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39화 (239/278)

제 239화

외전 #7 종말을 앞둔 세상

마물들의 침공이 이어지고 한 달이 지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대피소는 지하철 통로를 통해 안착한 상황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등은 이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상파와 공중파 구별할 수 없이 언론자체는 보도가 끊긴 상태다.

암울하다.

피폐스런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풍겨나올 법한 상황들은 현실이 된지 오래다.

-살아계신 분? 오늘도... 신의 가호가 있길 빌면서 방송을 마칩니다.

오직 특정 주파수의 라디오 채널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생존자들의 소소한 방송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의식주를 잃은 사람들은 대피소에 터전을 잡으면서 초췌해져갔다.

항상 물과 식량의 부족이 문제였다.

정부에서 공급해주는 재난식량도 보급이 끊긴 상태.

용감한 생존자들이나 무리를 지어 지상 밖으로 나아가 아직 유통기한이 남아있는 통조림이나 음식등을 구해오면 그것으로 대피소 피난자들은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었다.

부자였던 사람, 연예인 출신, 흔히 말하는 ‘사’ 자 직업으로 목을 빳빳히 들고 다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나 그들을 넘어서 0.01 % 상류 고위층의 사람들은 대피소에 없었다.

그들은 그들만이 공유하는 지하벙커 속에 숨어서 지내고 있을 터다.

아득하고 절망적인 상황.

모두가 이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럼에도 대피소 안의 사람들은 대체로 고무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똘똘 뭉쳐 각자 맡은 일을 해낼 뿐이었다.

특히나 지하철을 통해 대피소로 이어지는 입출구는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모두 봉인한 상태다.

마물들이 대피소로 발을 내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대피소 마포역.

태훈은 천생 길드원들과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 구해온 식량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고마워요. 헌터님들! 그리고 작곡가님...”

“이 소중한 음식들은 우리 아이부터 먹일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꽁치 통조림이네요? 군침이 벌써부터 싹 도네.”

그들 중에는 간혹 김태훈의 과거를 알아보는 사람도 존재했다.

뭐 그런게 지금은 상관이 없지만.

쿠우웅ㅡ

지상에서 섬뜩한 굉음이 들려온다. 생존자들은 눈을 위로 슬쩍 들며 떨었다.

저렇게 간헐적으로 지상에서 굉음이 들려올 때면 시민들은 떨어야 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 면역력이 떨어져서 아픈 사람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돌봤다.

중상을 입은 자들은 힐러계열의 헌터가 치료했다.

그러나 특정 약물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나 급하게 수술을 해야 사는 자들은 절망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이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 대피소 세상 속에서 가장 우대받는 자들은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생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헌터협회에 등록된 정식 헌터들의 수도 이제는 현저히 줄어있었다.

“...이시운 헌터님은 이제 안 오시나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태훈을 보며 침울하게 물었다.

그 물음에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궁금하단 표정으로 태훈을 주목했다.

“시운이는 곧 올거야.”

“정말이죠?”

“그럼. 정말이지.”

태훈은 속마음을 숨기고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달랬다.

시민들도 그 대답에 안심하는 낯빛이다.

생존자들에게 이시운의 존재는 절대적인 수호자 또는 구원자 같은 존재였다.

시운이는 생필품이나 식량,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들을 군단을 보내어 주기적으로 생존자들에게 칼같이 보급했었다.

그러나 그 보급이 끊긴 지도 2주가 지난 상태고 연락 또한 되지 않는 상태다.

‘시운아. 무탈히 살아있을 거라고 믿는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그때 저 먼 발치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태훈은 그곳으로 가보니 젊은 경비대원들이 허리춤을 차고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우리 일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예민한데 왜 자꾸 더 예민하게 사람을 만드냐고?”

덩치 큰 경비원 하나가 쏘아붙이자 노인은 움츠러들면서도 경비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 나쁜 자식들아! 자꾸 왜 내 밥을 빼앗으려고 하냐고!”

“하아.. 그니까 유두리 있게 좀 도움을 받았으면 알아서 상납할 건 해야지.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양반이... 왜 이러실까.”

“나도 굶고 있다고. 하나 남은 딸 주려고 챙겨둔 비상식량을 왜 자꾸 달란 말을 해!”

“아휴 확 이 늙어빠져서 도움도 안 되는 틀딱새끼가 말귀를 못 알아 처먹고.”

그때 태훈이 다가가서 노인을 향해 팔을 올려든 경비병의 팔을 붙잡았다.

“뭐하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이 사람이 자꾸 우리 일하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귀찮게 해서….”

태훈은 헌터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대피소 전체에 소문이 난 상태였다.

경비대원들은 태훈을 보고 눈에 힘을 풀고 짝다리를 짚던 자세를 고쳤다.

“상황을 얘기해보세요.”

“아니, 상황을 말씀드릴 건 없고 그냥…….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놈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비열한 오만 짓들을 하고 있으면서!”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증거 있어요?”

그 말에 태훈의 이마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방금 대화한 거 다 들었어요. 경비들이면 제공되는 식량이 일반 시민보다 많은데 왜 더 빼앗으려고 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요. 선생님.”

“당신들 총괄하는 책임자 불러요.”

태훈이 쏘아붙이자 경비원이 노인에게 허리를 반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배가 고파서 그냥 달라고 좀 부탁을 드렸던 건데.”

“그게 부탁하는 말투였나?”

노인이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태훈이 끼어들어 노인을 달래고 경비원에게 총괄을 부르게 지시했고 그들의 총괄이 무전을 받고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 사과했다.

태훈이 경비들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에게 그런 막말을 하면서 음식을 갈취하려는 인성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생존자들을 지키는 경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사과는 내가 아니고 어르신께 해야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못난 욕심에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비가 사과하자 노인의 구겨진 얼굴이 풀어졌다.

태훈은 경비들의 총괄책임자를 차갑게 바라봤다.

“아, 제가 밑에 애들 지도를 잘 못 했습니다.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똑바로 교육시키겠습니다.”

“앞으로 경비분들이 시민들에게 이런 행위를 했다는 말이 한 번이라도 들린다면….”

“아, 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경비 총괄책임자 구성훈은 그 뒷말이 어떤 의미로 이어질지 떠올리며 진솔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경비들이 떠나자 노인은 태훈을 오묘하게 쳐다봤다.

“따님에게 식량을 제공하시고 굶으셨죠?”

태훈은 품에서 황도와 꽁치 통조림을 꺼내어 노인에게 건넸다.

“허허허…. 다르긴 다르구만.”

“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정이 아주 많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

노인의 반응은 좀 특이했다.

그는 태훈을 관찰하듯 대놓고 바라보면서 그 통조림을 받았다.

“보통 다른 사람 같으면 이 시국에 늙은이 하나 어떻게 된다고 해도 상관도 안 할 텐데.”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모두 소중한 생존자 분들입니다.”

“한 번 시험을 해봤는데 나를 놀라게 할 정도로 따뜻한 면이 있네?”

“시험이라뇨?”

김태훈은 노인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주변을 살폈다.

“주위에 사람이 좀 있네. 나하고 조용한 곳에서 대화 좀 나누지 않겠나?”

지금 해야할 일이 있으나 조금 미뤄도 될 일이다.

그리고 주름이 패인 노인의 얼굴을 보자 태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적적하셔서 말동무가 필요한 것 같은데.’

조금 특이한 점은 있었지만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데 오히려 너무나 정상적인 것도 이상할 수 있다.

태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 *

태훈은 플랫폼 밑의 지하철의 통로를 노인과 따라 걸었다.

지하철은 운행이 폐쇄된 상태지만 지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산책로로 근근히 사용하고 있다.

-살고 싶어 보고 싶어 우리 가족들 사랑해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존나 배가 고파서 눈이 뒤집힐 것 같다고

벽면에는 생존자들이 적은 낙서가 보인다.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며 노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자네하고 얘기를 나눠보니까 이런 인간도 있나싶구만.”

“...이런 인간이요?”

노인의 화법은 특이하다 못해 이상했다.

그러나 태훈은 티를 내지 않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머니는 잘 살아계실까?

일부러 소식을 알아보지는 않았다. 겁이 나서. 그리고 어머니를 만날 용기도 서지 않는다.

“인간은 참으로 과거에 집착을 많이 하더군.”

노인이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듯 말한다.

허나 태훈에게 그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 예민한 태훈에게서 그는 어떠한 이상한 점도 느껴지질 않았다.

“난 자네를 찾고 있었네. 그리고 자네 앞에서 연극 좀 해봤지. 자네가 어떻게 반응하나 싶어서.”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바람의 후예여.”

순간 싸늘하게 얼굴이 식은 태훈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소환한 바루스의 창날이 노인의 콧날에 닿았다.

예리한 창날이 닿았음에도 노인의 피부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넌 누구냐.”

“공격적으로 반응할 것 없네. 난 자네를 해할 생각이 없었어.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미 기회는 많았네.”

태훈은 고민했다.

당장 선공을 가할지. 일단 말이라도 들어볼지.

그때 노인의 두 눈이 흰자위가 없이 모두 검게 변했다.

인간이 아님을 확신하고 곧바로 창날을 노인의 눈을 향해 찔러넣었다.

그러나 창은 노인의 머리를 투과한 채였다.

창대와 날이 닿은 노인의 눈 부분은 투명한 상태였다.

“이게 네 실체가 아니군.”

실체가 아니라면 이 놈 또한 내게 본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한다.

“다 끝났나. 표정을 보아하니 나 역시 자네에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을 파악한 모양이군.”

“음침한 놈이군. 당신이 귀신은 아닐 거고…. 카인 쪽 놈인가?”

카인은 분명 아니다. 카인이었다면 애초에 기운을 못 느꼈을 리가 없지.

“그 대답에는 지금은 아니라고 해두지. 모든 것을 느긋하게 설명해줄 친절함이란 내게 없네. 다만 자네를 좀 관찰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두지.”

“귀찮게 하는군.”

누군지 추리하게 할 의도가 보인다.

음흉하게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다.

근데.

음.

방금 뱉었던 관찰이란 단어가 좀 익숙하다?

결론을 도출해보자.

인간이 아니고 마물도 아니면서, 카인의 편에 있다가 지금은 아닌 자.

게다가 인간에 관심이 많아 보이고 저런 능력을 사용해서 인간을 내다볼 수 있는 자라면.

도출된 답은 하나.

두뇌 회전을 멈춘 태훈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알겠네. 당신이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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