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43화 (243/278)

제 243화

외전 #11 소환수 척준경의 일기토

아메리카탑팀 소속 크리스는 척준경을 바라보면서 유리아에게 물었다.

“저 사람의 검술……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지.”

“태어나서 저런 검법은……. 아니. 저런 것과 유사한 스킬조차 듣도 보도 못했어요. 마스터는 어떻게 생각해요?”

유리아의 시선은 척준경에게 꽂혀있었다.

그는 녹이 슨 도검을 든 채로 가만히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그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갈 때마다 마물들이 파편이 되어 뿌려진다.

‘정말 ………심검이 맞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내 눈으로도 좇을 수가 없어.’

S급 헌터인 그의 눈으로도 좇을 수가 없다.

척준경은 한치의 흔들림조차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들고 있는 도검의 칼끝이 초마다 몇 십 번씩 흔들린다.

‘경의롭다. 검으로 예술을 그리는 듯 하다…….’

유리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본 수많은 헌터들을 떠올렸다.

그들 중 유능한 검술을 뽐내던 헌터들만 추려내서 생각했다.

‘검을 귀신처럼 다루는 애들 참 많이봤지만, 걔네 조차 저 사람의 검술 발끝도 못 흉내내.’

유리아는 뒤돌아 루이를 힐끔 훑었다.

“넌 저런 검법을 본 적이 있냐?”

루이는 검술만으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헌터였다.

특히 검술에 관심이 많아서 지식이 빠삭하다.

“……저건 이 세상의 검술이 아닙니다.”

“그럼 뭐 우주의 검술이라도 된단 말인가? ‘마스터이’가 떠오르는군.”

“지금 그딴 실없는 농담을 할 때입니까? 아무튼 방금 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들었어요? 정말 그 말이 맞다면 저 남자는…….”

루이는 유령을 본 듯 얼어붙은 얼굴이었다.

“누군지 알아?”

“척준경.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이름을 떨쳤던 무사인가?”

루이는 저 남자를 ‘무사’라고 표현하는 말에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무사 정도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선조 나라인 고려인입니다. 고려제일검.”

척준경을 바라보는 루이의 눈빛에는 경외감이 섞여있었다.

“중국의 여포나 관우 그들보다 강한 자인가?”

그 말에 루이는 피식 웃었다.

“그들은 대단한 무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중국놈들이 과장으로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중국 새끼들 하는 꼬라지는 옛날부터 과학이었죠. 아무튼 그들조차 저 남자에 비할 바는 못 돼요…….”

“그 정도야? 그렇다면 초한지의 항우나 일본의 야마모토 무사시급인가.”

루이는 유리아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항우도 알고 무사시도 알면서 왜 척준경은 모르냐는 눈빛으로.

“저 자의 일화가 담긴 기록을 봤습니다. 그 일화는 과장이 없습니다. 그 일화를 살펴보면…….”

루이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듯 두 팔을 매만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최고의 소드마스터라고 보면 됩니다.”

“그, 그 정도라고?”

유리아의 망막으로 척준경은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마물들을 학살하듯이 베어내고 있었다.

인간이 괴물을 상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자세로.

먼 거리에 있어도 그에게서 혈향이 풍겨오는 듯 했다.

‘처음 맡아보는 피냄새다…….’

저 검으로 얼마나 사람을 많이 죽였으면, 이런 소름돋는 피냄새가 여기까지 코로 느껴진단 말인가?

“그러고보면 참 이시운이란 헌터는 대단해. 죽은 자를 살려내고 다루는 것 뿐만이 아니라 오래 전 죽었던 인물까지 이렇게 불러내는 것을 보면…….”

“저런 위인이 군단 중 일원이라면 군단장인 이시운이란 헌터는 대체 얼마나 강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건 사실이죠.”

“그는 우리 인류의 마지막 희망임이 틀림이 없군.”

유리아는 이시운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역대급 헌터.

‘당신이 보낸 지원군 덕분에 희망이 생겼어요.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를 떠올리며 경의의 마음으로 묵념을 마친 뒤 사방에 있던 마물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

척준경에게 아베크로스가 보였다.

아베크로스는 척준경이 거리를 좁힐 때마다 뒤로 물러났다.

‘내게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내 허점을 찾기 위해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크로스의 눈에서 빛나는 이채의 색은 아까와는 달랐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저 마물은 아까 일격에 절명 시켜버린 그것과는 다른 내공이 느껴진다.

쉼 없이 달려드는 마물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수록 아베크로스는 뒤로 물러나면서 지켜본다.

척준경은 마물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풍기는 냄새의 밀도를 감지하고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그리고 뒷발에 모든 힘을 실어 몸을 팽이처럼 회전했다.

그 회전력을 더해 움직이는 검에 마물들은 신음성도 뱉지 못하고 죽어갔다.

쿠웅-! 쿠웅-!

그때 그의 앞으로 두 거인이 길을 막아섰다. 척준경은 회전을 멈추고 뒷발에 힘을 주어 왼발과 오른발의 위치를 바꾸고, 디딤발에 모든 힘을 실어 도약하며 두 거인을 지나쳤다.

떠오른 척준경의 두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두 거인의 거대한 머리가 땅에 떨어져 돌처럼 박살났다.

‘흉물들의 수는 대략 9만.’

오래전 고려를 지키기 위해 단신으로 대인들을 상대했던 그는 육감적으로 적의 수를 헤아리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9만 마리를 모두 상대할 수는 있다. 허나.’

주군이 내린 지시는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며 수장을 죽일 것.

‘그렇다면….’

마물들을 지휘하는 아베크로스를 빠르게 절명시켜야 한다.

척준경과 아베크로스의 시선이 만났다.

지금 이 몸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척준경은 고려시대 때 검 한자루를 쥔 단신으로 대인전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척준경의 전생의 그의 기억 덕분이었다.

‘생물은 한계를 초월하면 자신의 전생에 있었던 기억들을 재건 시킬 수 있지.’

그가 사용했던 검술과 전투방식을 떠올려 그대로 검에 실은 덕분에 고려제일검이라는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도 강하다.

‘생물은 한계를 초월하면 전생의 기억들을 재건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이 극의로 각성하게 된다면 전생의 기억과 또다른 생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

또다른 생이란 척준경의 후생인 박태석이란 남자의 인생.

그렇다면.

전생의 기억에서 그가 사용했던 그 비기를 박태석이라는 남자의 마력을 끌어올려 지금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그 비기를 고려시대 때 시전할 수 있었더라면 척준경은 검 한 자루로 세계를 재패했을 것이다.

척준경이 고개를 돌려 드래곤 ‘보이쉬’를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쉬는 척준경의 마음을 읽은 듯 포효하며 비행하여 척준경 앞에 내려앉았다.

크에에에에에-!

척준경을 태운 보이쉬는 전방으로 브레스를 발사하며 아베크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슈웅!

척준경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아베크로스 머리를 향해 낙하했다.

그 순간에 칼자루의 엄지손가락을 검면에 위치시키고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장심의형상법.’

아베크로스가 빛으로 이루어진 광검을 겨눈 그 순간.

척준경의 검이 땅을 정확하게 육각형으로 그어내렸다.

파파파파파파!

육각형으로 그어내린 지면이 터지면서 그 속에서 결계가 튀어나와 아베크로스와 척준경을 뒤덮었다.

마물들은 척준경을 향해 돌진하다가 결계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아베크로스는 차가운 눈으로 척준경을 주시했다.

“결계로 날 가둔 것인가?”

“지금 자네는 나와 이 영겁의 결계 안에 갇힌걸세.”

“영겁의 결계라….”

아베크로스가 침음을 흘렸을 때 사방의 풍경이 일그러졌다.

*

뒤틀리던 주변의 광경이 멈추었다.

아베크로스는 뒤바뀐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무죽죽한 혈향이 가득하던 아스팔트의 도로는 없고, 눈이 가득 덮힌 설원에 뜨거운 태양 하나가 떠있다.

“공간을 바꾼 것인가?”

아베크로스가 묻자 척준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는 뜻이 다르네. 이곳은 영겁의 결계. 시간도… 공간도 멈춰있는 곳이라네.”

“시간과 공간이 멈춘 곳? 그렇다면 여기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까 그곳과는 연관이 없다는 말인가.”

“역시 느꼈던 바와 같이 영특한 흉물이구나.”

척준경은 칼자루에 쥔 손을 부드럽게 움직여 아베크로스를 향해 칼끝을 겨눈다. 그의 등뒤로 지상을 내리쬐는 태양빛은 눈부셨다.

“시간을 구속받지 않는 이곳에서 승자는 나갈 것이고, 패자는 영원히 이곳에 갇힐걸세.”

그 말에 아베크로스의 눈이 번뜩 뜨이고, 동시에 몸이 부풀어올랐다.

카카카카카-!

두 배의 크기로 불어난 아베크로스의 육체는 기이했다.

다리는 여덞 개였으며, 몸에는 기이한 성질의 마갑이 덮여 있었고, 양손에는 각기 다른 색의 광검이 들려있었다.

“인간. 너의 검술은 경지에 올랐더구나. 난 검을 빛의 속도로 사용하기에 최적화시킨 형태의 육신으로 바꾸었다. 너의 검술에 경의를 표하는 바로 전력으로 상대해주마.”

아베크로스에게서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의 위압감이 뿜어져나왔지만 척준경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이제 나와 일기토를 벌이도록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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