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5화
후일담- 이야기의 꽃은 언젠간 지고 만다.
“저기….”
말소리가 들려왔다.
술잔을 기울이며 기억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던 태훈과 시운의 정신이 들었다.
“아, 아닙니다.”
유석의 동생 장종우가 말을 하려다가 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는 어느새 식어버린 국밥과 수육, 소주 병나발이 올려져 있다.
시끌벅적하던 주위의 테이블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손님이라곤 이제 태훈과 시운 단 둘 뿐.
“그럼 공허의 탑 아가스에는 왜 갔었던 거야?”
태훈이 시운의 술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아. 그 탑?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최초의 전생이었던 바람의 군왕과 대악마가 맺었던 계약 때문에.”
“더 이야기 해줘.”
태훈은 궁금하단 듯이 눈빛을 빛냈다.
“그 바루스라는 대악마의 육신이 잠들어 있다는 곳이 그 공허의 탑 아가스였어.”
쭈욱-.
시운은 목을 젖혀 소주를 기울였다.
이제는 소주의 쓴맛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꽤나 얼큰하게 취했는지 태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 악마와의 계약 때문에 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사람들이 죽어가도. 도저히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어. 다시 느끼고 싶었어. 돌아가고 싶었거든. 인간으로.”
“그렇게 된 거였군.”
김태훈도 그 이후의 이야기는 대략 알고 있다.
“그 이후 너는…… 남은 지배자들과 싸웠지. 창공의 스나이퍼 야이르와 또…….”
그때를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가스의 탑을 정복하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운은 창공의 스나이퍼라는 이명을 가진 놈과 대립했다.
“그 새끼 그거…… 완전 골치 아픈 새끼였잖아.”
무려 천 킬로미터 반경 밖에서 저격을 하던 놈이었다.
창공을 뚫고 쏟아진 그 탄환에 많은 헌터들과 시운의 소환수들이 죽었다.
머리를 들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때 야이르의 군단과 결투를 벌이던 중 탄환을 맞고 쓰러진 시운은 죽을 뻔 했었다.
“그때 내가 죽었다면 지금의 이 인류는 없었겠지.”
그러던 그 찰나의 순간에 메두사가 달려와 온 몸으로 시운을 감싸안고 대신 이어진 탄환을 맞았다.
“메두사!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냐...”
-……됐고. 이봐!
메두사는 흐려지는 눈빛으로 시운을 보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신이 내 ……주인이라서 난 행복했어. 후회는 없어.
그게 그녀의 최후였다.
그녀의 육신은 타들어가는 숯처럼 재가 되어 흩뿌려졌다.
그때 시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렸다.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네. 걔네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너의 그 소환체들? 다 다른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다른 세상이라.
제각기 다른 시간 속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어쩌면 나와의 기억을 모두 잊고서.
녀석들이 참 보고 싶다.
“천계의 관찰자는 우리 편에 서게 되었고……… 마지막 그 까다로운 지배자 한 놈과 넌 혈투를 벌였고.”
마지막 남은 지배자는 벅찰 정도로 강력했다.
시운과 유사한 능력을 지녔던 그 지배자는 죽은 영혼을 새로운 사이보그 형태로 창조하여 자신의 군단으로 만들었다.
결국 지배자들의 전쟁을 마쳤을 때는 지구의 1/3이 지도에서 사라진 채였다.
“카인이 왜 인간을 죽이지 않은 것 같아? 이를테면 네가 공허의 탑에 가 있을 때 충분히 대피소와 벙커들을 박살낼 수 있었는데.”
“그 이유?”
“나도 이유가 있다고만 들었어. 천계의 관찰자에게.”
“내 전생에서 두 번이나 패배한 그놈은 내 육신이 완전한 형태로 변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왜지? 복수를 위해서인가.”
“두 번이나 졌으니 한 번 이겨보려고. 자신도 완전한 형태로. 그리고 나 또한 완전한 형태로 해서.”
이시운은 카인과의 공방에서 바람의 군왕 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었다.
등 뒤로 뻗어나온 여덞 개의 날개에 푸른 빛의 눈동자.
태초의 바람의 군왕의 모습은 고결했다.
“태훈아. 기억이 세세히 나질 않지만……… 카인의 영혼을 꺼트렸을 때 나 또한 죽어가고 있었어. 그때 본능적으로 놈에게 했던 말이 있지.”
“그게 뭔데?”
태훈이는 참 궁금하단 눈빛이다.
녀석도 꽤나 취했는지 들고 있던 소주잔을 떨어뜨릴 뻔 하면서 몸을 휘청였다.
“다시 태어나도 넌 내 손에 죽는다고. 그리고 나 또한 점점 의식이 흐려졌고……… 그때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그 녀석? 누구?”
“내 전생의 발카스의 검신이었던 빨강머리. 난…… 육성으로 내뱉어지지 않았지만 속으로라도 외쳤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우리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달라고.”
그때.
검신의 따스한 육성이 들려왔었지.
“시간은 돌아갈 거야. 고생이 참 많았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고 그토록 그립다면 앞으로는 네가 그 소중한 것들을 위해 살아보는게 어떠냐?”
그렇게 말했었고.
의식은 완전히 날아갔었다.
“저…… 죄송한데 영업시간이 끝나서요.”
그때 유석이 난처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 국밥집 손님들도 하나도 남지 않았고, 영업시간보다 무려 두 시간이나 더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래서 아까 동생 분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가신 거구나. 아 죄송해요. 우리가 너무 대화하는 데 빠져버려서.”
“어? 제 동생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유석이 놀라자 난 베시시 웃었다.
“두 분이 많이 닮았잖아요.”
그래. 태훈이와의 그때의 이야기는 이쯤으로 해야겠다.
시운은 태훈과 일어서며 계산을 마쳤다.
나가려는 길에 시운은 유석을 돌아봤다.
“국밥하고 편육이 너무 맛있네요. 장사 잘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도 꼭 올게요. 보고 싶어지고 생각이 나면요.”
“아휴. 너무 감사한 말씀이네요. 저희집 음식이 또 생각나시면 들려주세요. 서비스 많이 드리겠습니다.”
“음식보다도 사장님이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네?”
유석의 눈이 커졌고 나는 그런 유석의 얼굴을 내 눈에 몇 초간 담고 태훈과 함께 나왔다.
술에 취한 상태로 태훈이와 나란히 걷다보니 추운 것도 모르겠고 그저 쌀쌀한 밤공기가 피부결에 노곤노곤하게 스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야. 시운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만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게 이상하지 않냐?”
“……어쩌면 회귀자들은 그 기억들을 다 가지고 있을수도 있지.”
같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이야기의 꽃을 마무리 지으며 말이다.
“근데 또 이상한게 있다.”
시운은 말꼬를 트며 강춘식 작가와 그 소설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그 이야기를 했다.
“지, 진짜네? 이게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태훈이는 흐트러진 눈으로 강춘식 작가의 소설 “나 혼자만 3회차”를 검색하고 놀란다.
“태훈아 네가 생각해도 존나 놀랍지 않냐? 이거..”
“……잠깐! 이거어쩌면 진짜 웃긴 말일 수도 있는데.”
태훈이는 뭔가 답을 알았다는 듯 머뭇거렸다.
저 자식은 꼭 사람 호기심 일으키게 만들고 답은 진짜 늦게 알려주는 건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뜸 들이지 말고빨리 말해라. 궁금하니까.”
그래도 이 자식은 나보다 똑똑하니까 답을 알았을 수도 있다.
그래. 빨리 한 번 말해봐라.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