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9화
후일담- 더렵혀진 메두사의 순결
메두사는 순결한 척 굴면서 상의를 밑으로 내려 가슴골이 제우스에게 보이게 했다.
“뭐라? 말해보라.”
눈이 조금 커진 제우스가 말하자 포세이돈이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줬다.
“지금 신성한 회의 중에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군요. 이게 맞나요?”
아테네가 신경질을 내고 헤라도 동의하듯 끄덕였다.
“여보. 신전의 규율대로 얼른 저 인간들을 내보내요!”
잠자코 듣고 있던 아폴론도 벌떡 일어났다.
“제우스! 고작 인간 따위의 미모에 홀려서 신전을 더럽힐 생각…”
“다들 닥쳐라!!!”
콰아아앙!
순간 제우스의 눈동자가 금안으로 변하면서 벽력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고 신전의 바닥에는 번개의 잔류들이 스르르- 흘렀다.
제우스의 일갈에 신들은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일단 들어는 보고 판단할 것이니 아무도 끼어들지 마시오.”
제우스는 못을 박고서 메두사에게 더 이야기 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차원의 문을 개방하게 해주세요. 소녀와 제우스님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꼭 뵈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려고 차원의 문을 개방해 달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곤란하네. 차원의 문을 개방하려면 하데스가 힘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아버지. 이미 그 허락은 받고 왔습니다. 아버지만 허락해주신다면 가능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대답했다.
신들 중에 원대한 힘을 지녔다고 알려진 제우스는 감히 인간이 노력, 약물 등등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고결하고 강대한 근육질의 육체를 드러낸 채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함부로 차원의 문을 열 수는 없다. 확실한 명분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것이야.”
“이유라도 좀 들어보세요!”
메두사가 울상을 짓자 제우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편 헤라는 조용히 손가락에 힘을 주며 메두사를 노려봤다.
‘저 요망한 계집년이…! 제우스만 없었으면 산 채로 다 뜯어버렸을텐데.’
그때 서러운 메두사의 목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목에 못이라도 박혀서 아파하는 것처럼 꺼억 꺼억 우는 메두사의 울음소리에 제우스의 눈동자가 다시금 요동쳤다.
‘저렇게 아름다운 인간이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운단 말인가...’
“소녀는……! 죽을 각오로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헤라클레스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데스나이트를 쳐다봤다.
데스나이트는 조용히 자신의 입에 검지손가락을 올리고 광경을 지켜본다.
“……그렇다면 이유라도 들어보게 말해보거라.”
제우스의 낮은 음성이 울리자 다른 신들의 얼굴은 미간에 핏대가 서며 붉어졌다.
*
메두사와 헤라클레스는 대충 사연을 꾸며내어 제우스에게 말했다.
“그 자가 그렇게도 강한가?”
제우스의 물음에 데스나이트가 순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강하지는 않지만... 너무나 은혜로운 분입니다.”
“흐음…….”
데스나이트는 순간 기질을 발휘해서 말한 것이다.
주군 이시운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면 제우스는 견제할 것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터였다.
“그 인간의 성명이 이시운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우우우우-!
그때 신전으로 낯익은 괴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방금 그 울음소리는 야수왕 카이칸의 목소리가 아닌가요?”
“카이칸은 동물들의 신으로서, 유일하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는 알고 있는데…….”
분명 그것은 동물들의 왕 카이칸의 육성이었다.
“카이칸이 울기도 한단 말인가?”
제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이칸은 동물들의 왕으로 알려졌지만 감정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데 분명 이 신전에 들리도록 큰 원대한 울음소리는 카이칸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왜 우는 것이지? 이시운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말해서인가?”
눈치가 빠른 제우스가 나직이자 다시 한 번 카이칸의 울음소리가 신전까지 들려왔다.
마치 그것에 대답하듯이 말이다.
제우스는 의문이 들었다.
‘이시운이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기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성과 내 아들이 목숨을 걸고 찾는단 말인가? 또... 야수들의 왕 카이칸까지도 그 존재를 알고 있다라.’
그런 의문이 잠시금 들었으나, 이내 제우스의 눈이 메두사의 음부를 향해 움직였다.
제우스는 색마로 알려져 있고 특히나 아름다움에 취약한 신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메두사가 애원했다. 제우스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저 소녀의 소망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소녀의 굴곡진 저 엉덩이 안으로 성기를 들이밀어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솟았으나.
‘그렇게 했다가는 이 신들이 지랄을 할테지. 특히나 헤라…….’
제우스는 슬쩍 헤라의 얼굴을 살폈다. 기분이 몹시 안 좋다는 듯 턱을 괴고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헤라다.
그렇다고 신으로서 저 아름다운 소녀를 강간할 수도 없다. 그건 규율을 떠나서 매장당하는 짓이다.
제우스는 메두사를 바라보며 속으로 군침을 삼켰다.
초록빛깔의 긴 머리가 저렇게나 잘 어울리는 여성을 본 적이 있던가.
눈부실 정도로 하얀 피부에 세상 만물을 다 담아낼 것 같이도 큰 두 눈과 앵두같은 입술.
게다가 육감적으로 굴곡진 몸매는 신이 빚어낸 완벽한 피조물 같았다.
메두사의 외모를 보고 있자니 물건이 근질거렸다. 저 아름다운 소녀의 전복같이 생긴 그곳을 탐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저 소녀가 젖어서 흥분하며 내는 소리 또한 얼마나 앙칼질까?
그런 생각들이 제우스 뇌리로 스쳐갔다.
허나.
“들어주고 싶어도 명분이 없다.”
제우스의 대답에 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헤라클레스가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모든 신들의 눈이 커졌다.
“저것은?”
“그건…… 마왕의 명패가 아닌가!”
“헤라클레스! 그걸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는거지?”
잠자코 있던 신들이 술렁였다.
헤라클레스는 그 명패를 제우스에게 건넸다.
“충분한 명분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것은 마왕의 명패입니다. 신의를 중요시여기는 마왕이 목숨을 걸 때만 내미는 것이지요.”
“계속 얘기해보라.”
그래. 아들아 적당한 명분을 내밀어라. 역시 내 아들이구나! 새끼.
제우스는 속내를 숨키고 근엄한 척 했다.
“차원의 문을 개방해주는 대가로 마왕은 다시는 천계에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이 명패를 제게 건넨 것입니다.”
“……!”
모든 신들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안 그래도 천계와 마계는 전쟁의 긴장도가 상당해진 수준이었다.
올림푸스 신들이 힘을 합치면 마계를 멸망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피해는 크다.
그런 상황에서 방금 헤라클레스의 말은 꽤나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마왕이 대체 왜 그런 약조를 한 것이지? 대체 이시운이라는 인간이 뭐기에 그 미치광이 마왕조차 그런단 말인가?”
솟구치던 성적인 생각을 떨쳐낸 제우스의 뇌리로 이시운이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
데스나이트와 메두사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이계로 내려와 미월 마을을 걸어다녔다.
제우스는 회의를 해보고 그 후에 답을 준다는 말만 남기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아버지가 허락을 해주셔야 할텐데…….”
“그러게 말이옵니다.”
“?”
메두사의 대답에 데스나이트와 헤라클레스가 걸음을 멈췄다.
“아까 그 연기를 보니 소름이 끼치더라. 근데 그만 해도 되니까 원래대로 돌아와라. 좀 역겨우려고 하니까.”
데스나이트의 말에 메두사가 입술을 질끈 씹었다.
“……소녀에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제우스님께서 듣고 계실 수도 있으니.”
“아.”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모양이다.
제우스는 이계의 모든 곳들을 내다볼 수 있는 신이다.
분명 지금 이들을 지켜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존나.. 안 어울리네.”
“헤라클레스.. 쉿.”
그들은 이 미월 마을을 돌아다보며 이시운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서 주군을 보게 된다면…… 주군은 좋아할까?”
데스나이트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제 그와 함께한 기억은 십 년도 지나간다.
근데 잘 살고 있을 그에게 냅다 나타난다면 그는 거북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까?
“넌 아직도 그 양반을 모르냐? 아니……. 정말 모르시옵니까?”
메두사는 말투를 금세 고친다.
“형님은 우릴 진심으로 사랑하셨다. 분명 형님도 우릴 보고 싶어 하실거야.”
그 말에 데스나이트의 표정이 깊어졌다.
*
메두사는 혼자 비탈길을 걸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까 올림푸스 신전에서 아테네를 봤기 때문이다.
‘그 씨발년...’
메두사는 시간을 역행하기 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테네의 신전에서 정사를 나눈 사실이 발각되어 아테네의 저주에 의해 머릿결이 뱀으로 변하고 말았다.
‘날 괴물로 만들어버린 년을 두 눈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때를 생각하면 위장이 뒤틀리는 화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이시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 화를 억지로 꾸역꾸역 눌렀다.
‘보고 싶네………. 참.’
메두사는 시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냥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립다. 그를 위해서 죽었을 때 메두사는 한치도 후회가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메두사의 시체를 가만히 껴안았던 시운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도 네가 내 사람이어서 참 행복했다. 우리 다음 생에서도 꼭 만나자.”
그 말에 죽어가던 메두사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밤이 내려앉은 산길은 조용했다.
그때 눈앞이 번쩍이며 한 인간의 인영이 보였다.
순간 뒤로 물러난 메두사는 이것이 분명 제우스임을 직감했다.
노파의 얼굴을 한 인간이 허리를 구부린 채 메두사에게 다가왔다.
“소녀여.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제우스님…….”
메두사는 한쪽 무릎을 굽히며 예를 표했다.
“역시 한눈에 날 알아보는군. 미모뿐만 아니라 현명함까지 갖추었다니.”
“여쭤보십시오.”
“네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조건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나?”
“그 어떤 조건이든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제우스가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은 이시운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넌 처녀인가?”
“……그,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노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노파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메두사의 가랑이를 쿡쿡 찔렀다.
“정말 이곳에 그 어떤 정기도 스쳐가지 않았다는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메두사는 속으로는 제우스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노파는 지팡이로 메두사의 가랑이 사이를 콕콕 찌르고 밀면서 메두사의 수치스러워 하는 표정을 즐기듯 바라봤다.
“…아파요. 그만 하세요.”
“표정을 보니 젖은 것 같은데? 아름다운 너의 구멍에 쑤시기엔 이 지팡이는 참으로 가치가 부족하지.”
“…제우스님.”
노파의 지팡이가 그곳을 유린하는 행위에도 메두사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다면 너의 순결을 내게 바치거라. 그게 네 부탁에 대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