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5화
외전 #3 천신 전쟁 (2)
이시운의 헌터시스템과 연동 접속이 되질 않는다고?
그럼 시운이가 죽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니다. 태훈이 아는 시운이는 그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다.
그때 태훈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당신 낯이 익은데 혹시 빙결의 여제라는 그 헌터?”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그때 신아영은 이마를 찡그리며 무전 교신으로 길드원들에게 교신을 받는 듯 했다.
“……정말이야?”
교신을 마친 신아영의 표정은 심각해져 있었다.
“지금 마포역을 방어하는 헌터들이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가 봐요.”
“마포역에는 지하 대피소가 있을텐데 그 바리게이트가 깨지면 시민들이 위험합니다! 우리라도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근데 당신 특이한 능력을 사용하던데? 헌터는 아니죠?”
신아영이 지켜본 태훈은 분명 A급 헌터들 이상으로 강했지만 초면이다. 헌터라면 신아영이 한 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것.
“헌터는 아니지만 누굴 도울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일단 마포역으로 지원을 가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안전보다 시민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군요. 내 생각도 같아요.”
신아영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대형길드들이 지원을 와준다는 보장이 없다.
일단 대피소 안의 수십만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다.
둘은 건물 밖으로 나갔고 신아영의 무전을 받고 천생길드원 열 명이 도착했다.
“부마스터님! 괜찮으세요?”
“이제 저희는 어디로 이동하죠?”
원래 이십 명이었던 그들은 어느새 열 명으로 줄어있었다.
“왜 너희 뿐이야? 나머지는 어딨어?”
신아영의 물음에 모두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고개를 떨궜다.
“젠장.”
하루만에 가족같은 동료 열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울컥한 아영의 두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 *
이곳 여의도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려면 마포대교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마포대교는 한강에 자리를 잡은 해룡들에 의해 붕괴되어 끊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우회해서 서강대교를 건너야 했다.
태훈 일행은 경보로 움직이며 마수들을 상대하고 서강대교에 진입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불에 타들어간 국회의사당과 인간의 의식주인 집, 건물, 편의점, 공원.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진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허탈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아스팔트 도로와 대교의 다리의 바닥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나라를 지키다 죽은 군인의 짓뭉개진 시체와 내장이 터져 죽은 사체들을 수없이 봐오며 지나왔다.
그 중 6살 어린 아이로 추정되는 머리 없는 시체는 그들의 눈물샘을 찡하게 만들었다.
경보로 걷기에는 참으로 긴 서강대교를 열 명이서 걷고 또 걸었다.
대교 밑 한강에서 몰아치는 해일 위로 해룡들의 지느러미가 유려한 움직임으로 사냥감들을 찾고 있다.
하늘에는 날개가 달린 마수들이 인간을 찾는 듯 쉬지 않고 날아다닌다.
이제 이 세상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비행하는 마수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요.”
감지계열 헌터인 박희준의 말에 모두가 멈춰서서 주변을 관찰했다.
“하나야?”
“네. 하나예요. 근데 그 기운이 그 어떤 마수들보다 강한 기운이에요.”
그때 태훈의 머릿속으로 괴물의 형상이 스쳐갔다.
천마룡?
아까 63빌딩을 단번에 부셔버렸던 고대종 최상위권 드래곤이다.
역사에 나와있는 것으로는 천마룡 한 기는 지구의 반이나 되는 크기의 이계 대륙을 멸망시켰다고 전해오고 있다.
“아마 그 기운이 천마룡에게서 나오는 거라면 우린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태훈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때 앞에서 인간 시체의 목덜미를 우적우적 뜯어먹고 있었던 마수들이 이들을 발견하고는 눈알을 뒤집고 달려왔다.
“다들! 최대한 무기만 사용해서 상대해!”
아영의 지시였다. 광역스킬이나 요란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주변 마수들에게 어그로가 튀고 만다.
태훈도 최대한 힘을 자제하고 창만을 사용해 상대했다.
“다들 눈 한 번 깜빡이는 것 조차 참아!”
아영이 낮게 외치며 춤을 추듯 검을 휘둘렀다.
몇십 마리의 마수를 무기만으로 조용하고 빠르게 상대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마지막 남은 마수 한 마리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낸 아영은 마수의 끊어진 허리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척수를 보며 한숨을 몰아쉰다.
‘무언가 느껴진다..’
근데 태훈은 계속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악마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사방에 있던 마수들이 잠시 떨며 움직임을 멈췄다.
“저것 봐. 방금 그 소리에 마수들이 겁을 먹은 것 같은데요?”
박하나가 말했다.
“마수들끼리도 공포감을 느끼고 그러나? 다들 같은 편 아닌가요?”
희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태훈이 고개를 저었다.
“마수들간에는 분명한 서열관계가 존재합니다. 또한 그들에게도 먹이사슬 같은 개념까지 존재하고요.”
태훈은 눈앞에 보이는 포터 트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운전석 문을 열자 입가에 피거품이 묻은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40대 남성의 시체가 보였다.
아마도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듯 싶다.
태훈은 트럭 안에 마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트럭의 열린 뒤칸에 올라갔다.
“뭐하려는 거예요? 설마 트럭을 몰고 이 대교를 건너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려는 거면 접어둬요.”
정색하는 아영에게 태훈이 오라고 손짓했다.
“정확히는 이 트럭을 타고 날아갈 겁니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해요. 방금 그 소리는 마수들의 먹이사슬 최강의 포식자가 낸 거니까.”
“…예?”
“최강의 포식자요?”
헌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훈은 트럭에 탑승한 채 힘을 사용해 트럭을 일 미터 정도 들어올렸다.
“시간이 없습니다! 벙쪄있지 말고 빨리들 타요! 여기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카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들려온 괴랄한 포효소리는 방금 보다 더욱 선명하고 가깝게 들려왔다.
* *
모두가 트럭의 뒤칸에 탄 채 비행하는 트럭에 몸을 맡겼다.
트럭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고 뒤따라 마수들이 따라붙었다.
“오, 온다!”
박하나가 외치며 광역스킬 캐스팅을 시전한다.
그 후 아공간에서 쏟아진 불덩이들이 쫓아오는 마수들의 머리에 쏟아졌다.
-카아아악!
-키에에에!
불에 타들어가며 한강 밑으로 떨어진 마수들을 해룡은 먹이로 씹어먹었다.
“이거 이렇게 이동하다가 어그로만 튄 거 아니예요?”
희준이 쉰 목소리로 태훈에게 따졌다.
“그 녀석이 나타나면 우린 모두 다 죽어요.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합니다.”
태훈은 아직 소모한 마력을 모두 회복하지 못했기에 확신했다.
그때 뒤통수를 흔드는 굉음이 귀를 찢을 듯 했다.
“천마룡이다….”
순간 천마룡의 발길질 한 번에 서강대교가 무너지며 한강 속으로 기우는 장면이 눈에 섬뜩하게 맺혔다.
그리고 천마룡은 허공을 비행하는 마수들을 발톱으로 잡아 터뜨리면서 매섭게 뒤따라 붙었다.
태훈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트럭의 속력을 높였다.
“따라 잡힐 것 같은데, 이거.”
헌터들의 원거리 스킬들이 천마룡을 폭격했다.
허나 생채기 하나 입지 않고 벌린 아가리에서 분비물을 내뱉으며 날아오는 천마룡을 보자 등골이 서늘했다.
“젠장! 모두 뛰어내려요!”
모두가 트럭에서 뛰어내렸고 트럭은 천마룡의 발톱에 산산조각이 난 채 허공에 흩뿌려진다.
“사, 살려주세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파고든 천마룡의 발톱이 희준과 유성을 낚아채 그들의 몸을 터뜨렸다.
조여진 천마룡의 발톱 사이로 희준과 유성의 핏물이 섞인 살점과 내장이 줄줄 흘러내렸다.
“끄아아악!”
눈 한 번 깜빡였던 찰나에 하나 앞에 도달한 천마룡이 발톱으로 하나를 짓눌렀다.
10톤이 넘는 드래곤이 짓눌린 압력에 유하나는 두 눈알이 튀어나오고 얼굴뼈가 부서지며 몸이 으스러졌다.
“속도가 너무 빨라. 다들 포지션 B로!”
아영은 그 던전에서 박태석을 마주쳤던 것 이상의 공포감을 느꼈지만 리더로서의 면목을 보이기 위해 차분한 척 지시했다.
“사, 살..”
그때 자신의 하체를 입으로 태연하게 곱씹고 있는 천마룡을 본 김명섭은 질색하며 눈을 감았다.
신아영이 신속하게 파고 들어서 천마룡의 아킬레스건을 노렸지만, S급인 그녀의 시야에서 천마룡의 다리가 사라진다.
콰앙!
순간 들어 올려진 천마룡의 두 발톱이 떨어지자 헌터 두 명이 커르륵, 하는 비참한 신음성을 내지르며 절명한다.
비상식적으로 강하고 빠르다.
이들이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조금만 벌어줘요!”
태훈이 급하게 외치며 무너진 서강대교의 다리에 시선을 두며 정신력을 모조리 끌어올린다.
‘젠장.. 내 마력이 완전했더라면.’
신아영의 눈으로 잘려나간 헌터들의 머리가 연이어 날아다니는 것이 섬뜩하게 박혔다.
저 괴물은 우릴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가지고 노는 것 같다, 라는 느낌에 더욱 간담이 서늘해졌다.
신아영은 이를 악 깨물고 냉기의 오러를 담은 검기를 천마룡에게 쏟아부었지만,
천마룡은 신음조차 뱉지 않고 다가온다.
“끄, 끝났어….”
절망하던 그 순간.
콰콰콰콰콰앙!
그때 천마룡의 뒤편에서 끊어진 다리가 한강물을 뒤집고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오르더니 천마룡에게 쏟아졌다.
콰아앙!
거대한 다리가 천마룡을 그대로 뭉갠 뒤 먼지와 연기가 일었다. 아작난 대교의 파편들이 천마룡 위로 무수히 쌓여있다.
“빨리 피합시다.”
태훈이 말하려던 그때 대교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면서 대교더미를 뚫고 발톱이 솟아올랐다.
아영과 태훈은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천마룡의 손아귀 안이었다.
그들 앞으로 날아와 몸집으로 앞을 막아선 천마룡을 보자 태훈과 아영은 사기를 잃고 주저앉았다.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서 그 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천마룡은 실망했단 기색으로 육중한 발톱을 허공 위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내려오는 발톱의 그림자가 아영과 태훈을 뒤덮었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인간은 그렇듯이 지금껏 살아왔던 삶이 뇌리로 빠르게 스쳐간다.
그때였다.
강렬하게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천마룡이 뒤로 밀려났다.
아영과 태훈이 눈을 떴을 때 아주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시운이었다.
“시, 시운아!”
시운은 데빌 소드를 빙글빙글 휘두르며 천마룡을 올려다봤다.
[네… 네 놈은.]
천마룡은 이제야 흥미가 생긴다는 듯 눈을 희번득하게 뜨며 콧김에서 굵은 숨결을 뱉어댔다.
“강한 기운이 느껴져서 와봤는데 요란하게 생긴 놈이었군. 그래. 무식하고 흉폭한 용답게 콧김부터 뿜어야지.”
“시운아! 조심해야 해!”
[역시 찾고 있던 그것이 내 앞으로 손수 방문해주다니. 바람의 군왕이여.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널 이 자리에서 죽여주겠다.]
“나야말로 내 동료들을 처참히 죽인 널 산 채로 눈을 뽑고 네 살점과 내장은 구이로 구워서 먹어줄게.”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잔혹함도 있구나.]
“재림하라..”
그와 함께 시운의 손아귀에서 피어난 기운이 주위의 땅바닥에 번져 흩어졌다.
그리고 시운의 주위로 든든한 망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