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3화
후일담- 신을 상대하는 네크로맨서
이시운은 데몬소드를 부드럽게 감아쥔다.
칼자루가 손바닥에 닿는 이 감촉.
십 년만이지만 나름대로 그리웠다.
키에에에에엑-!
영혼을 먹고 진화하는 데몬소드가 제우스를 보며 기이하게 울부짖었다.
그만큼 탐나는 제물이라는 거겠지.
인간의 입장으로서 가장 강력한 신과 싸우는 지금 두려움이란 감정은 없었다.
고양감과 환희가 조금 뒤섞인 기분이랄까.
이어진 제우스와의 공방으로 사방으로 벼락의 고성이 쏟아지고, 대지와 바다가 뒤엉킬만큼 강력한 진동이 일었다.
콰아아아앙!
제우스가 내리친 주먹은 섬이 뒤집힐 정도였다.
신속하게 회피한 시운의 다음 동작은 제우스의 주먹에 안착하여 그의 긴 팔을 발로 밟으며 달린다.
사사사삭! 사삭!
그의 머리를 향해 달려가면서 역수로 쥐며 흔드는 데몬소드의 검신이 제우스의 피부를 미친듯이 내리긋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피가 솟아나와 신의 팔을 적신다.
신이 인간에게 상처를 입는 것은 모독이다.
제우스의 얼굴은 더더욱 악귀처럼 변해갔다.
메두사는 그 순간 이시운의 표정을 보며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조금도 긴장감이 없는 여유로움 그 자체인 얼굴.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녀에게 이시운이란 특별하고 신비한 존재 그 자체였다.
* *
헤라가 다급하게 올림푸스 신전에 입성했을 때는 모든 신들이 경악한 얼굴이었다.
“제우스님과 일대일로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니!”
“저 인간은 누구인가?”
그들은 천계의 구슬에 비춰지고 있는 제우스와 이시운의 대결을 보면서 경악하고 있다.
“대체 어느 무식한 인간이 내 남편과 싸우고 있단 말이지?”
“헤라. 이걸 좀 봐.”
포세이돈이 천계의 구슬을 가리켰다.
잔뜩 성난 헤라의 두 눈이 천계의 구슬을 부술듯이 노려봤다.
“저 놈이 누군데?”
헤라의 물음에 올림푸스의 신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대체 신이란 작자들이 저런 놈의 이름조차 모른단 말이야!”
헤라가 일갈했다.
이들은 천계의 신들이면서 이계를 관장하는 신들이기도 하다.
그들이라면 분명 이계의 강자들을 알고 있을 터다. 하물며 제우스와 저렇게 동등한 힘을 가진 자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 아테네!”
아테네는 헤라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고 구슬만을 바라봤다.
전장의 여신이라 불리는 그녀조차 이 상황이 믿겨지질 않았다.
팔짱을 끼고 천계의 구슬에 시선을 박은 헤라의 표정이 점점 뒤틀렸다.
‘인간이 어째서 제우스와 견줄 힘을 갖고 있단 말이야?’
그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지켜보던 포세이돈은 경악하여 비명이 나올 뻔 했다.
‘제우스에게 인간의 공격이 먹혔다.’
일대일로 제우스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그를 상대하려면 군단급 규모로도 부족하다.
그의 힘은 나머지 천계의 신들을 모두 합친 것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터다.
“저 인간의 표정을 보시오...”
헤르메스의 말끝이 떨렸다.
그들이 보기에도 제우스를 상대하고 있는 저 인간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제우스를 상대하면서 어떻게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아아!”
아테네가 단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공방을 벌이던 제우스의 눈빛이 흔들린 것을 분명히 보고서.
경악하던 신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한 인간에게.
“대장군은 움직였는가!”
헤라는 천계의 수호자 미카엘을 찾았다.
“미카엘은 발키리 군단과 함께 저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요.”
헤라는 아테네를 노려봤다.
“전장의 여신이라면서 저런 인간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오늘따라 그 이명이 참 어울리지 않는군?”
“시끄럽다.”
“다들 뭘 지켜보고 있어! 우리도 움직여야 할 것 아니야?”
헤라의 호통에 신들은 망설였다.
그러나 제우스를 돕기 위해서 그들은 저 전장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던 그때 신전으로 대신관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뢰옵니다! 마왕이 신전으로 침투하였습니다!”
“뭐, 뭐라고?”
마왕 레이논이 급습을 했다니.
비상 상황이다.
“규모는?”
“최정예 드래곤나이트로 구성된 군단급 규모입니다...”
“뭐.. 뭐라고?”
드래곤나이트는 마족 중 최강의 전사들이다.
삼지창을 치켜든 포세이돈과 아테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든 신들이 굳은 얼굴로 일어났을 때 신전 위를 드래곤들이 덮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너희들은 여기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마왕 레이논이 비장하게 말했다.
드래곤들이 신전을 둥그렇게 포위했다.
신들은 각자 무기를 쥐어들었다.
포세이돈이 레이논을 쏘아봤다.
“이 성스러운 신전에 발을 들이다니. 천계와 전쟁을 공포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딴 건 내 알 바는 아니고 난 주군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뿐이다. 니들은 알 거 없다.”
“주군이라고?”
신들은 모두 놀랐다.
마왕은 누군가에 권속될 인물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주군이라니? 마왕인 네가 신이라도 섬긴단 건가?”
마왕 레이논은 답하지 않았다.
“설마... 네가 섬긴다는 게 제우스와 싸우고 있는 인간이란거냐?”
아테네의 물음에.
“니들은 알 거 없다니까?”
* *
“날 막아서는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그 용기는 정말 가상하군.”
미카엘은 여덞 개가 달린 성스러운 날개를 휘저으며 지상에 안착했다.
그 뒤로 창공을 뒤덮은 발키리들이 일제히 미카엘 앞에 선 사내를 차갑게 노려봤다.
“내가 누군지는 아느냐?”
미카엘이 물으며 사내를 관찰했다.
사내는 천계의 수호신인 자신을 마주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표정이다.
그의 기개가 신기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었다. 네 대답에 의해 넌 살 수도 있다.”
“네가 여기서 가장 강한가?”
낡은 도검 한 자루를 쥔 사내는 그렇게 물을 뿐이었다.
“설마 그 검 하나 따위로 날 상대하려는 것인가?”
“난 이 검으로 세상의 역사를 두 번 바꿨다.”
사내의 대답에 미카엘은 호기심이 들었다.
“너희들은 제우스님께로 어서 이동하라!”
미카엘의 한마디에 발키리들이 서쪽으로 무섭게 날아갔다.
상공을 가릴 정도로 뒤덮었던 하얀 날개들이 없어지자 미카엘은 검을 소환해 들었다.
청명하게 울리는 그의 검명에는 강력한 내공이 담겨있다.
“네 용기를 높게 사서 특별히 상대해주지. 덤벼보거라.”
미카엘은 앞을 막아선 사내가 궁금했다.
인간이면서 읽을 수 없는 기운을 풍기고 있다.
미카엘은 사내의 검을 몇십 합은 받아내보았다.
귀신처럼 머리를 기른 사내의 검술은 군더더기가 하나 없고 절도가 있었다.
조금 더 사내의 검을 받아냈다.
그러면서 사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깔끔하고 빠른 데다가 틈이 보이질 않는 검술이군.”
인간이 검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다면 저런 모습일까.
그렇게 생각한 미카엘은.
“하지만 그뿐이다.”
사내의 검술은 총알보다 빠르고 틈이 보이질 않았으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세의 균형 또한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저 녹슨 도검은 미카엘이 들고 있는 천검 켈리오스를 받아내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자네의 검은 인간치고 날 놀랍게 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리고 수비만 하던 미카엘이 검을 내지르며 공격을 이어갔다.
강렬하게.
그리면서도 그 다음 합은 뱀처럼 유려하게 각도를 파고 든다.
사내는 미카엘의 검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받아내는 사내의 팔과 다리가 떨리고 있다.
미카엘은 여덞 개의 날개를 최전력으로 가동하며 점점 속도를 높였다.
탕! 탕! 탕! 탕!
검을 필사적으로 받아내는 사내의 하체가 더욱 흔들린다.
인간치고 놀라운 검술이었지만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인간과 신의 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의 수준.
미카엘은 손끝으로 본격적인 공력을 실어 검을 내리쳤다.
“그 녹슨 검은 이제 이 공격으로 부숴진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력을 불어넣었다.
이 공격에.
쐐에에에엑-!
공간을 찢고 날아든 미카엘의 검이 사내의 검에 부딪혔다.
그런 미카엘의 눈이 커졌다.
분명 방금보다 더 강한 공력을 실었음에도 떨리고 있던 사내의 하체는 전혀 떨림이 없었다.
그뿐만인가.
전력을 담은 천검을 받아낸 저 보잘 것 없는 도검에 조금의 균열조차 없다.
“어째서지?”
여유만만하던 미카엘의 낯빛에 당황이 번졌다.
“네 검은 강할지 몰라도 네 검에는 신념이 담겨있지 않다. 그 차이다.”
그 말과 함께 사내가 대지를 연속으로 박차고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내지른 검격에 미카엘의 하얀 날개의 깃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허공에서 유유히 땅에 떨어져 닿은 수많은 깃털들은 빨갛게 물든 채로.
* *
제우스는 처음으로 공포감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심장이 깔끔하게 도려내졌다.
인간이 감히 나의 심장을 도려내고서도 저렇게 태연하다니.
제우스는 어깨에 박혀있는 활들을 분노하며 빼어냈다.
푸우욱!
박혀있던 화살들을 뽑아내자 신의 선혈이 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그때 제우스의 머리 위로 상공의 색이 바뀐다. 발키리의 하얀 날개들이 상공을 빽빽히 뒤덮었다.
제우스는 호흡을 헐떡이는 이시운을 보며 피범벅인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안하게도 난 신이니라. 날 따르는 위대한 전사들은 널 죽일 것이다.”
제우스에게는 이제 자존심 따윈 없었다. 그저 이시운을 죽이고 싶은 마음.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시운은 당장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발키리들을 여유롭게 바라봤다.
“군단은 너만 있는 게 아니야.”
“죽음이 다가오니 꾀를 부리는 건가?”
“재림하라...”
시운은 손아귀를 피며 내뱉은 한마디에 땅을 비집고 솟아오른 망령의 전사들이 델피아의 대지를 가득 뒤덮었다.
우오오오오-!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망령들에 발키리들이 주춤했다.
대지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망령의 전사들과 하늘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는 발키리들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고 제우스는 그 광경을 놀랍게 바라봤다.
“너.. 정체가 뭐냐?”
제우스의 물음을 씹은 시운의 뒤로 아콘이 다가왔다.
“주군! 급박한 상황이니 제대로 된 인사는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허락해주십쇼! 저는 그동안 무척이나 강해졌습니다.”
“진급 말이냐?”
“이젠 척하면 척이네요. 바로 알아들으시네.”
시운이 진급을 허락하자 아콘의 머리 위로 공간을 찢고 생겨난 포탈.
그 포탈에서 거인의 손이 뻗어져 나와 아콘의 몸을 감싸고 그대로 당겼다.
아콘이 포탈에 몸에 빨려들어 가는 듯 했으나.
아콘이 눈을 섬뜩하게 뜨며 거인의 팔을 잡아당기자 포탈에서 기괴한 거신이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며 아콘에게 빨려들어갔다.
우오오오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아콘의 함성이 이어졌고.
그 뒤로 아콘의 타이탄 군단들도 고결한 함성을 내질렀다.
대지를 두 다리로 서고 있던 아콘과 그의 군단들은 대지를 뚫고 생겨난 말에 의해 높이가 올라갔고.
타이탄 군단들이 쥐고 있던 창에 빛이 휘몰아치며 그 창의 길이는 더욱 길어졌다.
우오오오오-!
그들의 변화한 모습은 마갑이 달린 말을 타고 랜서를 들고 있는 외형이다.
그 모습은 옛적. 작은 규모의 군단만으로 마신조차 떨게 했던 타이탄들의 고유 모습이자 완전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