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7화
외전 #5 해운대의 타이탄
지금 이 세상 속 부산의 해운대 바다의 색은 언제 봐도 예뻤던 파란색이 아니었다.
내장과 시체, 뼛가루들과 엎어져서 둥둥 떠다디는 사체들만이 파도에 밀려 모래사장에 떠밀려 올 뿐이다.
그 시점에서 에로스 길드의 마스터 박영훈은 헌터들과 물 밀듯이 밀려오는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바다에서까지 쳐 밀려올 줄이야….”
영훈은 해운대의 지평선이 검은 마수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마수들은 바다에 부유한 사체들을 쳐내며 물살을 가르고 지상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뇌격 계열의 속성만 퍼붓는다!”
그의 지시에 번개 속성을 두른 원거리 계열의 화살과 마법들이 진격해오는 마수들에게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핏물색 해운대의 바다가 뇌격 파장을 일으키며 크게 튀어올랐다.
“크아악!”
모래사장에서 최전방을 지키고 있던 헌터의 목뼈가 뜯기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최정예라고 불리던 에로스 길드원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갔다.
“제, 젠장. 뭐 이렇게 내구력이 좋은거야?”
길드원들이 허무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틈이 없다.
영훈은 입술을 비집어 씹으면서 길드원들을 뒤로 빼라 지시했다.
이곳이 붕괴되면 해운대역의 대피소로 가는 길목이 뚫리고 만다.
그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아찔하다.
헌터 업계에서 명함만 내밀면 다들 군침을 흘리며 데려가려는 최정예 에로스 길드원들이 힘없이 죽어간다.
영훈은 절망감을 느꼈다.
부마스터 임지호는 걸어오는 마수 두 마리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도약하며 머리를 쳐내고 영훈 옆에 착지했다.
“마스터님. 이거 우리가 도저히 못 막겠는데요?”
“그걸 누가 모르냐? 여기가 뚫리면 부산 시민들은 다 죽는다고! 그딴 힘 빠지는 소리 안 해도 안다고.”
이제 남은 길드원은 삼십 명.
그들은 모래사장을 밟아가며 뒤로 빠지고 있었다.
“아, 아아…….”
그때 길드원 영호는 앞에 있던 동료의 머리가 마수의 입에 삼켜지는 것을 보고 풀썩 주저앉았다.
“야! 김영호! 얼른 안 일어나?”
“여기서 우린 모두 죽을 거예요.”
“니미 씨발.”
영훈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이미 바닷물을 가르며 진격해오는 마수들이 둥그렇게 포위한 채 그들의 퇴로마저 막은 상태였다.
-케에에!
영훈의 두 눈으로 지느러미가 달린 마수가 군침을 다시는 것이 역겹게 비춰진다.
그래도 영훈은 S급 헌터답게 퇴로를 막아선 마수들을 베어내며 퇴로를 뚫으려고 애썼다.
“막는 것보다 우리가 살아나가는 퇴로부터 만들어야겠다.”
에로스 길드원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바다 쪽의 마수들과 퇴로를 막아선 마수 모두를 상대했다.
기이이잉!
뒤편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해운대뷰를 그대로 담아내서 유명한 대형 호텔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종말 영화 속에나 비춰질법한 풍경이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이럴 때 이시운 헌터라도 있었더라면…….”
영호의 말에 영훈이 영호의 뒷통수를 후렸다.
“그딴 힘 빠지는 소리 할 시간에 퇴로부터 뚫을 생각이나 해, 이 새끼야.”
“왜 때려요?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영호가 영훈을 노려보자 영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번도 대든 적 없었던 어린 녀석이 처음으로 내게 대든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스터…….”
힐러 양민지가 떨며 말했다.
그 부름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는 좌절감이 베여있다는 것을 박영훈도 알고 있었다.
마수들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연이어 길드원들이 마수들에게 죽어가자 이빨을 악 물었다.
“씨이바아아알!!! 여기서 허무하게 뒤지려고 내가 그동안 개고생을 하며 이 길드를 굴려온 줄 알아? 다들 이 악 물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박영훈이 바다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영훈은 양손으로 쥔 검으로 앞을 가로막는 마수들을 처리하며 몸이 반쯤 잠길 때까지 바다로 향했다.
“뭐, 뭐하는 거예요? 돌아와요!”
“너희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내가 시간을 벌 동안 너희들은 무조건 퇴로를 뚫고 도망가라.”
“아, 안 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당신이 죽으면 우리들은 누가 이끌어!”
부마스터 지호가 악을 쓰며 마스터에게 달려갔다.
“오지마!!!! 씨발. 내 죽음을 헛되게 할 생각이냐? 숭고하게 뒤지게 좀 해줘라.”
“그런 죽음이 멋있는 죽음이라 생각해요? 형.. 씨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이리 나오라고요.”
항상 마스터님이라고 부르고 극존칭을 사용한 지호의 입에서 형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영훈은 그게 썩 맘에 들었는지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씩 웃었다.
“너한테 이제야 형 소리 들어보네.”
“마, 마스터!!”
“내 최종비기를 너희들은 알고 있지? 그걸 사용하겠다. 그 틈에 얼른 퇴로를 뚫고 여기서 빠져나가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그 말에 달려가던 지호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S급 박영훈은 그것을 사용하려는 듯 하다.
그때 영훈이 마지막이란 듯한 눈빛으로 영호를 바라봤다.
“김영호!”
“왜 불러요! 씨발! 그냥 나오라고요!”
“네가 나랑 이름도 비슷하고 내 예전 모습과 참 닮아서 속으론 특히 널 이뻐했는데 실상은 맨날 네게 욕만 하고 널 갈구기만 한 것 같네.”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면서요.. 마스터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그때 영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수의 공격으로 팔 하나가 잘린 영훈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남은 한 팔로 마수들을 무참히 베어갔다.
“영호야! 그동안 미안했다. 내가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어.”
그 말에 김영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박영훈에게로 뛰어갔다.
그때 지호가 영호의 두 팔을 끌어안고 막았다.
“다가가면 안 돼. 마스터는 그걸 사용할 생각이다.”
“놓으라고요!!!!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몇 년인데 저렇게 죽게 놔둘 거예요?”
“...영훈이 형의 말을 듣자. 그리고 우리가 살아남아서 반드시 복수하자.”
이제는 가슴팍까지 물이 잠겨있는 박영훈의 전신에서 적색의 오로라가 뿜어져 나왔다.
마수들은 그 기운을 감지하고 헌터들을 무시하고 박영훈에게로 달려갔다.
“모두들 반드시 살아남아라.”
영훈은 마지막을 각오한 듯 눈을 비장하게 떴다.
그리고 그 비기를 사용하려던 그 순간.
사방에서 창들이 매섭게 쏟아졌다.
소나기처럼 연이어 쏟아지는 창들은 마수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뭐지?”
영훈은 갑자기 창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크오오오오오!
순식간에 만 명 규모의 군단들이 보였다..
그들은 고대에 살았던 최정예 병사들의 느낌을 풍기듯 은색 투구와 고결한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함성을 내지르며 마수들을 미친 듯이 썰어가기 시작했다.
그 틈에 지호와 영호는 무기를 내던지고 바다로 헤엄쳐서 영훈을 구해왔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영훈은 외팔로 피가 튀어나오는 어깨 단면을 손으로 짓누른 채 말하자 그의 어깨에 두툼한 손이 올라왔다.
“부하들을 지키려고 헌신하려 했던 그대의 의지는 참으로 멋있게 보았다. 우리는 주군이 보낸 군대다.”
“군대? 설마 이시운 헌터가 보낸 자들이요?”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피해있어라.”
영훈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콘이 근엄하게 말하자 영훈은 에로스 길드원들을 훑어보았다.
절망과 공포에 빠져있던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시운...’
그를 미워했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하다.
그가 보낸 군단이라면 여기서 길드원들을 살려내고 대피소의 부산시민들을 지킬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타이탄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킨다!”
아콘이 방패를 들며 외치자 타이탄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마수들을 몰살시켜갔다.
* *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수떼들은 타이탄에 의해서 점점 수가 줄어갔다.
그렇게 바다에서 몰려온 마수들이 주춤거렸고 타이탄들이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그때 해운대 바다가 거대하게 두 갈래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드러난 해운대의 지면을 밟고 여성의 형상을 한 존재가 걸어왔다.
‘저들의 수장인가?’
아콘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긴장감을 느끼며 창을 그쪽으로 힘껏 던졌다.
차아앙!
지면을 밟으며 걸어오는 존재는 그 창을 가볍게 튕겨내며 아콘을 주시했다.
그 시선을 받은 아콘은 온 몸이 경직되듯한 공포감을 삼켰다.
‘지금의 내가 상대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기운이다.’
시퍼런 피부에 인간의 눈보다 두 배는 큰 눈을 가진 여성은 지느러미가 달린 하체를 유려하게 움직이며 아콘에게로 걸어왔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녀의 손에 타이탄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푸욱!
그녀는 손톱으로 쑤시는 것만으로 타이탄들의 강력한 피부를 뚫어버리고 즉사시킬 정도였다.
[이게 인간들이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인가?]
그녀는 아콘이 던진 창대를 잡고 창을 위아래로 신기하게 뜯어본다.
그리고 그녀는 아콘에게 그 창을 던졌다.
쐐애애애애액-!
시간을 무시하듯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온 창을 아콘은 방패로 막았지만 창은 방패를 뚫고 아콘의 명치에 박혔다.
“아, 압도적이다…….”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또다시 절망감에 빠졌다.
“밀릴 것 같은데, 이거….”
“우리가 도와봤자 도움조차 되지 못할거야.”
그때 영훈은 자신을 구해준 아콘이란 자에게 달려갔다.
“마스터!”
뒤에서 부르는 소리는 무시하고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넓은 등에 손을 얹었다.
“내게 뭘 하는 거냐?”
“당신과 당신의 군단은 나와 내 헌터들을 구해주었다. 그로서 보답을 해주겠다. 어차피 난 당신 아니면 죽을 몸이었어. 씨발.”
박영훈의 몸에서 피어난 하얀 오라가 아콘의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고.
눈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아콘은 자신의 명치에 박힌 창을 빼내어 들었다.
“보아하니 자네의 기운을 모두 내게 주는 것 같군.”
“원래는 다른 녀석에게 하려고 했던 거지만….”
“정말 그래도 괜찮겠나?”
영훈은 그 틈에 슬쩍 영호를 바라봤다.
언젠가 때가 되면 김영호 저 푼수에게 내 신체 오라를 주려고 했었는데.
“마스터…….”
영호가 힘 빠진 목소리로 영훈을 불렀다.
아콘이 든 창날에서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투구와 방패, 갑옷에서도 빛이 형형색색으로 뿜어져 나왔다.
‘주군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
진급하려면 자신의 영혼을 점유한 주군의 허락을 맡아야 가능했다.
바람의 신호를 통해 이시운을 부르자 대답이 들려온다.
“주군! 허락해주십시오.”
-뭘?
“제가 초월하여 주군의 나라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말입니다.”
-허락하겠다. 나도 곧 합류하겠다. 좀만 버티고 있어라.
시운의 말이 끝나자 아콘의 두 안광에서 빛이 몇 미터나 앞으로 뿜어진다.
그와 동시에 죽어가던 타이탄들도 벌떡 일어나서 창을 내쥐었다.
그 순간 세상을 뒤집을 듯한 강렬한 빛이 한 번 지나가자 아콘과 타이탄의 군단들의 모습은 변해있었다.
은색의 투구가 금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방패는 더욱 미래적인 면모를 풍기는 메탈 형식으로 바뀐 채다. 창날에는 황홀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의 눈과 입에서 강한 집념이 담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까와는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타이탄들이여.. 준비하라.”
그와 함께 아콘이 순식간에 앞에 있던 마수들을 베어내고 오른쪽 다리를 뒤로 내밀고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그 자세로 멈췄다.
그리고 창날을 들어올려 마수들을 향해 겨냥했다.
타이탄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세를 취했다.
눈이 감기는 영훈을 부축해서 데려온 영호는 그들을 놀랍게 바라봤다.
“저 자세는 뭐지?”
“...현대에서도 달리기를 할 때 준비 자세가 저 자세잖아. 제일 과학적으로 몸에 추진력을 실을 수 있는 자세.”
지호가 답했다.
콰아앙-!
그때 타이탄들의 아킬레스건에서 힘줄이 솟으며 땅을 밀어차고 마수들을 향해 쇄도해갔다.
파파파파파팍!
번개같은 속도로 돌진한 타이탄 군단들의 창에 마수들이 갈갈이 찢겨나갔다.
마수들의 절삭된 지느러미와 비늘, 핏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위대한 타이탄들이여! 우리 주군을 위해 앞을 막아선 악인들은 모조리 처단한다.”
타이탄들의 창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금빛이 일었다.
그때 아콘이 폭주하듯 다리를 움직이며 그녀에게 돌진해갔다.
클레온은 손을 움직여 거센 해일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강대한 해일과 아콘의 창날이 맞부딪히자 해운대 일대가 날아갈 만큼 강렬한 바람이 터져나왔다.
사사사사-!
타이탄은 두 눈에 열기를 내뿜으며 해일로 창날을 막고 있는 그녀를 차갑게 노려봤다.
“네가 이 들의 우두머리인가?”
[난…… 인간도, 괴물도, 신도 아니다. 그러나 곧 신이 될 대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