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1화
외전 #9 신아영의 선택
“어떻게요? 어디에 있을 줄 알고 찾아요?”
혜령이 물었다. 그 물음은 방법만 있다면 당장 동의한다는 듯이.
“방법이 있습니까?”
유석 또한 거들어 묻는다.
모두가 태훈을 바라봤다.
김태훈은 특이한 이능을 가졌다는 것을 전원이 알고 있었다.
그라면 방법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는 특정 기운을 기억하고, 감지하고 찾는 능력이 있어요.”
그 말에 신아영이 회의적인 투로 물었다.
“그렇지만 감지 헌터들도 불가능한….”
“저기요! 당신은 왜 시운이를 찾는 것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에요?”
혜령이 신아영의 말을 자르고 툭 쏘았다.
평소 같았으면 부대표라는 존칭은 썼을텐데 화나면 툭 뱉는 그 성격이 그대로 나왔다.
“나도 그를 찾고 싶거든요….”
신아영이 한숨을 쉬자 혜령이 얼굴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정말 찾고 싶은 거 맞는지? 찾다가 죽을까봐 그게 겁나는 건 아니고?”
“강혜령 씨.”
신아영의 차가운 눈동자가 혜령을 향해 멈춰 있었다.
혜령 또한 불꽃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맞응시 한다.
싸늘한 정적이 헌터들을 훑고 지나간다.
그때.
“방법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시운이를 찾는 데 돕고 싶습니다.”
유석의 대답에 연희도 단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운이를 찾는 것은 사사로운 동료애로 찾는 것 그 이상의 의미에요.”
“그건 나도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 어떻게 찾을 건데요? 감지계열의 헌터들도 이시운 씨의 군단 중 일부조차 찾지 못하고 있잖아요?”
신아영의 물음에 연희는 반박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태훈은 적당히 분위기를 살피고 입을 뗐다.
“저.. 이제 제가 말 좀 해도 되겠죠?”
“김태훈 씨가 감지계열의 헌터들 이상의 감지력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더 얘기해도 돼요.”
신아영의 말에 강혜령이 의자의 모퉁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건 말건 신아영은 태훈만 바라봤다.
“제 감지력은 일반 헌터들보다 확연히 뛰어납니다. 그래서 찾아보는게 어떠냐고 제안한 거고요.”
“이거 봐! 이 사람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한 거잖아!”
혜령이 악을 썼다.
“혜령 씨? 좀 입을 닥쳐봐요. 나도 진짜 그 누구보다 그 사람이 보고 싶은 사람이니까….”
신아영이 말하고 난 뒤에 태훈에게 설명을 들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난 신아영은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시운 씨가 살아있다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고. 그 기운을 느끼려면 지상으로 나가야 한다? 이 말이죠?”
“네. 그게 제약이 있긴 한데, 그것과 마물들과의 리스크도 생각을 하고 제안하는 겁니다.”
“일단은 생각 좀 해보죠.”
*
신아영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대피소의 흡연실에 도착했다.
“엇! 헌터님? 식사는 하셨어요?”
“담배도 태우시는 구나.”
“라이터 없으시면 불 빌려드릴게요.”
담배를 피고 있던 경비대들이 그녀에게 말을 건네왔다.
이미 대피소에서 신아영의 외모에 반해 흑심을 품는 남자들이 태반이었다.
이처럼 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여자가 그렇게 고파?
“됐으니까 말 걸지 마요.”
신아영의 대답에도 경비원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한 번 보면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예뻤지만 싸가지가 없기로 소문이 났다.
그럼에도 말 한마디 붙여보려고 하는 남자들이 가득이었다.
‘오.. 내공 봐라?’
‘역시 듣던대로 싸가지가 없네.’
‘얼굴값은 더럽게 하네. 지도 사람이면 성욕도 있을거고 남자랑 떡이라도 한 번 쳐보고 싶을 거면서.’
‘가슴 존나 크네. 그리고 골반 봐라. 저건 분명 자기관리를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자기관리를 한다는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 아닌가?’
경비들이 신아영의 기운에 눌려 서로 눈치만 볼 때 한 잘생기고 젊은 경비가 실실 웃으며 아영에게 다가갔다.
“헌터님은 너무 딱딱하시네요. 여기 흡연실에서 담배피는 동안이라도 뭐 대화도 하면서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나?”
“꺼져.”
그 한마디에 잘생긴 경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 현석이도 팅기네? 눈이 높나?’
다른 경비들은 아이돌 뺨치는 미남인 그에게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속으로 놀라워했다.
치이익-
신아영은 몇 년 전에 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을 붙였다.
“쳐다보지 말고 담배 다 피웠으면 나가요. 당신들에게 관심 없으니까.”
아영은 눈길도 주지 않고 경비들에게 말하자 경비들은 머쓱하게 줄담배를 피우던 것을 끄고 하나둘씩 나갔다.
콜록.
기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예쁜 얼굴이 오묘하게 일그러진다.
정말 힘들 때나 누군가가 그리울 때 이 담배를 찾게 된다.
니코틴이 몸속으로 스며들면서 아영의 머릿속으로 이시운. 그의 얼굴이 스쳐갔다.
참. 지랄 맞네. 왜 그 남자가 자꾸 떠오르는 건데?
남자란 존재에 관심을 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시운.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근데 이게 관심이라는 감정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고 싶다.
커흑. 커흑.
흡연실에 퍼진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신아영은 잔기침을 하며 담뱃불을 껐다.
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리스크가 크다.
현재 대피소의 사람들에게는 천생 길드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소수정예의 인원을 꾸려서 그를 찾으러 가야한다는 건데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그를 찾는 일이 무모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보고 싶어.”
처음으로 고마움을 알게 해주고,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줬던 그 남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살짝 찌푸린 얼굴로 흡연실을 나오자 김태훈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아영 씨. 결정은 끝냈어요?”
“그 사람은 살아있겠죠?”
“쉽게 객사할 녀석은 아니에요.”
그렇겠지?
“당신이 내린 결정이 내 생각과 일치한다면 지금 나랑 같이 잠깐 밖으로 나가요.”
아영은 대답하지 않고 태훈과 통로를 걸어 대피소 출구로 향했다.
“잠시 밖에 나갈테니 문을 개방해주세요.”
경계를 선 채 경례를 하는 군인들은 태훈의 말에 봉쇄된 철문을 개방시켰다.
태훈과 아영은 창과 검을 꺼내들고 태세를 갖춘 후 계단을 올라갔다.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도시라고 불리기도 힘든 폐허가 된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다.
“전방 이백 미터에 세 마리요.”
태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영이 튀어나가서 마수들을 차례차례 베어냈다.
아영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채 마수들의 얼굴을 발로 건드리며 죽었는지 확인한다.
“음.. 더는 없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주변에 마물들은 이게 다였다.
“……….”
“할 말이 있는데 할까 말까 고민중인 눈친데요? 그럴 시간에 말하죠. 아영 씨 답지 않게.”
태훈의 말에 아영은 화들짝 놀라 눈이 크게 뜨였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궁금한 건 있어서.”
“원래 궁금한 건 즉시 물어보는 타입 아니었나?”
“……저, 그. 태훈 씨가 이시운 씨 절친이라니까 묻는건데 시운 씨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에요?”
“갑자기? 그걸 묻는다고?”
“아, 아니. 그 여자친구분도 걱정하고 있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궁금하기도 하고...”
신아영은 물어놓고 자기도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태훈의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떨궜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이걸 왜 쳐물어본 거지? 내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절친이라면서 그것도 몰라요? 좀 이상하네.”
“이 상황에 그런 걸 물어보는 아영 씨가 더 이상한데요?”
뭐, 뭐라는 거야? 김태훈 이 자식 은근히 말로 안 지네?
아영은 괜히 검끝으로 흐르는 마물의 피를 더럽다는 듯 땅에 툭툭 털어낸다.
“아, 모른다면 됐고요. 빨리 그거나 해요.”
그 말에 태훈은 바루스의 창을 내려놓고 심부좌를 트고 앉아 눈을 감았다.
“딱 5분만 시간을 벌어줘요.”
그 순간 신아영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제발.
그런 마음으로 태훈에게서 등을 보인 채 주변을 경계했다.
*
현계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와 인간의 몸이라면 바로 녹아내릴 열기가 뿜어지는 공간에서 수백만의 마물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앞으로 하나둘씩 생물의 형상이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난 형상의 수는 다섯.
곧 신이 될 대리자이자 지배자라고도 불리우는 그들.
마신(魔神) 아베크로스가 왼팔이 없어진 클레온을 슬쩍 바라봤다.
“바람의 군왕에게 당한거냐?”
클레온은 자신의 몸이 수치스럽다는 듯이 웅크렸다.
“…아니다.”
“그럼 팔 한쪽은 왜 잘려나간 거지?”
“……말해야 하나?”
그러면서 클레온은 슬쩍 돌아봤다.
거만한 자세로 왕좌에 앉은 채 어둠에 내려앉아 두 안광만 뿜어내는 그가 대꾸가 없다.
그 뜻은 말하라는 것이다.
클레온은 치욕스럽다는 표정으로.
“...정확히는 바람의 군왕이 이끄는 군단놈 중 하나에게 당한 것이다.”
“군단 중 하나? 바람의 군왕에게도 아니고 자네가?”
“그렇다! 방심해서 그렇게 됐을 뿐이다. 너 또한 바람의 군왕에게서 꽁무늬를 빼지 않았느냐!”
아베크로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분명하다. 바람의 군왕뿐만 아니라 그의 그 군단들도 강해지고 있는 거야.”
아베크로스는 중국에서 그와 혈전을 벌였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는 이유가 있어서 마무리를 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는 강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더 강해지고 있다라.
그때 메탈금속의 투구를 쓰고, 미래형 형태의 거총(탄환 한 발에 그 어떤 생명체도 절명시킨다는 총.)을 든 창공의 스나이퍼 야이르가 비웃었다.
“푸하하하하! 여기서 가장 최약체인 클레온에게 뭘 더 바래? 아베크로스 저 자식은 진중한 척 하면서도 꼽 주는 것은 도사네.”
그 말에 클레온은 이를 갈았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을 지켜보던 관찰자가 말했다.
“결국 인간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인가?”
“야. 그걸 말이라고 묻냐?”
“이 세상에서 인간이란 생물은 필요가 없는 존재다.”
“그 인간들 뿐만 아니라 그 바람의 개자식도 아주 잔인하게 죽일테다.”
클레온과 아베크로스, 야이르가 각각 대답했다.
관찰자의 눈동자가 왕좌쪽으로 굴러갔다.
그와 시선이 부딪히자 등골에 타고 흐르는 섬뜩함에 고개를 돌렸다.
‘...네 생각은 어떠냐? 왜 말을 않고 있는 것이지?’
그는 가만히 앉은 채로 대화를 듣고 있다.
관찰자는 이들의 단순함과 무자비함에 슬슬 질려갔다.
‘그 인간이 했던 말에 호기심이 솟는군.’
대피소에서 너무나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던 김태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이란 종족만이 할 수 있고,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관찰자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곧 차원을 지배할 신이 될 이들에게는 ‘파괴’ ‘단순’ ‘복수’ ‘강함’ 등의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정들만 느끼는 것에 비해 인간은 달랐다.
“듣거라.”
그때 공기를 얼려버리는 듯한 내공에 네 명의 지배자가 얼어버렸다.
그들의 고개가 왕좌에 앉은 그에게로 돌아갔다.
“빨리 목표를 이루고 카인과의 성약을 끝낸다. 바람의 군왕을 찾아내서 죽이고 흡수해라.”
그때 클레온이 슬며시 말했다.
“나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너 또 나머지 팔 한쪽 잘리고 이제 수영도 못하는 신세가 될라고? 그냥 내가 한다.”
“이, 이 놈이!”
클레온이 외팔로 창을 들어 올리자 야이르의 거총이 클레온의 이마로 향했다.
“그만해라.”
그의 말 한마디에 야이르와 클레온은 무기를 내렸다.
“난 바람의 군왕보다 다른 강한 인간을 찾아 혼을 수집하겠다.”
아베크로스가 담담히 말했다.
야이르가 그의 눈치를 살피고 눈을 번뜩거렸다.
“바람의 군왕은 내가 처리하지. 이 중에 당신 다음으로 강한 건 아무래도 나니까.”
“그렇게 하라. 대신 실패할 시에는 넌….”
“아, 알아. 무섭게 너무 그러지 말고 확 쏴죽이고 머리통을 터뜨리고 확인사살까지 정확하게 하고 올게. 나만 믿으라고. 나 창공의 스나이퍼 야이르야.”
그런 광경을 보던 관찰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이 무식한 놈들과 나는 인연이 아닌 것 같구나.’
*
“하.”
아영은 태훈의 한숨소리에 급히 뒤를 돌아봤다.
“끝났어요? 찾았어요?”
급하게 물었다. 근데 태훈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감지력이 헌터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면서 설마 못 찾았다는 무능한 답변을 늘어놓진 않겠죠?”
태훈은 한껏 굳은 얼굴로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이 세상에서는 시운이의 기운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느껴지질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