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59화 (259/278)

제 259화

후일담- 이세계 무신 아카데미 (2)

메두사는 쓸쓸한 눈빛으로 아카데미의 광경을 내다본다.

그것을 본 데스나이트는 그녀를 측은하게 느꼈다.

“메두사. 내 얘기 들어봐.”

“우울한 얘기는 그만 하자.”

“주군이 돌아오신다고 해도 네 자리는 없어.”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메두사는 알고 있다는 듯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한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너 정도면 얼굴도 예쁘고 나이도 창창한데.”

“처음이었어. 그런 사람은….”

메두사는 그와의 소중한 기억들을 회상하는 듯 허공을 올려다봤다.

“그는 단 한 번도 나한테 화를 내지 않았어. 내가 그의 권속된 하수인데도. 내가 촐싹거리고 맞먹고 화내고, 툴툴거려도 화 한 번 안 내더라. 정말 바보같이….”

울컥했는지, 메두사가 말을 하다가 턱끝을 떨며 잠시 말을 멈춘다.

“참 바보같이도 좋은 사람이었지.”

“근데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뭐?”

“화를 참는 표정조차 없었다는 거야. 나의 그런 태도들에도 짜증조차 한 번 나지 않았나봐. 그건 가족한테도 불가능한 일이야.”

“그게 네가 좋아하는 이유인가?”

“몰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넌 그와 사랑을 할 수 없단 것은 너도 알잖아.”

“혼자 하는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야. 비참하지만.”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나? 생각보다 감성적인 여자였네.”

“닥쳐. 네 눈에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데스나이트는 활짝 웃으며 메두사의 어깨를 토닥여주다가 메두사가 그 손을 휙 뿌리치며 노려본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척준경은 생각했다.

‘서로 사모하는 사이인가 보군.’

그렇다면 굳이 방해를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척준경은 날카롭게 원생들을 관찰했다.

원생들은 실력에 따라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으로 나뉜다.

하급반은 확실히 검을 뽑는 발도조차 긴장하며 하는 반면.

상급반은 달랐다. 발끝으로 마력을 뿜어내 박차고 전방 먼 거리까지 단숨에 검을 찌를 수 있는 수준이다.

“원장님. 부탁 하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손을 들고 외친 그는 상급반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최상급 용병단의 현역 헤이드였다.

“그 부탁은 나와 대련을 하고 싶다는 부탁인가?”

척준경은 헤이드의 눈빛을 읽었다. 검을 든 자의 그 눈빛은 분명 각오와 도전을 담은 검사의 눈빛이었다.

“역시 원장님답게 단숨에 캐치하시네요. 응해주시겠습니까?”

“검을 뽑아라.”

철컹-!

헤이드의 선명한 검명에 원생들이 연습을 멈추고 수근거렸다.

순간 분위기는 고요해졌다.

“헤이드 미친 거 아니야?”

“원장님한테 도전을 하다니...”

“패기 쩐다. 근데 헤이드도 용병단 중에서는 최고 엘리트였잖아?”

“어쩌면 비벼볼 수도?”

척준경은 가만히 검을 겨눈 채 헤이드를 바라봤다.

헤이드는 그런 척준경을 보면서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모습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틈이 없었다. 정지된 채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몸을 굳게 만들었다.

‘난 이계 최고의 칼잡이가 되고 만다.’

그러나 헤이드는 그런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발카스에서 가장 알아주는 용병단의 엘리트로 활약하면서 단 한 번도 검으로 밀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3년이란 시간동안 검만 바라보고, 칼만 생각하고 폐관수련을 해왔다.

순식간에 돌진해서 거리를 좁힌 헤이드의 검이 척준경에 날아든다. 준경은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다리만 움직여가며 칼을 피해낸다. 뒤이어 더 빠른 헤이드의 횡베기는 허공을 갈랐다.

처척!

공격을 끝내고 곧바로 뒤로 물러난 헤이드는 칼자루를 역수로 쥐고 고쳐잡았다.

‘역시 예상대로군.’

“와... 검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다 피했어.”

“괜히 미카엘을 벤 원장님이겠냐?”

“좀 닥치고 보자. 왜 이렇게 시끄러워?”

“너나 언성 낮춰!”

원생들은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헤이드가 척준경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척준경은 칼끝이 헤이드를 향해 따라가며 그 또한 따라 돌았다.

순간 발 뒤꿈치로 마력을 뿜어내며 내쏟는 헤이드의 검이 척준경의 칼을 두드렸다.

티이잉.

준경의 칼이 흔들렸다.

그러나 긴 머리칼 속에서 똑바로 주시하고 있는 척준경의 눈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

처처처척! 헤이드는 마력과 공력을 뒤섞어 발끝에서 폭발시키며 준경을 중심으로 감싼 채 주위를 빠르게 돌았다.

마치 소용돌이 치듯이.

“와.. 헤이드가 너무 빨라서 보이지가 않아.”

“저 검법은 괴산검법이다.”

“괴산검법?”

“단신으로 마물 백 마리를 일칼에 베어냈다는 용병이 사용하던 고속검법.”

“그걸 헤이드가 쓰고 있단 말이야?”

“선택받은 자만 쓸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노력한다고 흉내낼 수 있는 검법은 아니지.”

원생들의 놀라운 시선이 헤이드에게로 모여있다.

준경은 가만히 선 채로 있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쉼 없이 타이밍을 노리고 움직이는 헤이드를 그냥 바라본다.

그때 헤이드의 검이 날아왔다. 그걸 준경이 막아낸다. 다시 돌며 날아온다. 또 쇄도해온다.

그 속도는 가히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타타타타탁!

무수히 쇄도해오는 헤이드의 검.

준경은 묵묵히 검을 검으로 쳐낸다. 헤이드의 검에 속력이 점점 붙어 허공에 수많은 궤적을 자아낸다.

까아앙!

그때 무겁게 실려 내리찍은 헤이드의 검에 준경의 검이 또 한 번 흔들린다.

까아앙!

헤이드의 두 번째 검에 준경의 검이 더 크게 흔들리며 준경의 눈빛도 흔들렸다.

준경은 직선으로 헤이드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헤이드는 짐승같은 민첩함으로 검을 피해 더 뛰어올라 준경의 칼끝 위에 한 발을 걸치고 그 위에 서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헤이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검귀라 불리는 원장님이라지만 노쇠했군.’

헤이드는 머리 또한 엘리트 용병단 내에서 가장 비상하다고 알려졌다.

이미 준경의 검술 패턴은 그동안 지켜봐오면서 모두 분석한 상태다.

다음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 역시나 그 예측대로 준경의 검이 날아든다. 그 검은 반쯤 쏟아지다가 변칙적으로 틀어져 헤이드의 목을 향해왔다.

헤이드는 검을 빠르게 쳐내고 곧바로 사선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펄럭-!

준경의 도복이 찢어져 공중에 휘날린다.

그럼에도 헤이드는 방심하지 않는다. 호흡조차 참고 찰나를 노린다.

투아악!

헤이드가 발로 걷어찬 모래가 준경의 얼굴에 쏟아진다. 시야가 막힌 준경이 순간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때 헤이드의 검끝이 준경의 복부를 쓸어낸다.

뒤이어 아래에서 위로 올려긋는 합에 준경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졌다.

공중에 준경의 선혈이 튀어오른 것을 보고 헤이드는 공력을 모두 실어 척준경의 검을 내리쳤다.

타아앙!

준경의 검이 그의 손끝에서 벗어나 공중에서 회전하며 땅에 떨어져 푹 박혔다.

순간 일대에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이로서 이 대련은 제가 이겼네요. 원장님과 대련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헤이드는 비틀거리는 척준경을 보며 말했다.

“…!”

그런데 헤이드는 어깨에서 불이 타는 느낌에 어깨를 움켜잡고 입술을 떨었다.

뭐지?

척준경은 움직이지도 않고 피를 흘리며 가만히 서있다. 검도 놓친 상태다.

“크윽.”

뒤이어 반대쪽 어깨가 끊어지는 느낌에 칼을 떨어뜨린 헤이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크억!”

이번에는 헤이드의 두 허벅지에서 죽죽한 혈이 흘러나왔다.

두 팔과 두 다리에 상처를 입은 헤이드는 철퍼덕 주저앉아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준경을 바라봤다.

“검에 사사로운 감정을 넣지 말라고 한 이유가 이것이다.”

헤이드는 순간 피부가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망막으로 비친 척준경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채로 검끝을 겨누고 있었다.

대체 어느 순간에?

“방금 네가 본 것은 네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환영에 불과하다.”

“…환술을 사용하신 겁니까?”

검술 대련은 암묵적으로 마력과 검만을 사용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것을 깨고 환술을 사용했다면 원장은 무신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자다.

“난 그런 걸 사용할 줄도 모른다. 네가 올곧지 않은 신념을 검에 담았기에 네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장면들을 네가 본 것 뿐이다.”

“아.”

존경을 담아 대답하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헤이드는 자신의 상체와 하체를내려다보며 더욱 무력감을 느꼈다.

‘급소가 모두 빗나갔다... 이것조차 설마..’

준경이 검을 검집에 끼워놓고 헤이드를 일으켜준다.

“급소는 모두 빗나가게 했다. 치명상은 없을거야.”

그 광경을 보며 침묵하던 원생들은 뒤이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헤이드의 귓가에 수치스럽게 들려왔다.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압도적인 패배감.

“정말... 검에 신념을 넣는다는 것이 말장난이 아닌 것 같군요.”

“때가 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자네는 충분한 재능을 지녔다.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지금 느낀 패배감을 충분히 맛보며 원동력으로 삼아라.”

“네.”

헤이드는 준경을 보며 그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어떠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이 치료해준단다!”

일미호가 베른을 가리키며 헤이드에게 소리쳤다.

일종의 통역이다.

우우웅!

베른은 언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헤이드에게 손을 뻗는다. 그 손에서 뻗어나온 푸르른 구 체가 네 개로 분산되어 헤이드의 피부를 감싼다.

헤이드는 허탈한 눈으로 준경을 바라봤다. 이미 그의 눈으로 비친 척준경은 뛰어넘어야 할 산이 아닌 경의로움 그 자체로 비춰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준경의 말에 원생들은 검을 땅에 내려놓고 철푸덕 주저앉아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준경의 “검이 검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라는 호통에 벌떡 일어나 검집에 검을 넣는다.

휘이이잉!

불어온 바람이 준경이 입은 하얀 도복자락을 춤추게 했다.

조용히 검집에 검을 녛으려던 그 순간 척준경의 눈이 커졌다.

‘이 신호는...’

그의 검끝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다. 마치 검이 무언가를 경고하듯이.

그가 고려시대부터 사용해온 그 도검은 재앙이 일어날 때마다 검명을 내며 재앙을 예고하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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