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31화 (231/278)

제 231화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한 사람

느닷없이 말을 건 아콘에게 신경질적으로 되뇌었다. 속으로.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저 자의 기운이 이상합니다.

시운의 고개가 춘식에게로 돌아갔다.

춘식은 말 없이 레몬을 입에 넣더니 “아우 셔!” 라며 얼굴을 찡그린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이다.

-저 자에게서는 아무 기운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럼 귀신이란 소리냐.’

-그것도 아닙니다. 사람이든 뭐든 각자 고유의 기운이 있습니다. 남자는 양의 기운이 있고, 여자는 음의 기운. 죽은 자는 명의 기운이 있으며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기운은 있는 법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미호도 전에 그런 말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강춘식 작가에게서 무언가 이상한게 느껴진다고.

‘일단 들어가 있어라.’

-부디 조심하십쇼! 주군.

강춘식은 빤한 시선을 느꼈는지 시운을 바라봤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앞에 있는 이 강춘식이라는 사람은 내게 고마운 조언을 해준 따뜻한 사람이다.

덕분에 천세정과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의아함은 실례라는 생각에 그런 사념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때 춘식이 시운의 술잔을 채워준다.

“독자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

“뭐든요.”

당신에게 그런 도움을 받았는데 부탁 하나 못 들어준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뭐든 시원하게 뱉어내는 강춘식이 말을 꺼내기 힘들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저 강춘식이 저런단 말일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작가님답지 않게.”

“내가 이번에 작품 하나를 구상 중인데…….”

작품이라면 소설?

대재앙을 앞둔 세상인데도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니.

역시 프로 작가답다.

“로맨스만 쓰다 보니까 질리기도 하고 새로운 장르를 써보고 싶거든. 근데 헌터물을 한 번 써보고 싶어. 게이트가 열리고 헌터들이 각성하여 그 게이트에서 쏟아진 괴물들을 처리하고 마정석도 얻고…….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야? 근데…….”

시운은 경청하며 더 말을 이어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헌터물에 대한 지식은 있어도 감을 못 잡겠어. 젠장 내가 헌터가 돼서 체험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떤 주인공을 만들어보고 싶은데요?”

“요즘 소설은 주인공들이 딱딱 성격들이 다 정해져있어. 매일 1일 1연재로 진행되는 웹소설이다보니까 시원시원한 주인공으로 써야만 하는데. 난 그게 싫어.”

“그래서 어떤 주인공을 원하시나요?”

“고구마 가득히 먹은 개찌질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어. 난 남들이 다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 고난과 극복을 이겨내는 그런 주인공을 만들어보고 싶어. 뭔가 멋있잖아. 뭐든 잘하는 주인공보다는 개찌질해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사람냄새 나는 찌질이가 점점 성장해나가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내면 말이야.”

“딱 저네요.”

시운이 고개를 떨궜다.

“그래서 말인데…….”

“무슨 얘기인지 알겠습니다.”

시운은 말을 딱 자르고 일순 눈을 빛냈다.

“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저의 모든 이야기를. 제가 헌터니까 제 이야기를 모두 듣는다면 소설을 집필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저, 정말 들려줄 수 있나?”

“그럼요. 어쩌면 작가님을 뵙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요.”

시운이 방긋 웃었다.

강춘식에게는 이미 도움받은 것들이 많다.

그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시운이 겪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말해줄 참이다.

이 목 막히도록 답답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믿을까 싶지만 말이다.

“그럼 좀 부탁해요. 독자님. 나중에 그 소설이 완결이 나면 후기에 꼭 독자님의 이름을 넣고 감사하다고 적을게. 약속하지!”

“소설로 제 이야기를 옮기시는 건 좋습니다! 단.”

“당연히 실화라는 건 비밀로 할 생각이야.”

역시 눈치가 빠른 강춘식이다.

뭐. 이걸 실화라고 해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그럼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춘식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하겠단 자세로 허리를 쭉 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속내가 담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만 그게 어려워서 문제지.

시운은 몇 시간에 걸쳐 자신의 3회차 인생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그리고 춘식의 표정을 살폈다.

“오…….”

신기하게도 믿는 눈치다.

일반인에게 죽으면 다시 회귀한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강춘식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단 한 번도 의심이 간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독자님! 진심으로 감사해.”

“저도 그 감사함을 받았는데요, 뭘.”

밤이 기울어가는 이 시간.

독자와 작가라는 두 사람은 마지막 건배의 잔을 부딪혔다.

“독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참 감사하네. 그래서 별 건 아니지만 성의표시를 하고 싶은데.”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그렇게 하고 싶네. 독자님의 이야기로 소설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으니 제목은 독자님이 구상해줬으면 좋겠어. 그 제목이 라는 제목이라 할지라도 그 타이틀 그대로 하겠네.”

“음…….”

턱을 골똘히 괴고 고민을 하던 시운이 입을 열었다.

“3회차 인생이고.. 나만 3회차 인생이니 ‘나 혼자만 3회차’ 어때요?”

“콜!”

“진짜 이렇게 지어도 되겠어요?”

단번에 승낙한 강춘식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제목 괜찮은데? 여러모로 참 고맙네.”

그러면서도 춘식은 이시운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네가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고 그 위치에 올랐는지 참.. 존경스럽네. 특히나 다른 웹소설 주인공과는 다른 성격이라 더더욱 맘에 들어.”

“…근데 제 이야기를 독자님들이 좋아해주실지 모르겠네요.”

“그런 건 괜찮아. 내가 써보고 싶은 글은 글을 쓴다는데 뭐 어때? 그리고 인물들의 이름은 각색해서 독자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잘 집필할게. 고마워!”

그 순간 톡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아영이 보낸 톡이었다.

[아깐 정말 궁금해서 여친 있냐고 물어봤던 거에요. 좋은 꿈 꾸고 그 여자분과 오래 잘 만나요!]

얘. 보기보다 소심하네.

그 후로 은은한 형형색색 조명이 비추는 바 안에서 두 남자의 대화만이 울려퍼졌다.

* *

남자는 그가 건물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것은 기회다.

그는 만취해 있을 테니까.

‘저긴 술을 파는 바니까 이게 기회다.’

그를 위한 복수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가 나오자 남자의 두 눈에 살의가 확 솟았다.

은신한 상태로 천천히 그를 따라갔다.

기회만을 엿본다.

소리가 나지 않게 검을 뽑아든 상태다.

그때였다.

“미행하지 말고 나와라.”

어째서 알아차린 거지?

남자는 기척을 숨기는 것의 달인이다. 들켰을 리 없다.

“나오라니까.”

이시운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차캉!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시운의 어깨를 베고 뒷목을 베어냈다.

‘끝났다.’

남자의 미소가 번지려던 그 순간.

이시운은 몸에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뒤돌아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 분명 베어냈는데.”

“네 안대와 그 은신 능력. 오랜만에 보는군.”

이시운은 남자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곽원. 오랜만이네.”

곽원은 검을 고쳐잡고 이를 악물고 최대로 마력을 끌어올려 시운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맹인의 최대 비기.

화로일심(化路一心).

생체에 담긴 모든 마력을 단 한 번의 일격에 쏟아부어 최대의 속도와 힘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상대의 두 눈에 이 일격이 수십, 수백, 수천 개의 검으로 보이게 하는 맹인 클래스 최대의 비기다!

그러나.

“끝났나?”

“이럴 리가…….”

곽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을 때 곽원은 온 몸이 뒤틀리는 감각을 그대로 느꼈다.

“커헉!”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을 느낀 곽원이 배를 부여잡고 있을 때 이미 그의 등뒤로 이동한 시운이었다.

시운의 손날이 곽원의 목에 닿아있었다.

“……어느새 검을 뽑아든거냐.”

“검? 검은 뽑지도 않았는데.”

“분명 내 목에 닿아있는 것은 검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손이다.”

분명 검보다도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데 이게 손이라니.

그러고 보니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체온.

정말 손이였단 말인가!

그 순간 곽원은 그대로 사기가 꺽여버렸다. 이 남자에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거두어준 곽대익의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끝마치지 못했다.

“그때와는 정말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군. 죽여라.”

곽원은 입술을 비집어 뜯으며 말했다.

“당신덕분에 난 한 번 살 수 있었다. 기억하지? 그래서 나도 당신에게 기회를 한 번 주려고.”

“잔말 말고 죽여!”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곽대익. 그 자식 때문에 복수하려고 기습을 한 것 같은데.”

시운은 조용히 말을 뒤이었다.

“그 자식이 내게 한 말이 있었다. 자신은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그때는 놀랐었으나 나중에야 알았지. 그 말은 진실이었다고. 정말 그 자식은 ‘사람 새끼’ 가 아니었다.”

“내 양아버지를 모욕하지 말거라!”

일갈하는 곽원의 어깨를 시운이 손으로 누르자 곽원은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그런 벌레같은 자식의 복수를 위해 인생을 버리지 말고 당신 인생을 살아. 복수라는 의미없는 감정에 눈이 멀어서 당신의 삶을 버리지 말고. 다음에도 복수를 하려고 찾아온다면 그땐 정말 죽이겠다.”

시운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곽원은 자신은 넘을 수 없는 급의 차이를 느낀 것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 그 상태 그대로 한동안 처참하게 있었다. 가슴팍으로 닿은 아스팔트의 차가운 온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

시운은 본가로 가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나 이시연과 식사를 마쳤다.

“내일은 꼭 대피소에 있어야 돼.”

“알겠어! 우린 걱정하지마.”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시운을 껴안았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시운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시운아. 몸 조심 해야 된다. 알겠지?”

“엄마. 엄마는 못 믿겠지만 나 이래뵈도 세계에서 제일 강해. 걱정은 붙들어 매.”

“네가 어떤 사람이든 엄마에게 너는 항상 어린 아이일뿐이야.”

어머니가 시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을 잇는다.

“시운아. 엄마는 네가 성공하고 잘 돼서 기쁘지만 그래서 널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게 아니야. 엄마는 네가 어떤 사람이였어도 사랑했을거야.”

“엄마…….”

“네가 어떤 사람이든, 무슨 일을 하든 네가 엄마의 아들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다.”

순간 울컥한 마음에 눈이 따가워졌다. 전생을 생각해보니 그랬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사는 삶을 살았던 전생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시운을 사랑했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부모님만이 주는 사랑임을 되새긴 순간.

아버지의 고사리 같은 손이 시운의 등에 얹혀졌다.

“아빠 또한 네가 어떤 사람이었어도 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을거다. 시운아. 부디 꼭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와야 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갈라진다. 가장의 무게를 지고 항상 무너지지 않는 모습만 보여주던 아버지다.

“사랑해. 엄마. 아빠.”

시운이 흐느끼면서 말했다.

엄마는 시운을 꼬옥 껴안았다.

아버지 또한 그녀와 시운을 덮어 꼭 껴안는다.

그런 아버지의 입술이 열린다.

“그리고 미안하다.”

“뭐가?”

“아버지가 못 나서 네가 친척들에게 무시당하고 그랬던 거야. 아버지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미안하다.”

시운은 꺽꺽거리며 말을 잇지 않았다. 정수리로 차갑지만 무엇보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눈물이 머리에 떨어진 것이다.

언제나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인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던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니 눈물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잘난 엄마 아빠가 아니라서 항상 엄마 아빠는 네게 미안했었어. 그래도 누구보다 우리 아들을 사랑한다. 우린.”

어머니의 말이 뒤이어지자 시운은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가끔은 우리 집이 금수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자신이 죄스러운 시운이다.

그때 누나 이시연도 양 어깨를 떨며 시운을 포근하게 안았다.

“누나는…… 네게 낯간지러운 말은 안할게. 우린 다시 꼭 만날 테니까. 맞지? 내 동생 시운이?”

네 명의 가족이 서로를 그렇게 한동안 안고 있었다.

이시운의 눈과 코에서 눈물 콧물이 마구 쏟아져 턱밑까지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영화 속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이럴 때는 비장하게 걱정말라고 말하고 현관 밖을 나서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된다. 앞으로 살면서 흘릴 눈물을 오늘 다 쏟아버릴 기세로 우는 시운이었다.

이시운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멋있는 주인공이 아닌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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