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0화
강춘식 작가와의 마지막 만남
이시운의 멀끔멀끔 껌뻑이는 두 눈이 신아영을 가만히 응시하자 아영은 급하게 말을 덧붙인다.
“아니……. 내가 뭐 대표님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런 걸 물어본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뭐..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잖아요?”
아영은 쏜살같이 많은 말을 질문으로 뱉어낸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눈알을 여기저기 굴리며 시운의 시선을 피한다.
“누가 뭐래요?”
이시운이 피식 웃자 아영은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을 기다린다.
그런 이시운의 얼굴이 신아영의 망막으로 빨려가듯이 비춰진다.
이 남자. 이렇게 보니 잘생기긴 잘생겼네.
그때.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있어요.”
“아….”
아영의 이어진 침음이 힘 없이 내려가듯 이어졌다.
“왜요? 그게 궁금했어요?”
“저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역시 남들이 다가가기 힘들게 생긴 사람들이 알고 보면 더 사람냄새가 나요.”
“그거 제 이야기인가요?”
“그럼 누구 이야기겠어요?”
“칭찬이죠?”
“칭찬이죠. 당연히.”
시운이 신아영을 향해 방긋 웃어준다.
웃는 모습이 해맑다고 해야 하나? 남자의 미소가 이렇게 예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알겠어요. 뭐 저는 퇴근 해볼게요.”
“그거 물어보려고 여기 온 거 맞네. 물어봐놓고 바로 간다고 하는 거 보니까.”
“아, 아니라니까! 왜 이래요? 은근 짓궂네.”
신아영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구두굽이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밟는 소리가 이어진다.
무언가 들킨 것 같은 기분에 양볼이 시뻘개진 그녀였다.
* *
세계는 이시운이 기자회견에서 뱉은 말에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세계 국민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린 상태였다.
-연예인병 걸린 헌터네. 뭐 자기가 노스트라다무스라도 되는 줄 아나?
이런 불호적인 반응과.
-대한민국의 이시운이 한 말이라면 충분히 대비를 해야 된다고 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이런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건 국민들의 반응이었고 각국의 대표들은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출몰하던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이 상황.
그러나 이 상황은 태풍이 몰아닥치기 전의 고요함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시운의 활약을 체감한 미국의 대통령과 중국, 캐나다 대통령들은 그의 말을 심도 있게 받아들이며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협회를 통해 전 길드에 공문을 띄운 상황이었고.
1급 비상령을 발령시켜 군부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통제하고 비상 상황이 닥칠 시의 대처요령 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문수는 이시운이 말한 그 날을 디데이로 삼아 방송이나 언론 전 매체에 매번 그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각시키고 있었고.
“자영업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그날에 모두 대피소로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박문수는 그렇게 대통령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시운의 얼굴을 떠올렸다.
‘헌터님과의 약속은 잘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뒷일은 헌터님에게 맡기겠습니다.’
현재 약국과 편의점. 그리고 마트는 24시간 오픈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가고 있었다.
주식시장은 당연히 혼돈에 빠진 상태다.
모든 주식의 그래프는 급락하고 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 매도하려고 했고.
소수의 사람들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주식이 최저가로 떨어질 때까지 하이에나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운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 중 전세계인들을 가장 불안하게 떨었던 말이 있었다.
-지금껏 열린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게이트가 그날 열릴 겁니다. 현재 세상에 일어났던 그 어떤 재앙보다도 큰 대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막아야 합니다.
항간에는 한 언론이 시운의 말을 이런 기사로 해석해 내기도 했다.
[2012년 지구가 종말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십 년 앞서간 것이었다. 현 2022년 지구는 종말을 앞두고 있는 것.]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이시운의 말을 믿던, 안 믿던 모든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불안감을 겪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시운은 익숙한 바 앞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술집과 음식점이 모두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고개를 들어 바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분명 강춘식 작가의 이번 편 후기에 바에 또 간다고 했었는데.’
시운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상태다.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는지라 휴식이라는 원동력도 필요했고.
이상하게 강춘식 작가를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어드바이스를 귀신같이 해주는 그에게 귀감이 되는 말을 듣고 싶은 맘에서였다.
일단 바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다.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가게가 문을 열지 않은 줄 알았는데 문이 잠겨있지 않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하고 반가운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장사 안하는데.”
강춘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술을 마시며 말한다.
“작가님. 오랜만에 또 뵙네요.”
시운의 목소리를 듣고 강춘식이 뒤를 돌아본다.
돌아본 그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어이구! 우리 독자님 아니야?”
시운은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앉았다.
근데 오늘은 바텐더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 바텐더 출근 안 했나봐요?”
“독자님이 제일 잘 아시겠지만 바텐더들은 모두 일을 그만뒀어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이제 곧 세상의 대재앙이 일어날텐데 누가 일을 하고 있겠는가.
어쩌면 그날이 지구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던, 즐기고 싶은 걸 다 즐기던 하면서 지내고 있겠지.
“내가 이 가게 인수한지 꽤 됐어요.”
“아.. 이제 사장님이시네요?”
“그렇지.”
춘식은 과일 안주와 오징어가 담긴 접시를 시운 쪽으로 스윽 내밀어준다. 그리고 시운 앞으로 스트레이트잔 하나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나도 보고 싶었어요. 같이 한잔 합시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마지막이라는 그 말이 오묘하게 들렸다.
시운은 그와 양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소한 일상얘기를 나누면서 이상한 것이 있었다.
항상 불이 타 있던 강춘식의 두 눈빛이 오늘따라 푹 죽어있는 느낌이다.
“독자님. 독자님의 양 어깨에 놓인 그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질지 난 완전히 공감은 못하지만 이해 해요.”
눈치가 귀신답게 정곡부터 찔러온다. 춘식은 시운이 오늘 바에 왜 왔는지를 안다는 눈치다.
“많이 불안합니다. 뭔가.. 항상 위기가 닥치면 그 불안감을 동기부여란 원동력으로 사용하려고 하면서 잘 헤쳐나갔는데 이번에는 느껴지는 불안감이 너무 커요.”
그때 시운의 어깨에 올려진 춘식의 손에서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힘내라는 말은 안 할게요. 불안에 떨지 말라는 말도 안 할거고. 난 현실적이지 못한 말은 싫어해.”
쭈-욱.
시운은 춘식과 건배를 하고 스트레이트잔에 든 양주를 원샷으로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근데 난 독자님의 러브스토리를 다 들었잖아. 그치?”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이야기들이지만 작가님덕분에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맞다.
그 점은 아직까지도 진심으로 고맙고 앞으로도 감사할 생각이다.
“그 러브스토리들 속에서 난 독자님의 상황이나 이야기들을 다 들어봤잖아.”
시운은 춘식과 눈을 마주치며 경청했다.
항상 힘있게 솟아있던 춘식의 콧수염이 오늘따라 힘 없이 구불거리게 보인다.
왜일까?
“독자님에게 이렇게 묻고 싶어. 독자님은 왜 항상 행복해야된다고 생각해?”
“네?”
“독자님은 그렇잖아. 항상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고. 항상 자기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
그 말을 듣고 잠시나마 뇌에 정전기가 일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를 모두 꿰뚫고 있는 것 같은 이 남자.
“……….”
춘식은 말을 잇질 않고 가만히 시운을 바라봐주었다.
말을 더 하지 않고 침묵해주는 것이 마치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할 시간을 주는듯한 느낌이다.
시운은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난 항상 내가 행복하고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2회차 인생을 돌아보면.
서른네 살까지 성공은 못하더라도 남들에게 꿀리진 않겠다고 주구장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돈이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었다.
그리고 천세정과의 사랑이 엇나가자 못난 자신을 무수히 자책하면서 생각했다.
-남들은 다 행복한데 난 왜 이렇게 불행한 거냐고.
그냥 성공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꼭 사랑을 이루고 싶었다.
“생각해봐. 독자님은 왜 항상 나 자신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되고 건강하고 행복할 수는 없어. 영화 속이나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이 있는 반면 엑스트라도 있는 것처럼.”
그 말이 가슴 속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한 기분에 고개가 떨구어졌다.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지려 한다.
“독자님이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중요하지. 근데 아니야. 독자님이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독자님이야.”
“…….”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고, 별 볼일 없고 하찮은 존재같이 느껴지더라도 내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나 자신은 주인공이잖아?”
“그렇죠.”
“내가 못 났든 잘 났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거야. 정녕 그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조차 나란 사람이니까.”
강춘식은 말을 끝맺고 술잔을 들었다.
“이번 건배는 작가님을 위해.”
짠.
양주의 뜨거운 도수가 목구멍을 씻고 넘어가 위를 따끈하게 댑혀주는 기분이다.
조언을 들으려 왔다가 무언가 다른 것을 들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조언이었다.
“작가님. 고마워요. 나 자신을 더 사랑하도록 해볼게요. 그럼 날 더 믿을 수 있을 것이고 불안감도 더 사라질 테니까요.”
강춘식이 사람 좋은 미소로 웃어보였다.
무언가 인생에 중요한 걸 하나 배운 것 같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란 존재에 대해 말이다.
헌터의 몸이 되어서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취하는 느낌이다.
좋은 사람과 하는 술자리는 빨리 취한다고 했던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때였다.
귓가에서 아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방해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저 자가 매우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