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7화
후일담- 닥터 이시운
시운은 하얀 가운을 벗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가운의 명찰에는 [이시운] 이라는 석자가 쓰여있다.
“선생님! 이종윤 환자 정말 수술하실 생각이에요?”
“합니다.”
“이종윤 환자는 뇌출혈의 부위가 너무 위험해요. 뇌간이라고요.”
“그래서 내가 수술한다는 것 아닙니까.”
“하아.”
시운은 태연하게 가운을 벗고 수술실로 향하려 했다.
박수은 간호사는 걱정했다.
뇌출혈 발생시 출혈이나 위치, 범위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고 그것이 수술을 결정할 것인지 그 출혈이 자연적으로 흡수될 것인지를 파악한다.
그러나 급하게 실려온 이종윤 환자의 출혈 부위는 신경다발이 모여있는 뇌간이었다.
이는 신의 손이라 불리는 신경외과의들도 수술을 꺼려하는 부위였다.
“일단 경과를 지켜보시면서 판단하는게…….”
“수술 정해졌습니다. 빨리 수술실로 안 와요?”
“이건 너무 위험해요. 뇌압 조절부터 하면서...”
박수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웃음기가 넘치던 시운의 얼굴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빨리 수술실로 따라와요.”
나지막이 말하고 돌아서서 나가는 시운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강경하게 들어왔다.
“하아….”
한숨을 쉬던 수은의 어깨를 김도희 간호사가 두드려주었다.
“교수님 원래 수술 들어가기 전에 엄청 예민하신 거 알잖아요.”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해요.”
“이시운 교수님이잖아요.”
김도희는 한국대 이시운의 실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듯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부위가 수술하기 너무 치명적인 부위라구요.”
“어쩌겠어요. 그래도 이시운 교수님이 수술 집도 하시겠다는데.”
수은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수술실로 향했다.
**
“혀, 혈압이 너무 떨어져요. 출혈이… 출혈이 심해요!”
수은의 외침에도 수술을 집도하던 시운은 대꾸하지 않고 메쓰를 움직였다.
삐삐삐삐.
기계가 환자가 위급하단 소릴 내며 조용한 수술실에 울려퍼졌다.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들과 이번 수술의 레시던트인 김용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교수님…….”
김용운은 환자의 열린 뇌에서 피가 너무나도 흐르는 것을 보며 불안하게 시운을 바라봤다.
“동맥류 파열이야.”
“…그래도 출혈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재출혈은 일어날 건 이미 예상했어.”
그러나.
기계는 계속해서 불안하게 울려댔다.
“선생님! …… 혈압이 너무 떨어지고 있어요.”
“가만히 있어요. 수술하는데 자꾸 시끄럽게 할 겁니까?”
시운은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수은을 나무랐다.
수은은 주위 간호사들을 번갈아 봤다.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듯 눈치를 줬다.
환자의 뇌는 붉은 피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점점 솟구쳐 나왔다.
“동맥류 파열이군요.”
김용운은 나직이며 이시운을 바라봤다.
출혈이 너무 심하다.
그 어느 집도의라고 하더라도 당황할 상황이다.
그러나.
이시운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맥동이 터진 것 뿐이야.”
시운은 빠르게 메쓰를 움직여갔다.
수은은 토끼눈이 되어 그 상황을 바라봤다.
‘...너무 위험해. 출혈이 멎질 않고 있어. 애초에 이 수술 자체는 미친 짓이였다고.’
그런데.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간호사 하나가 말하자 수은의 눈은 더욱 휘둥그레졌다.
“출혈도 멎고 있……네요.”
수은은 본인이 말하고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했다.
아니. 난 뇌출혈 수술실에 들어온 경험만 수십 번이야. 근데 방금 그 상황은 출혈이 너무 심했어.
어떻게 된거지?
“이제 마무리 합시다!”
시운의 말에 김용운의 낯빛에 감돌았던 불안이 싹 사라졌다.
“존경스럽습니다. 교수님.”
“김용운 선생. 수술 끝날 때까지 사적인 말 하지마.”
“죄송합니다.”
시운의 꾸짖음에도 용운은 존경스런 눈빛으로 시운이 수술을 집도하는 것을 바라봤다.
덩달아 간호사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박수은은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그 상황에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어…….’
수은은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집도의라도 그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의사는 없다는 것을.
그런데 방금 이시운의 반응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낯설었다.
평소 사람냄새 나고 따뜻한 모습만 풍기던 이시운은 수술을 집도할 때만큼은 다른 사람같다.
“수고하셨습니다.”
뇌 봉합을 마친 시운이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교수님.”
간호사들에게는 수술을 마치고 마치 다른 사람인 것 마냥 매력적인 미소를 보이는 이시운이 익숙하다.
그는 한국대학병원에서의 별명은 바로 이중인격자니까.
소독을 한 뒤 수술실에서 나오며 마스크를 벗는 시운에게 수은이 다가갔다.
“선생님. 여쭤볼게 있어요. 방금 그 상황들 정말…… 다 예측하신 거예요?”
“그럼요.”
시운은 살갑게 웃으며 긴장하는 수은에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수술 끝났으니까 긴장 좀 풀어요.”
“아니……. 긴장하게 만드신 게 누군데요? 참.”
수은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술 강행하라고 잡아먹을 듯 굴었으면서 수술이 딱 끝나니까 참 정 많은 사람처럼 군다.
“재출혈. 언제부터 예상하신 거예요?”
“언제부터라뇨?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는데요?”
“……네?”
“저는 커피 한잔 하러 가야겠습니다. 긴장했더니 카페인이 땡기네.”
시운은 미소를 입에 그리며 멀어져갔다.
벙쪄있는 수은에게 김용운이 다가왔다.
“교수님하고 수술 같이 참여해본 게 이번이 처음이죠?”
“네. 근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요.”
그 말에 용운은 그 뜻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과 수술 참여한 분들은 죄다 처음에는 간호사님처럼 그런 반응을 보이곤 하죠.”
김용운의 말을 수은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 오늘 좀 당황했는데 역시는 역시야.”
한편 용운은 시운이 결국 해낼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긴급 상황에서 불안해진 마음은 본인도 인간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
“이 교수님은 mri를 찍지도 않고 환자의 뇌 안에 종양의 크기, 위치를 모두 파악합니다.”
“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저도 처음에 안 믿었어요.”
무슨 소리야? 농담하는 건가?
수은이 벙쪄있던 그 순간.
윤한아가 가운에 주머니를 꽂은 채 다가왔다.
“어우! 김 선생! 지겹다, 지겨워. 또 이시운 교수 이야기야? 지겹지도 않아?”
“아, 오케이. 그만할게.”
윤한아는 퉁명스럽게 반응함에 김용운이 그의 이야기를 더 꺼내지 않았다.
윤한아는 한국대학병원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난 의사다.
그녀 얼굴 한 번 보려고 수술하고 다녀간 환자들까지 다시 찾아올 정도로.
그러나 그런 그녀가 이시운을 좋아했다가 멋지게 퇴짜를 맞은 후 그녀는 시운의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을 한다.
방금처럼 말이다.
이시운. 그는 유부남이지만 한국대학병원에서는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간호사들부터 동료 의사들까지.
아이돌 뺨 그대로 후려버리는 잘생긴 얼굴에 뛰어난 수술실력. 그리고 따스한 사람냄새 나는 면모에다가 사람의 맘을 들었다 놨다하는 이중인격까지.
그런 매력들은 유부남인 이시운에게 대학병원의 여성 의료진들의 연모를 품게할 능력으로 작용했다.
“수은 쌤.”
“네?”
“혹시라도 쌤은 이 교수님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교수님 결혼 하셨잖아요?”
퍽!
그 말에 윤한아가 주먹으로 김용운의 명치를 후린다.
“……입 안 다물어?”
“오케이. 오케이.”
둘이 장난을 치는 동안 수은은 이시운 교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시운. 그가 서른넷이란 젊은 나이에 왜 한국대학병원 최고의 뉴로 서전이라 불리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 *
현계의 바로 그 시각.
지옥이라 불리는 명계에서 넷이 모여 강대한 보옥에 시선을 둔 채였다.
그 보옥에서는 현계의 이시운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넷 중 지켜보던 셋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그 눈에 실린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하아….”
메두사가 작게 침음을 흘렸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추악한 뱀머리에 우악스런 얼굴이 아닌 인형같은 외모 그 자체였다.
본래 메두사는 보는 이를 순간 절명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포세이돈과 염문을 저지르다가 벌을 받고 추녀로 변했었다. 그러나 메두사는 시운과 함께하며 인간의 감정을 익힌 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원초의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저 양반은 참…… 시간이 지나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참 많아. 바람둥이도 아니고.”
메두사의 말에 데스나이트가 그녀를 힐끗거리며 피식 웃었다.
“질투하는거 다 보인다.”
“뭐? 미쳤냐? 그 말은 내가 저 양반을 좋아하기라도 한단 말이야?”
“난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찔리시나.”
“…죽을래?”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말리면서도 보옥으로 비춰지고 있는 이시운을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너무 보고 싶네. 우리 형님…….”
그의 말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메두사와 헤라클레스. 데스나이트는 무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하데스를 바라봤다.
“왕이시여. 저희들의 부탁을 제발 들어주시길.”
데스나이트가 하데스에게 말했다. 그 말에 메두사와 헤라클레스 또한 굳어진 얼굴로 하데스를 바라봤다.
간절하게 말이다.
“흠…….”
하데스는 고심했다.
이들의 부탁은 이곳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인 현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달란 말이었다.
지옥의 군주 하데스에게는 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부탁은 단번에 거절했겠지만.’
하데스 또한 이시운과 함께 천신전쟁을 치룬 신이다.
그 또한 그와 재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불길이 들끓는 지옥에서 셋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하데스의 입이 열리길 말 없이 기다렸다.
그때 하데스의 입이 열렸다.
“내 힘은 올림푸스의 신전 제우스에게 허락을 받고 사용해야 하네. 그건 엄연히 천계에서 정해진 규율이야.”
제우스라는 말에 헤라클레스와 데스나이트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압적인 존재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때 메두사가 피식 웃었다.
“그럼 당신이 허락 좀 받아주면 되잖아?”
“메두사.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제우스는 내 부탁을 들어줄 존재가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확 꼬셔버릴게. 지금 나라면 그 누구도 꼬실 수 있어. 그리고 그 느끼한 근육변태처럼 생긴 자식말이야. 여자 되게 밝히는 바람둥이 새끼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