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51화 (251/278)

제 251화

후일담- 재회 (2)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연대감.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도 교감을 나눈다.

이를테면 개라던지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도.

“너희들이 사람보다도 더 사람 같다.”

시운은 그들과 눈물겨운 재회를 하며 그렇게 말했다.

십 년이 지나도 그리워하는 마음.

조건을 계산하지 않고 항상 돕고 싶고 의리로 끈끈하게 가는 소환수들을 보며 시운은 그들이 인간보다도 나은 존재라고 느꼈다.

인간이 이들보다 똑똑할지 몰라도.

얘들을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영악해 보이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뵙고 싶었어요. 형님. 한 번만 안아봅시다.”

덩치는 산만한 헤라클레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고.

“주군. 다시 보니까 좋네요. 그냥 그저……… 좋다는 말 밖에 안 나옵니다.”

생긴걸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험한 인상으로는 지지 않을 데스나이트가 떨며 말했고.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좀 해볼게. 난 그때 당신을 위해 죽었을 때 난 조금의 후회도 없었어.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게 되니까 기분이 좀 묘하네.”

표현을 잘 못하는 메두사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했다.

‘하.. 이 귀여운 새끼들.’

간절한 기도만이 평화였었던 예전 형편없었던 시운의 전 회차 인생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때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얘네들에 의해 치유되는 기분이다.

“일단 너희들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니까 들어가자.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게 있어. 일단 기대해라.”

시운은 그들과 함께 이계로 연결된 포탈로 몸을 옮기려다가.

“아, 잠깐만. 나 집에 금방 다녀올게. 잠깐만 대기.”

시운은 부리나케 산 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 검은봉지에 뭔가를 들고 왔다.

“이제 가자!”

갸웃하는 그들을 귀엽게 바라보며 시운과 일행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재회한 그들과 또 하나의 추억의 파편을 만들러.

*

이계 메두사의 집은 오늘 좀 요란했다.

지글지글-

거실에서 끓는 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두른 시운이 냄비 앞에 앉아서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 보인다.

“당신... 요리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나 유부남이라고. 요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니까?”

“의외네... 귀공자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메두사는 가부좌를 틀고 시운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주군! 제가 도울 거라도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아, 인마. 됐어. 뭘 도와.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데스나이트.”

“네. 말씀하십시오.”

“이제 주군이라도 부를 필요 없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난 그때의 내가 아니야. 그리고 사람은 서로 격식을 두고 지내면 가까워 질 수가 없어.”

“전 사람이 아닙니다만.”

“아 맞네. 넌 사람이 아니지.”

“…….”

헤라클레스는 아이처럼 밝은 얼굴로 코를 킁킁거린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인데..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형님. 무슨 요리를 하시는 건가요?”

“다 되면 말해줄게. 비밀.”

시운은 냄비에 물을 조절하고 급하게 편의점에서 사왔던 그것들을 넣는다.

투투툭.

스프를 털어넣자 냄비 안에 끓던 물이 황갈색으로 변한다.

‘좋아. 이제 면을 넣고.’

그 다음에는 비장의 무기!

천세정이 냉장고에 넣어놨던 홍게를 넣을 시간이다.

‘라면은 어떻게 끓여도 맛있지. 거기다가 이 홍게를 넣으면 진짜 그게 필살기야.’

시운은 어려운 요리는 선호하지 않는다.

한 번은 세정이에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설레발을 치며 세정에게 방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한 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물이 한강물처럼 불어오르고 간을 잘 못 맞춰서 급하게 배달음식을 시키고 그것을자신이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나처럼 요리에 소질이 없어도 이거라면…….’

잠시 후.

김이 솔솔 올라오는 쇠냄비를 들고 오는 시운.

그들은 냄비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보며 눈이 휘등그레진다.

“이게 바로 홍게라면이다!”

“…홍게라면?”

“생긴 건 좀 이상한데요? 형님.”

“와! 주군께서 이런 요리도 하실 줄 알다니….”

시운은 팔짱을 끼며 웃었다.

“이게 고난이도 요리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이 요리는 진짜 쉐프급 애들만 해먹는 요리라고.”

대충 이런 구라를 쳐두니 애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다.

“이게 젓가락이고 이건 접시라는 거야. 이 젓가락으로 저 면을 덜어서 접시에 담아서 먹으면 돼.”

후루루룹-.

시운의 설명에 헤라클레스가 탱글탱글한 라면의 면발을 입안에 흡입한다.

“쩝쩝쩝. 음….”

메두사가 헤라클레스를 바라본다.

“맛있냐?”

“오! 이거 엄청 맛있는데요? 와... 우리 형님은 역시 못하는 게 없는 형님이셨어.”

그 말에 데스나이트도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어봤다.

“오….”

시커먼 데스나이트의 얼굴에 화색이 피어난다.

“이건 뭐야?”

탱탱한 면발에 매콤한 기운이 감도는 국물 위로 시뻘건 홍게의 등딱지를 보며 메두사가 물었다.

“그건 홍게! 아주 짭짤하고 맛있는 바다에 사는 생물.”

메두사는 엉성하게 젓가락을 들고 데스나이트와 헤라클레스를 바라봤다.

그들은 미친 듯이 라면의 면발을 흡입하고 있다.

“생긴 건 좀 이상한데... 진짜 맛있냐?”

“메두사. 그냥 한 번 먹어봐. 우리 주군이 왜 대단하신 분인지 알게 될거다.”

메두사는 좀 이상했다.

이 음식은 요상하게 생겼지만 냄새는 참 괜찮다.

근데.

“이거 진짜 난이도가 어려운 음식 맞아?”

“그렇다니까?”

“당신이 요리하는 걸 좀 보니 몇 분 안에 끝나던데?”

“메두사야. 이건 물 조절도 생명이고 몇 분을 끓여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맞춰야 해. 한마디로 단 시간에 모든 걸 딱딱 맞춰서 한 번에 해내야 하는 고급진 음식이라고.”

시운의 열변에 메두사는 일단 라면을 먹어봤다.

“…?”

그녀는 다시 젓가락으로 라면의 노란 면발을 집고 돌린 뒤 후후 불어서 입에 넣었다.

“오오!”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자 시운은 흡족하게 웃었다.

시운도 앉아서 그들과 함께 라면을 먹었다.

‘와 얘네 식성이 진짜 장난이 아니네.’

데스나이트와 헤라클레스의 체격은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엄청 큰 냄비에 라면을 일부러 열 봉지를 넣고 끓였다.

근데 어느새 면발은 없어지고 국물만 둥둥 떠다닌다.

시운은 손수 가져온 밥을 그 국물에 투척한다.

메두사와 데스나이트 헤라클레스는 정신없이 국물에 말아진 밥을 퍼먹었다.

“와... 이거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매콤함.”

“매콤함?”

“맵다는 뜻이야.”

“아아.”

시운은 데스나이트와 헤라클레스의 입에 라면국물이 묻어있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새끼들. 얼마나 맛있었으면 저렇게 다 묻을 정도로 먹었냐.

그런데.

“메두사. 근데 너….”

“뭐?”

“왜 이렇게 예뻐졌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운의 물음에 메두사는 입을 닫고 눈만 멀뚱히 깜박거렸다.

“주군. 얘 지금 부끄러워하는 겁니다.”

“뭐? 메두사도 부끄러움을 탈 줄 알아?”

“주군…. 얘는 주군을...”

급하게 데스나이트의 입을 막은 메두사는 살기를 띄운 눈으로 데스나이트에게 조용하란 메시지를 보낸다.

“닥치고 다 먹었으면 치우기나 해. 전봇대.”

*

하데스의 힘을 개방시켜 현계에서 인간 하나가 이계로 넘어왔다.

이시운이라는 인간 앞으로 드래곤을 타고 온 마왕이 무릎 한쪽을 꿇고 그에게 거한 목례를 한다.

그 모습을 신전에서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의문이 들었다.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이 인간에게 저 정도로 자세를 낮추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마왕은 누구보다 잔혹하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마족들의 왕.

“거기다가 저 인간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평범하게 생긴 인간에 불가했지만 그에게는 이상한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마치 엄청난 기운들을 숨긴 듯 할까.

“이시운이라고 했나?”

제우스의 눈이 옆으로 움직였다.

메두사가 시운 뒤에 서서 그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광경을 보자 제우스의 가슴 속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런 인간 하나 따위에게 마왕부터 저 소녀까지 왜 저런 눈빛과 태도를 보이는 건가...”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 헤라클레스조차 저곳에 있다.

자신 앞에선 거의 웃음을 보이지 않는 헤라클레스가 이시운과 함께하고 있는 저 순간 웃고 있다.

묘한 짜증과 분노로 인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아앙-!

그 한 번의 주먹질로 이계의 하늘에는 벼락이 허공을 가르며 괴성을 내질렀다.

신들의 신인 자신이 인간 따위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더 분노가 타올랐다.

그의 두 눈으로 무섭게 솟아오른 살기에 그를 지켜보고 있던 헤라가 움찔했다.

“여보. 뭐하러 인간 하나를 그렇게까지 관찰하고 있어요?”

“그저 단순한 인간이 아닌 것 같소.”

“그래서요?”

“나는 제우스다.”

그 한마디에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것을 느꼈다.

누구보다 강해야 하고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여야 직성이 풀리는 제우스의 그 한마디는 곧 그의 다음 행동이 어떻게 이어질지 헤라는 직감했다.

콰아아아앙!

올림푸스의 신전에 강렬한 굉음이 튀어나왔다.

제우스.

그의 단 한 번의 발길질이었다.

그 소리 한 번에 이계에 있던 모든 신들이 불길함을 느낄 정도.

헤라는 제우스가 신전을 박차고 이계로 낙하하는 것을 보며 그 인간의 이어질 결말을 불쌍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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