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4화
후일담- 그녀의 사랑고백
이시운은 본연의 모습으로 진화한 타이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아주 든든한데?”
시운의 말에 말을 타고 있던 타이탄들이 눈빛을 번쩍였다.
아콘은 말의 고삐를 쥐고 시운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오신 거 아닙니까..”
“너도 내가 보고 싶었냐?”
“그럼 안 보고 싶었겠습니까?”
시운은 데몬소드를 고쳐 쥐고서 자세를 잡는다.
“그럼 빨리 끝내고 마저 대화하자. 내가 너한테도 특별히 맛있는 걸 해줄게.”
“명을 받듭니다!”
아콘은 랜서를 허공을 수놓은 발키리 군단을 향해 번쩍 치켜들었다.
“타이탄들이여! 우리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무서울 것이 없다. 일 년이 지나도 십 년이 지났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와아아아아-!
타이탄들이 랜서의 끝을 창공으로 겨누며 함성을 내질렀다.
“모두 진군하라!”
아콘의 말이 떨어지자 먼지바람이 불도록 말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갔다.
발키리 군단들은 매섭게 타이탄들을 향해 쏟아졌다.
“타이탄들이여! 옛적에 비행하던 자들과 싸웠던 그 전장을 기억하라!”
아콘의 고성에 타이탄들은 그때 그 전투방식을 떠올리며 고삐를 거세게 당겼다.
히이이잉-!
타이탄들을 실은 말들이 고삐에 의해 목이 들리면서 대지를 박차고 점프했다.
그리고 타이탄들은 낙하하는 발키리들을 향해 랜서를 쥔 오른팔을 있는 힘껏 뒤로 당긴다.
우아아아아-!
말이 도약한 그 상태로 타이탄들은 상체를 일으켜서 오른발로 말의 등을 박차고 더욱 높이 뛰어오른다.
랜서를 든 타이탄들이 허공에 그대로 떠있는 그 장면은 마치 영화 같았다.
차차차차착-!
그리고 타이탄들이 던진 랜서는 매섭게 직선으로 날아가 발키리들의 몸에 투박하게 꽂혔다.
천계 무적의 군단이란 이명(異名)을 가진 것 답지 않게 발키리들은 새총을 맞고 떨어지는 새들처럼 힘없이 땅에 곤두박질 쳤다.
쿠우웅-!
시운의 옆으로 머리가 꿰뚫린 채 떨어진 발키리가 목울음을 내며 절명했다.
“천지개벽.”
시운의 입술이 움직이자 대지로 낙하하던 타이탄들의 눈과 입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스킬 천지개벽을 발동합니다.]
[모든 소환체들의 육성에 힘을 실습니다.]
[소환체들이 입이 벌립니다.]
[그들의 단전에 천지를 뒤흔들 공력을 심습니다.]
크아아아아아-!
타이탄들이 입을 벌릴 수 있을만큼 벌리고 괴성을 쏟아냈다.
이 스킬은 장준 아저씨에게 얻었던 스킬.
돌고래가 음파를 쏘아내듯 타이탄들의 괴음은 창공에서 날아다니는 발키리들의 움직임을 멎게 했다.
발키리들은 그 소리에 의해 귀에서 피가 터져나오며 울부짖었다.
쿠우웅!
잇따라 발키리들이 발작을 하며 대지에 떨어진다.
시운은 미사일처럼 추락하는 발키리들을 피하면서 제우스로 걸어갔다.
“제우스. 회복할 시간은 좀 준 것 같은데 이제 마무리를 짓자고.”
그 말에 제우스의 표정이 벌레를 씹은 듯 심하게 일그러졌다.
쿠우웅!
제우스는 무릎에 차가운 땅바닥이 닿는 감촉을 느끼며 좌절했다.
그리고 두 손은 휘청이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땅을 짚은 채였다.
“으으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신음이 아닌 분노의 침음이다.
인간 앞에 위대한 신이 이런 치욕스런 자세를 하고 있다니.
울컥.
내장에서 올라오는 핏가래가 목에서 울컥울컥 올라와 쏟아졌다.
뒷목으로 이시운의 칼날이 닿는 감촉이 들었다.
“이제 끝났다.”
인간에게 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건가.
제우스는 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움직였다가는 저 인간의 칼에 의해 목이 날아갈 것이다.
“너는 정녕 인간인가...”
“사람이지.”
“근데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질문을 던지고 제우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설마?”
인간 중에 이토록 강한 인간은 현 세상에 없다.
아. 단 한명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기억도 가물해질 정도로 오래 전 죽고 말았다.
인간의 몸으로 수 차원을 지배하던 신들을 막아낸 자.
그는 분명 죽었는데.
그때 제우스의 힘 없는 눈으로 바람과 번개가 빗발쳐 대지에 아직도 번쩍이고 있었다.
바람? 설마.
“…당신은 바람의 군왕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부활했는가...”
제우스는 믿을 수 없어서 되물었다.
“널 지금 당장 죽이고 싶지만 그러면 내가 곤란한 상황이라..”
“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신념인가?”
“아니. 내가 아끼는 녀석이 너의 아들이라서.”
“아아...”
그 말에 제우스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내 말을 잘 듣고 약속해라. 이계에 침범하지 말고 더 이상 관여하지도 마라.”
“……….”
“그리고 메두사에게 다신 나타나지도 말고.”
“약속한다면…… 살려준다는 말인가.”
“그래야지.”
제우스는 인간에게 이런 모독을 당한다는 것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약속한다.”
“스틱스강을 걸고 맹세해라.”
신은 스틱스강을 걸고 맹세하면 그 맹세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것은 어길 수 없는 신의 규율.
스틱스강을 걸고 행한 맹세를 어긴다면 신조차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스틱스는 지옥의 강이니까.
“스, 스틱스 강을 걸고 맹세하겠노라. 당신의 말을 이행하겠다.”
제우스는 치욕스러움을 억누르며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좋다.”
시운이 칼을 거두었다.
“제우스. 근데….”
이시운이 제우스의 손가락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래도 손가락 하나는 가져가야겠다….”
아드득!
손가락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제우스가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시운은 제우스의 중지를 더 세게 당겼다.
제우스의 손가락이 뒤로 휘면서, 뼈가 부서지고 신경과 힘줄이 튀어나오며 죽죽한 피가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악!!!!!!”
“이게 내 소환수를 탐한 대가다.”
시운은 자신의 팔뚝만한 제우스의 중지손가락을 절단하여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등을 돌려 아콘에게로 걸어갔다. 그의 뒤에서 제우스의 처절한 비명만이 들려왔다.
올림푸스 신전에서 신들과 대치를 하고 있던 레이논은 시운이 보낸 바람의 신호를 듣고 군단을 철수시켰다.
그 후 올림푸스 신들은 손가락 하나를 잃은 채 귀환한 제우스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며 말도 붙이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을 멸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천지를 휘저은 제우스의 분노에 불안에 떨던 이계의 인간들은 예고된 재앙이 지나갔음에 안도했다.
“신이 우릴 도와주신 것이야..”
그들은 하늘이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쏴아아-!
이계의 잔잔한 바닷가에는 현계와 같이 바닷물이 느슨하게 모래사장을 삼켰다.
시운은 뒷짐을 진채 바닷가를 바라봤다.
메두사는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이제 나는 돌아가야 한다.”
이시운이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메두사에게 서글프게 들려왔다.
“나도 당신을 따라서 그곳으로 가겠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불가능한 일이 어딨어! 내가 본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것은 없었어.”
메두사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리칼이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 휘어진다.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네.”
시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데스를 만나고 왔다.
하데스의 힘으로 이 차원을 개방시켰다고 한다. 그 행위는 많은 힘을 소모한다고 해서 하데스는 언제 또 자신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옥에서 재림시켰던 망령의 군단들의 일부는 성불시켜 주었다.
“잠깐만….”
메두사가 시운을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그녀는 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그를 간절하게 껴안으며 울었다.
시운은 소중한 메두사를 뿌리칠 수 없었다.
등으로 닿은 그녀의 상반신 온기가 따스히 느껴진다.
메두사가 울고 있었다. 항상 다혈질적인 성격에 눈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그녀가 운다.
“너 울 줄도 알아?”
“가지마. 당신이 여기 남아줘.”
“난 돌아가야 해. 내가 사는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많아.”
시운의 말은 메두사에게 비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남아주면 안 돼? 우리를 위해서….”
“미안하다.”
메두사의 턱이 시운의 어깨에 닿았다. 시운의 얼굴에 메두사의 얼굴이 닿았다.
그녀의 볼가에서 타고 흐르는 눈물이 어깨를 적셨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거야. 나도 너희들을 평생 보고 싶다. 근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 그럼 남겨진 우리는 어떡하라고!”
“이런 말이 있더라. 사랑하는 사람은 좋을 때는 그게 내게 행복이지만 힘들 때는 짐이라더라.”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돼. 너희들은 너희들만의 삶이 있는 거니까.”
석양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하늘이 어두워지고 그들의 그림자가 모래사장에 드리워졌다.
그때 메두사는 결심한 듯 더욱 시운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 당신을 사랑한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가지마. 가지마라. 가지 말아주라. 내 곁에 남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