 칠해져 있었다.

손잡이 부분은 루시퍼의 검은 등껍질이 뒤덮여 있다.

꾸욱 쥐어보니 손아귀에 잡히는 검의 그립감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검에서 오묘하게 혈향이 풍겨나고 있다.

[데빌 소드]

창조를 마친 단도의 이름은 데빌 소드로 변해있었다.

데빌 소드를 쥐고 허공을 그어보았는데 검이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여졌다.

순간 시운은 눈을 번뜩 떴다.

‘이거 설마..?’

시운은 데빌 소드를 내려놨다.

근데 허공에 데빌 소드가 그대로 떠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검이다.’

기분이 오묘했다.

그때 지켜보던 아콘이 다가왔다.

“주군! 그 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말해봐라.”

타이탄의 군주 아콘은 고대 시대에 타이타들에게 최고의 병장기를 갖추게 해 타이탄 개개인을 일당백 최고의 종족으로 만든 자다.

병장기에 관한 지식이 많을 자다.

“그 검은 허공에 떠다니는 검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결론입니다.”

“그건 나도 방금 눈으로 확인해서 알아, 새꺄.”

시운의 꾸중에 아콘이 머쓱한지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민수가 낄낄거리자 아콘이 민수를 번뜩 노려봤다.

그 따가운 시선에 유민수는 만면에 드리운 웃음끼를 지운다.

* *

시운은 이계에 열린 모든 게이트들을 휩쓸고 다녔다.

순식간에 게이트들을 처리하면서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롭게 얻은 ‘데빌 소드’ 의 위력이었다.

모든 괴수들이 데빌 소드의 검날에 닿기만 하면 낼 수 있는 최고의 고통스런 비명을 내며 검날이 닿은 육신에 검은 뇌격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몸이 찢겼다.

뿐만 아니라 중력의 저항을 받지 않는지라 검을 더욱 빠르게 휘두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괴수들을 쓸어가면서 죽은 괴수들을 아군으로 재림시켰고.

전투 감각은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런 시운의 눈빛에는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자신감이 가득 서려있었다.

그 후.

시운은 천생의 부대표인 신아영에게 지시해서 천생 길드원들끼리 친해지게 하라 했고.

그들이 전투할 시 최고의 팀웍을 발휘할 수 있게 이계 던전에 투입시켜 합을 맞추라 지시했다.

신아영은 시운의 말을 따라 그들을 지휘했고.

천생 길드원들은 개개인마다의 재능을 뽐내며 팀웍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을 기쁘게 바라본 시운은 현계로 나와 박문수 대통령이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높게 솟은 담벼락들이 뒤덮은 그의 저택은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하는 듯 했다.

저택을 지키던 경호원들은 시운이 도착하자 일제히 길을 터주었다.

잔디밭이 수놓인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서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대통령의 저택을 두 발로 방문하게 될 줄이야.

저택의 넓은 거실 속 고급 가죽소파에 앉아있던 박문수는 시운을 보고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와 준비된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보세요.”

“제가 말씀드린 그 날에는 반드시 전 국민들이 대피소나 지하로 피신한 상태여야 할 겁니다.”

그 말에 심각성을 느꼈는지 박문수의 낯빛이 얼어붙었다.

박문수는 그 날에 게이트가 열리는지 어떻게 아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봐온 이시운은 허튼 말을 할 리 없기 때문이다.

호화로운 식사를 마친 뒤.

스킨으로 입을 닦던 박문수가 힐끔힐끔 이시운의 눈치를 봤다.

“뭐든 편하게 물어보시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곧 열릴 그 게이트는 지금의 게이트와는 규모가 많이 다른가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군대로도 소용이 없겠군요.”

박문수는 시운의 끄덕여진 고개에 군부대를 투입시킬 생각을 뇌리에서 아예 배제했다.

이미 그들은 현대식 무기가 통하는 존재들이 아니니까.

식사를 마치고 박문수는 시운과 저택의 정원길을 나란히 걸었다.

“그 밖에 내가 도와줄 건 없나요?”

“대통령님은 국민들에게 지금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인지시켜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안심도 시켜주셔야 하구요.”

“심각한지 인지시키고 안심도 시켜라. 물과 기름을 같이 섞으라는 말같이 들리는군요.”

박문수의 뒷모습에 힘이 없어보인다. 국가의 대표로서 많은 불안감을 겪고 있는 듯 하다.

그런 그가 뒤돌아봤다.

“헌터님.. 이번에도 반드시 막아줄 수 있죠?”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약속드리지요.”

이시운의 대답에 박문수는 이제야 안도감이 든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으로서 부탁드립니다. 이 나라를 반드시 지켜주세요. 헌터님만 믿겠습니다.”

시운은 당황했지만 알겠다고 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호원들이 경악에 빠졌다.

* *

정연희가 편의점에서 여러 가지를 가지고 계단에서 총총 뛰어와 2층에 왔다.

혜령과 아영은 그녀가 사온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그래도 다들 고생하셨는데!”

연희는 길드원들에게 커피우유를 나눠준다.

유민수는 넉살 좋게 그것을 받고 곧바로 원샷을 때려버린다.

“아, 이게 딸기우유구나! 딸기우유는 우유로 만든 딸기인가요?”

민수가 묻자 가만히 있던 유석이 웃음을 터뜨린다.

“아, 아닌가?”

민수의 말에 모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기애애한 풍경이다.

아영은 문득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연다.

“저기.. 연희 씨.”

“네?”

“대표님하고는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했나요?”

“아.. 시운이요? 헌터 동기로서 친한 사이죠.”

신아영은 말을 머뭇머뭇 거렸다.

“물어볼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이시운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그 물음에 연희가 답하려는 것을 혜령이 가로챘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는 기발한 놈이죠. 근데…….”

“정도 많고 진짜 착한 놈이에요.”

“역시 그렇군요.”

아영은 그 대답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싱긋 웃었다.

어느새 친해진 길드원들 사이로 아영은 복도를 통해 5층인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의 문 앞에 선 아영은 들어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평소에 이런 소심한 고민은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지만 이상하게 그를 보면 의견을 표출하기도 힘들고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신아영은 이 길드에 영입되면서 시운에게 조심스레 제안을 했었다.

-부탁이 있는데.. 길드의 매출에서 소수 퍼센티지를 매달 고아원에 기부해줄 수는 없겠죠?

어찌보면 곤란한 제안이기도 했다. 이제 창설된 신생 길드에 매출의 몇 퍼센트를 매달 고아원에 기부해달라니.

다른 길드였으면 세상 물정 모르냐는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을 것이다.

근데 이시운은 달랐다.

-그걸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물어요? 당연히 되죠. 그렇게 해줄게요.

그런 대답을 듣고 너무 의외여서 이시운을 빤히 바라봤었다.

신아영은 고아 출신으로 보육원에서 자랐었다.

그걸 이시운도 알고 있었을까? 그는 흔쾌히 허락했지만 왜냐고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어쩌면 아영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일지도 모른다.

‘참 따스한 사람이야.’

대표실의 문앞에 서서 가만히 문만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여태껏 매혹적인 미모와 고혹적인 분위기인 그녀에게 들이대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심지어 애인이 있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이시운은 좀 달랐다.

그런 태도에서 든 호기심은 그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 깜짝이야!”

그때 문이 갑자기 열리고 나오는 시운을 보고 신아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랄 줄도 알아요?”

“아, 아니.. 나도 사람이에요.”

“되게 무뚝뚝한 느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사람냄새 좀 나네요.”

시운은 방긋 웃으며 말하고는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아영은 낯이 뜨거웠는지 시선을 여기저기 돌렸다가 머릿결을 한 번 쓸어넘기고는 대표실로 들어갔다.

“길드원들끼리 딱히 트러블은 없죠?”

시운이 물었다.

“다들 아주 잘 지내던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밥은 먹었어요?”

“아뇨. 아직…….”

아영은 눈알을 여기저기 굴리면서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감이 안 나네요. 이제 며칠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지 모르는 전쟁이 일어난다는게…….”

시운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아영의 얼굴도 굳어졌다.

“준비는 잘 되어가요?”

아영의 물음에 시운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끝낸 상태에요. 전력이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려놨어요.”

아영은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차마 목에 걸려 뱉어지지 않았다.

밥 같이 먹자는 말.

밥 먹자는 말.

그 말이.

미치겠네. 그냥 해버리고 말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었는데 전혀 다른 말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대표님. 여자친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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